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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 강론

2024년 3월 9일 사순 제3주간 토요일

작성자푸른잎새|작성시간24.03.08|조회수448 목록 댓글 8

제1독서
▥ 호세아 예언서의 말씀 6,1-6

 

1 자, 주님께 돌아가자.
그분께서 우리를 잡아 찢으셨지만 아픈 데를 고쳐 주시고 우리를 치셨지만 싸매 주시리라.
2 이틀 뒤에 우리를 살려 주시고 사흘째 되는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어 우리가 그분 앞에서 살게 되리라.
3 그러니 주님을 알자. 

주님을 알도록 힘쓰자.
그분의 오심은 새벽처럼 어김없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비처럼, 땅을 적시는 봄비처럼 오시리라.
4 에프라임아, 내가 너희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유다야, 내가 너희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너희의 신의는 아침 구름 같고 이내 사라지고 마는 이슬 같다.
5 그래서 나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그들을 찍어 넘어뜨리고 내 입에서 나가는 말로 그들을 죽여 나의 심판이 빛처럼 솟아오르게 하였다.
6 정녕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다.
번제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는 예지다.

 


복음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 18,9-14

 

그때에 

9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사이였고 다른 사람은 세리였다.
11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 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12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13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1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를 들려주십니다.

이 비유에는 대조를 이루는 두 인물, 곧 스스로를 ‘의인’이라고 여기는 죄인인 바리사이와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여기는 의인인 세리가 있습니다. 

그들의 가장 큰 차이는 ‘보는 눈’에 있습니다. 

첫째, 그들은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서로 달랐습니다. 

 

바리사이의 눈은 자신을 의롭다고 보는 눈이고, 세리의 눈은 자신을 죄인이라고 보는 눈입니다. 

곧 바리사이에게는 자신을 높이는 눈이 있고, 세리에게는 자신을 낮추는 눈이 있습니다. 

둘째, 그들은 ‘타인을 보는 눈’이 서로 달랐습니다. 

 

바리사이의 눈은 타인을 업신여기는 눈이고, 세리의 눈은 타인을 중히 여기는 눈입니다. 

곧 바리사이에게는 꼿꼿이 서서 하늘을 향하는 눈이 있고, 세리에게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눈이 있습니다. 

곧 타인의 가슴을 치는 이가 있고, 자신의 가슴을 치는 이가 있습니다. 

셋째, 그들은 눈이 ‘바라보는 곳’이 서로 달랐습니다. 

 

바리사이의 눈은 자신을 향하여 있고, 세리의 눈은 하느님을 향하여 있습니다. 

그래서 바리사이는 스스로 의롭다 자신하고 혼자말로 기도했습니다.(루카 18,11)

이 말의 원어를 직역하면, '자신을 향해 기도했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루카 18,11)라고 말하지만, 실은 긴 독백으로 하느님께 설교하려 들었습니다.

그러니 그는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자신을 위해 있어야 했습니다.

 

곧 하느님이 자신의 가치 확인과 자화자찬을 위해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우러르기보다 자기 자신을 바라보며 자신을 앞세웁니다. 

반면에, 세리는 하느님을 향하여 있으며, 자신과 하느님의 거리를 알아차립니다. 

그래서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루가 18,13), 그리고 그분 앞에서 자신이 진실로 누구인지를, 곧 죄인임을 깨닫고서, 가슴을 치며 말하였습니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루카 18,13)

그렇게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에 자신을 맡깁니다.

시나이의 성 이사악은 말합니다.
“자신의 죄를 아는 이가 기도로 죽은 이를 살리는 이보다 위대하다. 
~ 자기 자신 때문에 한 시간 동안 우는 이가 온 세상을 통치하는 이보다 위대하다. 
자신의 나약함을 아는 이가 천사들을 보는 이보다 더 위대하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겸손’은 하느님 앞에 있기에, 자기를 비하하거나 경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자비가 필요함을 알고 그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낮추되, 결코 자신을 하잖게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자신을 중히 여기고 자비를 구하는 것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도 귀중하게 여기고 중시합니다.

그러기에 겸손은 자신을 낮추기만 한 것이 아니라 타인을 우러르며 존경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언제나 주님 앞에 서 있고, 주님을 향하여 있어야 할 일입니다. 

그분의 자비를 입고서야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자비가 아니면 살 수가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 필요한 것은 당신의 자비, 그 외엔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가슴을 치며 하느님을 향해 기도합니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루카 18,13)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루카 18,13)

 

주님!

제 눈이 당신을 바라보게 하소서.

당신 앞에서 제 자신을 보고, 당신 안에서 타인을 바라보게 하소서.

타인의 존귀함을 볼 줄을 알게 하시고, 제 자신의 가슴을 칠 줄을 알게 하소서.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진정 제게 필요한 것은 당신의 자비오니, 당신의 자비가 아니고서는 살 수가 없는 까닭입니다.

그토록 자비를 입었으니, 자비를 베푸는 자가 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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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앞동산 | 작성시간 24.03.09 아 멘 !
    감사합니다 ^^
  • 작성자충주 헬레나 | 작성시간 24.03.09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들꽃1 | 작성시간 24.03.09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atti | 작성시간 24.03.09 아멘.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4.03.09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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