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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 강론

2024년 3월 10일 사순 제4주일

작성자푸른잎새|작성시간24.03.09|조회수463 목록 댓글 7

제1독서
▥ 역대기 하권의 말씀 36,14-16.19-23

 

그 무렵 

14 모든 지도 사제와 백성이 이방인들의 온갖 역겨운 짓을 따라 주님을 크게 배신하고, 주님께서 친히 예루살렘에서 성별하신 주님의 집을 부정하게 만들었다.
15 주 그들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과 당신의 처소를 불쌍히 여기셨으므로, 당신의 사자들을 줄곧 그들에게 보내셨다.
16 그러나 그들은 하느님의 사자들을 조롱하고 그분의 말씀을 무시하였으며, 그분의 예언자들을 비웃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주님의 진노가 당신 백성을 향하여 타올라 구제할 길이 없게 되었다.
19 그들은 하느님의 집을 불태우고 예루살렘의 성벽을 허물었으며, 궁들을 모두 불에 태우고 값진 기물을 모조리 파괴하였다.
20 그리고 칼데아 임금은 칼을 피하여 살아남은 자들을 바빌론으로 유배시켜, 그와 그 자손들의 종이 되게 하였는데, 이는 페르시아 제국이 통치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21 그리하여 주님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이 땅은 밀린 안식년을 다 갚을 때까지 줄곧 황폐해진 채 안식년을 지내며 일흔 해를 채울 것이다.”
22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 제일년이었다.
주님께서는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의 마음을 움직이셨다.
그리하여 키루스는 온 나라에 어명을 내리고 칙서도 반포하였다.
23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는 이렇게 선포한다.
주 하늘의 하느님께서 세상의 모든 나라를 나에게 주셨다.
그리고 유다의 예루살렘에 당신을 위한 집을 지을 임무를 나에게 맡기셨다.
나는 너희 가운데 그분 백성에 속한 이들에게는 누구나 주 그들의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기를 빈다. 

그들을 올라가게 하여라.”

 


제2독서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 2,4-10

 

형제 여러분, 

4 자비가 풍성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
5 잘못을 저질러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 여러분은 이렇게 은총으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
6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그분과 함께 일으키시고 그분과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7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호의로, 당신의 은총이 얼마나 엄청나게 풍성한지를 앞으로 올 모든 시대에 보여 주려고 하셨습니다.
8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는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9 인간의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기 자랑을 할 수 없습니다.
10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우리는 선행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선행을 하며 살아가도록 그 선행을 미리 준비하셨습니다.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 3,14-21

 

그때에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말씀하셨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15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18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19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20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21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오늘은 사순 4주일로, '기쁨주일'입니다. 

우리는 오늘 입당송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예루살렘아. 즐거워하여라.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위로의 젖으로 기뻐 뛰며 흡족해 하리라.”

그리고 제1독서에서 역대기 저자는 주님을 배신한 이스라엘 백성이 나라를 잃고 성전은 파괴되고 이방인의 땅에서 유배생활을 하다가 마침내 하느님께서 그 유배를 끝내주시는 기쁨을 말해줍니다.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께서 실현한 구원과 그리스도께서 실현한 부활을 함께 노래하며, 우리를 기쁨에로 초대합니다. 

복음은 ‘복음’에 관한 가장 핵심적이고 중요한 내용을 말해줍니다.

흔히 말하는 '복음서들 속에 있는 복음' 혹은 '작은 복음서'라고 불리는 구절입니다.

 

이를 오늘 복음에서는 이 한 마디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요한 3,16)

여기에는 하느님의 외아들이 세상에 오신 이유와 그 사명의 기원과 본질이 '하느님의 사랑'임을 천명합니다.

곧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의 '외아드님'을 보내주셨습니다.

그 사랑은 단지 선택된 민족 이스라엘이나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인만이 아니라, 온 '세상'에 대한 사랑입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주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손에 못이 박히고 가슴이 창에 찔리고 머리에는 가시관을 쓰면서도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우리를 향한 ‘아버지의 사랑’이 얼마나 크신지를 말해줍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을 사랑한 나머지 아들 이사악을 하느님께 바칩니다.)

동시에 우리가 그토록 차고 넘치는 사랑을 ‘이미’ 받아먹은 고귀하고 존귀한 존재임을 말해줍니다.

 

이토록 하느님께서는 '세상'과 모든 사람을 사랑하셨습니다.

만약 세상을 심판하시려고 하셨다면, 굳이 당신의 외아들을 보낼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우박이나 번개, 천재지변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하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구원하시고 나를 구원하시려고 다름 아닌 당신의 외아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러기에 세상과 모든 사람들은 거부하고 배척해야 할 그 무엇이 아닙니다.

더구나 파괴해야 할 그 무엇은 더더욱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은 존중하고 수락해야 할 선물이요, 사랑해야 할 대상입니다.

나아가서 하느님 나라가 건설되어야 하는 축복의 자리요 대상입니다.

 

그런데도 혹 우리는 세상을 마치 마귀처럼 미워하고 있지는 않은지 들여다보아야 할 일입니다.

사실 미워해야 할 것은 '세상'이 아니라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세속정신'과 ‘어둠’입니다.

그것은 맘몬을 앞세우고 굴러가는 물신주의나 자신의 이익의 극대화만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 체제의 자기 중심적 이기주의 같은 것들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복음 정신입니다.

타인을 위하여 사는 이타적인 '사랑'이 세상을 성화시킬 것입니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시어 심판이 아니라 구원하시고자 하시건만, ‘이미’ 심판을 받은 이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빛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이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까닭입니다’(요한 3,19 참조).

곧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음은 ‘이미’ 심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요한 3,18)

그렇습니다. 

세상에 빛은 이미 왔고, 우리는 ‘이미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이미 하느님의 사랑을 받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총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곧 ‘하느님 나라’는 이미 우리 가운데 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이를 체험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자신이 구원의 삶과 사랑을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장님이 빛이 비추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사실 그것은 빛이 없어서가 아니라, 눈이 감겨있어 빛을 보고 못한 따름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피앗’의 응답이 구원을 불러옵니다.

그리하여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갑니다.(요한 3,21)

 

그러니 시편(36,11)의 말씀처럼, 빛으로 빛을 보아야 할 일입니다.

어둠 속에서 빛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빛이 오면 어둠은 물려갈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우리 안에서 어둠을 볼 수 있음은 이미 빛이 비추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어둠인 줄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어둠을 바라보기보다 어둠을 비추어주는 빛을 바라보고 나아가야 할 일입니다.

사실 어둠은 어둠을 보며 어둠으로 이끌지만, 빛은 빛을 보며 빛으로 이끌어갑니다. 

그렇습니다. 

빛은 이미 세상에 왔고, 우리는 빛의 자녀입니다. 

그래서 빛으로 나아가며 기뻐합니다.

 

오늘도 하느님 사랑의 빛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세상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요한 3,16)

 

주님!

당신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손에 못이 박히고 가슴이 창에 찔리고 머리에는 가시관을 쓰시면서도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저도 당신 사랑의 멍에를 지고 거부되고 배척받을지라도 사랑하기를 멈추지 말게 하소서!

이해받지 못하고 부당한 처사를 받을지라도 사랑으로 져줄 줄 알게 하소서.

사랑으로 눈감을 줄을 알고, 죄 없으면서도 뒤집어쓸 줄을 알며, 약해져 꺾일 줄 알고, 낮아져 밟힐 줄을 알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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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아참 | 작성시간 24.03.10 ‘하느님 나라’는 이미 우리 가운데 와 있는 것입니다.
  • 작성자앞동산 | 작성시간 24.03.10 아 멘 !
    감사합니다 ^^
  • 작성자조나단 | 작성시간 24.03.10 아멘 신부님 푸른잎새 님 고맙습니다.
  • 작성자atti | 작성시간 24.03.10 Amen.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4.03.10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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