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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 강론

2024년 3월 14일 사순 제4주간 목요일

작성자푸른잎새|작성시간24.03.13|조회수447 목록 댓글 11

제1독서
▥ 탈출기의 말씀 32,7-14

 

그 무렵 

7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어서 내려가거라. 

네가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너의 백성이 타락하였다.
8 저들은 내가 명령한 길에서 빨리도 벗어나, 자기들을 위하여 수송아지 상을 부어 만들어 놓고서는,
그것에 절하고 제사 지내며, ‘이스라엘아, 이분이 너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너의 신이시다.’ 하고 말한다.”
9 주님께서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 백성을 보니, 참으로 목이 뻣뻣한 백성이다.
10 이제 너는 나를 말리지 마라.
그들에게 내 진노를 터뜨려 그들을 삼켜 버리게 하겠다.
그리고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11 그러자 모세가 주 그의 하느님께 애원하였다.
“주님, 어찌하여 당신께서는 큰 힘과 강한 손으로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신 당신의 백성에게 진노를 터뜨리십니까?
12 어찌하여 이집트인들이, ‘그가 이스라엘 자손들을 해치려고 이끌어 내서는, 산에서 죽여 땅에 하나도 남지 않게 해 버렸구나.’ 하고 말하게 하시렵니까?
타오르는 진노를 푸시고 당신 백성에게 내리시려던 재앙을 거두어 주십시오.
13 당신 자신을 걸고, ‘너희 후손들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약속한 이 땅을 모두 너희 후손들에게 주어, 상속 재산으로 길이 차지하게 하겠다.’ 하며 맹세하신 당신의 종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이스라엘을 기억해 주십시오.”
14 그러자 주님께서는 당신 백성에게 내리겠다고 하신 재앙을 거두셨다.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 5,31-47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31 “내가 나 자신을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유효하지 못하다.
32 그러나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분이 따로 계시다.
나는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그분의 증언이 유효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33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들을 보냈을 때에 그는 진리를 증언하였다.
34 나는 사람의 증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너희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다.
35 요한은 타오르며 빛을 내는 등불이었다.
너희는 한때 그 빛 속에서 즐거움을 누리려고 하였다.
36 그러나 나에게는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이 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완수하도록 맡기신 일들이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이다.
37 그리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도 나를 위하여 증언해 주셨다.
너희는 그분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한 번도 없고 그분의 모습을 본 적도 없다.
38 너희는 또 그분의 말씀이 너희 안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지 않기 때문이다.
39 너희는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한다.
바로 그 성경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40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 와서 생명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41 나는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받지 않는다.
42 그리고 나는 너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안다.
43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른 이가 자기 이름으로 오면, 너희는 그를 받아들일 것이다.
44 자기들끼리 영광을 주고받으면서 한 분이신 하느님에게서 받는 영광은 추구하지 않으니, 너희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
45 그러나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하리라고 생각하지는 마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는 너희가 희망을 걸어 온 모세이다.
46 너희가 모세를 믿었더라면 나를 믿었을 것이다.
그가 나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47 그런데 너희가 그의 글을 믿지 않는다면 나의 말을 어떻게 믿겠느냐?”

 

 

 

 

<“너희는 ~말씀이 너희 안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당신의 정체성을 4중적 증거를 통해 입증하십니다.

곧 세례자 요한(33-35절)과 성부 하느님(30-32절)과 당신 자신의 활동(36절)과 성경(38-47절)이 당신을 증거하고 있음을 밝히십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증거는 명확하고 확실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분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마음이 닫혀 있는 까닭이었을 것입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함은 결코 증거가 부족해서거나 계시가 없어서가 아니라, 믿고 받아들이지 못한 그들의 완고함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이들을 가리켜 오늘 제1독서에서는 “목이 뻣뻣한 백성”(탈출 32,9)이라고 표현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이러한 완고함의 특성을 두 가지로 밝혀주십니다.

한편으로는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분을 믿지 않았다.’ 라는 말로 표현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품지 않았다.’ ‘그분의 말씀을 품지 않았다.’ 라는 말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는 ‘완고함’은 주님이신 하느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피조물인 자기 자신이라는 우상을 믿어버리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우상 숭배에 빠지고, 주님이신 하느님을 거역한 결과를 초래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우상 숭배를 두고서 예레미아서(5,7)에서도, 에제키엘서(23,27)에서도 영적 간음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참된 정배이신 주님이 아닌 우상을 섬기고 따르고 하느님을 거역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니 ‘완고함’이란 말씀을 거역함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말씀이 자신 안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당신을 받아들이지 않고 믿지 않는 이들의 이유를 이렇게 밝히십니다. 
“너희는 ~말씀이 너희 안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요한 5,38)
“너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

(요한 5,42)

결국 완고함은 말씀을 품지 않고 있고, 하느님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있지 않음을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말씀을 품지 않으면 곧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우상을 품게 되기 때문입니다.

곧 4중의 증언의 말씀을 듣고도 품지 않은 까닭입니다.

 

결국 완고함은 하느님 사랑이냐, 자기 사랑이냐, 하느님 사랑하는 마음과 주님의 말씀을 품고 있느냐, 자기 자신을 품고 있느냐의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주님을 위한 마중의 시간인 이 사순절이 말씀을 품고서 하느님의 뜻에 충실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아버지께서 나에게 완수하도록 맡기신 일들이다.”

(요한 5,36)

 

주님!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해야 할 일, 맡기신 일을 하게 하소서.

계산하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믿고 하게 하시고,

의무에서가 아니라 사랑으로 하게 하소서.

바라는 일이 아니라 주어진 일을 하게 하시고,

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과 함께 하게 하소서.

시작만 하는 것이 아니라 완수하게 하시고,

일을 통해 내 자신이 아니라 당신이 드러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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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들꽃1 | 작성시간 24.03.14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충주 헬레나 | 작성시간 24.03.14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아낄래요 | 작성시간 24.03.14 오늘도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한 하루 되세요.~^^
  • 작성자가을비 | 작성시간 24.03.14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atti | 작성시간 24.03.1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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