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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 강론

2024년 3월 26일 성주간 화요일

작성자푸른잎새|작성시간24.03.25|조회수624 목록 댓글 15

제1독서
▥ 이사야서의 말씀 49,1-6

 

1 섬들아, 내 말을 들어라. 

먼 곳에 사는 민족들아, 귀를 기울여라.
주님께서 나를 모태에서부터 부르시고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내 이름을 지어 주셨다.
2 그분께서 내 입을 날카로운 칼처럼 만드시고 당신의 손 그늘에 나를 숨겨 주셨다.
나를 날카로운 화살처럼 만드시어 당신의 화살 통 속에 감추셨다.
3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종이다. 

이스라엘아, 너에게서 내 영광이 드러나리라.”
4 그러나 나는 말하였다.

“나는 쓸데없이 고생만 하였다.
허무하고 허망한 것에 내 힘을 다 써 버렸다.
그러나 내 권리는 나의 주님께 있고 내 보상은 나의 하느님께 있다.”
5 이제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분께서는 야곱을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고 이스라엘이 당신께 모여들게 하시려고 나를 모태에서부터 당신 종으로 빚어 만드셨다.
나는 주님의 눈에 소중하게 여겨졌고 나의 하느님께서 나의 힘이 되어 주셨다.
6 그분께서 말씀하신다.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다시 일으키고 이스라엘의 생존자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나의 구원이 땅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 13,21ㄴ-33.36-38

 

그때에 제자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신 예수님께서는
21 마음이 산란하시어 드러내 놓고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22 제자들은 누구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지 몰라 어리둥절하여 서로 바라보기만 하였다.
23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 품에 기대어 앉아 있었는데, 그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였다.
24 그래서 시몬 베드로가 그에게 고갯짓을 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람이 누구인지 여쭈어 보게 하였다.
25 그 제자가 예수님께 더 다가가, “주님, 그가 누구입니까?” 하고 물었다.
26 예수님께서는 “내가 빵을 적셔서 주는 자가 바로 그 사람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리고 빵을 적신 다음 그것을 들어 시몬 이스카리옷의 아들 유다에게 주셨다.
27 유다가 그 빵을 받자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하려는 일을 어서 하여라.”
28 식탁에 함께 앉은 이들은 예수님께서 그에게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아무도 몰랐다.
29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주머니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예수님께서 그에게 축제에 필요한 것을 사라고 하셨거나, 또는 가난한 이들에게 무엇을 주라고 말씀하신 것이려니 생각하였다.
30 유다는 빵을 받고 바로 밖으로 나갔다. 

때는 밤이었다.
31 유다가 나간 뒤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고, 또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셨다.
32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셨으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이제 곧 그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33 얘들아,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너희는 나를 찾을 터인데, 내가 유다인들에게 말한 것처럼 이제 너희에게도 말한다.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36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다. 그러나 나중에는 따라오게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37 베드로가 다시 “주님, 어찌하여 지금은 주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까? 주님을 위해서라면 저는 목숨까지 내놓겠습니다.” 하자,
38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나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겠다는 말이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새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우리는 성삼일을 이틀 앞두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절망과 어둠이 더해가는 이야기입니다.

빛으로부터 떠나 어둠 속으로 빠져들어 간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에는 두 개의 밤이 있습니다.

그리고 두 개의 배반이 있습니다.

하나는 유다의 밤이요, 또 하나는 베드로의 밤입니다.

유다의 밤은 캄캄한 어둠이 짙어져가는 밤이요, 베드로의 밤은 닭이 울기 전 새벽이 밝아져오는 밤입니다. 

유다의 밤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둠이 제자들을 덮치자, 마음이 산란하시어 드러내놓고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요한 13,21)

사실 예수님께서는 배반하는 제자를 마지막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빵을 적셔서 그에게 주었습니다.

빵을 적셔서 주는 것은 애정의 표현이었습니다.

당신을 배반할 제자에게 끝까지 베푸는 충실한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사랑을 등지고서 밤의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택했습니다.

그는 의도적으로 면밀히 계획한 바를 어둠 속에서 행했던 것입니다.

베드로의 밤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내놓겠다고 장담하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새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요한 13,38)

베드로는 주님을 배반할 의향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약한 순간에 그만 미끄러져 넘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닭이 울면, 어둠은 밝아질 것입니다. 

베드로는 지나친 자기 과신으로 넘어졌습니다. 

사실 우리가 넘어질 때는 가장 약할 때가 아니라, 가장 강할 때입니다.

반대로 우리는 바오로 사도의 말처럼, 우리가 약할 때 오히려 강해질 것입니다(2고린 12,10). 

그렇습니다. 

유다의 밤은 어둠과 악으로부터 오는 밤이요, 베드로의 밤은 약함과 과신으로부터 오는 밤입니다.

또한 유다의 밤은 죄를 깨닫고서도 더 짙은 어둠으로 빠져들어 멸망으로 가는 밤이요, 베드로의 밤은 죄를 깨닫고서는 어둠을 헤치고 빛으로 나아가는 생명의 밤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베드로같이, 유다같이 곧잘 넘어집니다. 

사실 우리 인간은 넘어지는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모두가 일어서는 존재인 것은 아닙니다.

혹 넘어진 사실을 까달아 알고 뉘우치고 성사를 본다고 해도, 일어선 사람인 것은 아닐 것입니다.

단지 넘어진 채로 넘어진 자신을 본 것일 뿐, 비록 용서는 받았다할지라도 일어서서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일어서서 넘어졌던 자신을 보아야 할 일입니다.

빛 속으로 건너와서 어둠을 바라보아야 할 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 일어선 자만이 빛나는 새벽을 만날 것이요, 일어선 자만이 빛 속에 들 것입니다.

먼저 베풀어진 그분의 사랑을 만난 자만이 그분의 빛 속을 걸을 것입니다. 

하오니, 빛이신 주님!

저를 비추소서! 

제가 일어나 빛 속을 걷게 하소서. 
오늘 제가 비록 넘어지더라도 일어나 빛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요한 13,38)

 

주님!

어둠에 휩싸여 넘어지고 또 넘어집니다.

빛을 비추소서.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넘어지기도 전부터 베풀어진 당신의 사랑을 보게 주소서

일어나 빛 속을 걷게 하소서.

구원의 십자가를 지고 사랑의 길 걷게 하소서.

빛을 받아 빛을 밝히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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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4.03.26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들꽃1 | 작성시간 24.03.26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평화! | 작성시간 24.03.26 아멘!
  • 작성자아낄래요 | 작성시간 24.03.26 오늘도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한 하루 되세요.~^^
  • 작성자가을비 | 작성시간 24.03.26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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