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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 강론

2024년 3월 27일 성주간 수요일

작성자푸른잎새|작성시간24.03.26|조회수579 목록 댓글 12

제1독서
▥ 이사야서의 말씀 50,4-9ㄴ

 

4 주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제자의 혀를 주시어 지친 이를 말로 격려할 줄 알게 하신다.
그분께서는 아침마다 일깨워 주신다.
내 귀를 일깨워 주시어 내가 제자들처럼 듣게 하신다.
5 주 하느님께서 내 귀를 열어 주시니 나는 거역하지도 않고 뒤로 물러서지도 않았다.
6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맡겼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7 그러나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나는 내 얼굴을 차돌처럼 만든다.
나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8 나를 의롭다 하시는 분께서 가까이 계시는데 누가 나에게 대적하려는가?
우리 함께 나서 보자. 

누가 나의 소송 상대인가? 

내게 다가와 보아라.
9 보라,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는데 나를 단죄하는 자 누구인가?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 26,14-25

 

14 그때에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 유다 이스카리옷이라는 자가 수석 사제들에게 가서,
15 “내가 그분을 여러분에게 넘겨주면 나에게 무엇을 주실 작정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들은 은돈 서른 닢을 내주었다.
16 그때부터 유다는 예수님을 넘길 적당한 기회를 노렸다.
17 무교절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스승님께서 잡수실 파스카 음식을 어디에 차리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18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도성 안으로 아무개를 찾아가, ‘선생님께서 ′나의 때가 가까웠으니 내가 너의 집에서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축제를 지내겠다.′ 하십니다.’ 하여라.”
19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파스카 음식을 차렸다.
20 저녁때가 되자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식탁에 앉으셨다.
21 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22 그러자 그들은 몹시 근심하며 저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기 시작하였다.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나와 함께 대접에 손을 넣어 빵을 적시는 자, 그자가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24 사람의 아들은 자기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대로 떠나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
25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가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 하고 대답하셨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오늘 우리는 사랑하는 제자에게 은전 30냥에 팔려 배신당하는 예수님을 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배신자에게 마지막까지 인정을 베푸시고 기회를 주십니다. 

곧 예수님께서는 ‘유다야, 네가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라고 하지 않으시고,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마태 26,21)라고 말씀하시면서, 당신을 팔아넘길 자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음으로써 마지막까지 그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몹시 근심하며 저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마태 26,22)라고 묻습니다.

마찬가지로 유다도 묻지만, 그는 “주님”이라 부르지는 않습니다.

그는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마태 26,25)라고 묻습니다.

 

그가 올리브동산으로 예수님을 붙잡으러 왔을 때도 예수님께서는 “친구야, 네가 하러 온 일을 하여라.”(마태 26,50)하고 여전히 그를 ‘친구’라고 부르십니다.

그러나 그는 스승의 사랑을 끝까지 외면하고 맙니다.

그는 뒤늦게 후회는 했지만, 결국 자책과 죄책감에 빠져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자신을 용서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대체 유다는 왜 예수님을 배반했을까?

 

그것은 단순히 은전 30냥에 대한 탐욕 때문이 아니라, 완고함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자신이 바라고 원했던’ 정치적 민족적 메시아가 되어주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이상과 신념을 채워주지 않자, 자신의 그릇된 신념과 이상을 고집한 까닭이었을 것입니다.

 

‘완고함’이란 이처럼 무섭습니다.

곧 자신의 피조물인 ‘자신의 생각과 이념이라는 우상’을 섬긴 까닭이었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생각과 이상을 파괴시키는 혁명가였던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버리지 않고는 결코 예수님을 따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정녕 진정한 혁명가는 자신이 먼저 혁명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혁명을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자신이 만들어 놓은 이상을 쫒는 자는 그리스도를 따를 수 없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마태 26,24)

이 말씀은 비단 유다에게만 해당하는 말씀인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배반하는 우리 모두에게도 해당하는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저는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마태 26,22)라고 말할 용기가 없습니다.

제가 유다처럼 배신할 줄을 알기 때문입니다.

아니, 당신을 배신하는 줄을 알면서도 악에 조정당하고 있고, 오늘도 넘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주님, 제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건져주십시오.”라고 자비를 구해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마태 26,22)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라고 말할 용기가 없습니다.

제가 오늘도 배신할 줄을 알기 때문입니다.

알면서도 넘어지고 또 넘어지니 무참할 뿐입니다.

하오니, “주님, 제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저를 건져주십시오.”

당신을 떠나는 일이 없도록 도와주시고, 당신의 사랑 안에 머물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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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들꽃1 | 작성시간 24.03.27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atti | 작성시간 24.03.27 Amen.
  • 작성자가을비 | 작성시간 24.03.27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아낄래요 | 작성시간 24.03.27 오늘도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한 하루 되세요.~^^
  • 작성자충주 헬레나 | 작성시간 24.03.27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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