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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 강론

2024년 3월 29일 주님 수난 성금요일

작성자푸른잎새|작성시간24.03.29|조회수985 목록 댓글 9

제1독서
▥ 이사야서의 말씀 52,13―53,12

 

13 보라, 나의 종은 성공을 거두리라.
그는 높이 올라 숭고해지고 더없이 존귀해지리라.
14 그의 모습이 사람 같지 않게 망가지고 그의 자태가 인간 같지 않게 망가져 많은 이들이 그를 보고 질겁하였다.
15 그러나 이제 그는 수많은 민족들을 놀라게 하고 임금들도 그 앞에서 입을 다물리니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은 것을 그들이 보고 들어 보지 못한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53, 1 우리가 들은 것을 누가 믿었던가? 

주님의 권능이 누구에게 드러났던가?
2 그는 주님 앞에서 가까스로 돋아난 새순처럼, 메마른 땅의 뿌리처럼 자라났다.
그에게는 우리가 우러러볼 만한 풍채도 위엄도 없었으며 우리가 바랄 만한 모습도 없었다.
3 사람들에게 멸시받고 배척당한 그는 고통의 사람, 병고에 익숙한 이였다.
남들이 그를 보고 얼굴을 가릴 만큼 그는 멸시만 받았으며 우리도 그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4 그렇지만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벌받은 자, 하느님께 매 맞은 자, 천대받은 자로 여겼다.
5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
6 우리는 모두 양 떼처럼 길을 잃고 저마다 제 길을 따라갔지만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이 그에게 떨어지게 하셨다.
7 학대받고 천대받았지만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털 깎는 사람 앞에 잠자코 서 있는 어미 양처럼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8 그가 구속되어 판결을 받고 제거되었지만 누가 그의 운명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던가?
정녕 그는 산 이들의 땅에서 잘려 나가고 내 백성의 악행 때문에 고난을 당하였다.
9 폭행을 저지르지도 않고 거짓을 입에 담지도 않았건만 그는 악인들과 함께 묻히고 그는 죽어서 부자들과 함께 묻혔다.
10 그러나 그를 으스러뜨리고자 하신 것은 주님의 뜻이었고 그분께서 그를 병고에 시달리게 하셨다.
그가 자신을 속죄 제물로 내놓으면 그는 후손을 보며 오래 살고 그를 통하여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리라.
11 그는 제 고난의 끝에 빛을 보고 자기의 예지로 흡족해하리라.
의로운 나의 종은 많은 이들을 의롭게 하고 그들의 죄악을 짊어지리라.
12 그러므로 나는 그가 귀인들과 함께 제 몫을 차지하고 강자들과 함께 전리품을 나누게 하리라.
이는 그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버리고 무법자들 가운데 하나로 헤아려졌기 때문이다.
또 그가 많은 이들의 죄를 메고 갔으며 무법자들을 위하여 빌었기 때문이다.

 

제2독서
▥ 히브리서의 말씀 4,14-16; 5,7-9

 

형제 여러분, 

14 우리에게는 하늘 위로 올라가신 위대한 대사제가 계십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을 굳게 지켜 나아갑시다.
15 우리에게는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는 대사제가 아니라, 모든 면에서 우리와 똑같이 유혹을 받으신, 그러나 죄는 짓지 않으신 대사제가 계십니다.
16 그러므로 확신을 가지고 은총의 어좌로 나아갑시다.
그리하여 자비를 얻고 은총을 받아 필요할 때에 도움이 되게 합시다.
5, 7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고, 하느님께서는 그 경외심 때문에 들어 주셨습니다.
8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9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복음
<요한이 전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 18,1―19,42>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키드론 골짜기 건너편으로 가셨다.
거기에 정원이 하나 있었는데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들어가셨다.
2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여러 번 거기에 모이셨기 때문에, 그분을 팔아넘길 유다도 그곳을 알고 있었다.
3 그래서 유다는 군대와 함께,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보낸 성전 경비병들을 데리고 그리로 갔다.
그들은 등불과 횃불과 무기를 들고 있었다.
4 예수님께서는 당신께 닥쳐오는 모든 일을 아시고 앞으로 나서시며 그들에게 물으셨다.
“누구를 찾느냐?”
5 그들이 대답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다.”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도 그들과 함께 서 있었다.
6 예수님께서 “나다.” 하실 때, 그들은 뒷걸음치다가 땅에 넘어졌다.
7 예수님께서 다시 물으셨다.
“누구를 찾느냐?”
그들이 대답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요.”
8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다.’ 하지 않았느냐?
너희가 나를 찾는다면 이 사람들은 가게 내버려 두어라.”
9 이는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사람들 가운데 하나도 잃지 않았습니다.” 하고 당신께서 전에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려는 것이었다.
10 그때에 시몬 베드로가 가지고 있던 칼을 뽑아, 대사제의 종을 내리쳐 오른쪽 귀를 잘라 버렸다. 

그 종의 이름은 말코스였다.
11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르셨다.
“그 칼을 칼집에 꽂아라.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신 이 잔을 내가 마셔야 하지 않겠느냐?”
12 군대와 그 대장과 유다인들의 성전 경비병들은 예수님을 붙잡아 결박하고,
13 먼저 한나스에게 데려갔다.

 한나스는 그해의 대사제 카야파의 장인이었다.
14 카야파는 백성을 위하여 한 사람이 죽는 것이 낫다고 유다인들에게 충고한 자다.
15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하나가 예수님을 따라갔다.
그 제자는 대사제와 아는 사이여서, 예수님과 함께 대사제의 저택 안뜰에 들어갔다.
16 베드로는 대문 밖에 서 있었는데, 대사제와 아는 사이인 그 다른 제자가 나와서 문지기 하녀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갔다. 

17 그때에 그 문지기 하녀가 물었다.
“당신도 저 사람의 제자 가운데 하나가 아닌가요?”
그러자 베드로가 말하였다.
“나는 아니오.”
18 날이 추워 종들과 성전 경비병들이 숯불을 피워 놓고 서서 불을 쬐고 있었는데, 베드로도 그들과 함께 서서 불을 쬐었다.
19 대사제는 예수님께 그분의 제자들과 가르침에 관하여 물었다.
20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나는 세상 사람들에게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였다.
나는 언제나 모든 유다인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가르쳤다.
은밀히 이야기한 것은 하나도 없다.
21 그런데 왜 나에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이들에게 물어보아라. 

내가 말한 것을 그들이 알고 있다.”
22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곁에 서 있던 성전 경비병 하나가 예수님의 뺨을 치며 말하였다.
“대사제께 그따위로 대답하느냐?”
23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잘못 이야기하였다면 그 잘못의 증거를 대 보아라.
그러나 내가 옳게 이야기하였다면 왜 나를 치느냐?”
24 한나스는 예수님을 결박한 채로 카야파 대사제에게 보냈다.
25 시몬 베드로는 서서 불을 쬐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다.
“당신도 저 사람의 제자 가운데 하나가 아니오?”
베드로는 부인하였다.
“나는 아니오.”
26 대사제의 종 가운데 하나로서, 베드로가 귀를 잘라 버린 자의 친척이 말하였다.
“당신이 정원에서 저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을 내가 보지 않았소?”
27 베드로가 다시 아니라고 부인하자 곧 닭이 울었다.
28 사람들이 예수님을 카야파의 저택에서 총독 관저로 끌고 갔다.
때는 이른 아침이었다.
그들은 몸이 더러워져서 파스카 음식을 먹지 못할까 두려워, 총독 관저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29 그래서 빌라도가 그들이 있는 곳으로 나와 물었다.
“무슨 일로 저 사람을 고소하는 것이오?”
30 그들이 빌라도에게 대답하였다.
“저자가 범죄자가 아니라면 우리가 총독께 넘기지 않았을 것이오.”
31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이 데리고 가서 여러분의 법대로 재판하시오.”
그러자 유다인들이 말하였다.
“우리는 누구를 죽일 권한이 없소.”
32 이는 예수님께서 당신이 어떻게 죽임을 당할 것인지 가리키며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33 그리하여 빌라도가 다시 총독 관저 안으로 들어가 예수님을 불러 물었다.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
34 예수님께서 되물으셨다.
“그것은 네 생각으로 하는 말이냐?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나에 관하여 너에게 말해 준 것이냐?”
빌라도가 다시 물었다.
35 “나야 유다인이 아니잖소?

당신의 동족과 수석 사제들이 당신을 나에게 넘긴 것이오.

당신은 무슨 일을 저질렀소?”
36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다면, 내 신하들이 싸워 내가 유다인들에게 넘어가지 않게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
37 빌라도가 물었다.
“아무튼 당신이 임금이라는 말 아니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임금이라고 네가 말하고 있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듣는다.”
38 빌라도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진리가 무엇이오?”
빌라도는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다인들이 있는 곳으로 나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나는 저 사람에게서 아무런 죄목도 찾지 못하겠소.
39 그런데 여러분에게는 내가 파스카 축제 때에 죄수 하나를 풀어 주는 관습이 있소.
내가 유다인들의 임금을 풀어 주기를 원하오?”
40 그러자 유다인들이 다시 외쳤다.
“그 사람이 아니라 바라빠를 풀어 주시오.”
바라빠는 강도였다.
19,1 그리하여 빌라도는 예수님을 데려다가 군사들에게 채찍질을 하게 하였다.
2 군사들은 또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예수님 머리에 씌우고 자주색 옷을 입히고 나서,

 3 그분께 다가가 이렇게 말하며 그분의 뺨을 쳐 댔다.
“유다인들의 임금님, 만세!”
4 빌라도가 다시 나와 말하였다.
“보시오, 내가 저 사람을 여러분 앞으로 데리고 나오겠소.
내가 저 사람에게서 아무런 죄목도 찾지 못하였다는 것을 여러분도 알라는 것이오.”
5 이윽고 예수님께서 가시나무 관을 쓰시고 자주색 옷을 입으신 채 밖으로 나오셨다.

 그러자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자, 이 사람이오.”
6 그때에 수석 사제들과 성전 경비병들은 예수님을 보고 외쳤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빌라도가 말하였다.
“여러분이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나는 이 사람에게서 죄목을 찾지 못하겠소.”
7 그러자 유다인들이 빌라도에게 대답하였다.
“우리에게는 율법이 있소.

이 율법에 따르면 그자는 죽어 마땅하오.
자기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자처하였기 때문이오.”
8 빌라도는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9 그리하여 다시 총독 관저로 들어가 예수님께 물었다.
“당신은 어디서 왔소?”
예수님께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10 그러자 빌라도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나에게 말을 하지 않을 작정이오?

나는 당신을 풀어 줄 권한도 있고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다는 것을 모르시오?”
11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네가 위로부터 받지 않았으면 나에 대해 아무런 권한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를 너에게 넘긴 자의 죄가 더 크다.”
12 그때부터 빌라도는 예수님을 풀어 줄 방도를 찾았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외쳤다.
“그 사람을 풀어 주면 총독께서는 황제의 친구가 아니오.
누구든지 자기가 임금이라고 자처하는 자는 황제에게 대항하는 것이오.”
13 빌라도는 이 말을 듣고 예수님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리토스트로토스라고 하는 곳에 있는 재판석에 앉았다.
리토스트로토스는 히브리 말로 가빠타라고 한다.
14 그날은 파스카 축제 준비일이었고 때는 낮 열두 시쯤이었다.
빌라도가 유다인들에게 말하였다.
“보시오, 여러분의 임금이오.”
15 그러자 유다인들이 외쳤다.
“없애 버리시오. 
없애 버리시오.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빌라도가 그들에게 물었다.
“여러분의 임금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말이오?”
수석 사제들이 대답하였다.
“우리 임금은 황제뿐이오.”
16 그리하여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그들에게 넘겨주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넘겨받았다.
17 예수님께서는 몸소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 터’라는 곳으로 나가셨다.
그곳은 히브리 말로 골고타라고 한다.
18 거기에서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리고 다른 두 사람도 예수님을 가운데로 하여 이쪽저쪽에 하나씩 못 박았다.
19 빌라도는 명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달게 하였는데, 거기에는 ‘유다인들의 임금 나자렛 사람 예수’라고 쓰여 있었다.
20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 도성에서 가까웠기 때문에, 많은 유다인이 그 명패를 읽게 되었다.
그것은 히브리 말, 라틴 말, 그리스 말로 쓰여 있었다.
21 그래서 유다인들의 수석 사제들이 빌라도에게 말하였다.
“‘유다인들의 임금’이라고 쓸 것이 아니라, ‘나는 유다인들의 임금이다.’ 하고 저자가 말하였다고 쓰시오.”
22 빌라도가 대답하였다.
“내가 한번 썼으면 그만이오.”
23 군사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나서, 그분의 옷을 가져다가 네 몫으로 나누어 저마다 한몫씩 차지하였다.
속옷도 가져갔는데 그것은 솔기가 없이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었다.
24 그래서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이것은 찢지 말고 누구 차지가 될지 제비를 뽑자.”
“그들이 제 옷을 저희끼리 나누어 가지고 제 속옷을 놓고서는 제비를 뽑았습니다.” 하신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그래서 군사들이 그렇게 하였다.
25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
26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27 이어서 그 제자에게 말씀하셨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28 그 뒤에 이미 모든 일이 다 이루어졌음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시려고 말씀하셨다.
“목마르다.”
29 거기에는 신 포도주가 가득 담긴 그릇이 놓여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듬뿍 적신 해면을 우슬초 가지에 꽂아 예수님의 입에 갖다 대었다.
30 예수님께서는 신 포도주를 드신 다음에 말씀하셨다.
“다 이루어졌다.”
이어서 고개를 숙이시며 숨을 거두셨다.
31 그날은 준비일이었고 이튿날 안식일은 큰 축일이었으므로, 유다인들은 안식일에 시신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지 않게 하려고, 십자가에 못 박힌 이들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시신을 치우게 하라고 빌라도에게 요청하였다.
32 그리하여 군사들이 가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다른 사람의 다리를 부러뜨렸다.
33 예수님께 가서는 이미 숨지신 것을 보고 다리를 부러뜨리는 대신,
34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35 이는 직접 본 사람이 증언하는 것이므로 그의 증언은 참되다.
그리고 그는 여러분이 믿도록 자기가 진실을 말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36 “그의 뼈가 하나도 부러지지 않을 것이다.” 하신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런 일들이 일어난 것이다.
37 또 다른 성경 구절은 “그들은 자기들이 찌른 이를 바라볼 것이다.” 하고 말한다.
38 그 뒤에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이 예수님의 시신을 거두게 해 달라고 빌라도에게 청하였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유다인들이 두려워 그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
빌라도가 허락하자 그가 가서 그분의 시신을 거두었다.
39 언젠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코데모도 몰약과 침향을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왔다.
40 그들은 예수님의 시신을 모셔다가 유다인들의 장례 관습에 따라, 향료와 함께 아마포로 감쌌다.
41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정원이 있었는데, 그 정원에는 아직 아무도 묻힌 적이 없는 새 무덤이 있었다.
42 그날은 유다인들의 준비일이었고 또 무덤이 가까이 있었으므로, 그들은 예수님을 그곳에 모셨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신 이 잔을 내가 마셔야 하지 않겠느냐?">


세상은 눈에 보이는 세상과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보이는 인간의 역사와 보이는 역사 속에 숨어있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역사가 있습니다. 

보이는 역사 안에 들어있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역사를 우리는 흔히 신비라고 부릅니다. 

사실 현실적으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고통이나 슬픔, 악이나 죽음 등은 심각한 도전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불가항력적으로 마주치게 되는 우리의 무력함과 연약함, 혼란과 비참함은 우리의 존재 자체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되기도 합니다.

특히 부당한 처사나 불의의 사고나 재난 등은 참으로 우리를 참담하게 만들고 슬픔과 고통 속으로 몰아갑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고통과 죽음 앞에 서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사형을 당한 사건 앞에 서 있습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인간들의 계획된 악이 저지른 사건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이 하느님을 죽인 사건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에 대한 교종 프란치스코의 말씀을 되새겨봅니다. 
“그분의 수난은 사고가 아닙니다. 
그분의 죽음은, 그 죽음은 (성경에 이미) ‘기록되어 있습니다.’

~ 경악할 만한 신비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라는 보이는 역사 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역사가 있는 신비입니다. 

곧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역사가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보이는 역사 안에 감추어져 있는 신비입니다. 

그것은 그 고통이 기쁨이요, 그 패배가 승리요, 그 배척이 사랑이요, 그 어둠이 빛이요, 그 죽음이 생명이요 구원이라는 헤아릴 수 없이 깊은 신비입니다. 

또한 그 무력함은 전능함 안에서, 그 비참함은 거룩함 안에서 일치를 이루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신비입니다. 

우리는 이 신비를 ‘그리스도의 부활’과 결합되지 않고서는 결코 알아들을 길이 없습니다.

오늘은 ‘주님 십자가의 신비’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참으로 인간의 이해로는 다 알 수 없는 신비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신비가 바로 '우리를 위해서' 주어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이 죽음의 길을 능동적으로 의연한 모습으로 결연하게 가십니다. 

어둠 속을 걷되 빛을 향하여 나아가며, 패배 당하되 승리로 나아가며, 죽음의 길로 걷되 생명의 길로 나아가며, 고통 속에서도 기쁨으로 걸으십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길’을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길로 제시해주십니다.

비록 인간이 하느님의 사랑을 거부했지만,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본래의 당신의 사랑에로 되돌아오게 이끄십니다.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지고한 사랑입니다.

 

그러기에 ‘십자가의 길’은 사랑의 길이며, ‘사랑을 완성하는 길’이 됩니다.

'십자가의 죽음'이야말로 사랑의 완성이요, 동시에 완성된 사랑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는 말합니다. 
“십자가의 하느님의 침묵 속에 완성되어 있는 저 함성의 신비를 들으십시오.” 

그러기에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을 기념하면서, 결코 비통하지만은 않습니다.

오히려 십자가를 경배하며, 승리와 감사의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설혹 가슴 쓰린 일이 있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사실은 우리네 가슴이 심하게 쓰리고 아려올 때, 바로 그 때가 오히려 우리 안에서 사랑의 십자가를 꽃 피우시고 계시는 그분을 보아야 할 때입니다.

바로 그 고통 안에서 예수님을 관상하여 할 때입니다.

부활은 죽음 다음에 오는 것이 아니라 죽음 안에 옵니다. 

곧 십자가의 고통이 끝난 후에 오는 어떤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십자가 안에 이미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활의 생명은 우리의 죽음 위에서 싹을 틔웁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고통과 죽음은 그분의 현존을 드러내는 장소입니다. 

그 속에서 당신의 참된 사랑을 주십니다. 

 

우리는 죽음의 십자가 안에서 사랑을 퍼주고 계시는 예수님을 봅니다. 

이토록 십자가는 당신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이 십자가의 신비, 곧 죽음을 통한 사랑의 신비를 살아갑니다. 

하오니, 주님! 

오늘 우리는 당신 사랑의 십자가를 입 맞추며 경배합니다. 
오, 참으로 아름다운, 이토록 시린, 우리의 말문을 막는, 형언할 수조차 없이 강한, 사랑의 십자가여!

 

<오늘의 말·샘 기도>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신 이 잔을 내가 마셔야 하지 않겠느냐?”

(요한 18,11)

 

주님!

오늘도 고통과 죽음 앞에 서 있습니다.

나의 허약함과 악 앞에 서 있습니다.

당신의 고통과 죽음 속에 감추어진 신비를 알게 하소서.

그 사랑을 알고, 그 신비를 살게 하소서.

고통에서 기쁨을, 패배에서 승리를, 어둠에서 빛을, 죽음이 생명을 이끄소서.

어둠 속에서도 빛을 향하여 나아가며, 고통 속에서도 기쁨으로 걸어가고, 패배 당하여도 승리로 나아가게 하소서.

우리네 쓰린 가슴에서 사랑을 퍼 올리소서.

무력함이 전능함 안에서, 비참함이 거룩함 안에서 일치를 이루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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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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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걸레 | 작성시간 24.03.29 크신사랑 알게되니 할말은없고 다만가슴이
    먹먹하네요, 고맙습니다,
  • 작성자가을비 | 작성시간 24.03.29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4.03.29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아낄래요 | 작성시간 24.03.29 오늘도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한 하루 되세요.~^^
  • 작성자충주 헬레나 | 작성시간 24.03.29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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