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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 강론

2024년 4월 6일 부활 팔일 축제 토요일

작성자푸른잎새|작성시간24.04.05|조회수425 목록 댓글 10

제1독서
▥ 사도행전의 말씀 4,13-21

 

그 무렵 유다 지도자들과 원로들과 율법 학자들은
13 베드로와 요한의 담대함을 보고 또 이들이 무식하고 평범한 사람임을 알아차리고 놀라워하였다.
그리고 이들이 예수님과 함께 다니던 사람들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14 그러나 병이 나은 사람이 사도들 곁에 서 있는 것을 보고는 아무 반박도 하지 못하였다.
15 그래서 그들은 사도들에게 최고 의회에서 나가라고 명령한 다음, 저희끼리 의논하며 

16 말하였다. 

“저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저들을 통하여 명백한 표징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에게 알려진 터이고, 우리도 그것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17 그러니 이 일이 더 이상 백성 가운데로 퍼져 나가지 않도록, 다시는 아무에게도 그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엄중히 경고만 합시다.”
18 그리하여 그들은 사도들을 불러 예수님의 이름으로는 절대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지시하였다.
19 그러자 베드로와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여러분의 말을 듣는 것이 하느님 앞에 옳은 일인지 여러분 스스로 판단하십시오.
20 우리로서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1 그들은 백성 때문에 그들을 처벌할 방도를 찾지 못하고 거듭 위협만 하고 풀어 주었다.
그 일로 백성이 모두 하느님을 찬양하고 있었던 것이다.

 


복음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 16,9-15

 

9 예수님께서는 주간 첫날 새벽에 부활하신 뒤,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처음으로 나타나셨다.
그는 예수님께서 일곱 마귀를 쫓아 주신 여자였다.
10 그 여자는 예수님과 함께 지냈던 이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곳으로 가서, 그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였다.
11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살아 계시며 그 여자에게 나타나셨다는 말을 듣고도 믿지 않았다.
12 그 뒤 그들 가운데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가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다른 모습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셨다.
13 그래서 그들이 돌아가 다른 제자들에게 알렸지만 제자들은 그들의 말도 믿지 않았다.
14 마침내, 열한 제자가 식탁에 앉아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다.
그리고 그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셨다.
되살아난 당신을 본 이들의 말을 그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15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오늘 '알렐루야 환호송'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이날은 주님께서 마련하신 날, 이날을 기뻐하며 즐거워하세.”

(시 118,24)

그렇습니다. 

오늘 이날은 제가 만든 날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마련하시고 건네주신 날입니다.

 

인간에게 큰 사랑이 베풀어진 날이요, 당신의 죽음으로 부활생명을 선물로 주신 날입니다.

하늘이 열리고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진 날입니다.

 

이 날의 아름다움을 교종 프란치스코께서는 <복음의 기쁨>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드러난, 구원하시는 하느님 사랑의 아름다움”(36항)이라고 표현합니다. 

여기에는 ‘주님의 사랑을 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막달레나 마리아도, 엠마우스의 두 제자들도, 모여 있던 열 한 제자들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는 못하였습니다.

그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맑고 투명한 ‘믿음의 눈’이 열리지 않은 까닭입니다.

이미 듣고 보았지만, 믿지 않은 까닭입니다.

 

이를 믿게 되면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이를 우리는 요즈음 제1독서인 <사도행전>을 통해서 계속해서 듣고 있습니다.

부활을 믿는 이들 안에서 어떠한 어마어마한 일들이 일어나는지 말입니다. 

이처럼 부활은 ‘믿음’ 안에서 체험하게 되는 신비라 할 수 있습니다.

부활은 믿음이 삶이 될 때 비로소 깨닫게 되고 증거됩니다.

‘믿음이 삶이 될 때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당신의 몸을 매달듯, 그렇게 자신을 내어놓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제자들에게 복음 선포의 사명이 주어집니다.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마르 16,15)

여기에서 먼저 알아들어야 할 것은 우리는 온 세상에로 '가라'는 파견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자신 안에만 머물지 말고 타자에게로 나아가라는 말씀입니다.

 

'향하여 나아가는 존재', 이것은 바로 그리스도인의 신원임을 말해줍니다.

마치 당신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향하여 먼저 다가오셨듯이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먼저 '파견 받은 자'가 되어야 하고, 파견하신 분의 뜻을 사명으로 받아들여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파견 받았으되, '온 세상 모든 피조물'에게 파견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곧 유다민족이나 이방민족이나, 우방이나 적국이나,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모든 민족 온 인류에게 가라는 것이요, 또한 인간뿐만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에게 가라는 파견이요, 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라는 파견입니다.

‘모든 피조물’과 더불어 이웃이 되고, 형제가 되고, 한 가족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세상에 살되 세상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힘’으로 살라는 말씀이요, 땅을 딛고 걷되 하늘을 바라보며 걸으며, 동료와 손을 잡고 걷되 다름 아닌 당신과 함께 걸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회칙 <찬미를 받으소서>(2015.6.18.)에서, 우리가 더불어 사는 집인 지구가 “우리와 함께 사는 누이이며, 두 팔 벌려 우리를 품어주는 어머니”(1항)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피조물에 관한 책임을 성경의 전승에 비추어 설명해주고 있습니다(제2장 피조물에 관한 복음).

그렇다면 오늘 나는 내 형제에게 모든 피조물에게 이웃이 되고 형제가 되고 한 가족이 되어주고 있는가?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마르 16,15)

 

주님!

제 자신 안에만 머물러 있지 않게 하소서.

세상에로, 이웃형제들에게로, 모든 피조물들에게 나아가게 하소서.

먼저 다가가고, 먼저 사랑하게 하소서.

자국민이나 이주민이나, 부유하거나 가난하거나, 친구이거나 적이거나, 사람이거나 자연이거나,

모든 피조물과 더불어 형제가 되게 하소서

함께 걷되 손을 잡고 걷고, 땅을 딛고 걷되 하늘을 바라보게 하소서.

세상에 살되 세상의 힘이 아닌, 복음의 힘으로 살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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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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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4.04.06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가을비 | 작성시간 24.04.06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아낄래요 | 작성시간 24.04.06 오늘도 감사드립니다.~
    주말에도 건강하시고
    행복한 주말 되세요.~^^
  • 작성자atti | 작성시간 24.04.06 아멘.
  • 작성자rejina | 작성시간 24.04.06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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