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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 강론

2024년 4월 9일 부활 제2주간 화요일

작성자푸른잎새|작성시간24.04.09|조회수441 목록 댓글 10

제1독서
▥ 사도행전의 말씀 4,32-37

 

32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33 사도들은 큰 능력으로 주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모두 큰 은총을 누렸다.
34 그들 가운데에는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소유한 사람은 그것을 팔아서 받은 돈을 가져다가
35 사도들의 발 앞에 놓고, 저마다 필요한 만큼 나누어 받곤 하였다.
36 키프로스 태생의 레위인으로, 사도들에게서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의 바르나바라는 별명을 얻은 요셉도,
37 자기가 소유한 밭을 팔아 그 돈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다.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 3,7ㄱ.8-15

 

그때에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
9 니코데모가 예수님께 “그런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 하자,
10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너는 이스라엘의 스승이면서 그런 것도 모르느냐?
1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한다.
그러나 너희는 우리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12 내가 세상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않는데,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찌 믿겠느냐?
13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15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


부활과 관련된 성경의 용어들은 크게 두 가지로 드러납니다. 

하나는 '살다, 다시 살다'이고, 다른 하나는 '일어서다, 다시 일어서다'입니다. 

곧 ‘부활’과 ‘들어 높여짐’입니다. 

지난 부활 8부 동안의 말씀전례에서는 첫 번째 뜻, 곧 ‘예수님께서는 죽지 않으시고 다시 살아나셨다’는 내용을 드러내주었습니다.

이제 오늘부터는 두 번째 뜻인 '들어 높여지다, 영광스럽게 되다'라는 뜻을 드러내줍니다.

 

이는 놀라운 사실, 아니 억지스럽고 당혹스런 사건을 전합니다.

곧 분명 누명을 쓰고 죽은 실패인데도 오히려 승리라 하고, 분명 죽었는데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났다는 것도 놀라운데, 더 당혹스러운 것은 그리하여 드높여졌다고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아래’로 내려갔으나 ‘위’로 올라가는 역전의 대전환이라는 ‘놀라운 변화’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니코데모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

(요한 3,7)

‘위’(ano) 혹은 ‘아래’(kato)라는 말에서 '위'란 산을 오른다든지, 로켓을 타고 우주 위로 올라가는 물리적인 위치나 공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이 ‘위’와 ‘아래’라는 말을 쓸 때, 이는 ‘두 가지 질서(방식)’을 가리킵니다.

곧 ‘아래’는 자기중심적인 ‘나’의 통치방식에 따르는 질서요, ‘위’의 질서는 사랑의 ‘성령’의 통치방식에 따르는 질서를 가리킵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지상에 묶인 존재이지만, 동시에 하늘에 속한 자임을 말해줍니다.

 

니코데모가 예수님께 여쭙습니다.

“그런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겠습니까?”

(요한 3,9)

 

이는 어디선가 이미 들은 낯익은 질문입니다.

마리아가 주님의 천사에게 했던 질문입니다.

그러니 마리아처럼, 이 질문은 우리가 전 인격으로 응답해야 하는 질문입니다.

곧 성모님처럼 ‘피앗(fiat)’으로 응답해야 하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답하여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 너희는 우리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 하물며 어찌 믿겠느냐?”

(요한 3,12)

이는 우리가 영으로 다시 태어나지 못한 이유가 ‘받아들이지 않고, 믿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곧 자신에 대한 고집 때문에 새로 나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영으로부터, 곧 ‘위’로부터 다시 태어나는 방법은 자신의 고집을 내려놓고,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곧 믿음(피앗)으로 응답하고 실행하는 일입니다.

바로 여기에 역전의 대전환이 있고, 새로움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영으로 새로 태어난 사람은 모든 것을 새롭게 봅니다.

하느님을 받아들여 ‘하느님의 눈’으로 봅니다.

곧 세상이 새로워져서가 아니라, 자신이 새로워져 모든 것을 새롭게 보는 것입니다. 

하오니, 주님! 

저희가 당신 눈으로 새롭게 보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영에서 태어난 이”

(요한 3,8)

 

주님,

제 영혼의 무지를 깨우소서.

빛으로 새로 나게 하소서.

제 영혼의 밤을 몰아내소서.

제 어둠의 행실을 벗기소서.

당신 빛으로 당신을 뵈옵게 하소서.

세상이 이토록 경이로운 것은 세상이 새로워져서가 아니라, 제가 새로워진 까닭입니다.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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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4.04.09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감사하는 사람 | 작성시간 24.04.09 아멘
  • 작성자들꽃1 | 작성시간 24.04.09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가을비 | 작성시간 24.04.09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rejina | 작성시간 24.04.09 신부님,
    푸른잎새님
    진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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