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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언 신부 강론

7월 27일 화요일 김홍언 신부님의 영성의 샘물

작성자마안드레아|작성시간21.07.27|조회수766 목록 댓글 5

2021년 7월 27일 화요일

 

♥소유하지 말고 누려라.


첫째 비결은 그냥 누리는 것이다. 모든 것은 소유하는 사람의 것이 아니고,
그것을 보고 기뻐하는 사람의 것이다. 꽃은 꺾어서 화분에 담을 수 있다.
그러나 봄은 화분에 담을 수 없다.


누리는 것이 곧 지혜다. 장미 한 송이가 자신이 지닌 향기를 다 표현하는
데는 12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이 말은 곧 하나의 장미향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는 12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순간 반짝하고
향기를 누리는 사람은 드물다. 우리는 얼마나 피상적으로 누리며,

순간적으로 사는가.

 

-「행복 선언」중에서


♣어느 유명한 문학 작품에 어떤 도인이 나귀를 타고 산천을
유람하다가 그만 웅장한 산의 위용에 넋을 잃고 황홀경에 빠져서
날이 저물어 가는지도 모르고 오랫동안 떠날 줄을 몰랐습니다.


그때 당나귀가 휭휭하며 돌아가자고 울어댑니다. 그때서야 정신이
번쩍 들어 자기 마음에 온전히 그 산 모두를 담아 마을로 내려옵니다.
이 내용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산의 등기 소유자가 진정 주인이 아니고, 그 산을 마음 가득히
품고 향유하며 누리고 사는 자가 바로 어떤 의미에서는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당나귀는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범인을 가리키고 마을로 내려가는
행위는 초월적 자아가 다시 에고로 돌아가는 상징입니다.


♥우리가 구가해야 할 ‘영의 가난’은 무엇인가?
영의 가난을 한 마디로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고 도우심을 청하는 자세다.
곧 하느님의 존재와 하느님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자신의 삶을 몽땅
하느님께 의탁하는 자세다. 그러기에 자신의 소유, 능력, 재물에
자신의 안전을 맡기려는 사람은 영으로 가난한 사람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영으로 가난해질 때 비로소 우리는 소유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소유 중심의 사람은 아무리 많이 가져도 노예처럼 산다.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가지려는 것이 인간의 욕심이기 때문이다.


반면 존재 중심의 삶은 왕같이 산다. 이미 하느님 안에서
전부를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되찾은 아들의 비유 부분의 마지막,
큰아들을 향해 아버지가 한 말에서처럼 ‘아버지의 것이 다 내 것’이다.

 

-「행복 선언」중에서


♣창조주이신 하느님이 날 내셨으니 하느님께 돌아가 영생을
누려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피조물에 노예처럼 붙잡혀
그 주인을 잊어버리고 살아갑니다. 이 세상이 고향인 것처럼 말입니다.


다윗은 알았습니다. 자신의 왕위도, 자신이 살고 있는 궁전도 하느님의
가호 없이는 하루아침에 날아가 버릴 물거품이라는 것을.
그리고 현재 자신이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온통 하느님으로부터
선사된 은총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살았기에 ‘영으로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알림> : 조만간 인터넷에서 하는 <영성의 샘물>을 마감하려하오니
‘유투브’에서 검색창에 ‘김홍언 신부’나 ‘영성의 샘물’을 치면
시청이 가능하니 ‘유투브’로 옮겨주시고 많이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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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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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atti | 작성시간 21.07.27 Amen.
  • 작성자조나단 | 작성시간 21.07.27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1.07.27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박 베로니카 | 작성시간 24.01.27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조나단 | 작성시간 24.04.30 마 안드레아 님 다시 수고하여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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