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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용 신부 강론

2023년 나해 12월 23일 주님 성탄 대축일 밤 미사 (루카2,1-14)<많이 주는 이만이 다 주는 이를 알아본다.>

작성자stellakang|작성시간23.12.23|조회수406 목록 댓글 8

2023년 나해  12월 23일 주님 성탄 대축일 밤 미사 

 

복음

<오늘 너희를 위하여 구원자가 태어나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1-14
1 그 무렵 아우구스투스 황제에게서 칙령이 내려,
온 세상이 호적 등록을 하게 되었다.
2 이 첫 번째 호적 등록은 퀴리니우스가 시리아 총독으로 있을 때에 실시되었다.
3 그래서 모두 호적 등록을 하러 저마다 자기 본향으로 갔다.
4 요셉도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 고을을 떠나
유다 지방, 베들레헴이라고 불리는 다윗 고을로 올라갔다.
그가 다윗 집안의 자손이었기 때문이다.
5 그는 자기와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 등록을 하러 갔는데,
마리아는 임신 중이었다.
6 그들이 거기에 머무르는 동안 마리아는 해산 날이 되어, 7 첫아들을 낳았다.
그들은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8 그 고장에는 들에 살면서 밤에도 양 떼를 지키는 목자들이 있었다.
9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다가오고 주님의 영광이 그 목자들의 둘레를 비추었다.
그들은 몹시 두려워하였다.
10 그러자 천사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11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12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
13 그때에 갑자기 그 천사 곁에 수많은 하늘의 군대가 나타나
하느님을 이렇게 찬미하였다.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많이 주는 이만이 다 주는 이를 알아본다.

주님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오셨습니다. 그런데 그 평화는 구유에 뉜 아기가 구세주이심을 볼 수 있는 눈만이 가질 수 있습니다. 오늘 천사는 목동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 표징을 볼 수 있는 눈은 어떤 눈일까요? 개는 꽃이 예쁘다는 것을 알까요? 모릅니다. 그 안에 ‘아름다움’이 넣어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없는 것은 인식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꽃이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이유는 우리 안에 이미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녕 당신께는 생명의 샘이 있고 당신 빛으로 저희는 빛을 봅니다.”(시편 36,10).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인식론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을 알아보려는 이가 사랑하고픈 의지가 없으면 어떨까요? 그래서 천사들이 이렇게 노래하는 것입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여기서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는 “착한 뜻”을 가진 이에게 평화라고 번역하는 것이 합당합니다. 착한 뜻은 ‘사랑하려는 마음’입니다.

아들도 알아보지 못하는 중증 알츠하이머병을 앓는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아들이 있습니다. 아들은 아파트 경비원입니다. 어머니를 어쩔 수 없이 병원에 입원시켜야 했습니다. 어머니는 남편 없이 아들을 키워야만 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 하나를 잃게 됩니다.

의족으로 걸어야 하는 아들을 엄마는 일으켜 주지도 않습니다. 넘어졌을 때 스스로 일어나라며 모질게 떠납니다. 아버지의 사랑도 받지 못하고 자란 아들은 그런 어머니가 미웠습니다. 운동회 날 아들은 학교 가기를 꺼립니다. 그러나 엄마는 빨리 일어나 운동회에 가라고 합니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데 운동회에 가라는 엄마가 밉습니다.

“엄마는 내가 불쌍하지도 않아요?” 그에게 걸림돌은 비탈진 골목길 계단이었습니다. 일반인도 오르내리기 어려운 경사의 길을 매일 지나다녀야 했습니다. 특히 눈이 오는 날은 더 그랬습니다. 그런데 항상 눈이 쓸려 있었습니다. 앞집 아저씨가 쓸어놓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었습니다. 아파트 경비원을 하며 눈을 씁니다. 그런데 병원에서 어머니가 사라졌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급히 달려간 아들은 어머니를 찾습니다. 그런데 병원 앞에서 눈을 쓸고 있는 것입니다. 짜증 난 목소리로 “여기서 뭐 하시는 거예요?”라고 아들이 말합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못 알아보고 말합니다.

“눈 쓸어요. 눈이 오잖아요. 우리 아들이 학교 가야 하는데, 다리가 불편해서.”
그제야 아들은 깨닫습니다. 넘어져서 일어나지 못할 때, “혼자 일어나지 못하면 앞으로 어떻게 살래?”라고 했던 말과 “운동회라 창피해서 학교에 못 간다고? 그럼 평생 숨어 살아!”라고 했던 말이 이해됩니다. 어머니가 사랑이셨다는 것을 다시 믿게 된 것입니다.

“아들은 몰라요, 그거.”
“몰라도 돼요. 우리 아들만 안 미끄러지면 돼요.”
아들은 눈물을 흘리며 겉옷을 벗어서 열심히 눈을 쓰는 어머니를 덮어드리고 안아드립니다.

[출처: ‘치매 걸린 어머니가 한겨울에 눈을 쓸고 있었던 이유’, 유튜브 채널, ‘JTBC Voyage’]

 

만약 아들이 눈 쓰는 일을 하지 않았다면, 엄마가 눈 쓰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 보기만 해서는 잘 모를 것입니다. 매일 아들을 위해 눈을 쓰셨던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려면 자신도 남을 위해 눈을 한 번쯤은 쓸어보았어야 합니다. 나에게 좋은 뜻이 없다면 하느님의 좋은 뜻을 볼 눈을 잃게 됩니다.

“그래 너 나에게 많이 주었니? 난 네게 대 주었다.” 이것은 성체에서 제가 들은 소리입니다. 만약 내가 내어 주는 일을 하기 위해 신학교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다 주시는 분을 알아볼 수 있었을까요? 많이 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으니 다 주시는 것도 이해할 수 있는 눈이 생겼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빛을 보지 못하는 이유는 마음에 빛이 없고 어둠만 있기 때문입니다. 빛으로만 빛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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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남유나마리아 | 작성시간 23.12.23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 작성자들꽃1 | 작성시간 23.12.23 감사합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3.12.23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최안나 | 작성시간 23.12.24 감사합니다.
  • 작성자마니또 | 작성시간 23.12.24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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