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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신부 강론

[스크랩] 2024년 2월 11일 연중 제6주일(세계 병자의 날) 『나는 원한다.』

작성자stellakang|작성시간24.02.11|조회수115 목록 댓글 1

<연중 제6주일 강론>(2024. 2. 11.)(마르 1,40-45)

 

복음

<그는 나병이 가시고 깨끗하게 되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40-45
그때에 40 어떤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와서 도움을 청하였다.
그가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하였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41 예수님께서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42 그러자 바로 나병이 가시고 그가 깨끗하게 되었다.
43 예수님께서는 그를 곧 돌려보내시며 단단히 이르셨다.
44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네가 깨끗해진 것과 관련하여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45 그러나 그는 떠나가서 이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퍼뜨리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드러나게 고을로 들어가지 못하시고,
바깥 외딴곳에 머무르셨다. 그래도 사람들은 사방에서 그분께 모여들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나는 원한다.』

 

“어떤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와서 도움을 청하였다.

그가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하였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그러자 바로 나병이

가시고 그가 깨끗하게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곧

돌려보내시며 단단히 이르셨다.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네가 깨끗해진 것과 관련하여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그러나 그는 떠나가서 이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퍼뜨리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드러나게

고을로 들어가지 못하시고, 바깥 외딴곳에 머무르셨다.

그래도 사람들은 사방에서 그분께 모여들었다(마르 1,40-45).”

 

이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은,

“내가 하고자 하니” 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원문대로 직역하면 “나는 원한다.”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원하는 것을 나보다 먼저 원하시는 분이고,

나보다 더 간절하게 원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내가 그것을 청하기도 전에 먼저 그것을 나에게 주기를

원하시는 분이고, 그것을 내가 잘 받기를 바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에 관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마태 6,7-8).”

여기서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라는 말씀은,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너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계시고,

그것을 너희에게 주신다.” 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예수님과 아버지는 하나이기 때문입니다(요한 10,30).

우리가 청하기도 전에 먼저 알고 계시고 그것을 주신다면,

그렇다면 기도는 왜 하는가?

기도는 달라고 떼쓰는 일이 아니라,

주시는 것을 잘 받기 위해서 준비하는 일입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라는 약속도 하셨습니다(요한 14,13).

이 약속도 당신이 원하셔서 먼저 하신 약속입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 세상에 오신 일부터가

당신이 원하셔서 하신 일이고, 인간들을 구원하려고

애를 쓰시는 일도 당신이 원하셔서 하시는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에 대한 신앙입니다.>

만일에 아버지께서 가라고 하셔서 인간 세상에 오신 것이라면,

그래서 만일에 ‘육화강생’에 대해서 예수님의 마음이 내키지

않으셨던 부분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고,

그러면 우리의 신앙과 교리는 근본부터 흔들리게 됩니다.

“나는 원한다.” 라는 말씀은, 인간들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말씀이고, 그 사랑은 완전하고

영원한 사랑이라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섬기면서

예수님께 기도하는 것은 바로 그 사랑을 믿기 때문입니다.

 

어떤 병자가 예수님께 도움을 청하면서 “하고자 하시면”이라는

말을 한 것은, 그가 예수님의 사랑을 모르고 있었거나,

아니면 예수님의 사랑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음을 나타냅니다.

그는 예수님의 권능은 믿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병이든지 고쳐 줄 수 있는 권능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라고 믿고는 있는데, 병을 고쳐 달라는 간청을

예수님이 들어 주실지 어떨지에 대한 확신은 없는 상태입니다.

사실 우리도 그런 태도로, 또는 그런 마음으로

기도할 때가 많습니다.

‘주님은 전능하신 분’이라고 믿긴 하는데, “기도가 이루어질까?

과연 주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 주실까?” 라는

의문을 품은 채로 기도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의심’이 아니라 그냥 ‘의문’입니다.

의심한다면 기도 자체를 안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런 의문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거나, 기도한 대로 되지 않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기도하며 청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이미 받은 줄로 믿어라.

그러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마르 11,24).”

‘아직’ 받지 못했는데도 ‘이미’ 받은 줄로 믿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믿는 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여기서 ‘무엇이든지’는

“하느님 뜻에 합당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입니다.

이기적인 욕심으로 바치는 기도는

하느님 뜻에 합당한 기도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정말 사심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바치는 기도라고 해도

하느님 뜻이 무엇인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모르니까 더 믿어야 하고, 더 간절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과 자비는 우리 생각을 초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말장난이 아니라 신앙인의 기본자세입니다.

 

<복음 말씀의 이야기에서 그 병자가 예수님의 ‘엄한 명령’을

어긴 것은 그의 믿음이 부족하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치유의 은총을 받은 것이 너무 기뻐서 그랬겠지만,

그래도 예수님을 믿는다면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그 명령이 이해가 되지 않고 납득이 되지 않더라도.>

 

[출처] 연중 제6주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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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4.02.12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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