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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진 신부 강론

2023년 12월 4일 대림 제1주간 월요일 『백인대장의 병든 종을 고치시다.』송영진 모세 신부

작성자stellakang|작성시간23.12.04|조회수44 목록 댓글 3

<대림 제1주간 월요일 강론>(2023. 12. 4. 월)(마태 8,5-11)

 

제1독서

<주님께서 영원한 평화의 하느님 나라로 모든 민족들을 모아들이신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2,1-5
1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환시로 받은 말씀.
2 세월이 흐른 뒤에 이러한 일이 이루어지리라.
주님의 집이 서 있는 산은 모든 산들 위에 굳게 세워지고
언덕들보다 높이 솟아오르리라.
모든 민족들이 그리로 밀려들고
3 수많은 백성들이 모여 오면서 말하리라.
“자,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느님 집으로!
그러면 그분께서 당신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시어
우리가 그분의 길을 걷게 되리라.”
이는 시온에서 가르침이 나오고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말씀이 나오기 때문이다.
4 그분께서 민족들 사이에 재판관이 되시고
수많은 백성들 사이에 심판관이 되시리라.
그러면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
5 야곱 집안아, 자,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자!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백인대장의 병든 종을 고치시다.』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에 들어가셨을 때에 한 백인대장이

다가와 도움을 청하였다. 그가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제 종이

중풍으로 집에 드러누워 있는데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가서 그를 고쳐 주마.’ 하시자,

백인대장이 대답하였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사실 저는 상관 밑에 있는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또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이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감탄하시며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모여 와, 하늘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마태 8,5-11)”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당연한 말이지만,

백인대장이 아니라 예수님입니다.

<주인공은 보지 않고 조연만 보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보라는 예수님은 보지 않고 백인대장만 본다면,

복음 말씀의 핵심을 놓치게 됩니다.

원래 복음서는 예수님을 증언하기 위해서 기록한 책입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예수님은 하느님이신 분”이라는 신앙을,

백인대장의 입을 빌려서 증언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권능과 권한이 하느님에게서 왔다고 믿는 것과

‘예수님은 하느님’이라고 믿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교는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믿는 종교입니다.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라는 백인대장의 말은,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병마(病魔)’에게

떠나라고 명령하시면, 그 ‘병마’가 주님의 명령에 복종하고 떠날

것이고, 그러면 병자가 나을 것이라고 믿는다는 신앙고백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병을 잘 고치시는 분’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병을 지배하시는 주님’(하느님)으로 믿는 것입니다.

하느님만이 ‘병을 지배하시는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라는 예수님 말씀은, 백인대장의 믿음이 옳다는 것을

인정하신 말씀이기도 하고,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믿은 사람은

그 백인대장이 첫 번째라는 것을 나타내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믿거나,

‘메시아’로 믿은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으로 믿은 사람은 그때까지는 아직 없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믿게 된 것은

‘예수님 부활 후부터’입니다.

“토마스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요한 20,28)”

그리고 그 뒤에 요한복음서 저자는 ‘예수님은 하느님’이라는

신앙고백을 맨 먼저 적은 다음에 복음서를 기록했습니다.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요한 1,1).”

<요한복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은 하느님’이라는 신앙을

증언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책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고백하고 증언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깨닫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느님은 한 분이시고,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중개자도 한 분이시니,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당신 자신을 모든 사람의 몸값으로 내어 주신 분이십니다.

이것이 제때에 드러난 증거입니다(1티모 2,4-6).”

<여기서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라는 말은, “하느님이신데

사람으로 오신 그리스도 예수님”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참 하느님’이신 분이고, ‘참 사람’이신 분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교의 ‘기본 신앙’입니다.

그래서 성탄절은 “하느님이신 분이 사람이 되셔서

사람들 가운데로 오신 날”입니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성탄절을 성대하게 경축하는 이유입니다.

<성탄절에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은, ‘나중에’ 메시아가 되시고,

하느님의 아드님이 되신 분이 아니라,

원래 메시아이신 분이고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분이고

하느님이신 분인데, 아기로 태어나신 분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방인 백인대장의 믿음을 칭찬하신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꾸짖으신 일이기도 합니다.

“하느님도, 성경도 모르고 살던 이방인도 이렇게 올바른 믿음을

갖게 되었는데, 하느님도, 성경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너희는 왜 이렇게 믿지 않느냐?”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은 것은, 알아볼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보여 주어도 보려고 하지 않고,

말씀을 하셔도 들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다른 것만 찾고

다른 곳만 보고 있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들은 구원이 아닌 것, 즉 재물 같은 것만 찾고,

영원한 생명이 아닌 것, 즉 허무한 쾌락 같은 것만 찾았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복음을 전해 주어도 들으려고 하지 않고,

‘하느님의 사랑’을 전해 주어도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어떻든, 사람들이 믿든지 안 믿든지 간에

하느님은 하느님이고, 진리는 진리입니다.

누구든지 믿으면 구원의 은총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 믿으면 자기만 손해입니다.

<‘손해’ 라고 표현했지만,

그냥 ‘손해’가 아니라 ‘영원한 멸망’입니다.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출처] 대림 제1주간 월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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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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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3.12.04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조나단 | 작성시간 23.12.04 아멘 신부님 stellakang 님 고맙습니다.
  • 작성자가을비 | 작성시간 23.12.05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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