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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진 신부 강론

[스크랩] 2023년 12월 6일 대림 제1주간 수요일 『예수님』 송영진 모세 신부

작성자stellakang|작성시간23.12.06|조회수91 목록 댓글 3

<대림 제1주간 수요일 강론>(2023. 12. 6. 수)(마태 15,29-37)

 

복음

<예수님께서 많은 병자를 고쳐 주시고 빵을 많게 하셨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5,29-37
그때에 29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로 가셨다.
그리고 산에 오르시어 거기에 자리를 잡고 앉으셨다.
30 그러자 많은 군중이
다리저는 이들과 눈먼 이들과 다른 불구자들과 말못하는 이들,
그리고 또 다른 많은 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다가왔다.
그들을 그분 발치에 데려다 놓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셨다.
31 그리하여 말못하는 이들이 말을 하고 불구자들이 온전해지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눈먼 이들이 보게 되자,
군중이 이를 보고 놀라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32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길에서 쓰러질지도 모르니 그들을 굶겨서 돌려보내고 싶지 않다.”
33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 광야에서 이렇게 많은 군중을
배불리 먹일 만한 빵을 어디서 구하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34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하시자,
그들이 “일곱 개가 있고 물고기도 조금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35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땅에 앉으라고 분부하셨다.
36 그리고 빵 일곱 개와 물고기들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37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았더니 일곱 바구니에 가득 찼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수님』

 

“많은 군중이 다리 저는 이들과 눈먼 이들과 다른 불구자들과

말 못하는 이들, 그리고 또 다른 많은 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다가왔다. 그들을 그분 발치에 데려다 놓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셨다. 그리하여 말 못하는 이들이 말을 하고

불구자들이 온전해지고 다리 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눈먼 이들이 보게 되자, 군중이 이를 보고 놀라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찬양하였다(마태 15,30-31).”

 

이 이야기는, ‘예수님은 메시아이신 분’이라는 증언인데,

앞의 11장에 있는 다음 이야기에 연결됩니다.

“요한이,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감옥에서 전해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듣는 것을 전하여라.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 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마태 11,2-6)”

예수님께서 병자들과 장애자들을 고쳐 주신 일은,

당신이 메시아라는 것을 드러내신 ‘표징’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병자들과 장애자들을 고쳐 주려고 세상에

오신 분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려고 오신 분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은 ‘모든 사람의 구원’입니다.

병든 이들과 굶주리는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신 일은,

예수님의 활동의 일부이지 전부가 아닙니다.>

병자들과 장애자들을 고쳐 주신 일은,

하느님 나라와 구원을 ‘미리’ 체험하게 해 주신 일입니다.

병자들과 장애자들의 입장에서는 ‘치유의 은총’을 받은 일이

구원을 받은 일과 같겠지만, 그것은 구원의 ‘시작’일 뿐입니다.

그러니 그것으로 멈추지 말고

구원의 ‘완성’을 향해서 계속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 청하기만 하면, 또는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치유의 은총을 받을 수 있다.” 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는데,

일부 사이비 종파나 기복신앙에 빠져 있는 종파에서

흔히 그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은, 또는 신앙은 ‘자동응답기’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을 고쳐 줄지 말지는

주님께서 당신의 권한으로 결정하시는 일이고,

우리 쪽에서는 겸손하게 자비를 간청해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의 경우가 좋은 예입니다.

그는 자신의 병을 고쳐 달라고 주님께 간절하게 청했지만,

주님께서는 그 청을 거절하셨습니다.

“내가 자만하지 않도록 하느님께서 내 몸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으로, 나를 줄곧 찔러 대 내가 자만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이 일과 관련하여, 나는 그것이

나에게서 떠나게 해 주십사고 주님께 세 번이나 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더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약함도 모욕도 재난도 박해도 역경도

달갑게 여깁니다. 내가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2코린 12,7ㄴ-10).”

바오로 사도는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고통을 일으키는

어떤 불치병을 앓았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 고통이 너무 심해서 주님께 치유를 간청했지만,

주님께서는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그의 청을 거절하셨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분명히 주님께서 선택하신 특별한 사도였지만,

주님께서는 바오로 사도의 병을 그대로 두셨습니다.

만일에 바오로 사도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건강했다면?

더 많은 일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 자신이 말한 것처럼

자만심에 빠져서 잘못된 길로 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치유의 은총’을 통해서 하느님 나라와 구원을 체험할

수도 있고, ‘병’을 통해서 그것을 체험할 수도 있습니다.

꼭 병이 나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병’ 자체가 은총은 아닌데,

투병하는 과정이 하느님 나라와 구원을 체험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길에서 쓰러질지도 모르니

그들을 굶겨서 돌려보내고 싶지 않다.’ ......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땅에 앉으라고 분부하셨다. 그리고 빵 일곱 개와

물고기들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마태 15,32.35-37ㄱ).”

 

이 이야기에서 ‘군중’은 사흘 동안이나 굶은 사람들이 아니라,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굶게 될 수도 있는 사람들입니다.

(지금 당장 배고픈 사람들이 아니라,

배고픔을 겪을 것이 예상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과 군중이 함께 지낸 사흘 동안에는 먹을 것이 있었는데,

이제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을 때에는

먹을 것이 모두 떨어져서 없었고,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것을 걱정하셨습니다.

집에 도착하기 전에 길에서 쓰러질지도 모른다는 것.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한 끼 식사로 사람들의 배고픔을

해결해 주신 일이 아니라, 그들이 집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충분한 힘’을 주신 일입니다.

이 이야기는, 예수님은 우리가 ‘하느님 나라’ 라는 ‘영원한 집’에

잘 도착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우리에게 ‘힘’을 주시는 분이고,

도와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이야기입니다.

 

[출처] 대림 제1주간 수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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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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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쉬리* | 작성시간 23.12.06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조나단 | 작성시간 23.12.06 아멘 신부님 stellakang 님 고맙습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3.12.06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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