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송영진 신부 강론

[스크랩] 2023년 12월 13일 수요일 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작성자stellakang|작성시간23.12.13|조회수112 목록 댓글 3

<대림 제2주간 수요일 강론>(2023. 12. 13. 수)(마태 11,28-30)

(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복음

<고생하는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1,28-30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 11,28-30).”

 

이 말씀을 해설할 때, ‘무거운 짐’은 유대교 율법을 뜻한다고

해설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해설은 이천 년 전의 상황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고,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유대교 율법과는 아무 상관없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우리에게 ‘무거운 짐’과 ‘멍에’는

‘생로병사’로 표현되는 ‘인생고(人生苦)’입니다.

 

“유대교 율법에서는 벗어났지만, 그리스도교 교회법이라는

무거운 짐이 새로 생기지 않았는가?” 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리스도교 교회법은 율법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주시는 ‘안식’을 잘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안내자 같은 것입니다.

‘예루살렘 사도 회의’ 때, 베드로 사도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왜 우리 조상들도 우리도 다 감당할 수 없던

멍에를 형제들의 목에 씌워 하느님을 시험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주 예수님의 은총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믿습니다(사도 15,10-11).”

유대교 율법은, 유대인들에게는 지켜야만 살고 안 지키면 사형을

당하거나 공동체에서 쫓겨나는, 글자 그대로 ‘무거운 짐’이었고,

‘멍에’였지만, 그리스도교 교회법은 그런 짐과 멍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또 주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은총을 잘

받을 수 있도록 우리를 부축해 주고 도와주는 조력자입니다.

<구약시대 때부터 오늘날까지 변함없이 지키고 있는 ‘십계명’은

무거운 짐도 아니고 멍에도 아닙니다.

십계명은 ‘생명을 얻는 길’입니다(마태 19,17-19).

예수님의 여러 가지 계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얻는 방법입니다.>

 

“나에게 오너라.”는 “나를 믿고, 나의 가르침대로 살아라.”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라는 말씀에서 ‘안식’은,

모든 억압과 압박에서 벗어나는 해방을 포함해서,

하느님 나라에서 얻어 누리게 될 구원, 생명, 평화, 행복 등을

총체적으로 뜻하는 말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라는 말씀은, 예수님은

사람들 위에 군림하거나 사람들에게 세도를 부리거나 사람들을

억압하는 분이 아니라, 사랑으로 사람들을 ‘섬기는’ 분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마태 20,25-28).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라는 말씀은,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태 16,24).” 라는 말씀과 ‘같은 말씀’입니다.

이 말씀 때문에,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짐과 멍에다.”

라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과정에서(신앙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신앙인으로서 받아들여야 하는 십자가가 지금 당장에는

무거운 짐과 멍에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 대한 믿음으로, 십자가를 받아들여서

끝까지 지고 가면, 십자가는 결코 짐과 멍에가 아니라,

온갖 짐과 멍에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는 ‘열쇠’ 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수많은 성인 성녀들과 순교자들이 이미 그것을 증명했습니다.>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라는 말씀과 앞의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라는 말씀은, 서로 대칭을 이루면서

‘안식’은 주님께서 주시는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얻는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우리가 요구해서 받아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안식을 주시는 것은 ‘사랑’과 ‘자비’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슨 권리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주님의 양으로서, 양답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

주님께서 주시는 것을 잘 받으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라는 말씀을, 주님께서

멍에와 짐을 주시는 것으로 오해하고서 잘못 해설하는 이들이

많은데, 표현만 보고 뜻은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내 멍에는 ‘편안함’이고, 내 짐은 ‘가벼움’이다.”,

즉 “나의 가르침은 너희를 멍에와 짐에서 해방시키고,

너희에게 편안함과 가벼움을 준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무거운 짐과 멍에를 가벼운 짐과 멍에로 바꿔

주시는 분이 아니라, 짐과 멍에 자체를 없애 주시는 분입니다.

<안식이란, 짐과 멍에가 하나도 없는 상태입니다.>

 

누구든지 살다보면 ‘힘든 일들’을 겪게 되는데,

그것이 자기의 죄와 잘못 때문에 생긴 것이라면

보속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죄와 잘못 때문도 아니고, 내 탓도 아닌 것이라면,

주님을 믿고 주님께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본인 탓이 아닌 일들로 힘들어 하는 사람에게 가서

“불필요한 짐과 멍에를 내려놓아라.” 라고 충고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만든 것도 아니고, 내가 스스로 짊어진 것도 아니고,

사람의 힘으로 내려놓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나에게 내려놓으라는 말만 하는 것은,

‘사랑 없는’ 잔인한 짓이고, 그런 말은 ‘빈말’일 뿐입니다.

 

우리는 ‘힘든 일들’ 때문에 힘들어 하는

이웃의 짐을 나누어 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사랑이란, 무거운 짐을 함께 지는 것, 또는 대신 지는 것입니다.

 

[출처] 대림 제2주간 수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다음검색
스크랩 원문 : 평화의 사도들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조나단 | 작성시간 23.12.13 아멘 신부님 stellakang 님 고맙습니다.
  • 작성자쉬리* | 작성시간 23.12.13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3.12.13 아멘. 감사합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