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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진 신부 강론

[스크랩] 2023년 12월 22일 금요일 (자) 12월 22일 『마리아의 노래』 송영진 모세 신부

작성자stellakang|작성시간23.12.22|조회수111 목록 댓글 5

<12월 22일 강론>(2023. 12. 22. 금)(루카 1,46-56)

 

복음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습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46-56
그때에 46 마리아가 말하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47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48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49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50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51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52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53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54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55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56 마리아는 석 달가량 엘리사벳과 함께 지내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마리아의 노래』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루카 1,46-55).”

 

‘마리아의 노래’는 하느님께서 ‘하신 일들’과

앞으로 ‘하실 일들’에 대한 감사와 찬양이고,

또 메시아께서 하실 일들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리고 믿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믿고 회개하라고 권고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끝까지 믿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자들은

비참한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마리아의 노래’는 성모님의 개인적인 감사와 찬양이 아니라,

인류를 대표해서 드리는 감사와 찬양입니다.

따라서 ‘마리아의 노래’에서 ‘나’는 ‘우리’로 바꿔서

생각하는 것이 옳습니다.

<‘마리아의 노래’는 ‘우리의 노래’이고, ‘나의 노래’입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는 우리의 ‘구원자’이신 하느님의

인류 구원 사업에 대한 ‘큰 기쁨’과 감사를 표현한 말입니다.

여기서 ‘큰 기쁨’이라는 말은, 단순히 기쁨이 크다는 뜻이 아니라,

순수하고 참되고 영원한, 영적인 기쁨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 기쁨은 세속이 주는 허무하고 헛된 즐거움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성모님 개인의 기쁨이면서 동시에 인류 전체의 기쁨입니다.>

“당신 종의 비천함”이라는 말은, 창조주 하느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일 뿐인 인간의 처지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하느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허락해 주지

않으시면 ‘먼지’로 돌아가야 하는 존재입니다(시편 90,3).

하느님의 구원 사업은 그런 비천한 존재인 인간을

굽어보시고(가엾게 여기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셔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일입니다.

 

“당신 종의 비천함”이라는 말을,

성모님이 ‘시골의 별 볼일 없는 평범한 처녀’ 라는 자신의 처지를

나타낸 말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데, 성모님은 실제로는

‘별 볼일 없는 평범한 시골 처녀’가 아니었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아버지 요아킴은 큰 부자였고,

유명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아버지가 부자였다고 해서 성모님도 부자였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거의 고정관념처럼 생각하는

‘시골의 보잘것없는 처녀’는 아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여기서 ‘종’이라는 말은, 단순히 낮은 위치에 있는 존재를

나타내는 말이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는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 없는 존재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우리는 ‘나의 힘’으로는 구원에 도달할 수 없고,

오직 하느님의 자비에 의해서만 구원될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는, 구원받은 사람들이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된 것을 찬양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이 말에 있는 ‘나를’과 ‘나에게’ 라는 말은,

우리 입장에서는 ‘우리를, 우리에게’로 생각하는 것이 옳습니다.

하느님께서 성모님을 통해서 구원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신

것은 맞지만, 또 그 일이 성모님에게 ‘큰일’(위대한 일)이

되는 것도 맞지만,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고, 우리 모두에게

하신 일이기 때문에, ‘구원’은 우리 모두에게 위대한 일이고,

‘구원의 행복’은 우리 모두의 행복입니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들이 자동적으로 구원과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은 아니고,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만, 즉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는 사람들만

그것을 누리게 됩니다.

 

여기서 ‘교만한 자들, 통치자들, 부유한 자들’은

‘회개해야 하는 자들’이고,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 비천한 이들,

굶주린 이들’은 ‘믿고, 회개한 사람들’입니다.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고(마태 18,14; 요한 3,17),

그 뜻에 따라서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도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만한 자들, 통치자들, 부유한 자들’이

구원 사업에서 배제되는 것은 아니고, 그들도 믿고

회개하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들이 진심으로 회개한다면, 자기들이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는 것들을 모두 내려놓을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하기를 거부하고,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한

집착과 욕심을 버리지 않는다면, 하느님 앞에서 쫓겨날 것입니다.

<그것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모두

빼앗기는 것과 같은 일이 될 것입니다.>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는, 하느님은 당신의 약속을

성실하게 지키시는 분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여기서 “당신 종 이스라엘”과 “아브라함과 그 후손”은,

‘하느님의 새 백성’, 즉 하느님과 예수님을 믿고, 섬기고,

회개하면서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신앙인들을 뜻합니다.

“그 자비가 ...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는, 우리가 얻어 누리는

구원, 생명, 행복, 평화는 ‘일시적인 위안’이 아니라,

‘영원히 변함없는 은총’이라는 믿음을 고백한 말입니다.

 

[출처] 12월 22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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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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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조나단 | 작성시간 23.12.22 아멘 신부님 stellakang 님 고맙습니다.
  • 작성자하늘 바래기 | 작성시간 23.12.22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바람의노래 | 작성시간 23.12.22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쉬리* | 작성시간 23.12.22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3.12.22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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