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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진 신부 강론

[스크랩] 2024년 3월 4일 사순 제3주간 월요일 『신앙인답게 살아야 한다.』송영진 모세 신부

작성자stellakang|작성시간24.03.04|조회수103 목록 댓글 5

<사순 제3주간 월요일 강론>(2024. 3. 4. 월)(루카 4,24ㄴ-30)

 

복음

<예수님께서는 엘리야나 엘리사처럼 유다인들에게만 파견되신 것이 아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4,24ㄴ-30
예수님께서는 나자렛으로 가시어 회당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2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큰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이 있었다.
26 그러나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27 또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28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화가 잔뜩 났다.
29 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다.
그 고을은 산 위에 지어져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그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3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신앙인답게 살아야 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큰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또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루카 4,24ㄴ-27).”

 

이 말씀은, 나자렛 사람들에게만 하신 말씀이 아니라

유대인들 모두에게 하신 말씀이고,

그들의 특권의식과 자만심을 꾸짖으신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느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신 민족이라는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있었고, 그래서 자기들은 구원받는 것이

보장되어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고, 자만심에 빠져 있었습니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라는

말씀은, “하느님을 모르고 살던 이방인들은 나의 복음을 믿고

받아들이는데, 하느님을 잘 알고 있고, 믿고 있다는 너희는 왜

나의 복음을 믿지 않고 거부하느냐?” 라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구원 문제에 대해서 별로 간절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들이 간절하지 않았던 것은 구원을 이미 보장받았다는

바로 그 특권의식과 자만심 때문입니다.>

 

엘리야 예언자와 사렙타의 과부 이야기는

구약성경 열왕기 상권 17장에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엘리야 예언자를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하신

일을, 관점을 조금 바꿔서 생각하면, 사렙타의 과부만

엘리야 예언자를 맞아들인 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 당시에 우상숭배에 빠져 있던 유대인들은 자기들을

규탄하는 엘리야 예언자를 박해하고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렙타의 과부는 엘리야 예언자를 맞아들였고,

엘리야 예언자는 그 과부 덕분에 굶어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이방인 여자가 하느님의 예언자를 맞아들인 것은,

유대인들과 달리 하느님을 올바르게 섬겼음을,

또 하느님의 부르심에 제대로 응답했음을 나타냅니다.>

엘리사 예언자와 시리아 사람 나아만의 이야기는

구약성경 열왕기 하권 5장에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아만’만 고쳐 주신 것은, 그 한 사람만 하느님께

청했기 때문이고, 다른 병자들이 치유의 은총을 못 받은 것은,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주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청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은총을 주셔도 받지 않거나 안 받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안 받아서 못 받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사렙타의 과부와 시리아 사람 나아만의

이야기를 하신 것은, 유대인들의 특권의식과 자만심을

꾸짖으면서, 동시에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은 구원받지

못한다는 유대인들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기 위해서입니다.

 

하느님은 유대인들만의 하느님이 아니라

모든 민족들의 하느님이고, 구원은 유대인들만 받는 것이

아니라, 합당한 자격만 갖춘다면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상관없이 누구나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유대인들은 이스라엘만을 선택해서, 이스라엘만을 구원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모든 민족들’이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시니까, 그 말씀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부정하고 모독하는 말씀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들은

화를 내면서(28절)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한 죄인은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것이 이스라엘의 법이었습니다(마르 14,64).

<그렇지만 정당한 재판 절차도 거치지 않고,

군중이 함께 몰려들어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 것은(29절),

법을 집행한 일이 아니라, 그냥 ‘악한 집단 폭력’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라는 30절의 말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위엄과 힘에

압도되어서 어찌하지 못했음을 나타내기도 하고, 아직

하느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지 않아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해칠 수 없었음을 나타내기도 합니다(요한 8,20).

그리고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은 힘이 없어서 당하신

일이 아니라, 인간들의 죄를 대신 속죄하기 위해서,

스스로 당신의 목숨을 내주신 일이라는 것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을 꾸짖으신 것은, 너무 늦기 전에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타이르신 일이기도 하고,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복음을 믿지 않으면

멸망을 당할 것이라고 경고하신 일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경고는 그리스도교에도 해당됩니다.

이 말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를 교회의

반석으로 삼으실 때,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마태 16,18).” 라고 말씀하신 것을 근거로 해서,

‘그렇지 않다.’고 반박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세우신 교회이고, 저승의 세력이,

또는 악의 세력이 건들지 못하게 지켜 주겠다고 약속하신

교회인데, 그리스도교가 망하는 일이 생기겠는가?

저승의 세력이 교회를 건들지 못하게 지켜 주겠다는 약속은,

우리 쪽에서 예수님의 신앙인답게 살 때에만 유효합니다.

하느님의 뜻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지도 않으면서

아무렇게나 막 살아도 지켜 주겠다는 약속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세우셨으니, 예수님께서 없애실 수도 있습니다.

 

[출처] 사순 제3주간 월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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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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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아참 | 작성시간 24.03.04 <그렇지만 정당한 재판 절차도 거치지 않고,

    군중이 함께 몰려들어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 것은(29절),

    법을 집행한 일이 아니라, 그냥 ‘악한 집단 폭력’일 뿐입니다.>
  • 작성자조나단 | 작성시간 24.03.04 아멘 신부님 stellakang 님 고맙습니다.
  • 작성자쉬리* | 작성시간 24.03.04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바람의노래 | 작성시간 24.03.04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4.03.04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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