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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진 신부 강론

[스크랩] 2024년 3월 6일 사순 제3주간 수요일 『율법 실천의 완성』 송영진 모세 신부

작성자stellakang|작성시간24.03.06|조회수91 목록 댓글 6

<사순 제3주간 수요일 강론>(2024. 3. 6. 수)(마태 5,17-19)

복음

<스스로 계명을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17-19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1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19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율법 실천의 완성』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마태 5,17-19).”

 

여기서 ‘율법의 완성’은, 율법 자체의 완성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율법 실천의 완성’을 뜻하는 말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 그러나 서로 사랑하는 것은

예외입니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완성한 것입니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탐내서는 안 된다.’는 계명과 그 밖의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그것들은 모두 이 한마디 곧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말로 요약됩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저지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로마 13,8-10).”

이 말에서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 그러나 서로

사랑하는 것은 예외입니다.” 라는 말은 “사랑은 늘 빚으로

남아 있다.”, 즉 사랑 실천은 아무리 많이 해도

늘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무도 “이만큼 했으면 충분히 했다.” 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사랑 실천’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는 말은,

율법 실천은 ‘사랑으로’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랑 없이 형식적으로 지키는 것은

율법을 실천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루카복음 18장에 있는 ‘바리사이와 세리의 비유’에 나오는

바리사이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사이였고 다른 사람은 세리였다.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루카 18,10-14ㄴ).”

이 비유에 나오는 바리사이는 십계명을 잘 지키고 단식도

자주 하고 십일조를 바치는 일도 잘하지만,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없이 겉으로만 잘하는 사람이고,

하느님을 사랑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잘난 체 하려고 신앙생활을 흉내 내는 사람입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자기 자랑’만 잔뜩 들어 있습니다.

여기서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라는 말씀은, 하느님께서 세리의 기도만

진실한 것으로 인정하셨고, 바리사이의 기도는

인정하지 않으셨다는 뜻입니다.

<‘기도만’이 아니라, 그의 생활 자체가

하느님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생활입니다.>

 

‘율법 실천의 완성’이라는 말은,

‘가장 큰 계명’에 관한 말씀에 연결됩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마태 22,37-40).”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라는 말씀은, 계명들과 율법들의 근본정신은 사랑이고,

그것들을 실천하는 일은 ‘사랑으로’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니까 사랑으로 실천할 때 율법 실천이 완성됩니다.

<완전하게 실천할 수 있게 된다는 뜻입니다.>

 

‘사랑의 계명’과 관련해서 ‘낙타와 바늘귀’ 이야기에 나오는

부자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예수님께 ‘스승님, 그런 것들은(십계명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며 이르셨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그러나 그는 이 말씀 때문에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마르 10,20-22).”

이 이야기에 나오는 부자를 예수님께서 ‘사랑스럽게’

바라보셨기 때문에, 그는 위선자가 아니고, 그가 십계명을

다 지켜 왔다는 말은 진실한 말이라고 믿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사랑이 부족했습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경건하게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긴 한데,

마음 한구석에 재물에 대한 사랑이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지만, 재물도 사랑하는 것이

그의 부족한 부분입니다.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라는 말은, 그가 재물에 대한 사랑을

버리지 못해서 그냥 예수님에게서 떠나갔음을 나타냅니다.

사랑이란, 둘로 갈라질 수 없습니다.

이야기에 나오는 부자처럼 사랑이 양쪽으로 갈라져 있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주 많이 부족한 것이고, 그러면 그의

십계명 실천도, 비록 진실한 실천이긴 하지만,

불완전하고 부족한 실천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출처] 사순 제3주간 수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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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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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조나단 | 작성시간 24.03.06 아멘 신부님 stellakang 님 고맙습니다.
  • 작성자쉬리* | 작성시간 24.03.06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가을비 | 작성시간 24.03.06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4.03.06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바람의노래 | 작성시간 24.03.06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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