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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진 신부 강론

[스크랩] 2024년 3월 8일 사순 제3주간 금요일 『사랑』 송영진 모세 신부

작성자stellakang|작성시간24.03.08|조회수89 목록 댓글 4

<사순 제3주간 금요일 강론>(2024. 3. 8. 금)(마르 12,28ㄱㄷ-34)

복음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니, 그분을 사랑해야 한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28ㄱㄷ-34
그때에 율법 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28 다가와,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 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29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30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1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32 그러자 율법 학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스승님. ‘그분은 한 분뿐이시고 그 밖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시니,
과연 옳은 말씀이십니다.
33 또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
34 예수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하고 이르셨다.
그 뒤에는 어느 누구도 감히 그분께 묻지 못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사랑』

 

“율법학자 한 사람이 ......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그러자 율법학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스승님. ′그분은 한 분뿐이시고 그 밖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시니, 과연 옳은 말씀이십니다. 또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하고 이르셨다(마르 12,28ㄱㄷ-34ㄱ).”

 

율법학자는 “가장 중요한 계명은 무엇입니까?” 라고 물었는데,

예수님께서는 ‘계명의 근본정신’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겉으로만 보면, 율법학자가 알고 싶어 하는 것을

예수님께서 대답해 주신 것처럼 보이지만,

뜻을 생각하면 질문과 답변이 어긋나 있습니다.

율법학자가 말한 ‘첫째가는 계명’이라는 말은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중요한 계명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첫째’와 ‘둘째’ 라는 말은

계명의 근본정신을 뜻합니다.

그리고 “첫째는 이것이다.” 라는 예수님 말씀은, 바로 뒤에

있는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에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에 연결됩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강조하시는 것은 ‘사랑’입니다.

 

하느님 한 분만을 주님으로 섬기는 것은 기본 신앙입니다.

‘사랑’은 그 신앙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깨닫고,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믿음이 있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1코린 13,2).”

이 말을, “하느님 한 분만을 주님으로 믿고 섬긴다고 해도,

사랑이 없으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로 바꿔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하느님 한 분만을 주님으로 믿고 섬기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훨씬 더 중요한 일입니다.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다는

율법학자의 말도 바오로 사도가 한 말과 거의 같은 말입니다.

하느님만을 한 분이신 주님으로 믿고 섬기면서 번제물과

희생 제물을 바치는 일도 중요하지만,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또는 하느님의 뜻대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일은 실천하지 않으면서, 또는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지는 않으면서, 즉 사랑을 실천하지는 않으면서,

하느님만을 한 분이신 주님으로 믿고 섬긴다고 말하는 것은

‘빈말’을 하는 것일 뿐입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이스라엘이 우상숭배에

빠진 일이 많은데, 하느님을 완전히 배반하고

우상에게로 넘어간 일은 드물고, 하느님 한 분만을

주님으로 믿고 섬기는 신앙은 여전히 가지고 있으면서

우상에게 한눈을 파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부족했거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신앙인들 중에도, 기본적인 신앙생활은

정상적으로 하면서도 미신에 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경우는 신앙을 버린 것이 아니라, 사랑이 식은 것입니다.

물론 사랑이 식으면 언젠가는 결국 신앙도 식어버리게 되지만,

어떻든 ‘신앙 따로, 사랑 따로’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우상숭배와 미신에 빠지는 것을

불륜이나 간음으로 표현합니다.

배우자를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니고 함께 살고 있으면서도

바람피우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모든 계명은 다 똑같이

중요하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마태 5,18-19ㄱ).”

이 말씀에서,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 라는

말은, 실제로 하느님의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이

있다는 뜻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가장 작은 계명이라고 판단하는 것을 뜻합니다.

“계명들을 큰 것과 작은 것으로(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으로) 분류하지 마라. 계명들은 모두 똑같이 중요하다.

그러니 모든 계명들을 똑같이 충실하게 지켜야 한다.”가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마음과 목숨과 정신과 힘을 다하는 것”은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이기도 하고, ‘사랑에 대한 정의(定義)’이기도 합니다.

사랑을 실천할 때에는 자신의 온 마음과 목숨과

정신과 힘을 다해서 실천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기 자신을 모두 내주는 것이 곧 사랑입니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사랑은 ‘좋아하는 감정’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전부 내주는 헌신과 희생과 섬김입니다.

이 사랑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모두 해당됩니다.

하느님 사랑은 이웃 사랑을 통해서 실천됩니다.

그리고 이웃 사랑은 하느님 사랑을 통해서 완성됩니다.

 

[출처] 사순 제3주간 금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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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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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조나단 | 작성시간 24.03.08 아멘 신부님 stellakang 님 고맙습니다.
  • 작성자쉬리* | 작성시간 24.03.08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아참 | 작성시간 24.03.08 자기 자신을 전부 내주는 헌신과 희생과 섬김입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4.03.08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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