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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진 신부 강론

[스크랩] 2024년 3월 9일 사순 제3주간 토요일 『회개』송영진 모세 신부

작성자stellakang|작성시간24.03.09|조회수59 목록 댓글 3

<사순 제3주간 토요일 강론>(2024. 3. 9. 토)(루카 18,9-14)

복음

<바리사이가 아니라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8,9-14
그때에 9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사이였고 다른 사람은 세리였다.
11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 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12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13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1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회개』

 

“예수님께서는 또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사이였고 다른

사람은 세리였다.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루카 18,9-14)”

 

여기서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은, 진짜 의인도 아니면서 “나는 의인이다.” 라고

착각하고 있는 자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을 자기 마음대로

죄인 취급하고 멸시하는 자들입니다.

간단하게 줄이면 ‘교만한 위선자들’입니다.

<진짜 의인은 자기 입으로 “나는 의인이다.”

라고 말하지 못합니다.

늘 자기 자신의 부족함을 의식하면서 더욱더

자기 자신을 갈고 닦으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우리 교회의 성인 성녀들 가운데에서 자기 입으로

“나는 성인이다.” 라고 말한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만일에 누구든지 자기 입으로 “나는 성인이다.”

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성인이 아닙니다.

바로 그 교만 때문에 성인 자격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위선자들을 향해서

‘바리사이와 세리의 비유’를 말씀하시는데,

그 당시 바리사이들은 대부분 위선자들이었습니다.

<물론 전부 다 그랬던 것은 아니고,

바오로 사도처럼 진실한 사람도 일부 있었습니다.>

또 그 당시에 세리들은 사회적으로 죄인 취급을 받았고,

실제로 거의 대부분의 세리들이 죄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리들이 전부 다 그랬던 것은 아니고,

일부는 죄책감을 느끼면서 살다가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을

믿고 받아들이면서 회개했고, 죄가 되는 직업을 버렸습니다.

‘마태오 사도’와(마태 9,9) 예리코의 세관장

‘자캐오’가(루카 19,8) 대표적인 예입니다.

어떻든 ‘바리사이와 세리의 비유’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강조하시는 것은 ‘회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활동을 시작하실 때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라고 선포하셨습니다(마태 4,17).

비유에 나오는 세리는 진실하게 회개해서 하늘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얻은 사람이고, 바리사이는 자기는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자처하면서, 회개하지 않아서 하늘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얻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이 비유는 바리사이와 세리를 비교하는 비유가 아니라,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과 구원받는 사람을 대조하는

비유이고,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는,

“너는 지금 어느 쪽에 있느냐?” 라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비유에서 ‘꼿꼿이 서서’ 라는 말은

그 바리사이가 거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혼잣말로’ 라고 번역되어 있는 말을 원문대로 직역하면

‘자신을 향해서’인데, 그 바리사이가 하느님께 기도드리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기도했다는 뜻이 아니라,

번역되어 있는 그대로 혼잣말을 했다는 뜻입니다.

<하느님께 기도를 바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혼잣말을 중얼거렸을 뿐이었다는 뜻입니다.>

그가 강도짓, 불의, 간음을 하지 않은 것과 단식을 자주 하고

십일조를 잘 바치는 것은 사실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신 의도를 생각하면,

그는 겉으로는 죄를 안 짓고 있어도

마음으로는 죄를 짓고 있는 자입니다.

그의 말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다.’ 라는 말과 ‘저 세리와도 같지 않다.’ 라는 말입니다.

하느님의 심판은 상대평가가 아니라 절대평가입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네가 더 선하다, 또는 더 악하다.” 라는

평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의 선과 악은 그 자체로 평가됩니다.

다른 사람들의 것과 비교해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따라서 나는 너보다 선하다는 말은 아무도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자기 마음대로 함부로 죄인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하느님의 권한을 침해하는 신성 모독죄입니다.

그는 교만과 위선과 신성 모독죄 때문에,

또 자기는 다 잘하고 있으니 회개할 필요가 없다는

그 착각 때문에 하늘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얻지 못합니다.

 

반면에, 세리는 자기 죄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고,

그것을 인정하고 고백하면서 진심으로 회개하고 있습니다.

<만일에 속으로는 죄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겉으로만

죄인이라고 하고, 회개한다고 말한다면, 그것도 위선입니다.>

우리는 비유에 나오는 세리가 ‘말로만’ 회개한 것이 아니라,

‘죄의 삶’을 청산하고 ‘변화된 삶’을 살기 위해서 노력하는,

즉 ‘온 삶으로’ 회개하는 사람이라고 믿을 수 있습니다.

14절의 ‘의롭게 되다.’ 라는 말은,

“하느님께서 의로움을 인정해 주셨다.” 라는 뜻이고,

이 말은 “구원을 받았다.” 라는 뜻입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는

“스스로 의인인 척 하는 위선자들은 구원받지 못하고”이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는

“진실하게 진심으로 회개하는 사람만이 구원받는다.”입니다.

 

[출처] 사순 제3주간 토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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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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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아참 | 작성시간 24.03.09 자기는 다 잘하고 있으니 회개할 필요가 없다는

    그 착각 때문에 하늘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얻지 못합니다
  • 작성자조나단 | 작성시간 24.03.09 아멘 신부님 stellakang 님 고맙습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4.03.09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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