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송영진 신부 강론

[스크랩] 2024년 3월 10일 사순 제4주일 (요한 3,14-21)『예수님』 송영진 모세 신부

작성자stellakang|작성시간24.03.10|조회수104 목록 댓글 3

<사순 제4주일 강론>(2024. 3. 10.)(요한 3,14-21)

복음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3,14-21
그때에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말씀하셨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15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18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19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20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21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수님』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요한 3,14-18).”

 

1) 이 말씀에서 첫 번째로 강조되고 있는 것은,

“구원을 받으려면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입니다.

요한복음 14장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

사람들 가운데에는 “예수를 안 믿어도 하느님만 잘 믿으면,

구원받을 수 있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구원받지 못한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뜻’이고, 하느님께서 정하신 일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분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사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하늘 아래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사도 4,12).”

또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느님 아버지 한 분이 계실 뿐입니다.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나왔고 우리는 그분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또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

계실 뿐입니다.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있고

우리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합니다(1코린 8,6).”

‘그리스도교’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구세주’로),

또 하느님으로 믿는 종교입니다.

 

2) 두 번째로 강조되고 있는 것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 때문에, 즉 죄와 죽음에서 우리를

해방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서 돌아가셨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이고, 부활하신 다음에는

우리와 함께 살아계시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목숨을 우리 대신에 속죄 제물로 바치셨고,

그 덕분에 우리는 해방과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믿음 없는 사람들은 십자가에서 고통과 죽음만 보지만,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부활과 생명을 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뒤를 따라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것은, 부활과 생명에 참여하기 위해서입니다.

부활과 생명이 없다면 십자가는 의미도 없고 가치도 없습니다.

신앙생활의 최종 목적지가 부활과 생명이 아니라면,

아무 의미 없는 생활이 될 뿐입니다.

 

3) 세 번째로 강조되고 있는 것은 ‘하느님의 뜻’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모든 사람의 구원’입니다(마태 18,14).

어떤 특정 민족이나 특정인을 구원의 대상으로 미리

정해놓으신 것도 아니고, 사람들 사이에 어떤 차별이나

구분을 만들어 놓으신 것도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구원하기를 바라셔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고, 그래서 누구든지 구원받기를

원하고, 구원받으려고 노력하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과 구원과 생명을 얻는 일에 대해서

아무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들이 안 받으려고 해서 구원받지 못합니다.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요한 3,19-21).”

 

구원과 생명을 얻는 일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이 없고,

물질적이고 현세적인 것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얻으려고 자기 인생을 모두 쏟아 붓다가

허무하게 끝나버립니다.

예수님 말씀에서 ‘빛’은 구원을 주시는 당신을 가리키고,

‘어둠’은 구원의 길과는 반대쪽에 있는 ‘멸망’을 뜻합니다.

‘진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뜻합니다.

<‘구원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가는 것은

진리를 외면하고, 지혜가 아닌 어리석음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물질적이고 현세적인 것만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사는 것은

어둠을 사랑하는 것이고, ‘구원의 좁은 문’을 버리고 ‘멸망의

넓은 문’으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악한 일입니다.

이 말에 대해서 그 사람들은, “부귀영화, 출세, 성공을 얻는

것도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이 길도 대단히 좁은 문이다.”

라고 반박할지도 모르는데, 그것은 자기들끼리 경쟁하느라고

그렇게 되는 것이지, 무슨 가치가 있거나 거룩하고 훌륭한

일이어서 좁은 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요한 사도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은 세상도 또 세상 안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가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람

안에는 아버지 사랑이 없습니다. 세상은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1요한 2,15.17).”

<이 말에서 ‘지나가다.’는 ‘허무하게 사라지다.’입니다.>

 

[출처] 사순 제4주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다음검색
스크랩 원문 : 평화의 사도들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아참 | 작성시간 24.03.10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1요한 2,15.17).”
  • 작성자조나단 | 작성시간 24.03.10 아멘 신부님 stellakang 님 고맙습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4.03.10 아멘. 감사합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