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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진 신부 강론

[스크랩] 2024년 3월 13일 사순 제4주간 수요일 『예수님은 사랑이십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작성자stellakang|작성시간24.03.13|조회수79 목록 댓글 2

<사순 제4주간 수요일 강론>(2024. 3. 13. 수)(요한 5,17-30)

복음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17-30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에게,
17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18 이 때문에 유다인들은 더욱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다.
그분께서 안식일을 어기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당신 아버지라고 하시면서
당신 자신을 하느님과 대등하게 만드셨기 때문이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지 않고서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께서 하시는 것을 아들도 그대로 할 따름이다.
20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시어
당신께서 하시는 모든 것을 아들에게 보여 주신다.
그리고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들을 아들에게 보여 주시어,
너희를 놀라게 하실 것이다.
21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
22 아버지께서는 아무도 심판하지 않으시고,
심판하는 일을 모두 아들에게 넘기셨다.
23 모든 사람이 아버지를 공경하듯이 아들도 공경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아들을 공경하지 않는 자는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않는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이는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
25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죽은 이들이 하느님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또 그렇게 들은 이들이 살아날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26 아버지께서 당신 안에 생명을 가지고 계신 것처럼,
아들도 그 안에 생명을 가지게 해 주셨기 때문이다.
27 아버지께서는 또 그가 사람의 아들이므로 심판을 하는 권한도 주셨다.
28 이 말에 놀라지 마라. 무덤 속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의 목소리를 듣는 때가 온다.
29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 선을 행한 이들은 부활하여 생명을 얻고
악을 저지른 자들은 부활하여 심판을 받을 것이다.
30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
나는 듣는 대로 심판할 따름이다. 그래서 내 심판은 올바르다.
내가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수님은 사랑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때문에 유다인들은

더욱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다(요한 5,17-18ㄱ).”

 

예수님께서 ‘안식일’인데도 벳자타 못 가에서 병자를 고쳐

주시자(요한 5,9),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 규정을

어겼다고 생각해서 박해하기 시작했습니다(요한 5,16).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라는 말씀은, 당신이 안식일에 쉬지 않고 병자를 고쳐 주는

일을 하시는 이유를 설명하신 말씀입니다.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는,

하느님께서는 단 한 순간도 쉬시지 않고 일하신다는 뜻입니다.

창세기를 보면, “하느님께서는 하시던 일을 이렛날에 다

이루셨다. 그분께서는 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이렛날에

쉬셨다(창세 2,2).”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하시던 일’은 천지창조 작업을 가리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일’은

인간들을 보살피시고 보호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뜻합니다.

창세기의 ‘쉬셨다.’ 라는 말은, 천지창조 작업을 마무리하셨다는

뜻일 뿐이고, 하느님께서는 그 작업 후에도 쉬시지 않고

인간들을 사랑으로 보살피시고 보호하시는 일은

계속 하고 계신다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나도 일하는 것이다.” 라는 말씀은, 아버지께서 쉬시지 않고

일하시기 때문에 당신도 요일과 상관없이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을 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단 한 순간도 중단되지 않습니다.

만일에 한 순간이라도 하느님께서 당신의 사랑을

중단하신다면, 그 순간 우주 전체가 얼어붙을 것입니다.

(생명력을 잃어서 모든 것이 소멸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가 날마다 숨을 쉬는 일과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의식을 하든지 안 하든지 간에

끊임없이 숨을 쉬고 있습니다.

만일에 숨 쉬는 것을 멈춘다면, 그것은 곧 죽음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바로 그 ‘숨’과 같은 것,

또는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또는 모든 피조물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존재하고,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갑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은 생명력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생명력을 받아야만 존재할 수 있고, 살 수 있습니다.

그 생명력이 끊어지면 우리는 살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사랑을, 끊임없이 뛰고 있는 ‘심장’으로,

또는 온 몸 속을 흐르는 ‘혈액’으로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심장이 뛰는 것을 의식하지 않을 때가 많은데,

만일에 심장이 뛰는 것을 멈추고 혈액이 흐르지 않으면,

극심한 고통과 함께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의식하지 않아도, 잊어버리고 있어도,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우리에게 생명력을 주고, 우리를 살아 있는

존재로 만들어 주는 것,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아드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서, 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십니다.

그분께서 죄를 깨끗이 없애신 다음, 하늘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히브 1,3).”

이 말을 간단하게 줄이면,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보이는 모습’이신 분”입니다.

더 줄이면, “예수님은 하느님이신 분”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 4,8).

이 말은 예수님에 대해서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랑이신 분입니다.

사랑이신 분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과

모든 말씀은 사랑 그 자체입니다.

그 사랑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사랑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죽은 이들이 하느님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또 그렇게 들은 이들이 살아날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요한 5,25).”

 

신앙인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려고 오셨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고, 예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예수님의 사랑에

사랑으로 응답하는 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곧 신앙생활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에 사랑으로 응답하는 방법은,

복잡하고 어렵게 말할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사는 것이 곧 예수님의 사랑에 사랑으로

응답하는 방법이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방법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요한 6,68).” 라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은 나중으로 미루어도 되는 생활이

아니라 ‘지금’ 당장 서둘러서 해야 하는 생활입니다.

‘지금’이 곧 ‘영원’의 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우리에게(나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나를 믿어라. 내 말을 믿고 내 뒤를 따라라.”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신경 쓰고 관심 갖고 걱정하다가

정말로 중요한 것 하나를 놓칠 때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잃거나 버려도 절대로 놓치면 안 되는 것

하나는 ‘하느님 나라에서 누리게 될 영원한 생명’이고,

그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영원한 것이 아니라면, 또는 하느님 나라에 가지고 들어갈 수

없는 것이라면, 지금 내가 신경 쓰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은

아무 쓸모도 없고 가치도 없는 것들, 우리가 능동적으로

버려야 할 쓰레기들입니다(필리 3,8).>

 

[출처] 사순 제4주간 수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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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바람의노래 | 작성시간 24.03.13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4.03.13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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