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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웅열 신부 강론

충만한 때/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작성자하늘호수♡마리아|작성시간22.12.16|조회수128 목록 댓글 3
◼마태오 24,37-44

 

+ 주님의 이름으로 평화를 빕니다.

퀴즈 내 볼게요. 상품은 없지만, 아주 쉬워요.

‘손과 발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대접받고 살까요?’

당연히 손이죠.

또 두 번째 퀴즈! 그러면 ‘손과 발 중에서 어느 쪽이 더 고생하고 살까요?’

그것은 사람마다 다르겠죠, 손 고생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럼 세 번째, ‘손과 발 중에서 항상 캄캄하게 사는 쪽이 어느 쪽일까요?’

발이죠. 얘는 햇빛을 못 보잖아요.

마지막 퀴즈, ‘손톱과 발톱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빨리 자랄까요?’

손톱이 3배나 4배 이상 훨씬 빨리 자라요.

손톱 두세 번 깎을 때 발톱은 한 번만 깎으면 돼.

의학적으로 이유가 있는데, 햇볕을 받아서가 아니라, 손은 계속 쓰잖아요.

손끝 혈관이 계속해서 운동하기에 거기 붙어있는 손톱 뿌리가 빨리 자라는 거예요.

내가 여기 와서 8월부터 식복사 없이 사는데 진짜 손톱이 빨리 자라요.

온종일 밥하고 설거지하고 닦아야 하고 청소해야 하고 그러니까.

예전에는 책장만 넘기던 손이었는데, 여기 와서 망치질도 내가 다 해야 해.

여기 온 후로 자주 ‘손톱이 또 벌써 깎을 때가 됐네?’ 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왜 손톱이 빨리 자라나 검색해보니, 신경세포를 많이 쓰면 그만큼 손톱이 빨리 자란대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맞아요.

발톱 깎으려면 한참 멀었는데 얘는 벌써 깎을 때가 지났단 말이죠.

 

그래서 선뜻 빨리 자라는 걸 보면서 ‘손톱이 빨리 자라는 것만큼이나 우리들의 믿음이 빨리 자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어요.

봉사를 열심히 해요.

봉사를 열심히 하면은 거기에 비례해서 믿음도 커진다고 봐야죠. 보편적으로요.

봉사 안 하는 사람보다는 봉사 열심히 하는 사람이 믿음이 커져요.

입으로만 봉사한다고 떠들어봐요, 그건 믿음이 안 커.

‘주님 저는 몸이 아파서 봉사는 못 해도 마리아처럼 예수님 발치에 앉아서 기도는 열심히 합니다.’

물론 그것도 믿음이 커지겠죠.

손톱은 이렇게 빨리 자라는데 왜 내 믿음은 하느님한테 가려면 아직도 멀었을까?

저는 공기가 좋아서 빨리 자라는 줄 알았어요.

 

그저께 발을 씻다가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그냥 비누칠만 하고 끝났지 한 번도 로션이라는 걸 내가 발라준 적이 없어요.

얼굴에는 그래도 스킨이라도 바르잖아요.

그래서 내가 정식으로 발에게 사과를 했어요.

발에게 로션을 정성스럽게 발라주니 되게 빨리 흡수가 됩디다.

얘가 안 먹다가 먹으니까 쫙쫙 빨아들여.

그러니까 발도 말랑말랑해지고 발이 너무너무 행복해하는 거예요.

 

제가 강론에 여기 와서 치유된 것이 두 가지 있다고 말씀드렸죠.

7년 동안 먹던 수면제가 끊겼고,

두 번째는 2015년에 사고 나면서 그때부터 뭔가 몸이 어떻게 망가졌는지 한방에서는 균형이 안 맞았다고 해요.

그래서 심장에 열이 많고 입술이 항상 텄죠.

맨날 나도 모르게 손이 가서 뜯는 것이 일이었어요.

세상 좋은 립밤은 다 발라도 소용이 없었는데 여기 온 후 손이 안 가요. 그리고 촉촉해요.

그런데 또 병이 생긴 게요.

주방에 온종일 서 있으니까 무릎이 아파요.

근데 며칠 전에는 또 발바닥이 너무 아픈 거야. 족저근막염.

큰 병이 아니래도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자잘한 것 때문에 삶의 질이 좀 떨어지죠.

몸이 아픈 것도 나한테 메시지를 줘요.

또 치유된 것도 나한테 메시지를 줘요.

사실은 눈 뜨고 잠잘 때까지 우리의 마음이 열려만 있다면 다 하느님의 말씀이에요.

그래서 고통도 은혜로 온 것이고, 기쁜 일이 생기는 것도 은혜로운 거예요.

뒤돌아보면은 다 은혜로운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그냥 즉각 반응하죠.

어둠이 싫어! 고통받기 싫어!

또 좋은 일 생기면 그냥 깔깔깔 대고.

하지만 좋은 일이 생겨도 침묵해야 할 때가 있고, 아픈 일이 생겨도 웃어야 할 때가 있단 말이죠.

그렇지 대림절은 바로 그런 것을 묵상하는 시기가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오늘 제2독서의 바오로 사도의 말씀과 오늘 복음은 ‘Time(시간, 때)’으로 연결됩니다.

바오로 사도도 굉장히 강하게 ‘때가 있는 것이다’라 하십니다.

또 오늘 복음도 ‘항상 깨어서 준비해라.’

 

하느님의 계산은 인간의 계산과는 같을까요. 다를까요?

분명히 인간의 계산과는 달라요.

내가 늘 얘기하죠.

종교인과 신앙인이 있다고 그랬어요.

종교인과 신앙인을 구분하는 여러 가지 기준이 많은데, ‘타임’에 맞물려 생각할 때, 종교인은 자기 계산대로 살아요.

늘 자기의 생각이 자기의 계획이 가장 정확하다고 생각하죠.

그리고 자기 계산대로 살면서 늘 하느님에게 받은 것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신앙, 은총은 계산으로만 하는 것이 분명히 아닙니다.

늘 대차 대조표를 만들고 손익 계산을 하면서 하느님 믿어도 기쁨도 없고 외롭고 세월이 갈수록 고달프다 합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축복을 안 주셨기 때문이 아니라 애초부터 하느님을 계산하는 마음으로 만났기 때문에 축복을 못 보는 거죠.

그래서 이렇게 계산만 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기쁘지 않고 늘 고달프고 고독하죠.

 

이제 우리는 기다림의 자세로 성탄을 준비합니다.

말이 대림 제1주일이지 이제 금세예요.

이 성탄을 누군가는 가슴 졸이면서 기다리고 있고, 또 그 준비를 한다는 것 그 자체가 사실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아까 얘기대로 오늘 성서가 전하고 있는 단어는 시간, 타임이죠.

 

하느님께서 원하시고 계획하시는 때를 말합니다.

하느님이 원하시고 거룩하신 계획하신 그때를 오늘 복음에서 말하고 있는데,

지금이 어느 때인가를 우리는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서 할 수 있죠.

여러분들 FM 라디오 들으세요?

여기는 조금 산이라 FM 방송을 들으려면 약간 안테나가 필요해요.

방송국에서는 선명한 음질로 전국으로 쏴 주고, 아무리 고급 라디오가 있어도 주파수가 안 맞으면 선명하게 못 듣습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말씀을 전할 때 이 주파수를 잘 못 맞추면, 잡음으로 들려요.

하느님의 목소리로 안 들려.

그럼 하느님이 어떤 주파수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을 건네시어 그때가 어느 때인지를 알려 주실까?

크게는 네 가지죠.

‘양심’이라고 하는 주파수가 있어요.

죄지으려 하면 내 양심에서 ‘너 그거 하면 안 되는 거 알잖아’ 소리가 들려요.

또 ‘사건’이라고 하는 주파수가 있어요, 원하지 않았던 사건.

세 번째 주파수는 ‘말씀’이라고 하는 주파수가 있죠.

오늘도 이 김웅열 신부의 입을 통해서 하느님께서는 분명히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거죠.

네 번째로는 ‘고통’.

누구나 고통을 통해 하느님 목소리 듣기를 원치 않지만, 다른 것보다도 정말 강해요.

힘들지만 정말 선명하게 어느 때보다도 주님이 내 곁에 가까이 와 있는 때라는 것을,

그때는 모르지만 지나고 나면 강력한 메시지라는 것을 알게 돼요.

 

세상만사 다 때가 있습니다.

코헬렛(공동번역성서, 전도서) 3장의 말씀처럼 심을 때도 있고 거둘 때도 있고 울 때가 있으면 또 웃을 때도 있죠.

못 알아들을 때도 있고, 또 그전에는 몰랐는데 10년이 지나서 알아들을 때가 있어요.

때가 있어요.

사람은 때를 잘 알아야 합니다.

사업이나 장사하는 사람도 때를 놓치면 큰 손해를 봅니다.

남이 안 하던 것 해야만 돈을 벌죠.

남이 돈 잔뜩 버는 것을 나중에 따라 하면 또 망해요.

다른 사람보다 한발 앞서가야 해요.

신자들이 가끔 그래요.

신부님은 성지에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한데 왜 한 번도 돈 얘기를 안 하세요.

난 그러죠. 돈 없는 사람들이 들으면 뺨 맞을 얘기지만. 난 눈만 감으면 돈 벌 게 쫙 보인다.

왜 돈들을 못 벌까, 난 아이템이 되게 많거든요.

사실은 군종 신부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압니까?

제가 군종 신부 할 때는 군종교구도 없던 시절이었죠.

그리고 군인들이 무슨 헌금을 내요.

그때 대위로 임관하고 하니까 봉급이 4만 원인가 했는데 초코파이 사다 주면 남는 게 없어.

이거 돈을 어떻게 하면 버나 생각하다 성지 주일이 가까이 왔어요.

전방에 가니까 초등학교 담이 다 측백나무로 돼 있어.

서울 큰 본당은 나무 시장에 가서 그걸 사거든요.

그래서 내가 아는 수녀님들께 미리 주문을 받아 한 40군데 본당에서 받았어.

군장병 데리고 국민학교를 몇 개를 다니면서 전지해 준다고 하니 그 학교에서도 좋은 거야.

전지해 주고 축구공 두 개 선물로 주고.

일찍 자르면 누렇게 뜨니, 배달 2일 전에 잘라 전날 100개씩 묶어 배달했죠.

그때 50만 원인가 벌었어요.

그 이야기 듣고 전국의 군종 신부들이 측백나무만 찾아다녔죠.

얘긴 뭐냐면, 남이 하는 거 뒤따라가면 절대 돈 못 벌어요. 남이 안 하던 것을 해야 해요.

그러니까 사업에 성공할 때도 있고 망할 때도 있지만, 때를 잘 맞추면 사업이 성공한다는 말이죠.

공부도 그렇고, 삶의 여러 부분이 그래요.

 

성경에서 오늘 말하는 ‘이 중요한 때’를 그리스어로 ‘카이로스(Kairos, Καιρός)’라고 불러요.

이 카이로스라고 말할 뜻은 ‘충만한 시간, 꽉 찬 시간’을 얘기해요.

아까 얘기했죠. 못 알아들을 때가 있고 알아들을 때가 있다.

30년 전에 내 피정 테이프를 어떤 사람이 사서 한번 듣다가 그냥 던져놨대요.

와 닿는 게 없었대.

그런데 30년 지나고 난 다음에 그 먼지 쌓인 것을 들으면서 펑펑 눈물을 흘렸대요.

못 알아들을 때가 있고, 이제는 시간이 충만해져서 꽉 찼기 때문에 그 말씀이 들어오는 거예요.

내 속을 후벼파는 거예요.

그런 때를 알아듣는 때를 성경에서는 카이로스라고 불러요.

충만한 때, 깨닫는 때라고 얘기를 합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깨어나야 할 때가 왔다고 외치고 계시죠.

오늘 제2독서가 어디 말씀이죠? 로마서.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이 읽고 완전히 변화되어 새 인생을 살게 한 성경 구절이 바로 로마서 13장 13절 말씀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정말 머리가 비상한 천재였다고 해요.

그런데 이 비상한 머리를 마니교라고 하는 사교에 빠졌는데. 마니교의 핵심 교리는 쾌락이에요.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마니교의 중요 교리에요.

행복은 쾌락에 있다고 하면서 온갖 탐욕적인 생활을 아우구스티노는 했었어요.

이 아우스티노의 어머니가 누군지 아시죠? 모니카 성녀.

아들이 타락해서 헤매고 있을 때마다 쫓아다니면서 아들의 발자국에다 눈물을 뿌렸다고 해요.

아들의 회개를 위해서요.

엄마의 기도가 이루어졌는지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이 회개한 거죠.

물론 성인도 마니교 교리대로 쾌락에 빠져 살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더 허전하고 삶은 메말라가고 있었던 거를 느꼈던 겁니다.

그리고 많은 범민과 몸부림 끝에 힘들어할 때 우연히 환청이 들려요.

‘네 앞에 있는 성경을 집어서 읽어라.’

그래서 그 말을 듣고 방으로 달려가서 성경을 쫙 펼치니까 거기에 뭐가 있다고요?

로마서 13장 13절이 눈에 들어온 거야.

‘진탕 먹고 마시고 취하거나 음행과 방종에 빠지거나 분쟁과 시기를 일삼거나 하지 말고

언제나 대낮으로 생각하고 단정하게 살아갑시다’

아우구스티노는 바로 이 대목에서 너무나 큰 하느님의 은총을 만나게 됩니다.

바로 카이로스 충만한 시간을 만납니다.

드디어 드디어 찾던 것을 찾았고 만나고자 하는 분을 내가 만나게 되었다.

4대 교부 가운데 하나인 성 어거스틴이라는 성인을 만들어낸 구절이 바로 이 로마서 13장 13절이에요.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카이로스는 어느 시기였을까?

알다시피 프란치스코 성인 아버지는 아주 부유한 무역상이었죠.

어릴 때부터 개망나니, 아주 부잣집 도령으로 컸죠.

그러던 평상시에 마음에 들어 하던 이쁜 처자가 하나 있었어요.

그 처자의 이름이 클라라 성녀였어요.

그런데 그 클라라가 이상하게 일주일에 한 번씩 빵 바구니를 들고 산속으로 들어가는 거야.

왜 들어갈까?

처음에 프란치스코는 산에 쫓아가 손이라도 잡겠다는 생각으로 뒤를 밟았죠.

근데 가는 길이 보니 일반 사람들은 통행금지인 나병 환자 소굴이었어요.

그래서 바위 뒤에 숨어서 보니, 굴 앞에 가서 빵을 펼쳐 놓고 ‘나와서 식사하세요.’ 하는 거예요.

그 광경을 보고 프란치스코는 충격을 받았죠.

나오는데 얼굴은 아무것도 없어, 눈 코 입 다 떨어지고 손가락도 없고 기어 나와요.

그런데도 클라라는 깨끗한 수건으로 고름 닦아주고.

그 광경을 멀리 바위 뒤에 숨어 보다가 카이로스가 된 거예요.

하느님을 만난 거예요. 그때부터 완전히 돌변했죠.

그래서 기울어져 가는 중세를 일으킨 위대한 성인이 나온 거예요.

맨발 수도자로서 청빈의 모습을 갖고 살아간 거죠.

클라라 성녀도 나중에 사오백 km 떨어진 곳에 수도원을 만들어 수도자가 됐죠.

심리학에서는 이 프란치스코와 클라라 성인의 사랑을 가장 전형적인 플라토닉 러브(platonic love)라고 불러요.

두 분은 400킬로 떨어진 곳에서 기도하며 막 대화를 나누었죠.

그리고 한 2년 후에 생시로 만나면 우리 지난번에 어디까지 얘기했었죠 하면서 기도로 대화를 이어갔다고 그래요.

이러한 경지에 이른 분들은 시간과 공간은 아무 문제가 안 돼요.

예를 들어 비안네 신부님, 오상의 비오 신부님도 동시에 여러 군데 나타나셨죠.

프란치스코가 하느님을 만났을 때는 나병 환자 굴 앞이었던 겁니다.

거기서 바로 하느님의 그 충만함을 알았던 거죠.

 

또 제가 가끔 피정 때 얘기하지만, 물리학자이면서 철학자였던 파스칼 그 양반은

한평생 자기 양복 안쪽에다가 양피지에다가 글을 써서 붙들어 매고 다녔대요.

거기 뭐라고 쓰여 있느냐?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 그리고 나 파스카의 하느님을 몇 년 몇 월 몇 시에 만났노라.’

하느님을 체험했던 그 시간을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또 자기 신앙이 흔들리고

과학 때문에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는 분심이 들 때마다 그것을 쳐다봤다는 거죠.

 

그러면 여러분 앞에 앉아 있는 이 김웅열 신부의 카이로스는 언제였을까?

‘하느님이라고 하는 존재는 마음 약한 인간이 위로받으려고 허상을 만들어 놓은 것인 줄 알았더니

정말 인격적인 하느님, 살아계시는 하느님이 있구나.’

‘우리를 인형으로 만들고 갖고 조종하는 그런 하느님이 아니라,

정말로 1대 1로 응답해 주시는 인격적인 하느님이 있구나’ 하는 것을 체험했던 때.

예전에 들으신 분들은 아실 것 같아요.

내가 신학교 왜 들어오려고 그랬어요?

그렇지. 시체로 변한 아버지를 끌어안고 ‘하느님 당신이 정말 계신다면, 내 가던 길 모두 포기하고 신부 되겠습니다.’

15분 지나서 죽은 아버지가 심장이 뛰고 맥이 뛰고, 의학적으로는 불가능한 것이었어요.

내 눈앞에서 기적이 일어난 거예요.

그때 나는 하느님한테 ‘정말 당신이 계시는군요.’

수많은 사람이 동시에 기도에도 똑같이 인격적으로 대하시는 하느님이 계시는군요.

 

사람은 그 충만한 때를 체험하고 나면 다 포기할 수 있어요.

그 충만한 때를 체험하지 못해서 자꾸 아끼고, 인색해지고, 쪼잔해져요.

죽으면 아무것도 못 가지고 가는 것을.

또 내 가장 가까운 사람한테 너그럽지 못하고 상처 주곤 하죠.

 

하느님을 만나는 카이로스!

오늘 바오로 사도와 복음은 그 충만한 때가 다가오고 있다고 하십니다.

육적으로는 2천 년 전에 인간은 하느님을 만났죠.

마구간에서 만났어요. 분명히 만났어요.

사람마다 만나는 시기가 다 달라요.

대림절은 우리가 지난 1년을 반성하면서, 더 성숙하고 새롭게 변화되는 은혜를 청하는 시기라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림절은 성장의 시기이고 또한 회개의 시기입니다.

대림절 때 본당 신부님들이 대림 피정을 많이 하시는데, 준비시키는 거예요.

 

처음. 서두가 ‘하느님의 계산은 우리의 계산과는 다르다.’

살아보니까 정말 달라요.

내가 완벽하게 계획하고 ‘더 완벽할 수가 없어’ 했던 그 계획이 한순간에 허물어질 때도 너무너무 많았어요.

그리고 하느님은 다 허물어뜨리고 당신이 목수가 되어 기초를 놔주시고 당신이 직접 못을 박고,

내가 만들려고 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강한 반석 위에다 집을 만들어주시더라.

그래서 하느님의 계획과 우리의 계획은 달라요.

우리가 원하는 때에 그분이 오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원하시는 때 불쑥 오세요.

‘지금 와주세요’ 해서 그분이 오실 분 아니에요.

그분이 원하는 때가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오늘 복음은 뭐를 끝나죠?

‘단정한 몸과 마음으로 깨어 준비하라.’라고 했죠.

그냥 깨어만 있으면 안 돼요. 눈곱 잔뜩 붙어있고 하품 쩍쩍하면 안 돼요.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방탕하면 안 된다고 하면서 쭉 나오잖아요. 로마서 13장 13절.

그 마음으로 하느님을 맞이해야 하지, 기름도 준비하지 않는 게으른 처녀들처럼 준비해서는 안 되죠.

신랑이 와도 못 들어갔잖아요.

 

간단하게 대림절 우리들이 어떻게 지내야 할 것인가 얘기해드렸습니다.

이제 분명히 ‘어 벌써 내일이 성탄이네’ 금세 다가올 거예요.

또 성탄절 되면은 레지오 연차, 성탄 전야 때 노래 등, 외적인 행사도 많아요.

외적인 것 때문에 내적인 준비에 소홀히 하면 안 되겠다.

 

어쩌면 대림 첫 주일날 겉으로 보면 여러분들이 오신 것 같지만, 아니라고 그랬죠

가장 건방진 마음이 ‘내가 선택해서 왔다’라는 거예요.

그것만큼 교만한 마음은 없어요.

올 자격도 없는 나를 감히 주님이 나를 불러주셨어.

이거죠. 불러주셨으니까 분명히 하실 말이 있는 거예요.

사제의 입을 통해서 아니면 이곳에 머물면서 여러분의 양심을 통해 분명히 말을 건네실 거예요.

답을 주실 거예요. 그것만이 아니죠.

치유의 은혜도 주시고, 구마의 은혜도 내려주시고, 그분이 분명히 뭔가 주실 게 있으니 부른 거지

그냥 심심해서 부르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대림절을 준비하면서 오늘 받은 은혜 우리들이 잘 생각하면서 열매를 맺도록 노력합시다.

 

♣2022년 대림 제1주일 (11/27)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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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창수선화 | 작성시간 22.12.17 아멘!감사합니다 ~❤
  • 작성자바람의노래 | 작성시간 22.12.17 아멘~감사합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2.12.17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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