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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웅열 신부 강론

강생(降生, incarnatio)의 의미/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작성자하늘호수♡마리아|작성시간23.01.03|조회수163 목록 댓글 6

+찬미 예수님

예수님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그리고 또 성탄을 축하드립니다.

 

저는 아침을 잘 안 먹는데 오늘 아침으로 미역국을 오래간만에 먹었어요.

미역국을 끓이면서 이건 내가 먹을 게 아니라 성모님이 드셔야 하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역국을 먹는 이유가 미역 안에 요오드와 철분이 많기 때문이죠.

그런데 내가 아직 확인해 본 적은 없지만, 유대 땅에서 아이를 낳으면 영양을 보충하기 위해서 뭘 먹었을까,

또 더 나아가서 예수님 시대는 어땠을까?

그리고 예수님이 무슨 조산원에서 나신 게 아니죠?

우리는 성탄절이면 마구간을 호화스럽게 꾸미지만 사실은 말과 소가 사는 더러운 데죠.

그리고 예수님 뉘었던 게 구유예요.

구유가 뭡니까? 말 먹이통. 말 밥그릇.

그런 상태에서 아기를 낳으시고 미역국 같은 것을 드셨을 리도 없었겠죠.

그래서 오늘 밥 먹으면서 궁금한 게 또 하나 생겼어.

내가 죽어 예수님과 성모님 만나면 물어볼 것들을 다 적어놓고 있어요.

 

예수님 나온 날이 12월 25일이 아니라는 건 아시죠.

사실 날짜는 모르죠. 그런데 왜 12월 25일이 되는지 아세요?

천주교를 받아들인 로마 제국은 그전에 잡신을 많이 섬겼어요.

그중에서 제일 큰 신이 태양신이고, 태양신 생일이 12월 25일이에요.

그래서 로마 제국 사람들 머릿속에 제일 박혀 있는 날짜가 자기 생일도 아니고 12월 25일이 제일 큰 축제일이야.

이렇게 로마 사람들 머릿속에 딱 박혀 있는 날짜를 예수님의 생일로 바꿔버린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이 실제로 그 추운 12월 25일에 나셨는지 따뜻한 봄에 나셨는지 그것도 내가 물어보고 싶은 것 중에 하나죠.

성경의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고 신학자들이 미루어 짐작하는 것도 다 정확하지 않아요.

여러분들도 저처럼 죽은 다음에 만났을 때 물을 것 다 적어놓으세요.

궁금한 거 있으시죠?

왜 내 인생 꼬라지가 이렇게 돌아가냐 서부터, 내 새끼들을 이렇게 마음대로 안 되느냐 등.

저도 질문할 것이 지금 거의 노트 반 정도예요.

여러분 얘기도 있어요.

여러분과 왜 어떻게 이렇게 인연을 맺어졌느냐 그런 얘기도 있죠.

 

여러분들 오늘 여기 감곡 사제관에는 성당이나 경당과 달리 구유도 없고, 성모상도 없죠.

내년 겨울이면 아마 분명히 좀 달라질 겁니다.

조경 공사도 다 끝나고, 그것도 뭐 사실은 여러분들과 내가 같이 해야 할 일들이에요.

여기는 내 집이 아니라, 사실 내가 사는 데는 잠자는 곳과 서재, 그리고 밥 먹는 곳뿐이고,

나머지는 교우들과 함께 공유하는 공간입니다.

그렇기에 전 이곳이 내 집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죠.

 

아무튼 천주교 4대 교리가 뭐예요.

첫 번째 천주 강생이고, 바로 오늘이죠. 다른 말로 강생구속.

그럼 강생(降生)이 무슨 뜻인가요?

라틴어로 강생을 인까르나시오(incarnatio)라고 해요.

인(in), 안으로 들어오다. 까르(Car), 살. ‘살 안으로 들어오다.’

다시 말하면 ‘사람 안으로 들어왔다’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껍데기는 사람인데 그 속에 예수님이 또 들어가 있다는 것은 아니죠.

온전한 사람이면서 온전한 하느님이죠.

그래서 교회 역사를 보면 예수님이 그건 껍데기만 갖고 있다 하는 이단도 많이 나왔었어요.

하느님이 사람 안으로 들어오셨어요.

구약의 하느님은 하늘에만 계셨죠.

그래서 인간들이 볼 수가 없었기에 상상했어요.

‘힘이 셀 거야’ 그래서 아도나이(Adonai), 힘이 센 분.

그리고 유대 백성들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헤맬 때 뭐 만들어 놓고 빌었습니까?

금송아지. 하느님은 소처럼 엄청나게 힘이 강할 거야.

하느님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보니 유대인들은 머릿속으로 많이 만들어 냈어요.

잘 달릴 거야, 힘이 셀 거야, 이런 식으로.

그런데 신약에서 하느님이 당신을 보여주셨잖아요.

‘천주 강생’ 보여주셨어요.

이것은 인류 역사상 보통 사건이 아니죠.

하느님이 사람 안으로 들어오셨다는 겁니다.

 

내가 몇 년 전 강론 때 지금 할 얘기를 했어요.

그리고 몇 주 있다 사제서품식에서 주교님을 만났는데, 나를 툭 치더니 ‘지난주 강론 잘 듣고 회개 많이 했습니다.’ 하셨어요.

그때 이런 비슷한 얘기를 했어요.

강생하면은 떠오르는 분이 요즘 나는 교황님, 프란치스코 교황님이시다.

그분이야말로 역대 교황님과는 다르게 권위라고 하는 것은 다 갖다 버린 지 오래다.

그 양반은 교황이 되시고 제일 먼저 한 일이 일주일에 한 번 노숙자들이랑 같이 밥 먹었어요.

이탈리아 바티칸에 가면 노숙자들 되게 많거든요.

그전에는 수녀원에서 빵 나눠주는 걸로 끝이었지만, 교황님은 직접 같이 밥을 퍼다 주면서 같이 아침을 먹었죠.

그것부터 시작이 된 거예요.

교황님이 한국에 오셨을 때 공항에 외교관과 한국의 모든 주교님이 한 줄로 교황님 내려오시길 기다렸겠죠.

우리 한국의 주교님들 번쩍 빛나는 십자가 칭칭 감고 구두도 새 구두, 그냥 제비 칼라 구두.

옷도 당연히 새 옷을 입고 와야죠.

쫙 도열하고 있었는데, 교황님이 트랩에서 걸어 내려오시는데 그 모습을 보고 우리 한국 주교님들이 고개를 숙였대요. 왜?

교황님 옷이 너무 낡은 거야.

교황님 목에 걸린 십자가는 옛날 아르헨티나 주교할 때부터 사용하던 쇠로 된 십자가, 돈으로 따지면 5만 원도 안 되는 거.

그걸 목에 걸고 신발은 앞이 헤진 거를 신고 비행기에서 내리시더래요.

그래서 교황님이랑 악수하면서 고개를 못 들었대요.

그러니까 우리 주교님들은 공항에서부터 깨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주교 회의 때도 교황님한테 혼 많이 나셨죠.

주교 회의 때 꽃동네를 방문한다는 예정은 오래전부터 있었기 때문에 오웅진 신부님은 준비하셨죠.

교황님이 앉으실 의자를 분도 수도원에다가 6개월 전 주문해서 근사한 의자를 만들었어요.

그날 교황님이 입장하시는데 수녀들이 휴대폰으로 찍고 난리가 났잖아요.

째려봤대요, 수녀들. 왜?

분명히 100만 원이 넘는 비싼 물건을 어떻게 청빈 서약을 한 수녀들이 다 갖고 있냐 이거야.

그래서 수녀들이랑 사진도 안 찍었대요.

그리고 제단에 올라왔더니 교황님 의자에 앉으시라 하니, 저 밑의 의자 달라고 하셨대요.

당황스러웠죠.

‘내가 왜 저 큰 의자에 앉느냐, 나는 저 평범한 의자가 더 편하다.’

이 양반은 정말 가는 데마다 쇼킹 하셨어요.

그리고 일단은 벤츠 500을 타고 가신 게 아니잖아, 조그만 소울타셨죠.

그때 만들었던 교황님 용 의자는 지금 배티성지 박물관 2층에 설명과 함께 있어요.

‘교황님이 앉으시려다 안 앉으신 의자’

사제관에서 CCTV를 보면 신자들이 2층 올라와서 눈치 보다 슬쩍 앉으려는 사람도 있고 사진도 찍어요.

아무튼 이런 모습이 바로 강생의 뜻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사셨잖아요. 가장 낮은 자가 되어 사셨죠.

 

여러분들 도지사가 경비실을 지키는 모습 상상 안 되죠?

제가 언젠가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내 동생 신부가 일본 교구를 가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당시 주교님에게서 예수님을 봤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동생이 일본 오사카에 있을 때 옆 본당 신부였는데 나중에 사이타마 교구의 주교가 되신 분이죠.

우리 아버님 돌아가실 때도 오셨고, 동생에게 같이 일본에 살자고 했지만, 동생은 처음엔 거절했죠.

왜냐하면 동생은 일본 사람들이 더치페이하는 것이 싫었대요.

그런데 어느 날 주교님에게 전화가 왔더래요.

‘신부님이 안 주무시면 앞에 있으니까 나오세요.’

그런데 사이타마 교구는 얼마나 구역이 넓은지 우리나라 도를 세 개 합친 넓이예요.

교구청까지 가는데 네 시간이래요.

호프집에 계시다 해서 나갔더니 청바지 차림에 너무 수수한 거예요.

외국 사람으로 한국에서 오신 신부님을 위해 늘 기도한다고 하시면서,

더 놀란 것은 주교님이 고백성사를 달라고 하시더래요.

이렇게 한 방에서 같이 자면서 얘기 밤새 하고, 그러니까 주교님은 내려오신 거죠.

또 한번은 동생과 동창인 서울교구 신부가 그 본당과 자매결연하여,

한 해는 일본 신자들이 한국에 오고, 한 해는 서울에서 일본을 가요.

그 해는 한국 신자들이 일본으로 가는 해였대요.

하네다 공항에서 내리니 교구청에서 온 버스가 있더래요.

버스에는 기사가 문 앞에서 어서 오시라고 인사하고 있더래요.

한국 사람들이 폼 잡고 등 탁탁 쳐주면서 수고한다, 아리가또 하면서 올라갔대요

출발할 때가 되니 그 기사가 앞에 서더니, ‘여러분들 환영합니다. 제가 사이타마 주교입니다.’

주교님이 버스를 몰고 신자들을 태우러 온 거야!

주교 등 두들겨주며 올라갔던 신자들은 고개도 못 들고, 얼마나 부끄러웠겠어요.

한국에서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그 주교님의 그 모습 하나만 가지고도 한국 신자들은 너무너무 감동했죠.

그렇게 훌륭한 주교님도 계세요.

그런데 희한한 것이 이런 분들은 왕따를 잘 당해요.

지금은 교구장직에서 물러나 섬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살고 계세요.

예수님처럼 살려고 하면 반대 받는 표적이 참 많이 돼요.

그건 어쩔 수가 없어 그렇죠.

이 세상에 악과 선의 싸움인데, 겉으로 보면 악이 훨씬 더 셀 때가 많거든요.

정말 이렇게 내려온다는 것은 쉽지 않아요.

 

천주 강생하셨듯이 우리 각자 각자가 내려온다고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얘기는 아니에요.

성탄 대축일이 생전에 70번 80번 있다고 한들,

예수님을 닮은 강생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내가 강생의 삶을 살지 못한다면 그건 그냥 지나가는 거예요.

행사예요.

그래서 오늘 우리는 이 미사 중에 ‘내가 정말 그 사람 앞에서 낮아져야 하는데 자꾸만 교만해지고 건방져진다.

그 사람을 내가 깔아 누르려는 사람이 혹시 있나?’

내가 지난 한 해 동안 정말 아기 예수님의 탄생하느님이 인간 안으로 들어오셨던 강생의 의미대로 살았는가?’

제일 먼저 가족들에게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강생은 내려오는 거예요.

하느님이 저 높은 자리에서 ‘여기 참 좋다. 복숭아꽃도 좋고 여기 무릉도원이다. 올라와.’

그렇다면 과연 올라갈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구약 시대는 바로 하느님은 그렇게 요구하셨죠.

올라갈 수가 없었어요. 힘들어서.

하지만 신약의 하느님이 직접 내려오셔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우리 죄 많은 인간의 양팔과 어깨를 끌어안고 허리춤을 잡고

그 구덩이에서 같이 나오시는 모습이 바로 구원이죠.

 

최양업 신부님이 1년에 7천 리를 걸어 다니셨죠.

돌아가실 때까지 11년 동안 그분은 짚신을 싣고 구만리길을 걸어 다니셨어요.

그리고 한 달에 3일밖에 못 주무셨어요.

이게 바로 강생의 모습을 보여주신 사제가 아닌가.

 

물론 저를 최양업 신부님과 감히 비할 수는 없지만, 40년 동안의 사제 생활을 뒤돌아보면

비행기 타고, 차를 타고 다닌 피정 거리를 환산한다면 아마 90만 리 이상도 다녔을 겁니다.

그렇지만 나는 편하게 다닌 거잖아요.

최양업 신부님은 걸어서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잠도 잘 못 주무시면서, 양들을 찾아 헤매다가 결국에는 과로로 돌아가셨죠.

벌써 성인이 되셔야 한 분인데 순교를 못 해서 미뤄지고 있죠.

백색 순교자, 땀의 순교자라고 그러지 않습니까.

배티에 있을 때 최양업 신부님을 가경자까지는 올려드리고 나왔어요.

기적 심사에 통과되어 복자를 거치지 않고 바로 성인이 되는 길도 있어요.

사실 제가 배티에 있을 때도 많은 기적이 있어서 교구청에 많이 알려드렸는데,

안타깝게도 내가 올려드린 기적 심사는 아예 신경을 안 쓰고,

꽃동네 수녀님 기도해서 병 난 것만 올렸는데 자격 미달로 교황청에서 아예 받아들이질 않았어요.

사실 배티에 그것보다 훨씬 더 아주 임팩트가 강한 기적들이 많이 있었는데, 빠른 시일 내에 성인되시를 바랍니다.

 

여러분들 제가 강생의 의미를 다른 말로 크리스천의 영성이라고 하는데 크리스천 영성을 아주 쉽게 세 가지로 표현한 적이 있죠? 뭐예요?

아주 쉬운 거 세 가지로 표현한 적이 있죠.

첫 번째는 바보의 영성이다.

내려가지 않으면 바보가 안 돼요.

똑똑한 사람들이 어떻게 바보처럼 살아요.

자기 혼자 잘난 사람은 절대 바보처럼 못 살아요.

예수님이 큰 바보였듯이 우리도 바보가 돼야 합니다.

그래서 바보가 모여 있는 본당은 희망이 있지만, 똑똑한 인간들만 바글바글하는 성당,

예수님보다 잘난 사람들만 많은 성당은 파가 수십 개죠.

이번에 대림절 세 본당 다니면서 하여튼 강조했던 얘기가 여러분 본당이 바보 본당 되기를 내가 축원합니다.’

강생의 제일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닮는 것인데, 닮아야 할 첫 번째가 그분은 바보처럼 사셨다는 거예요.

김수환 추기경님은 늘 본인 자신에게 ‘수환아, 이 바보야.’ 라 하셨어요.

 

두 번째 영성은 걸레의 영성.

하도 들어서 이제 몸에 배겼겠죠. 그런데 그렇게 살아요?

걸레 영상은 더러운 거 닦아주고 어떻게 하라고요?

유세 떨지 말라고 했죠.

100년 전 걸레나 지금 걸레나 존재 이유는 더러운 것 닦아주는 것이지, 걸레로 세수하고 얼굴 닦는 사람 없어요.

개똥이 묻든 고양이 오줌이 묻든 더러운 것 닦아주고 대충 집어던져도

걸레는 ‘주인님 저를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몸에 똥을 묻히면 어떻습니까, 저 항상 준비돼 있어요.’

주님이 걸레로 사셨기 때문에당신의 보혈로 세상의 더러운 것 다 닦아주셨듯이 저 주님도 닮고 싶습니다.

저 언제라도 갖다 쓰세요더러우면 태워서 버리셔도 상관없어요.

 

세 번째는 연탄불의 영성.

시커먼 놈 불붙이려면 불기가 있는 놈이 밑으로 내려가야 하죠

불기가 있는 놈이 밑으로 내려가는 것 싫다고 위로 올라가면 그 불기마저 꺼져요.

그리고 밑으로만 내려간다고 해결이 안 돼요.

더 중요한 게 있어, 뭐야? 불구멍이 맞아야 해요.

아무리 내려간다고 해도 불구멍이 안 맞으면 불은 다 꺼져요.

그 불구멍을 맞추는 게 바로 눈높이 사랑이라고 그랬지요?

눈높이 사랑, 내려오는 거죠.

교황님이 노숙자들과 같이 아침을 하고, 행주치마를 두르고 노숙자들의 밥상을 나르는 것 바로 그거죠.

그리고 교황님께서 화려한 의자는 내 의자 아니다 하면서 초라한 의자에 앉았을 때 그게 바로 연탄불의 삶이죠.

 

저는 신학자들이 어렵게 만들어 놓은 것을 쉽게 바꾸어 한평생 여러분의 귀에 못이 박히도록 전하고 있습니다.

물으면 바로바로 나와요.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사느냐입니다.

물론 나도 자신은 없어요.

내가 노력은 기를 쓰고 가고 살지, 그 세 가지를 퍼펙트하게 하고 살아가느냐?

우리는 우리들의 롤모델인 그분처럼 살아야 하는 거죠.

그래서 오늘 주님께서 이 단추 토마스 안으로 이제 들어오셨어요.

인카르나시오(incarnatio) 하시어 루시아 안으로 들어오시고, 실비아 안으로 들어오셨어요.

이제 잠시 후에는 여러분 각자에게 성체와 성혈의 모습으로 들어오십니다.

 

늘 하는 얘기지만 ‘운영자들 모임이니까 왔다’ 그게 아니죠.

여러분이 온 게 아니에요.

여러분들 못 오게 하려면 하느님께서 길 막아버리면 돼요.

어쩌다 오신 게 아니고 불러주신 거예요.

그리고 불러주셨기 때문에 하실 말이 있겠죠.

마음이 아픈 사람 치유하시려고 부른 거예요.

용기 내게 해주려고 부른 거예요.

수많은 성인 성녀들의 전구가 또 큰 보탬이 되겠죠.

 

오늘 예수님이 사람 안으로 들어오신 이날, 강생되신 이날,

사제를 비롯하여 이 강론을 듣는 모든 분은 정말 예수님이 어떻게 사셨는지,

또 역대 교황 가운데서 가장 예수님을 잘 보여주고 계신 지금 교황님의 삶이 어떤지를 하나하나 묵상 합시다.

거룩하면서 또한 그분이 세상에 태어나신 날이기에 가장 축하해야 하는 날임을 기억합시다.

 

2022년 주님 성탄 대축일 (12/25)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출처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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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리스트
  • 작성자바람의노래 | 작성시간 23.01.04 아멘~감사합니다.
  • 작성자요셉-막내165 | 작성시간 23.01.04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3.01.04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무지개 | 작성시간 23.01.04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조나단 | 작성시간 23.01.04 아멘 신부님 하늘호수 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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