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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웅열 신부 강론

새해 첫 말씀/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작성자하늘호수♡마리아|작성시간23.01.07|조회수175 목록 댓글 3

+찬미 예수님

새해 아침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은퇴하고 맞는 두 번째 1월 1일입니다.

바쁜 와중에 혼자 외롭게 미사 드릴까 봐 여덟 분이 형제자매들이 와서 함께 미사 드리고 있습니다.

독거노인처럼 1월 1일을 보낼까 봐 이렇게 와줘서 감사합니다.

 

우리 교회의 큰 별이 떨어졌죠?

교황으로 재위하시면서 스스로 겸손하게 교황직에 물러나신 아주 특별한 어른이시죠.

지금 나이 든 신부님들이 신학교에서 공부할 때 그분 책 안 읽어보고 신부 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교황이 되시기 전에 이름이 ‘라칭거(Joseph Aloisius Ratzinger)’세요.

개신교 신학자들도 존경하는 세계 가톨릭에 우뚝 솟은 당대의 교부와 같은 칭호를 받을 수 있는 라칭거 추기경이었죠.

추기경을 계시다 교황님 되시면서 베네딕도 16세 교황님의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제가 그분의 존경하는 것 중 하나가 굉장히 열려 있으면서도 가톨릭의 아주 기본적인 것에 대해서는 양보를 안 하시는 분입니다.

그분이 교황이 되시자마자 전 세계 주교들에게 첫 번째로 내렸던 훈령이 뭔 줄 아십니까?

교구마다 구마 사제를 다시 양성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주교님 대부분은 그것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 교구에도 교황님의 그 명령에 듣고 순명하는 교구는 제가 알기로 없습니다.

어느 교구에서 구마 사제 교육받으러 로마 보냈다는 얘기가 제 귀에 들려오지 않습니다.

돌아가신 교황님은 교회를 지키려고, 특히 어둠으로부터 이 교회를 지키려고 무던히 애쓰는 분이셨죠.

그래서 그분에게 ‘보수’라는 말을 쓰는 것은 좀 가당치 않습니다.

아주 정통적인 신학자였지만 동시에 굉장히 앞을 내다보는 혜안을 갖고 계신 진보적인 마인드를 갖은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교황직은 아시는 것이 종신직입니다.

누가 그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그러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참 일 하실 나이에 자리를 내놓고 내려오셨다는 것 자체가 바로 예수님의 삶,

내려오는 삶을 몸으로 보여주시는 어른이라 생각합니다.

또 그랬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후임으로 정말 예수님의 모습을 보이고 살아가시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선택하시어

뒤를 이어주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천국에서 이제 예수님도 만나고 성모님도 만나, 그동안 큰 짐 지고 사느라고 애썼다 하는 얘기 들으실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오늘은 대축일 미사지만, 이 미사 중에 돌아가신 교황님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새해 첫날 교회가 우리에게 주는 제일 큰 덕담, 바오로 사도가 주신 이 덕담은 참 중요해요.

여러분은 이제 종이 아니라 자유인입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새해 첫날의 은혜를 이 말씀을 듣는 분들과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그리고 올 한 해 동안 진정 여러분들이 자유인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무것에도 얽매여 있지 않은 삶.

하느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은 무엇이겠습니까? 행복한 삶입니다.

그것도 각자가 주어진 처지에서 기쁘게 사는 것을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간절히 원하고 계십니다.

각자가 다 어떤 처지에서건 어떤 조건에서건 행복하게 살기를 정말 축원합니다.

 

살다 보면 올 한 해도 작년에도 그랬듯이 세상이 불공평하게 보이는 것이 참 많습니다.

맞죠? 그리고 너무 억울한 것도 많습니다.

모순되어 보이는 것도 너무나 많이 보인다고 해도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지지고 볶고 불평불만만 하고 사는 것이 아니라, 어떤 처지에서건 어떤 조건에서건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불공평하게 보이는 것, 우리 살아가면서 많이 느끼죠.

누구는 부자로 태어나고 누구는 가난하게 태어나고,

누구는 건강하게 태어나고 누구는 죽을 때까지 병치레만 하고 살다 가는 사람도 있고,

누구는 정말 좋은 머리로 태어난 사람도 있고 누구는 돌대가리로 태어난 사람도 있고요.

또 누구는 한 가지 재주였는데 누구는 몇 가지 재주가 있고, 사람 보면 참 재밌어요.

가까운데 ‘궤짝’이라는 유명한 카페가 있어요.

그 집 형제는 머릿속에 든 것,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다 만들어내는 특별한 재주가 있는 좀 천재성이 있는 사람입니다.

거의 외계인 같아요.

그런데 그 바로 위에 형은 형광등도 못 갈고 못도 못 박아서 그 바쁜 동생을 부른데요.

그걸 보면서 어떻게 공장은 한 공장인데 이게 제품이 이렇게 다를까,

어떻게 하느님은 한쪽으로만 기가 막힌 유전자를 몰아주고 다른 쪽은 없을까 생각이 들어요.

아무튼 세상을 보면 불공평하게 보이는 것이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행복하고 기쁘게 살아야 한다.

 

지금은 아이가 아니지만, 내가 예전에 어떤 아이를 알고 있었어요.

당시에 고등학교 2학년 아이인데 덤프트럭이 밟고 지나가는 사고로 두 다리를 절단했어요.

이 아이는 그전에도 굉장히 성격이 좋았던 애야.

하지만 대개 이런 일을 겪으면 침울하고 얼마나 죽고 싶겠어요?

그런데 이 아이는 두 다리를 잃기 전보다 더 밝아졌어요.

신기했죠.

공부도 더 잘하고, 기타도 배우면서 기타도 잘 치고, 더 명랑해진 거예요.

성당에는 휠체어를 타고 나왔는데, 미사 후 물었죠.

‘너 다리 때문에 불편하지 않아?’

그 아이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 몰랐어요.

저는 없어진 다리를 볼 시간이 없어요그래서 슬퍼할 시간도 없어요왜 세상에는 봐야 할 좋은 것들이 너무 많아요.’

보석 같은 말이었어요.

우리는 조금 아프고 힘들면 우울하고 가라앉고 그러잖아요.

근데 어떻게 그 어린아이 입에서, 더군다나 그 아이는 학교에서 축구 선수였거든요.

그 귀한 다리 두 개를 다 잃어버렸는데도, 오히려 공부를 더 잘하고,

주일 학교에서도 다른 애들도 그 아이가 다리가 없는 것을 의식을 못 할 정도로 명랑했죠.

없어진 다리 볼 시간이 없기에 슬퍼한 시간도 없다.

왜? 세상에 너무 봐야 할 것이 좋은 것들이 많대요

맞는 얘기죠. 어떤 울림보다도 큰 울림입니다.

그 아이 입에서 나온 울림은 맞아요.

못난 사람은 평생 못난 것만 붙들고 징징거리면서 고달프게 인생을 걸어가요.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고달픈 것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생 자체가 같은 선상에서 함께 출발했다 하더라도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가죠.

올 한 해 그렇게 사시라는 얘기에요.

돈 뗀 놈 미워하지 말고, 작년에 실패했던 것을 붙들고 살 필요 없어요.

그런 어두운 쪽 바라보지 말고 세상 얼마나 아름다운 것들이 많아요.

사람들이 이 아이의 이런 마음에 반 정도만 가져도 전쟁이라는 게 왜 있겠어요.

 

오늘 바오로 사도는 우리는 종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종을 다른 말로 노예라고 그럽니다.

저는 노예 얘기가 나오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어요.

예전에 최순실의 일을 방송에서 폭로하면서 CCTV를 보여준 적이 있어요.

그때 최순실이가 어느 명품을 사러 갔는데 청와대에 있는 비서 젊은 애가 쫓아가요.

가면서 최순실이가 휴대폰을 턱 주니 비서 애가 그것을 자기 수건을 꺼내 닦아 돌려주었어요.

그런데 최순실이가 뭐가 맘에 안 들었는지 다시 던지니까, 비서가 일어나서 ‘죄송합니다.’

그것이 노예예요.

그 아이 부모님은 아들이 청와대 들어갔다고 얼마나 좋아서 잔치를 벌였겠어요.

그런데 세상에, 저 여자 종으로 백 들고 다니고 핸드폰 닦아주고 살아가고 있으니!

참 못된 여자죠.

종이라면 미래도 없고 자기도 없습니다.

그저 끌려다니면서 이용당할 뿐이에요.

 

오늘 바오로 사도는 종의 반대말을 분명히 얘기하셨죠.

종의 반대는 뭐라고요자유인.

이 자유인은 위대하신 하느님의 아들딸이고 하늘나라를 상속받을 상속인들이에요.

종은 절대로 하늘나라를 상속받을 수가 없어요.

자유인만 하늘나라를 상속받을 수 있어요.

그래서 이 자유인들은 떳떳하고 당당해야 합니다.

긍지를 가지고 힘차게 살아야 합니다.

저는 긴 사제 생활 동안 나에게 상처 준 사람이 있었을까요, 없었을까요?

너무나 많죠. 나에게 상처를 주는 이는 정말 많았어요.

상처를 준 인간이기에 당시 그때는 나는 저 사람을 미워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실컷 미워하자 그랬어요.

그렇게 합리화를 자꾸 시켜나갔어요.

그런데 내가 미워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합리화시킬수록 나는 더 비참하고 처량한 죄의 노예가 되어 있었죠.

미움이 깊어질수록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상처만 깊어만 갔어요.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누군가를 미워해서 속이 시원해진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더 엉망진창이 됐을 거예요.

미워하면 미워할수록 더 괴로워.

그렇기에 내가 여기서 끝내야지 하는 제동장치가 있는 거야

 

올 한 해 동안 내게 상처를 줄 사람들에게 끌려다니는 종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상처를 품고 있으면 기도를 해도 미운 생각으로 덮여 살아요.

그냥 형식적으로 기도하는 거지, 미움이 나를 덮고 있는데 무슨 기도가 나오겠어요.

잠을 잘 때도 복수를 궁리하고, 잠을 자면 꿈에도 그놈이랑 싸우는 꿈이 나와요.

그리고 웃기는 기도를 하게 돼요, 그놈이 잘못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도.

그것도 기도라고!

나도 모르게 그 사람에게 끌려다니는 쓰레기 같은 삶을 살게 됩니다.

상처 준 이는 상처 준 것조차 기억 못 하고 있는데, 상처받은 사람만 그 상처에 끌려다니는 노예 생활을 하죠.

 

그래서 저는 나에게 상처 준 사람이 참 많았지만내가 사제로 우뚝 서기 위해서 용서했어요.

용서하니까 비로소 자유인이 됩디다.

그러면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느냐?

원수는 내가 갚는 것이 아니라 정의롭고 공의로우신 주님이 알아서 심판하실 것이고그분이 알아서 죄에 맞는 벌을 주실 것이다.

 

그런데 사실 겸손하게 되돌아보면 우리에게 원수를 갚을 자격미워할 자격 없어요.

우리도 다른 사람에게 수없이 상처를 주고 용서 청한 적도 없잖아요.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되어봐야 시어머니 입장을 안다고,

우리는 내가 받은 상처만 갖고 살았지 내가 다른 이들에게 한평생 주었던 상처는 얼마나 합리화시킵니까?

자기 지은 죄에 대해서는 늘 변호사 노릇을 하죠.

‘그럴 수 있어, 그게 무슨 상처를 준 거니? 아니야, 상처 아니야.’

‘너는 바른말을 한 거야. 너 멋있어. 그렇게 살아야 해.’

하지만 상대방은 잠을 못 자거든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경험상 알 수 있듯이 우리를 노예로 만드는 일 순위가 미움이에요.

그런데 성경에는 그것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를 말씀하죠.

첫 번째가 미움두 번째가 교만세 번째가 물질네 번째가 음욕다섯 번째가 악습여섯 번째가 나태함.

 

오늘 제1독서에서는 바오로 사도가 말씀하신 것처럼 종이 아니라 자유인이 되는 것으로 무엇을 하라고 합니까?

하느님의 이름으로 복을 빌어주라 하십니다.

올 한 해 동안 여러분을 만나는 사람들한테 하느님의 이름으로 복을 빌어주셔야 합니다.

왜냐? 내가 복 받으려면 먼저 남에게 복을 빌어야 해요.

남에게 축복해주면 그 축복이 나한테 되돌아와요.

그래서 민수기에서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복을 빌어줘라’.

이것을 더 넓게 해석하면 두 가지 의미로 생각됩니다.

첫 번째는 조상들을 편하게 해드려야 된다.

두 번째는 이웃에게 복을 빌어주어라.

하느님의 이름으로 복을 빌어주라는 것은 살아 있는 사람한테만 복을 빌어주는 걸로 착각하지만,

저는 그렇게 더 넓게 해석해서 죽은 우리 조상들에게 복을 빌어주어야 한다 생각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그분들의 영원한 삶에 대해서 얼마나 관심을 두고 살았는지.

 

조상들로부터 우리는 피와 살과 뼈만 받은 것이 아니죠.

정신적인 것, 영적인 것 우리 같이 받아요.

우리는 옛날부터 그걸 집안의 내력이라고 부릅니다.

외모도 내력이죠. 아버지 아들 닮았고, 딸이랑 엄마랑 똑같이 생겼잖아요.

외모만 닮는 것이 아니라 안 보이는 부분, 영적이고 정신적인 부분도 분명히 우린 받아요.

그런데 내력 가운데는 밝고 긍정적이고 힘 있는 좋은 내력도 있지만, 어두운 내력도 있죠.

그래서 그 어두운 내력이 나에게서 드러나고, 우리 아버지에게서도,

또 난 뵌 적이 없지만 할아버지도 분명히 갖고 있었다고 아버지의 입을 통해서 들었어요.

할아버지도 바람둥이고 아버지도 바람 잘 피워.

어릴 때부터 아버지 바람피우는 것, 엄마 괴롭히는 것을 보고 치를 떨며 결심하죠.

난 우리 아버지 저렇게 안 살아.

그런데 놀랍게도 그 자식이 아버지보다 바람을 더 피울 때가 많아요.

 

영상 신학에서 이것을 가계의 상처라고 표현합니다.

조상들의 삶을 우리는 다 모르죠.

그러나 내 시대에 일어나는 어둠을 보면 우리 집안에 이런 어둠이 있었겠다고 짐작할 수가 있어요.

그래서 반드시 이 어둠은 내 대에서 끝나고 내 자손들에게 내려가지 않도록 죽을힘을 다하여

치유시켜야 해요.

그래서 저는 교우들에게 가계의 내력을 치유시키는 방법으로써 성체 영할 때와 묵주 기도드릴 때를 얘기를 많이 합니다.

성체 영한 후 자리에 들어가서 해야 할 기도는

주님우리 집안에 내려오는 어두움을 당신의 보혈로 벽을 싸서 막아주십시오.

그리고 그 어두움이 후손들에게 내려가지 않게 도와주십시오.’

항상 성체를 영하고 간절히 청하면 집안의 어두운 내력은 분명히 끝날 것이라 전 믿어요.

그리고 묵주 기도드릴 때 마찬가지라는 거죠.

제가 늘 이야기 하죠?

적어도 5단 가운데 한 단은, 성모님의 말씀대로 6단을 바쳐야 한다.

제 옆에 있는 묵주도 6단 묵주예요.

그리고 그 한 단은 자기 자신을 위해 바치라 하죠.

자기 자신이 행복하려면 조상들이 행복해야 해요.

그래서 조상들로부터 내려오는 상처를 치유해 달라는 기도를 6단 할 때 같이 드리는 거예요.

저는 루르드 성모님의 6단 묵주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항상 그렇게 드렸어요.

‘네 영원히 온전히 구령 받으려면 우리 조상들이 먼저 구원받아야 한다.’

이것은 수학 공식처럼 자명한데 대부분 신부님이 안 알려주세요.

나 혼자면 천국 간다?

내 아버지는 저 밑 불붙는 지옥에서 힘들어하고 연옥에서 못 나오고 있는데, 그 자손들이 쉽게 천국 가겠는가 이겁니다.

우린 다 연결이 돼 있어요.

나 혼자 우주에서 뚝 떨어진 무슨 별똥별이 아니잖아요?

그리고 자캐오에게 예수님이 뭐라 하셨어요?

오늘 이 집 안에 구원이 있으리라 하셨지, 네가 구원받았다 하시지 않았어요.

‘이 집 안에 구원이 있으리라.’ 이것은 대단한 축복의 말이에요.

오늘 민수기에서 하느님의 이름으로 복을 빌어주라는 것은 그 집안의 복을 빌어주라는 뜻이에요.

 

교우에게 안수하면서 어느 때는 안수가 탁 막힐 때가 있어요.

좋은 기운이 안 내려가고 쳐내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경우 나중에 개인적으로 얘기해보면 집안이 복잡한 집안이야.

정말 어두운 집안에서 혼자 천주교 신자가 되어, 그 어둠을 헤치고 자유인이 되려 하니 얼마나 힘들겠어요.

펑펑 우는 거예요.

 

집안에 어둠이 있으면 복이, 사제의 축복이 안 내려가요.

아주 중요한 것인데 알다시피 거기에 대한 강론 테이프 전부 다 없앴잖아요.

대물림이라고 하는 말로 포장해서 김웅열 신부 말하지 말라고 했죠.

요한 바오로 2세가 말씀하셨죠.

‘성당 유리창 틈새로, 사제관 틈새로, 주교관 유리창 틈새로 마귀가 들어오고 있다.’

 

우리 조상들은 신학을 배운 적이 없고 교리를 배운 적이 없어도 참 영민했어요.

어떻게 내력이라고 하는 말로 표현했을까?

우리 한국 사람들은 하느님이 가까이 있는 민족 같아요.

그래서 그 어려운 영성을 이해하고 있었단 말이에요.

 

아무튼 여러분들, 올 일 년 동안 특별히 영성체하실 때 예수님의 그 거룩한 보혈로 벽을 쌓아 달라는 기도를 꼭 하시기 바라고요,

묵주 기도드릴 때 한 단 더 하시면서 아직도 연옥에서 단련 받는 조상이 있다면또 조상들로부터 내려오는 어둠이 있다면,

성모님의 전구로 어둠으로부터 해방해 달라는 얘기를 꼭 드리십시오.

조상이 편해야 내가 구원받을 수 있다 것은 굉장히 중요한 얘기입니다.

그리고 신부님들 입에서는 잘 하지 않는 얘기들이죠.

 

하느님의 이름으로 복을 빌라고 하는 두 번째 의미는 뭐라고 그랬죠?

이웃에게 복을 빌라는 뜻이죠.

말 그대로 시기 질투하지 말고, 그 사람 장점을 보려고 애를 써라.

남 잘되는 것 보고 배 아파하지 말고 속상해하지 마라.

 

2023년 새해에 맞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시다.

그리고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성모님이 계신다는 것 감사드립시다.

또 힘들 때 찾아올 수 있는 사제가 있다고 하는 것 하느님께 감사드립시다.

그래서 올 한 해 작은 서운함 때문에 큰 감사의 은혜 절대 잊지 않는 한 해가 되도록 우리 열심히 노력합시다.

여러분들 사랑합니다.

아멘

 

2023년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1/01)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출처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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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리스트
  • 작성자바람의노래 | 작성시간 23.01.08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3.01.08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마니또 | 작성시간 23.01.09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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