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김웅열 신부 강론

마귀는 신화가 아니다./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작성자하늘호수♡마리아|작성시간23.03.21|조회수179 목록 댓글 4
◼마태오 4,1-11

 

+찬미 예수님

예수님 주님의 이름으로 평화를 빕니다.

퀴즈 하나 낼게요. 인류 최초의 바느질이 누가 했을까요?

‘그 둘은 눈이 열려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두렁이를 만들어 입었다’

이것이 바로 인류 최초의 바느질이에요.

 

오늘 사순 첫째 주일입니다.

여러분 다 재 바르셨죠?

그런데 재의 의미는 다른 강론에 이미 나와 있고, ‘재를 이마에 바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엉덩이 오른쪽이나 겨드랑이 밑, 혹은 코에 바르면 안 돼요.

왜 그럴까요? 이마가 바르기 쉬워서?

머리는 인간의 교만을 나타내요.

사람을 손으로 죽이든 주먹으로 때렸어요. 누가 때리라고 명령했어요?

손가락질하고 입으로 누구 뒷담하고 누가 지시했어요?

모든 죄악은 머리에서 나와요. 머리는 교만의 상징이에요.

그래서 머리에 재를 바르면서 ‘이 인간아 정신 차려. 너도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

네가 아무리 잘 나고 아이큐가 높다 해도 죽고 나면 구더기가 들끓는 해골바가지일 뿐이야. 죽기 전에 정신 차려.’

사순절은 이마에다 재를 바름으로 시작하는 날입니다.

사제는 발라주면서 뭐라고 그래요?

‘사람은 흙에서 났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기억하라.’

그렇게 허무한 존재다 이거예요.

네가 잘나봐야 얼마나 잘나고, 능력 있어 봐야 얼마나 능력 있고, 아이큐가 높아 봐야 얼마나 높으냐 이거죠.

까불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 그거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사순절이에요.

지난 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에 말씀드렸죠.

‘40일 후딱 지나간다. 그러니 지금부터 영적 프레임을 해라. 40일간 뭘 희생해 보자.’

제가 많은 예를 들어주었죠.

어떤 부부들은 40일 되면 각방을 써요.

또 어떤 양반은 그 좋아하는 술 담배의 근처에도 안 가요.

또 어떤 사람은 40일 동안 성당 화장실 청소하는 사람도 있어요.

찾아보면 많은데, 희생이 들어가지 않는 사순절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순절을 보내는 것과 사순절을 사는 건 달라요

사순절은 작년에도 왔고, 올해도 왔고, 내년에도 왔고 계속 와. 그건 오는 거예요.

하지만 사순절을 산다는 의미는 변화가 된다는 의미죠.

내가 이번 사순에는 주님께 이런 희생을 해서 내가 부활해야겠다 다짐해야죠.

예수님 부활시키려고 사순절 있는 거예요?

우리가 뭔데 감히 건방지게 예수님을 부활시키고 말고 합니까?

예수님은 이미 2천 년 전에 부활하셔서 당신 자리에 앉아 계세요.

사순절이 필요한 것은 우리들이죠.

그리고 희생을 바쳐야 부활이 되는 거예요.

그냥 세월이 지나 부활절이 되면 여러분도 참석하실 거예요.

어떤 신자들은 뿌듯하죠. ‘정말 힘들었네. 술을 정말 입에도 안 대고, 담배 딱 끊었어.’

그런 신자들 많이 알아요.

어떤 신자들은 침묵으로 살아요.

심지어 아내한테 얘기할 때도 카톡으로 보내요. ‘나 배고파 밥 줘.’ 침묵 지킨다고(웃음)

침묵하면서 틈만 나면 성경을 읽고 또 필사하는 거예요.

이번에 마태복음 꼭 쓰고 내년에는 마르코 복음을 써야겠다. 왜 못 써요?

이렇게 매해 사순절을 보내면 사순절 동안에 내 손으로 쓴 성서 책이 만들어지는 거예요.

 

오늘은 사순절 피정 강론이라고 생각하세요.

사순절은 회개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은총도 많이 내리지만, 마귀의 유혹이 어느 때보다도 더 강해요.

그건 확실해요.

우리가 하느님 쪽으로 가려고 기를 쓰면 쓸수록 마귀들은 그 길 앞에 서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리를 못 가게 막겠죠.

그래서 어떻게 보면 사순절은 은총의 시기이면서 잘못하면 어둠의 시기가 될 수가 있어요.

다른 어느 때보다도 분심 잡념이 많이 들고, 어느 때보다도 죄를 많이 짓게 돼요.

발 한번 잘못 디디면 그냥 40일 동안 나 자신이 마귀처럼 살게 돼요.

 

사순절뿐 아니라 우리 인생에는 마귀가 유혹하는 어둠의 시간이 굉장히 많습니다.

특히 몸이나 마음이 약해질 때는 마귀들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리를 공격하죠.

오늘 복음에도 결국에는 예수님이 마귀와 싸웠죠. 마귀를 쫓아내셨어요.

마귀 쫓는 걸 뭐라고 그래요? ‘구마’라고 하죠.

 

오늘 복음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우리 신자들이 정리해야 할 생각이 세 가지가 있는데 잘 들으세요.

첫 번째로 오늘 여러분들이 들으신 이 복음에 나오는 이야기는 신화가 아니라는 겁니다.

전설 따라 삼천리에 나오는 얘기가 아니라는 겁니다.

현대 교회의 가장 어두움 중 하나가 뭐냐? 예수님의 삶을 자꾸 신화화시킵니다.

그리고 마귀의 존재를 부인합니다.

그렇게 신자들을 가르치는 신학자들도 있어요.

사제들의 입에서도 마귀가 어디 있냐고 해요.

이러한 생각들이 바이러스와 같이 교우들에게 퍼진다면 결국에는 마귀가 원하는 대로 악의 세상이 될 겁니다.

마귀가 쓰는 가장 큰 무기가 뭐냐 본인을 숨기는 거예요.

그래서 본인을 숨기기 위해서 영향력이 있는 신학자들의 입을 휘어잡아요.

그 신학자들이 신학생들을 그렇게 가르쳐 지금 신학교에서는 마귀에 대한 것을 6년 동안 단 한 글자도 배우지 않고 신부가 돼요.

마귀에 대해 전혀 배우지 않고 사제가 되어 신자들이 마귀와 싸울 때 그걸 떼어낼 재간이 없는 거예요.

그냥 ‘정신병원에 가세요. 왜 나한테 데리고 와요? 무서워요.’ 합니다.

하지만 아니거든요. 저건 정신병원에 갈 일이 아닌데 어떻게 해결할 방법이 없어요.

성모님의 메시지 가운데도 교회 안에 어둠이 들어오고 있다고 하는 이야기가 이것입니다.

편협한 목사들, 제대로 못 배운 목사들이 천주교, 교황님 막 욕하잖아요.

성모님을 사탄의 딸이라고 해요.

그런데 그렇게 함부로 지껄일 때 그 말 듣는 신자들은 그냥 순진하게 다 받아들여요

맑은 물에 잉크 한 방울 떨어뜨리면 순식간에 파래지듯, 마귀들은 이렇게 영향력 있는 사람들의 입을 휘어잡으려고 애를 써요.

그 결과로 지금 신학교에서도 마귀 안 가르치고 수녀원에서도 마리아 안 가르쳐요.

바이러스는 코로나만 있는 게 아니에요.

 

두 번째는 오늘 예수님이 받으신 유혹을 통해서 우리가 살면서 어떤 유혹에 노출될 것인가를 짐작할 수가 있어요.

‘예수님이 이런 유혹을 받으셨지, 지금 내 상태가 예수님이 받으신 세 가지의 유혹 가운데 무엇을 당하고 있구나.’

하고 알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대비하고 준비할 수 있다는 겁니다.

 

세 번째로는 그 유혹을 어떻게 물리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배울 수 있어요.

어떠한 영적 무기로 마귀를 물리쳐 나갈 수 있을지를 배울 수 있다는 겁니다.

 

이 세 가지를 일 머릿속에 두셔야 합니다.

첫째, 오늘 복음은 신화가 아니라는 것,

둘째 오늘 예수님이 받으신 유혹을 통해서 우리도 어떤 유혹에 늘 노출될 수 있고 또 어떻게 준비해야 하느냐는 것,

셋째 마귀를 물리칠 수 있는 영적 무기가 무엇인가를 오늘 예수님이 마귀를 물리치시는 모습을 보고 배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본문으로 한번 들어가 봅시다.

세 가지 유혹을 받으셨죠.

저는 늘 가리킬 때 두 번째와 세 번째 순서를 바꿔서 가르칩니다.

유혹의 그 경중으로 볼 때 그게 훨씬 더 맞아요.

아까도 얘기했듯이 사탄은 인간을 아주 교묘하게 정복해 나갑니다.

그래서 늘 정신 바짝 차리고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 유혹받으심으로써 유혹이 가득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떻게 그 엄청난 유혹을 이기고 승리할 것인가를 간곡히 들려주신다는 얘기를 조금 전에 드렸습니다.

어떻게 승리할 것인가를 당신이 몸소 겪으면서, 이론으로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몸으로 가르치셨어요.

 

첫 번째 유혹은 ‘탐욕’에 관한 겁니다.

결국에 사람이 죄짓는 것은 욕심에서죠.

욕심이 과한 것을 탐욕, 맘몬(mammom)이라고 불러요.

인간은 탐욕으로 인해서 무수한 죄를 짓고 타락해갑니다.

아담과 하와도 마찬가지였죠.

특별히 인간이 짓는 죄 중에서 이 탐욕의 죄는 외부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대단히 원색적이고 강하고 직접적으로 피부에 와 닿아요.

오늘 첫 번째 유혹이 뭡니까?

예수님이 40일 동안 광야에서 단식하셨죠.

여러분도 며칠이나 단식을 해보신 적이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현대인들이 제일 견디기 힘든 것이 안 먹는 거래요.

옛날에는 없어도 못 먹었는데 지금은 먹을 것이 너무 많죠.

냉장고만 열면 바로 먹을 수 있는 게 너무 많은데도 불구하고 참으려니 힘든 거죠.

40일 동안 굶어서 정신이 혼미한 예수님에게 마귀는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해보시오.’ 합니다.

40일간 단식한 분에게 ‘빵’이라는 말 자체가 견딜 수 없는 유혹이었습니다.

옛말에 ‘어떤 슬픔도 배고픈 슬픔보다 더 큰 거는 없다’라는 말이 있듯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40일을 단식했던 예수님에게 돌멩이를 빵이 되게 해보라는 것은 큰 유혹이었습니다.

더 클 수밖에 없었던 건 뭐냐?

우리는 마귀가 아무리 돌멩이를 빵이 되게 해보라 해도 우리 그 능력이 없어요.

하지만 예수님은 마음만 먹으면 돌멩이 아니라 바위로도 빵 아니라 삼겹살도 만들 수 있는 분이죠.

마음만 먹으면, 눈 한 번 질끈 감으면 저건 내가 할 수 있어.

여러분들 사시면서 대통령 되고 싶은 유혹 받아보신 적 있어요?

없었죠.

마귀는 우리가 아예 꿈도 못 꿀 것 가지고 유혹하지 않아요.

내가 눈 한 번만 딱 감으면, 손만 뻗으면 내가 잡을 수 있는 것으로 유혹합니다.

그래서 이 탐욕에 대한 유혹은 원색적이에요.

누구든 생각 없이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유혹이에요.

여기에 대하여 예수님은 신명기의 말씀을 이용해서 단호히 거절하시죠.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 대목을 우리들이 좀 잘못해서 오해해서는 안 될 겁니다.

하느님이 물질을 거부하시는 것, 하느님이 빵을 거부하시는 것이라고 잘못 인식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빵’ 다시 말해서 물질은 결코 나쁜 것은 아니고 거부되어서도 안 될 겁니다.

다만 하느님과 물질의 순서가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해되시죠?

물질적인 것들이 나쁜 것이 아니라, 그 물질적인 것들이 하느님과 하느님의 가르침보다 앞세워지는 것이 나쁠 뿐입니다.

빵 필요해요.

하지만 오늘 내 머릿속에 하느님 생각은 한 시간도 안 돼, 그런데 먹고 사는 것에 대한 걱정만 가득하다면,

이것은 잘못됐다는 얘기죠

세상은 항상 그 순서를 뒤바꿔 왔습니다.

이방인들은 배운 게 없기에 그렇다고 하지만 성당에 나가면 좋은 얘기를 듣는 우리 신자들은 그 순서를 지키고 살아가느냐?

미사를 드리면서도 ‘미사 끝나고 빨리 뭘 해야 하는데, 빨리 장사해야 하는데.’

이런저런 생각과 물질에 대한 걱정을 미사를 드리고 성체를 영하면서도 합니다.

순서가 뒤바뀐 것을 끌어안고 살아갈 때가 많다는 얘기죠.

온통 이 세상은 하느님을 뒷전으로 하고 물질만 섬기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악이요 죄라는 얘기가 바로 오늘 제1독서의 핵심입니다.

첫 번째 유혹의 핵심입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예수님이 물질은 나쁘다거나 빵을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순서를 지켜라.

하느님과 하느님의 말씀보다 빵이 먼저 나가 있을 때 그것은 우상숭배라는 거죠.

그것이 죄라는 거죠.

 

맘몬이야 하느님이냐?

맘몬(mammom, 라틴어: mammona 맘모나)는 물질적인 풍요와 부 그리고 탐욕을 뜻해요.

신약성서에서 재물 욕심을 뜻해요.

물질에 대한 욕심이 지나쳐서 그 지나친 욕심을 마귀가 휘어잡는 것을 맘몬이라 해요.

맘몬이냐 하느님이냐, 이 문제 우리 인간들이 끊임없이 봉착하는 영적인 문제입니다.

땅이냐 하늘이냐 하는 거예요.

육체냐 영혼이냐 하는 문제가 됩니다.

그리고 땅이냐 하늘이냐 하는 문제는 시간이냐 영원이냐 하는 문제로 연결이 되죠.

땅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은 시간에 늘 쫓겨요.

하지만 하늘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은 시간을 뛰어넘는 영원이라는 것을 보려고 애를 써요.

사과밭에 돼지를 놓아먹일 때 돼지는 떨어진 사과만을 먹지 그 사과가 어디서 떨어졌는지 절대 쳐다보지 않아요.

그저 게걸스럽게 땅을 파면서 썩은 사과라도 파먹지, 자기 입에 들어가는 그 사과를 준 사과나무는 안 쳐다본다 이거예요.

땅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사람들, 하느님보다 맘몬을 더 중요시 하는 사람들도 그렇죠.

맘몬이냐 하느님이냐의 문제는 굉장히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문제죠.

그러나 중요한 것은? 결론은 어떻게 돼요?

육체는 결코 영혼에 앞설 수 없습니다.

왜냐? 육체는 늙고 병 들고 언젠간 죽어요.

하지만 숨이 끊어질 날이 와 우리의 육체가 소멸이 되더라도 영혼은 살아있죠.

그래서 육체가 결코 영혼을 앞설 수 없고 땅은 하늘 위에 있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시간은 영원을 능가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이 첫 번째 당하신 유혹은 엄중한 사실 앞에서 갈팡질팡하는 어리석은 인간들을 깨우쳐줍니다.

‘물질에 너무 메이지 마라. 무시하라는 것은 아니다. 단, 순서를 혼동하면 안 된다.’

 

열심히 땀 흘려서 노력해서 돈 벌어야죠

그렇지만 그러다가 보면 나중에 하느님은 없어져요.

그리고 나중에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위해서 수단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여기게 돼요.

우리나라 말에 제일 못 된 말이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살자.’

이것은 우리 가톨릭 신앙에 전혀 반대되는 악의 말이에요.

개처럼 번다는 얘기는 사람 죽여서라도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돈 벌라 얘기죠.

가톨릭의 윤리는 과정이 더 중요한 거예요.

열심히 노력했는데 결과가 원하는 대로 안 됐어도 그 과정에 우리는 행복해야 해요.

그런데 세상의 윤리는 반대죠.

그러기 때문에 슈퍼마켓에 들어가 단돈 3만 원을 갖고 나오느냐 사람 죽이잖아요.

‘내가 저놈 두드려 패서라도, 사기 쳐서라도 내가 갖고 싶은 것 가지면 돼’ 하며 나중에 정승처럼 살죠.

하지만 하느님은 알고 계시잖아요.

못된 짓 해서 재벌 되는 것, 부러워하지 마세요.

내가 땀 흘려서 사는 사람이 제일 행복한 사람이에요.

하느님의 말씀은 빵보다 더 중요합니다.

그러나 물질이나 육체, 땅, 시간이 나쁜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그것들이 하느님과 영원 뒤에 자리 잡고 있으면 가장 쓸모 있는 것이 되지만,

하느님과 영원 앞에 자리 잡고 있으면 다시 말하면 순서가 바뀌면 사탄이 됩니다.

 

저는 세 번째 유혹을 두 번째로 갖다 놨다고 그랬어요.

두 번째 유혹은 ‘야심과 지배욕’입니다.

나한테 절하면 세상 것 다 준다고 그랬어요.

권세와 영광에 대한 유혹은 어찌 보면 물질에 대한 유혹보다 더 교묘하고 악랄하고 깊고 끈질겨요.

그래서 묵시록 13장 1절에서 4절에 이런 유혹을 ‘땅에서 울부짖는 짐승’이라고 표현합니다.

특별히 야심과 지배욕, 권세와 영광에 대한 유혹은 소위 배웠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물질적인 저속한 유혹보다 강렬하고 위험합니다.

사탄은 아담에게서 빼앗은 그 권세를 예수님께 보이면서

‘당신이 땅에 엎드려 나에게 경배하면 저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 하면서 유혹합니다.

단 한 번 나한테 머리 숙이기만 하면, 이 세상의 권세와 영광은 예수님의 것이 된다고 유혹합니다.

얼마나 쉽고 화려한 일입니까?

여기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신명기 6장 13절의 말을 들어서 단호히 거절하시죠.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그런데 권세도 하느님에게서 온 권세가 있어요.

그 권세는 나쁘다고 할 수가 없어요.

하지만 그 권세를 남용하거나 자신의 영광이나 야심을 충족하는 데 사용할 때, 사탄에게 무릎을 꿇는 것이 됩니다.

우리는 항상 하느님 앞에서만 무릎을 꿇도록 해야 합니다.

사탄 앞에 무릎을 꿇으면 안 됩니다.

내 교만 앞에 무릎을 꿇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어떠한 상황이 오더라도 내 주인이신 야훼 앞에서만 무릎을 꿇는 자 되게 하소서.

그리고 어떤 유혹이 내 앞에 무릎을 꿇으라 할지라도 이겨나갈 수 있게 하소서.’라는 기도를 강하게 쏴야 합니다.

 

세 번째 유혹 복음에서는 두 번째 유혹입니다.

세 번째 유혹은 ‘허영과 교만’입니다.

‘높은 데서 뛰어내려라. 그러면 천사가 떠받들어 줄 것이다.’

높은 데서 뛰어내려서 안 죽는 것은 기적이죠.

기적을 한번 보이려는 유혹이에요.

기적을 자기 과실을 위해서 남용할 때 인간은 하느님의 원수가 됩니다.

곧 사탄의 제자가 되는 겁니다.

남보다 출중해 보이겠다고 하는 유혹, 유명해지고 싶다는 유혹, 존경받고 싶다는 유혹은

하느님으로부터 능력과 권세가 주어졌다는 사실까지도 망각하게 만들죠.

그래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섬기는 것보다 기적을 행하고 치유 능력을 과시하고 환시를 보고 성언 받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이런 유혹은 열심히 한다는 사람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유혹입니다.

‘나 성령 세미나 받고 난 다음에 치유 은사 받았어. 환시가 보여, 주님이 나한테 얘기하셨어.’

아니죠. 그것은 사탄이 장난하는 겁니다.

성당마다 이런 사람들이 몇씩 있어요.

본인이 하느님에게 들은 예언이라 적어서 신부님한테 ‘신부님 이대로 사세요.’

‘내 말 들으셔야 해요. 성모님이 저에게 예언하셨어요.’

이런 유혹을 이기는 길을 오늘 예수님이 신명기 6장 16절의 말씀으로 보여주시죠.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떠보지 말라.’

오로지 기적이나 치유, 성언만 좋아하는 믿음은 하느님을 시험하려는 큰 잘못임을 일깨워주는 겁니다.

 

자 오늘 강론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오늘 제2독서에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얻는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리고 제1독서에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그 이름에 의지하고 그 이름으로 행한다면 무엇이나 어긋나는 일이 없을 것이다.’

하십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얻는다는 거죠.

그다음에 아까 말했듯이 예수님께서 만인 이론적으로만 유혹받았을 때 너희는 이렇게 하라고 하셨으면 깊이 와닿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런데 예수님은 공생활 시작하면서 첫 번째가 유혹을 받고 물리치신 거잖아요.

이미 당신의 몸으로 유혹을 이기는 방법을 알려주시고 난 다음 공생활 3년 동안 하신 말씀이었기 때문에 권위가 있었던 거예요.

사제들도 마찬가지예요.

본인이 하느님에게 순명하는 삶을 신자들에게 보여주고 난 다음에 설교대에서 순명에 대해서 얘기할 때는

말하는 사제도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고 듣는 신자들도 가슴으로 와닿죠

 

오늘 이 본론 들어가기 전에 세 가지 정리해야 될 것이 있다 했죠.

첫 번째 뭐라 그랬어요? 신화가 아니다.

그것부터 출발해야 해요. 소설처럼 읽으면 안 된다 이 얘기예요.

2천 년 전에 분명히 예수님이 당했던 이야기예요.

그렇기에 두 번째, 예수님이 유혹을 직접 당하셨기에 우리도 유혹을 받을 때

‘이것이 예수님이 당했던 첫 번째 유혹이구나, 이게 바로 맘몬이냐 하느님이냐의 문제, 땅이냐 하늘이냐의 싸움이구나’를

알아챌 수 있는 겁니다.

세 번째가 뭐라 그랬습니까?

영적 무기는 말씀이죠.

예수님은 하나같이 말씀으로 물리쳤지, 도끼 눈을 뜨거나 쌍욕을 하면서 물리친 거 아니에요.

돌멩이를 집어 머리를 때린 게 아니라, 말씀으로 물리쳤어요.

마귀한테 싸워 이길 수 있는 제일 큰 힘은 화내고 분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귀가 기다리는 거예요.

침착하게 차분하게 흔들림 없이 말씀으로 물리쳐야 합니다.

그래서 유혹이 올 때는 성경을 읽고 유튜브 강론을 듣다 보면 유혹이 사라질 겁니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어느 유혹이든 지요.

 

그런데 오늘 복음이 마태복음이었는데 다른 복음에도 예수님 유혹당하시는 것 나오죠.

오늘 복음의 마지막에는 천사들이 예수님을 시중드는 것으로 나오는데, 다른 복음에 보면 이런 말이 나와요.

‘사탄이 다음 기회를 노리고 떠나갔다.’

마귀는 절대 포기 안 해요.

오늘 예수님한테 깨졌다고 해서 포기 안 해요.

어느 때 덤볐어요?

예수님이 겟세마니 동산에서 기도할 때죠.

예수님은 이 고통 당하기 싫었거든.

마귀가 ‘너 그 당할 필요 없어.’ 꼬십니다.

그래서 이 잔을 거두어 달라는 말을 하게 만들어요.

그리고 또 십자가상에서까지도 덤벼요.

‘이 버림받은 놈아, 꼴 좋다. 너 아버지한테 버림받았어.’ 유혹합니다.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하시죠.

정말 그때 예수님은 버림받은 느낌을 받으신 거예요.

그러니까 사탄은 예수님이 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도 유혹한 거예요.

 

마귀와의 싸움은 숨이 끊어질 때까지 싸움입니다.

우리 의식을 잃었을 때 혹은 식물인간이 됐을 때도 이건 살아있어요.

그래서 사제들의 병자 성사가 필요한 거죠.

사람이 몸이 약하면 마귀가 집중 공격을 해요.

‘하느님이 어딨어? 한창 살 나이에 하느님이 너한테 그 암을 주겠어? 하느님 없어.’

우리 교리에 보면 죽기 직전에 마음이 영원히 간다고 해요.

죽기 직전에 하느님을 원망하고 죽으면 죽어서도 영원히 원망한다고 그랬고

죽는 순간에 하느님을 찬미하고 죽으면 죽어서도 영원히 찬미한다고 그랬어요.

마귀는 어떻게든지 하느님을 찬미 못 하게 만들어요.

병자 성자 때 이마와 양손에 기름을 바르면 마귀가 떨어져요.

절대 병자 성사 받은 영혼에게는 마귀가 장난 못 해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병자 성사를 받고 임종하는 신자들이 통계적으로 30%가 안 돼요.

냉담하다가 죽으면 못 받고,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으면 못 받죠.

또 나는 받고 싶은데 자식새끼들이 신자가 아니거나 혹은 말도 못 해.

신부님 불러달라고 눈으로만 껌뻑거려도, 자식들은 못 알아들어요.

그래 못 받는 거예요.

 

그래서 어느 신자들은 아예 유언장에 적어 놓아요.

‘내가 혹시 말 못 하고 혼수상태에 빠지더라도, 너희는 냉담자라 하더래도, 나 죽고 난 다음에 신부님 불러 다오.’

 

예수님한테 이렇게 세 번 말씀으로 진 마귀가 포기했느냐?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한 번 피정으로 그냥 죽을 때까지 그 피정발이 가는 게 아니야.

한 번 피정하면서 내 어둠이 다 사라졌네?

성경에 보면 ‘집이 비어 있는 거 알면 나가서 일곱 마귀 자기 친구들 더 끌고 들어온다.’

그래서 청소만 해놓으면 안 돼요.

안을 채워야지

성령이 주는 열매를 채워야지요.

온유 기쁨 친절 이런 걸로 가득 채워 놓으면 절대 못 들어옵니다.

빈집인 줄 알면 다른 막이 더 끌고 들어온다고 그랬어요.

 

성경 읽읍시다.

읽다 보면 분노하던 마음도 가라앉아요.

그러면서 마귀가 ‘이게 전과는 달라졌네.

그전에는 다리만 걸어도 발라당 자빠지던 놈이었는데. 이제 성경책을 읽어.

2천 년 전에 누구 닮아가네. 아따 이놈이 유튜브 강론을 듣기 시작하네.’

하며 포기하고 떠나는 거예요.

 

여러분들, 사순절 그냥 지내는 것이 아니라 이 사순절을 살도록 노력합시다.

 

♣2023년 사순 제1주일 (2/26)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출처: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에서)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3.03.21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창수선화 | 작성시간 23.03.22 아멘!감사합니다 ~❤
  • 작성자바람의노래 | 작성시간 23.03.22 아멘~감사합니다
  • 작성자kksu | 작성시간 23.03.29 감사합니다. ~~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