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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웅열 신부 강론

지존파의 눈물/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작성자하늘호수♡마리아|작성시간23.03.30|조회수187 목록 댓글 4


■요한 4,5-42

+찬미 예수님
주님의 이름으로 평화를 빕니다.
복음이 하도 길어 중간에 간식을 먹어야 하는데, 힘을 다 썼어요,
여러분들도 긴 복음을 열심히 듣는 것 같던데 핵심이 무엇인가요?
 
사제 서품받은 새 신부님 이야기 하나 해 드릴게요.
새 신부님이 보좌 신부님으로 가서 교중미사에 첫 강론을 하게 되었어요.
주임 신부님이 집전하시고, 보좌 신부님은 알렐루야 때 들어가 복음과 강론만 하면 되는 거였죠.
제의실에 주임 신부님보다 먼저 나와 장백의를 갈아입고 준비해 온 강론을 막 연습했어요.
조금 후 주임 신부님도 제의실에 들어오시고 준비 잘 되는지 물으셨죠.
보좌 신부님이 너무 떨린다고 하니, ‘신부님, 강론 기대합니다.’ 하며 격려했죠.
그런데 주임 신부님이 다시 보니, 정말 사시나무 떨듯 떠는 거예요.
그것을 보고 저기 문 열면 미사주가 있으니, 한 잔 마시면 진정될 거라 하시며 나가셨어요.
얼마나 배려가 큰 겁니까?
미사가 시작되고 1, 2독서를 지나 알렐루야~
보좌 신부님이 들어와 복음 읽고 강론도 너무 능수능란하게 잘하는 거예요.
주임 신부님은 뒤에서 보시고, ‘강론 떨지도 않고 잘하네, 역시 미사주 한 잔 먹고 나오는 게 효과가 있구나’ 생각했어요.
보좌 신부님은 박수까지 받고 들어갔어요.
그날 점심 식사에서 보좌 신부님이 오늘 강론이 어땠냐 묻고, 주임 신부님은 아주 힘차게 잘했다고 칭찬하셨어요.
다시 보좌 신부님이 겸손하게 물었죠.
‘혹시 고쳐야 할 것을 알려주시면 다음에는 더 열심히 준비하겠습니다.’
주임 신부님이 망설이다 말했어요.
‘굳이 꼭 지적한다면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들어오실 때 ’알렐루야‘가 아니라 휘파람을 불며 오셨어요.
두 번째는 강론 마지막을 ’아멘‘하고 끝내야 하는데, 브라보하고 마쳤어요.
이 두 가지만 고치면 오늘 강론은 아주 씩씩하게 잘하셨어요.’
그러니까 보좌 신부님은 술에 취했던 거예요.
왜냐하면 한 잔만 마신 것이 아니라 자꾸 떨리니까 거의 포도주 한 병을 마셔 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아주 간이 배 밖으로 나왔던 거죠.
신자들은 새 신부님 신선하다고 생각하며 박수 친 것이고요.
보좌 신부님은 다음에는 고쳤겠죠?
 
이 이야기를 내가 지금 왜 이렇게 꺼내냐면 세상에는 취해 사는 사람이 많아요.
예수님한테 취하면 누가 뭐라 그래?
그렇죠. 문제는 취하는 내용이 무엇이냐가 중요한 거죠.
돈에 취해 사는 사람이 있죠. 돈밖에 몰라.
죽을 때 주머니에 돈 한 푼도 못 갖고 가는데, 수의에 주머니 없잖아요.
또 권력에 취해서 사는 사람이 있죠.
요즘 정치하는 사람들 보면 어때요? 그냥 추하고 자기 잘못을 인정 안 하죠.
정말 우리 한국은 좀 불쌍해요.
백성들은 똑똑한데 정치하는 사람은 아직 ‘국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어른이 아직 안 나왔죠.
그런 분들은 옛날 독립운동부터 한 분들인데, 암살당하고 없죠. 백범 김구
그다음에는 친일파의 후손들이 다 잡고 있죠.
독립군 자손들이 그 당시에 공부했겠어요?
친일파들은 그 시대도 다 유학 보냈거든.
나라 지키던 사람 자손들은 지금 한 달에 몇십만 원 받고 그걸로 연명하고 살아, 배운 게 없으니까 뭘 할 수 있겠어요?
여전히 지금 이 나라는 친일파들이 다 차고 있어요.
그 뿌리를 올라가면 해방되고 난 다음 일본 앞잡이들이 벌벌 떨다가 군정이 되고,
미군은 질서를 잡아야 하니 그 사람들에게 경찰 배지 달아 주었죠.
우리 대한민국의 비극은 그거예요.
어느 나라든 식민지로 있다가 독립되면 앞잡이들부터 먼저 처단하는 게 1번인데 그것을 못 한 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악순환이 되는 거죠.
 
권력에 취해 사는 사람, 또 욕정에 취해 사는 사람, 몸뚱아리가 그냥 살 되는 대로만 사는 사람,
또 술에 취해 사는 사람, 하여튼 세상에는 취해 사는 사람들이 많아요.
여러분들은 무엇에 취해 사십니까?
그런데요. 이렇게 취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어요.
첫 번째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헛소리를 해요.
두 번째 삶의 갈증을 느끼기 때문에 절대 평화가 없어요.
돈에 취해서, 권력에 취해서, 육신에 취해서, 술에 취해 살아봤자 다른 사람에게 늘 상처를 주는 존재고
본인은 절대 평화롭게 살 수가 없지요.
 
오늘 복음에 한평생을 죄에 취해서 살았던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예수님께 치유하게 되는 드라마틱한 얘기가 오늘 길게 등장해요.
세상에 남편이 다섯이었고, 지금 사는 사람도 남편이 아니래.
얼마나 팔자가 기구한 여자인지. 책으로 써도 수십 권을 썼을 여자예요.
오죽하면 정오에 물을 뜨러 옵니까?
사람들이 아침에 물 뜨러 오지 정오에 물 들어오는 사람이 없어.
다른 사람이 볼까 창피하니까, 손가락질하니까.
오늘 분명히 정오라고 나와요. 한 대낮.
 
여러분들도 상식으로 알다시피 유대인과 사마리아 사람은 원수지간이에요.
유대인과 원수지간인 사마리아 여인, 행실이 단정치 못해서 다섯 남편이나 두었고
현재의 남편도 실상은 남편이라고 할 수 없는 사람과 사는 부정한 여인,
그래서 동네 사람을 피해서 살았고 아무도 없는 대낮에 우물가에 나왔던 그 여인을, 예수님이 오늘 만나는 거예요.
과연 이런 여인에게 평화가 있었겠느냐 이거예요.
자포자기하는 삶을 사는 여인이었어요.
 
분명히 가장 거룩한 분이 가장 때 묻은 여자와 만납니다.
가장 높으신 분이 가장 낮은 자와 오늘 드라마틱한 만남, 그래서 교회는 이 복음을 이렇게 길게 설명하는 거예요.
이 두 사람의 존재가 만나는 모습에서 우리는 버림받고 상처받고 쓰러져 찢긴 인간에게 다가오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색깔만 달랐지, 우리도 사마리아 여인일 수 있어요.
그렇죠, 내가 죄 중에 살아온 것 하느님은 아시잖아요?
‘나는 눈같이 깨끗하게 살았어요. 죄라는 거 지은 적 없어요.’
그럼, 그런 사람은 하느님 필요 없지.
오늘 여러분들 여기 부르신 이유는 바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서 치유시켰듯,
그 영적인 작업을 하시려고 부르셨다는 것을 우리가 믿어야죠.
 
예수님이 물을 청하셨죠.
물을 청하자 여인은 놀랍니다. 그리고 물을 주기를 꺼려요.
어떻게 유대인인 당신이 나한테 물을 청하냐고 그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 하죠.
그러니 예수님은 ‘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오히려 네가 나에게 물을 청했을 것이다.’
하시면서 ‘생수’라고 나오는데, 공관복음에는 ‘생명의 물’이라 나와요. 그
생명의 물을 주실 수 있는 분임을 사마리아 여인에게 알립니다.
그러면서 아주 느리게 그리고 아주 서서히 천천히 예수님이 보통 분이 아니라는 것을 이 여인은 알아챕니다.
그리고 예언자로 고백을 합니다.
그때 제자들은 어디 갔다고 그랬어요?
먹을 거 사러 딴 데 갔다.
그야말로 우물가에 예수님과 그 여인 둘만 있었던 거예요.
예수님은 대화를 통해서 서서히 문제를 풀어가면서 여인을 신앙으로 이끌어갑니다.
 
제가 그런 얘기 한 적이 있죠.
예수님이 치유하시는 원칙이 세 가지가 있다고 그랬어요.
첫 번째 예수님은 치유나 용서할 때 절대로 조건을 걸지 않으시는 분이다.
두 번째 예수님은 치유하시기 전에 기도하셨고 치유가 끝나고 난 다음에도 반드시 감사 기도로 끝맺음을 하셨다.
마지막 세 번째는 예수님은 섬세하게 정말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섬세하게 치유하셨다.
도매금으로 한 번에 한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 머리 얹을 때마다 정말로 그 사람의 상태를 파악하고 섬세하게 하셨다.
그래서 하느님이 우리에게 치유하시는 방법이 그렇다면 우리들도 예수님의 치유 방법을 배워야 한다.
그런 얘기 많이 했어요.
오늘도 예수님은 정말 대화를 하면서 천천히 문제를 풀어가고 그 여인을 신앙으로 이끌어갑니다.
육신의 갈증을 채워줄 물에 대한 욕구에서 영원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평화에 대한 욕구를 느끼게 만들어 줍니다.
그리고 구세주로 인정하게 만듭니다.
예수님의 치유하는 방법을 보면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자상하게 설명하죠.
그래서 만남의 결과가 어떻게 됐죠?
예수님이 예언자고 메시아인 것을 여인이 알았어요.
그러고 난 다음에 결과가 중요해요.
여인은 어떻게 했어요?
집으로 그냥 휙 들어갔어요?
그 만남의 결과 예수님께 취합니다.
예수님께 취하여 동네 사람들에게 가서 말할 정도로 변화가 됩니다.
동네 사람들을 피해서 아무도 안 나오는 12시에 물 뜨러 나오던 사연 많은 여자가,
당당하게 동네 사람들한테 가서 예수님을 만나고 왔다고 합니다.
 
예수님 만나고 난 다음에는, 예수님을 체험하면 반드시 예수님을 전하게 돼 있어요.
신앙생활 20년 30년 하면서 뒤돌아보면 내가 노력해서 전교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혹은 아예 전교하려고 하는 마음조차도 가져본 적이 없다면 그 원인은 뭐냐?
그냥 종교인이에요. 신앙인은 예수님을 체험한 사람이에요.
세례받을 때 종교인으로 세례받았다 하더라도 우리는 신앙인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사마리아 사람들도 아브라함의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이에요.
단지 배가 다른 거죠.
그렇지만 종교인이었어요. 죄에 빠져 있는 종교인이었죠.
예수님을 만나면 반드시 전하게 돼 있습니다.
예수님 체험이 없을 때는 죽을 때까지 단 한 사람도 예수님을 전교 못 합니다.
 
내가 가끔 얘기해요.
죽어서 심판받을 때 소극적인 성찰 거리 내용을 갖고 하느님이 우리를 심판하실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성찰 거리로 심판하실 것이다.
죄를 무엇을 지었느냐가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선을 안 하고 산 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우리의 심판 거리가 될 것이라 했어요.
그리고 적극적인 성찰 거리 또 한 가지가 뭐냐? 복음 전하라고 그랬잖아요.
하느님이 너 45년 동안 세례받고 살았는데 네가 노력하고 기도해서 내 앞으로 이끌어 온 영혼이 몇 명이나 되느냐 물으시는데,
되돌아보니 한 명도 없어.
그때는 하느님이 용서 안 하신다 이 얘기예요.
다른 건 다, 도둑질하고 설령 살인까지 했다 하더라도 자비하신 하느님은 용서하지만,
적극적인 전교, 적극적인 선을 베풀지 않은 것은 심판 거리입니다.
 
어제 복음이 부자와 라자로 이야기였죠?
강론에 부자가 지옥에 간 이유는 라자로에게 못되게 했기 때문이 아니라
적극적인 선을 못 베풀었기 때문이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무책임하고 무관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포커스를 어두운 쪽에 맞추면 안 돼.
마귀는 자꾸 죄로부터 헤어나지 못하게 죄의식이라는 감옥에 우리를 가두려고 했어요.
그게 마귀의 작전이죠.
우리가 죄를 지면, 정직하게 고백성사보고 자유로워져야죠.
정말 우리가 포커스를 맞춰서 해야 할 것은, 내 주변에 라자로가 많은데 나의 무관심 때문에 힘들게 사는 사람은 없는가,
내가 말 한마디만 하면 예수님한테 이끌 수 있는 사람을 한 번이라도 시도조차 한 적이 있었던가 입니다.
 
성령에 대한 체험 예수님에 대한 체험이 없으면은 절대 전교 못 해요.
오늘도 사람 피해 다니던 여자가 예수님 만나고 난 다음에 왜 이렇게 당당해진 거예요?
동네방네 쫓아다니면서 메시아와 만났다고 헛소리가 아니라고 자신에 찬 진리를 말했죠.
괴로워서 몸부림치는 여인이 아니라 평화에 취한 여인으로 변했던 겁니다.
 
94년도에 큰 사건이 있었어요.
소위 지존파 사건이라는 게 있었죠.
네 명인가 다섯 명 아이들이 좋은 차 탄 사람만 죽이고, 내장 꺼내 소주 안주로 먹고.
그중에 제일 두목의 이름이 김기환이에요.
1년 만에 사형이 집행됐어요.
그런데 그 1년 동안 빠짐없이 거의 매일같이 편지를 보내고 사식을 넣어주고 찾아갔던 사람이 하나가 있어요.
다른 교도소에 근무하는 간수인데 천주교 신자예요.
매일같이 편지를 쓰고 쉬는 날이면 면회 갔대요.
처음에는 얘네들이 미친놈이라면서 면회도 안 했대요.
일 년 동안 그냥 돌덩어리 앞에서 아무 반응이 없어도 그냥 열심히 했대요.
그렇게 일 년 지나고 나서 편지 한 통이 두목에게서 날라왔어요.
편지가 이랬어요.
 
‘오늘 저녁에 저는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내려서 내 친구들에게 보이지 않으려 혼이 났습니다.
제가 눈물을 흘리다니, 저 같은 놈이 눈물을 흘리다니 저 자신도 믿기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에 영원한 악인이 어디 있겠습니까?
제가 저지른 사건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잘못되었음을 선생님 앞에 처음으로 고백합니다.
세상이 욕하는 마당에 선생님의 따스함에 다시금 뜨거운 인간애를 느낍니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그 따뜻함이 끓어오릅니다.
이제 시간이 얼마 없지만, 형이 집행되는 날까지 하루를 10년같이 보람되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저를 이끌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김기환이 올림’
 
그리고 한 달 후에 지존파 6명은 죽음을 맞았고, 그 가운데 네 사람이 세례를 받고 죽었어요.
그 교도관의 편지 때문에요.
지존파 6명은 그 교도관 한 사람을 만나서 오늘 사마리아 여인이 바뀐 것처럼 바뀌었잖아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면서도 십자성호를 긋고 죽은 거죠.
시대의 패륜아였던 그들이 주님의 사랑을 지녔던 한 그리스도인과의 만남에 의해
세상 어느 누구에게도 받아보지 못했던 따뜻한 사랑을 받게 됐고,
이것이 그들의 돌 심장을 살 심장으로 바꿀 수 있게 한 힘이 됐던 거예요.
 
여러분,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여러분들이 노력만 하면 힘들고 괴롭고 돌 심장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바꿀 수 있어요.
그 교도관은 아름다운 크리스천이에요.
지금은 이제 정년퇴직해서 살고 계시지만, 교도소 안에서도 항상 선한 영향을 주었던 좋은 교도관으로 많은 사람이 기억하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패륜아 중의 패륜아, 인육을 먹던 아이들을 눈물 흘리게 했죠
그래서 만남이라고 하는 게 이렇게 아름답죠
 
사순절은 예수님에게 취하는 시기에요.
생명의 물을 흠뻑 들이키는 시기에요.
또 다른 우물가에서 예수님은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죠.
예수님 만나러 가야죠.
오늘 여러분들을 치유시키고 변화시키려고 이 자리에 불렀음을 깊이 명심합시다
이제 사순절 후딱 지나갑니다.
벌써 3주예요.
사순절은 은총의 시기이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도 마귀가 더 설친다고 그랬어요.
예상하지도 않았던 사람이 도전할 때가 있어요.
믿었던 사람한테 배신당할 때가 있어요.
사순절이 은총의 시기가 아니라 분노의 시기로 부활절을 맞이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오늘 불러서 사제의 입을 통해서 폭풍에 흔들리는 바다 같은 마음을 갖고 있다면 잔잔하게 만들고,
예수님이 그 배 안에 계실 때 갈릴리 호수는 잔잔해졌지.
그래서 오늘 이 사제관은 예수님이 만났던 우물가죠.
그리고 많은 성인들은 그것을 다 체험하고 사셨던 분들이에요.
예수님을 체험했기 때문에 저렇게 순교하셨던 분들도 있고요.
그분들이 여러분에게 많은 힘을 주고 계신다는 것을 믿도록 합시다.
 
♣2023년 사순 제3주일 (3/12)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출처: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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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3.03.30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임채진 | 작성시간 23.03.30 아멘~ 감사합니다 ㅠ
  • 작성자정다와 | 작성시간 23.04.03 +아멘+ 감동입니다. 감사드립니다.
  • 작성자충주 헬레나 | 작성시간 23.07.20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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