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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웅열 신부 강론

신앙인들의 기본 수칙 3가지/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작성자하늘호수♡마리아|작성시간23.09.05|조회수148 목록 댓글 5

■마태오 16,21-27

 

+찬미 예수님

주님의 이름으로 평화를 빕니다.

오늘은 교우들 없이 저 혼자 미사 드리는 주일입니다.

오늘 연중 제22주일이죠.

오늘 베드로가 아주 찰지게 예수님께 혼나고 욕도 먹습니다.

 

먼저 오늘 복음의 주제는 이겁니다.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은 그 길이 고생스럽다는 겁니다.’

하느님이 사랑하는 사람을 고생시켜? 굉장히 모순된 말처럼 들리겠지만 사실입니다.

예수님도 그 길이 험하고 문이 좁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오늘 제1독서에 예레미야가 나옵니다.

큰 예언자죠. 그렇지만 얼마나 고생을 지지리 하는지 모릅니다.

박해도 수도 없이 많이 받았습니다.

사랑받았던 위대한 예언자 예레미야, 그렇지만 너무 고생스러웠기 때문에 그야말로 하느님 때문에 신세 망쳤다고 얘기합니다.

얼마나 고생스러웠으면요.

우리보다 먼저 살다 가신 분 가운데서 성인, 성녀들이 계십니다.

그 성인, 성녀들의 삶은 신앙 안에서는 위대한 인생이었지만,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는 참으로 고달픈 인생이었습니다.

예수님 따르려면 많은 눈물을 흘려야 되지만 결코 그 눈물은 의미 없고 필요 없는 눈물이 아니라는 것이고

필요 없는 눈물을 흘리게 하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겁니다.

그렇지만 눈물을 흘리는 그 당시에는 내가 왜 이 고생을 하면서 피눈물을 흘려야 하는지 깨닫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오늘 복음으로 되돌아와 봅시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서 박해받고 죽을 거라고 얘기하시자

베드로가 펄쩍 뛰면서 예수님을 끌어안으면서 ‘주님, 안 됩니다. 결코 그런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죠.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뭐라고 하십니까?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장애물이다. 하느님의 일은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느냐?’

 

여러분들 이제껏 사시면서 예수님에게 이런 강한 꾸지람을 들어보신 적이 없으십니까?

마리아야, 너는 나에게 장애물이다.

토마스야, 너는 나에게 장애물이다

율리아야, 너는 나에게 장애물이다.

안토니오, 너는 나에게 장애물이다.

너희들은 어찌 하느님의 일은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느냐?

베드로가 사탄 소리를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화가 나셨으면.

그 으뜸 제자, 첫 번째 제자에게 사탄이라고 불렀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사실 베드로가 사탄이라는 얘기는 아니죠.

베드로 안에 있는 그 어둠을 향해서 물러가라는 겁니다.

 

예수님이 왜 이토록 예민한 반응을 보이셨는지 좀 묵상을 하고자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왜 이런 사건이 벌어졌는지를 이해하시기 쉬울 겁니다.

예수님이 이토록 아주 예민한 반응을 보이셨던 그 이유는 광야에서 사탄에게 유혹당하셨던 그 기억이 떠올랐던 겁니다.

광야에서 어떤 유혹당하셨는지 아시지요?

‘돌을 빵이 되게 하라’는 유혹을 받습니다.

다시 말해 사람들에게 먹을 것, 물질적인 것만 주면 그러면 너 따를 것이야.

두 번째 유혹은 뭡니까? ‘높은 데서 뛰어내려 봐.’

사람들에게 감동적이고 신기한 거 보여줘 봐 그러면 너를 따를 것이야.

세 번째 유혹은 뭡니까? ‘나에게 절하여라’

다시 말하면 세상과 적당히 타협해라. 그러면 너를 따를 것이다.

예수님은 이 세 가지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셨습니다.

다 말씀으로 물리치셨죠.

그런데도 사탄은 이때 물러가면서도 루카 복음 4장 13절에 섬뜩한 얘기가 나옵니다.

정말 무서운 얘기가 나옵니다.

‘악마는 모든 유혹을 끝내고 다음 기회를 노리며 그분에게서 물러갔다.’

그 사탄이라고 하는 놈이 물러가면서도 다음 기회를 노리면서 떠나갔다고 루카 복음에는 전해집니다.

예수님은 그 사탄이 마지막으로 떠나면서 했던 그 말이 생각이 났던 겁니다.

베드로가 매달리면서 ‘안 됩니다, 안 됩니다. 결코 그런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했을 때, 바로 그 사탄이 베드로 속으로 들어가

앞으로 예수가 지어야 할 십자가의 길을 가로막으려 하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던 겁니다.

가장 사랑하는 수제자의 입을 사탄이 갖고 노는 것을 예수님이 섬뜩하게 느끼셨던 겁니다.

사탄이라고 하는 뜻은 ‘하느님께 등을 돌리고 있는 자, 반대자’라는 뜻입니다.

우리를 하느님의 뜻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세력입니다.

사탄은 하느님의 명령을 인간의 욕망으로 바꾸게 하는 압력입니다.

십자가의 고통을 좋아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주님도 얼마나 두렵고 불안하셨는지 우리도 다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당할 그 십자가의 길 생각만으로 해도 끔찍한 상황이 벌어질 것인데,

베드로가 주님의 마음을 흔들어 놓으니 그는 구원의 길로 나가시는 예수님에게 장애물이었던 겁니다.

우리들도 하느님의 뜻보다는 내 생각대로, 기도하면서 분별력을 청하기보다는

매사에 감정적으로 분노하고 이를 내 멋대로 처리한다면, 분명히 우리는 예수님에게 있어서 장애물이 될 겁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베드로에게 일침을 놓으시고 차분하게 제자들에게 훈계의 말씀을 하십니다.

신앙인들의 기본 수칙을 말씀하십니다.

첫 번째 자기를 버려라.

자기를 버리는 것, 포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는 압니다.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 압니다.

세례자 요한의 말처럼 나는 갈수록 작아지고 그분은 갈수록 커지셔야 하는데, 오히려 반대입니다.

나는 갈수록 커지고 그분은 갈수록 내 발밑에서 작아지십니다.

삶의 순간순간이 예수님 중심의 삶이어야 하는데 내 중심으로 대부분 살아갑니다.

항상 왕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예수님이 아니라, 내가 그 왕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모든 것이 나를 중심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마음과 사는 것이 행복하지 못하다면 아직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 분명히 있기 때문일 겁니다.

우리의 마음을 산란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가 포기해야 할 것인데 포기 못 하기 때문에 혼란스럽습니다.

그래서 행복은 포기하는 것만큼 옵니다.

포기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자기를 버려라’ 이것이 신앙인들의 기본 수칙 첫 번째입니다.

 

두 번째는 매일 자기 십자가를 져라.’

피정 때 그런 얘기를 자주 합니다.

십자가는 지는 것이 아니라 가슴 가까이 끌어안는 것이다.’

십자가는 고통을 의미합니다.

고통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하느님은 고통만큼은 참 평등하게 주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세상 걱정 없어 보이는 사람은 고통이 없을 것 같습니까?

나와는 색깔이 달라도 다 고통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 말씀 때문에 고통을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억지로 받아들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사랑까지 하기는 어렵죠.

아시다시피 저의 사제 생활도 글쎄요, 나만큼 십자가 많은 사제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참 십자가가 크기도 하고 또 종류도 많고 무게도 또 각각이었죠.

제가 십자가를 지면서 배운 교훈이 있다면 아까 말씀드린 대로

십자가는 지는 게 아니라 끌어안는 것입니다.

지면은 자빠집니다.

지면 십자가의 무게 때문에 허리가 굽어지지만, 가슴에 끌어안고 내 심장 가까이에 바짝 붙일수록 훨씬 끌고 가기가 편합니다.

우리는 억지로 지고 가는 십자가가 많지만, 그렇다고 하여 실망하거나 주눅 들어서는 안 됩니다.

억지로 지고 가는 십자가라 하더라도 주님 보시기에 얼마나 기특해 보이는지 모릅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넘어지셨을 때 키레네 사람 시몬이 진 십자가는 억지로 진 십자가입니다.

일 끝나고 지나가다가 그냥 로마 병정에게 끌려 나와 ‘네가 대신 져.’

손만 닿아도 몇 년 동안 재수가 없는 것이 십자가인데, 이미 그때는 예수님의 피가 십자가에 범벅이 되어 있었을 터인데,

키레네 사람 시몬이 그 피범벅이 된 십자가를 기쁘게 진 겁니까?

대개 십자가형에 처하는 사람은 극악무도한 죄수들입니다.

키레네 사람 시몬은 예수님을 따르는 추종자가 아니었습니다.

억지로 진 것이지만 예수님은 그 시간 동안 다시 골고다로 올라갈 수 있는 힘을 충전하실 수 있었을 겁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대부분의 십자가 억지로 집니다.

그럴 때마다 주님 보기에 미안하고 주눅이 들고 창피하기도 하지만 주눅 드실 필요 없습니다.

그래도 기특하게 생각하실 겁니다.

특히 고통이 올 때마다, 십자가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질 때마다 성모님께 도움을 청하도록 합시다.

 

세 번째 원칙은 따라야 합니다’.

첫 번째는 버려야 되고, 두 번째는 져야 하고, 다른 말로 끌어안아야 하고, 세 번째는 따라야 합니다.

따른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에게 절대적인 순명을 하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세주이시고 우리 인생 항로의 나침판이십니다.

그분이 알려주시는 대로, 그분이 제어해 주시는 대로만 따라가면 손해 볼 것 없습니다.

동방박사들이 별을 보고 예수님을 만났듯이 우리는 내 안에 계신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살면 예수님 만납니다.

 

이렇게 세 가지를 제자들에게 훈계하십니다.

베드로에게 일침을 놓으신 다음에 제자들에게 자기를 버려라그리고 내 십자가 남한테 넘기지 말고 내가 지고 따라라.’

 

예수님은 분명히 당신을 따르면 고통도 없고 부자 되고 모든 것 척척 해결된다고 말씀하신 적 없습니다.

이 세상 행복보다는 영원한 세상에 대하여 약속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그것을 믿고서 내 십자가를 남에게 떠넘기려 하지 말고 기도의 힘으로,

성사의 힘으로 주님께 은총 받아 기쁘게 지고 나아가도록 합시다.

여러분들 영원에 영원을 더하여 사랑합니다.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이 말씀을 받아 삼키는 모든 이들에게 축복하소서.

아멘.

 

2023년 연중 제22주일 (9/03)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출처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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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창수선화 | 작성시간 23.09.06 아멘! 감사합니다 ~❤️
  • 작성자바람의노래 | 작성시간 23.09.06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3.09.06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충주 헬레나 | 작성시간 23.09.06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아스피린 | 작성시간 23.09.06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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