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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웅열 신부 강론

교회 공동체의 사랑/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작성자하늘호수♡마리아|작성시간23.09.15|조회수154 목록 댓글 5
■마태오 18.15-20
+찬미 예수님
주님의 이름으로 평화를 빕니다.
오늘 미사 참석하신 분들은 대구경북방 신자들과 교포 모녀가 오셨어요.
모두 주님께서 불러주셔서 왔습니다.
이 집은 은퇴한 원로 사목자가 사는 어떤 사제의 개인 사가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여기는 성인들의 유해가 86분이 모셔져 있어요.
그리고 십자가 보목이 세 점이 있습니다.
아마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성인 유해가 모셔져 있는 곳이 여길 겁니다.
저한테 뼈 모는 게 취미십니까 묻는데 그건 아니겠죠
사제 생활 40년 넘게 살면서 한 점 한 점이 전부 아주 드라마틱하게 저한테 오셨어요.
그래서 이제 제가 조금 시간이 되고 여유가 되면 해야 할 것이 책을 쓰는 일이겠죠.
여러분들이 유튜브에서 듣는 평일 강론을 이번 대림절까지 하면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전부 다 끝납니다.
작년에는 화 수 금요일에, 지난번 대림절부터는 월 목 토요일에 강론이 나가죠.
그것을 책으로 지금 준비 중이고요.
그전에 나온 책들 여러분 혹시 아십니까? 4권이 나왔죠, 시리즈로.
그리고 그것이 끝나면 그다음에 내가 써야 할 것이 여기 모신 많은 성인들이 어떻게 해서 한국 땅에 오시게 됐는가인데,
아마 써도 꽤 책이 많이 나오게 될 겁니다.
여러 권이 나오게 될 것 같아요. 다 사연을 보면 다 정말 기적처럼
한꺼번에 이렇게 오신 분들이 아니죠.
가장 오래전에 오신 분은 내가 군종 신부 시절이니까 38년 전에 한국 땅에 오신 분부터,
코로나 터지기 전에 성지 순례 가서 루르드에서 모셔온 비안네 신부님 뒤축뼈라든지, 이런 것들이 시기가 전부 다 다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정말 지금, 이 순간부터 떠날 때까지 정말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것은
감히 이 자리에 올 자격이 없는 나지만 오늘 주님께서 나를 불러내셨다는 것입니다.
불러내셨으니까 분명히 사제 입을 통해서 하실 말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또 주실 선물이 있을 거예요.
주실 선물은 치유예요. 그리고 구마예요.
상처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고 어둠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은혜 주시려고 부르신 거다.’ 그런 마음으로 여러분은 이 자리에 머무셔야 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이 자리에 또 머물다 가시기를 저도 기도하겠습니다.


2독서 하신 자매님, ‘신부님 꼴값합니까?’ 물어보세요. (자매 물음)
꼴값하려고 노력합니다.
원래 사전적인 의미로 ‘꼴값’은 아주 아름다운 말이에요.
자기 꼴 꼴에 값을 하는 사람한테 꼴값한다고 하면 굉장한 칭찬이죠.
그런데 지금은 주제 파악을 못 하는 사람한테 쓰이는 말로 바뀌었어요.


사제의 꼴값이 있죠, 남편의 꼴값이 있고, 부모로서의 꼴값이 있고 선생님으로서의 꼴값이 있고, 군인의 꼴값이 있죠.
그런데 군인이 자기 꼴값을 못하고 엉뚱하게 정치 쪽에 신경 쓰면 쿠데타가 일어나는 거예요.
학교 선생님이 아이들 가르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돈을 벌려 하면 돈 봉투를 받기 시작해요.
사제가 사제직을 수행하지 않고 직업처럼 생각한다면은 그것은 직업인이 되는 거예요.
꼴값을 못하고 살 때는 우리 손가락질당하죠.


그럼 여러분들 중에 ‘저는 살면서 한 번도 손가락질받아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자신 있는 분? 손 들기만 해봐라.
다른 사람이 나한테 대놓고 손가락질한 적은 없었어도, 내가 나 자신에게 한 것은 하루에도 수십 번이죠.
사제로 살아가는 나도 그래요.
‘등신아 너 왜 그 말 했어? 좀 참지. 왜 또 걸려 넘어졌어, 이 바보야. 주제 파악하고 살아.’
다른 사람에게 노골적으로 손가락질을 안 당해봤다 하더라도 양심을 통해서 내가 나 자신에게 손가락질을 무수히 많이 하고 살아요.
죄에 떨어지기 쉬운 인간의 모습은 성직자나 수도자나 평신도나 다 마찬가지고 예외가 없어요.


다윗 아시죠? 다윗 성왕, 다윗이 처음부터 성왕이었어요?
다윗은 앞에 성왕, 거룩한 왕이라고 타이틀이 붙어요.
말이 붙을 정도로 유명하신 분인데 그 양반도 살인까지 생각했던 사람이야.
누구 죽였어요?
더운 여름에 왕궁 베란다에서 밑을 내려다보니 저 밑에 사가가 보이는데 거기서 어느 여자가 목욕하고 있어.
어? 음란 마귀가 들어오기 시작했지.
자기 비서실장 보러 저 여자 누구냐 물으니 전쟁터에 나가 있는 우리야의 아내입니다.
순간적으로 음란이 들어올 수 있어요.
그렇지만 눈치채고 돌아섰어야지, 다윗은 그걸 못 놓았어요.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저 여자 내 침실로 데리고 와.’
데리고 왔죠. 그래서 잠을 자고 임신을 했어.
나중에 그게 누가 돼요? 솔로몬이 되잖아.
임신을 떡 했는데 이제 겁이 덜컥 나는 거야.
그래서 어떡합니까? 간음죄를 저지르고 난 그다음에 살인을 꿈꿔요.
휴가를 주겠다고 우리야를 불러들여요.
네 아내랑 자라. 그래야만 그것이 이제 우리야의 자식이 돼버리니까.
그런데 우리야는 우직한 군인이라 갑옷도 벗지 않고 내 동료들이 싸우고 있다며 그냥 문밖에서 그냥 있다가 그다음 날 전쟁터로 갔어.
첫 번째 계획이 실패한 거예요.
그래서 우리야 손에다가 편지 한 장을 들려 보냈습니다.
그 편지에 뭐라고 쓰여있나?
‘이것 들고 가는 이놈 최전방에 내보내서 반드시 죽여라.’ 그래서 우리야가 죽었어요.
간음을 덮기 위해서 살인죄까지 저지른 인간이 누구예요? 다윗이야.
그런데 나단 예언자가 다윗 앞에 나타나서 지팡이를 꽝꽝 때리면서 호통을 치죠.
그때 다윗은 옷을 찢으면서 회개를 해요.
성왕 다윗도 이렇게 살인죄까지 저지른 왕이었다 이 얘기예요.
또 그 아들 솔로몬은 어땠어요?
솔로몬 하면 지혜의 왕이지만 솔로몬 때문에 유다 왕국은 개판이 됐어.
시바의 여왕을 끌어들여 오만 우상숭배가 판을 치게 만든 게 솔로몬이에요.


바오로 사도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바오로 사도의 원래 이름은 사울, 사울일 때 사람 뭐 하던 사람이에요?
천주교 신자 잡아 죽이러 다니던 앞잡이였어요.
다마스쿠스에 천주교 신자들이 모여 있다 해서 잡으러 가다가 언덕에서 빛이 번쩍이며 그가 땅에 엎어졌죠.
그리고 눈이 멀었어요.
엉금엉금 기어 마을로 내려갔더니 하나니아스 예언자가 사울을 만나서 눈을 만져주면서 눈을 뜨게 되고
세례를 받으며 예수님을 영접하게 됐잖아요.
죄를 안 짓고 살 순 없어요. 그것은 다 마찬가지예요.
십사 오 년 전에 애틀랜타 대교구의 대주교였던 마리노 주교가 비키롱이라고 하는 여가수와 스캔들을 일으켜 옷을 벗었죠.


마귀는요, 사제복을 입고 있다고 해서 빨간 모자를 쓰고 있다 해서 분홍색 추기경 모자 쓰고 있다고 해서 안 건드리는 게 아니에요.
유니폼을 마귀 절대 무서워하지 않아요.
하느님 앞에서는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그 누구도 죄인이라는 점에서는 예외 없고,
항상 죄와 유혹에 노출되어 살아가고 있는 것을 우리는 절감하고 삽니다.
그래서 옛날 우리 교리 교과서에 우리를 천국에 못 가게 하는 세 가지의 원수(삼구)가 있다 했어요.
세속육신마귀.


이렇게 우리는 누구나 남의 손가락질을 받을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서로 기도하면서 감사하며 충고해주고
또 그 충고를 기쁘게 받아들이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 바로 오늘 복음의 내용이에요.
주님은 절대로 죄인의 죽음을 원치 않으세요.
죄인의 죽음을 원치 않으시는 하느님의 사랑에 힘입어서, 어느 누구 하나가 잘못되면 공동체적인 책임을 느끼고
서로 충고하고 잘못을 일깨워줘야 한다는 것이 오늘 바로 복음의 핵심이라는 거죠.


오늘 예수님은 참 기가 막힌 심리학적인 접근을 하세요.
남의 잘못을 깨우쳐 주려 할 때는 지혜가 필요하다 지혜로운 자세가 필요하다고 하시며 무엇이라 얘기합니까?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가능한 개인적으로 그를 찾아가 만나는 것이 첫 번째다.
물론 편지를 쓰든 카톡을 하든지 할 수 있지만, 잘못 읽히고 잘못 해석이 될 수가 있어요.
단어 하나 때문에 그렇죠.
오히려 화해하려고 편지를 보내고 싸움이 커질 수가 있어.
어떤 사람과 견해 차이가 있다면 해결할 수 있는 첫 번째 길은 페이스 투 페이스(face to face) 얼굴을 맞대는 것이라는 거죠.
그런데 여기도 조건이 필요해.
만나러 가기 전에 첫 번째 기도해야 해요.
‘주님 제가 지금 누구를 만나러 갑니다. 솔직히 그 사람 얼굴만 봐도 무슨 말이 튀어나올지 몰라요.
제 입을 주님 선하게 만들어 주시고, 제 입에서 나오는 말이 주님 축복의 말로 바뀌어서 저 사람의 다친 마음을 좀 열게 해주세요.’
두 번째 인내심이 필요해요.
‘나 화해하러 왔어.’ 하는데 ‘왜 왔어?’ 그 한마디에 ‘에이 성질나.’하며 되돌아오면 안 돼.
욕먹을 각오 하고 모욕당할 각오 하고 그 자리에 있어야 해요.
기도하고 인내라고 하는 것이 선행되어 있지 않으면 일대일로 만나도 쌈박질만 합니다.


근데 만일에 개인적인 접촉이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을 때는 뭐라고 그럽니까?
오늘 성경에는 지혜 있는 사람 한 사람이나 혹은 몇 사람을 데리고 가는 것도 좋다고 나왔죠.
데리고 가는 이유는 뭐예요?
그 사람이 죄지은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화해의 분위기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
성당에도 보면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분들이 있어요.
저분은 늘 남의 얘기할 때도 항상 좋게 얘기해.
어떤 사람은 입만 열면 항상 남을 씹어.
‘내 수십 년 동안 저 자매를 지켜봤어도 저 사람 입에서 누구 칭찬하는 얘기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
이 사람은 악한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죠.
‘내가 몇 년을 저 사람 같은 레지오를 했어도 나 저 양반한테 배울 점 많아, 입만 열면 다 누구 칭찬하는 거야. 훌륭해.
나보다 나이도 어린데 참 인격자예요.’
그런 사람 몇 명을 데려가라는 얘기예요.
그래서 화해의 무드를 만들라는 뜻이에요.
사람은 흔히 자기가 상처를 많이 준 사람, 자기에게 상처를 많이 준 사람을 미워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상대의 기분을 돌아서게 할 수 없을 때,
또 어떤 경우는 내가 말을 못 하고 내가 굉장히 감정적인 사람이라 일대일로 화해하려 하다가 내 쪽에서 먼저 터지는 수가 있죠.
그래서 지혜롭고 친절하고 온유한 사람들이 참석해서 새로운 분위기를 조성하라는 뜻입니다.
랍비들이 그런 말을 했어요.
‘홀로 판단하지 말아라. 한 분 외에는 홀로 판단할 사람이 없다.’
이처럼 지혜로운 사람이 엉망이 된 인간관계와 그 관계성을 정리하고 회복시켜줄 수도 있다는 거예요.


자, 이제 이렇게까지 했어. 그런데 그래도 말이 안 통해.
정말 지혜롭다는 사람을 데려가서 화해시키려 애써도 열쇠로 잠가놓은 것처럼 꿈쩍도 안 해.
오늘 주님은 둘 셋이 함께 기도하는 곳에 하느님의 평화와 사랑의 역사가 이루어진다는 걸 믿어야 한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선한 영향력을 주는 사람을 데려갔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어떻게 하라 했어요?
교회에 알리라고 그랬어요.
일단은 교우들끼리의 선은 넘어선 거예요.
그 정도가 되면 교회에 알려라.
교회는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관례라든지 법에만 사로잡히지 말고 사랑을 가지고 판단해서 그 사람을 뉘우치게끔
권고를 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어요.
신자들끼리 송사가 붙을 때가 있죠?
어느 레지오 팀에 두 자매가 싸움이 나서 욕하고 난리가 났어요.
그리고 지금 둘이 아주 원수가 됐어요.
신부님 얘기를 할까 말까?
그런데 그 두 사람 때문에 성당이 풍비박산이 났어요.
그때는 사제가 나서야 합니다.
나서서 둘을 불러 공평하게 이쪽 얘기도 들어봐야 하고 이쪽 얘기도 들어봐야 해요.
들으면서 어떻게 이 관계를 회복시켜야 할지를 고민하면서 좋은 권고를 해야 하죠.


그런데 교회가 하는 권고마저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떻게 하라 그래요?
이방인이나 세리처럼 여겨라.
제적을 시켜야 한다는 뜻이에요.
교회의 가르침도 안 받으면 교회는 죄지은 형제에 대하여 형제적인 충고할 책임은 있지만,
상대가 그것을 끝내 거부할 때 교회 공동체의 일치와 단합을 위해서 그 형제를 제명 처분할 수 있는 것이 교회법이에요.
그렇지만 이런 경우라 하더라도 공동체는 그를 위하여 기도해야 해요
돌아온 탕자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교회는 기도해야 해요.
사람이 앞이 안 보이면 신부 말하는 것도 안 들어요.
아무리 붙들고 사제가 울면서 하소연해도 들은 척도 안 해요.
저도 그런 사람 많이 봤어요.
사제가 얘기해도 안 듣는데 당사자들끼리 대화가 되겠습니까? 안 돼요.
어느 때는 피붙이끼리도 이렇게 싸운단 말이에요.
유산 가지고 엄마 장례 치르고 그날 저녁에 모여 싸워요.
그 알량한 부좃돈 가지고서요.


우리는 그런 사람을 욕하고 비난하기는 쉬워도 기도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맞죠?
교회 안에서 한 사람이 잘못되는 것은 어찌 보면 모든 공동체 구성원의 책임이기 때문입니다.
자식의 잘못은 엄밀히 따지면 그 부모에게 책임이 있죠.
공동체 구성원의 잘못은 엄밀히 따지면 사제에게 책임이 있어요.
더 나아가서는 교회 공동체 각각 모두 책임이 다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비록 교회의 권고도 듣지 않고 교회를 벗어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기도해줘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는 겁니다.


사랑으로써 관용으로써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게끔 새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기술을 오늘 예수님은 가르쳐주고 계세요.
오늘 세 가지였어요.
첫 번째 카톡 보내라고요.
가능한 한 찾아가라 이거죠.
그 대신 찾아가기 전에 뭘 준비해야 한다고요?
정말 피눈물 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주님 저 정말 두렵습니다. 내일 만나는 날인데 저도 어떻게 할지 모르겠어요. 저 인간이 나한테 준 상처 생각만 하면.
정말 저 좀 잡아주세요. 그리고 제 입에서 지혜로운 말이 나오게 좀 도와주세요.
그리고 모욕적인 말을 듣더라도 참게 인내심을 주세요.’
이 두 개(기도와 인내)가 선행이 돼야만 만나러 갈 수 있는 거예요.


그렇게 준비해서 했는데도 요지부동이야.
그러면 이건 내가 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구나 파악하고 지혜로운 사람 한둘을 데리고 가라.
화해의 분위기를 만들게끔 도움을 주는 사람들에게 요청하라는 얘기죠.


그래도 안 됐을 때는 어떡하라고요?
사제에게 알리라는 얘기예요.
물론 사제가 직접 만날 수도 있지만, 신부님이 총회장께 ‘회장님 우리 본당에 지금 이런 일인데 아세요?
내가 직접 불러드리면 부담스러워하니깐 일단 회장님이 식사 자리 한번 하면서 먼저 한번 얘기 좀 해보세요.’ 부탁드릴 수 있죠.
이렇게 사제는 지혜롭게 또 단계를 밟아야 해요.
만일 회장님이 본인 말도 안 듣는다고 하면, 그땐 사제가 불러요.
양쪽 얘기 다 들어보죠.
그런데도 ‘신부님, 차라리 신앙 포기할게요. 이런 말 하지 마세요.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요.’
이렇게 사제의 권고를 안 들을 때는 방법이 없어.
이방인이나 세리처럼 ‘알겠다, 그렇지만 당신 교적은 그대로 있다. 언제라도 들어올 길은 있다.
하느님은 집 나간 작은 아들 기다리듯이 당신 기다릴 겁니다. 그리고 우리 신자들 당신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할 겁니다.’
그 마지막 한마디가 끈이 돼서 언젠가는 돌아와 눈물 펑펑 흘리면서 성사를 본단 말이야.


남의 잘못을 일깨워주는 것은 단순한 단죄와 심판이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하느님과 이웃 사랑이 어떤 것이냐 하는 것을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단계별로 알려주고 계세요.
그래서 아무튼 우리들이 누군가와 그 관계성이 깨질 때가 많죠.
정말 친했던 사람과 말 한마디에 앙금이 자꾸 쌓여.
‘마리아야, 나 돈 만 원만 빌려줘.’
그래서 빌려주었는데, 이 인간이 한 달이 돼도 안 갚고 두 달이 돼도 안 갚고 1년이 돼도 안 갚아.
일 년이 지나서 말하려니 쪽팔리고, 만 원을 도로 달라고 하려니 쪽팔리고.
사람은요, 별거 아닌 것에 상처를 받아요. 그렇죠?
지금 생각해 보세요.
돈 꾸고 안 준 거 있나 생각해 보시란 말이에요.
지금 돈 꿔준 사람은 잠을 못 자요.
인간과의 관계가 원만해야만 하느님과의 관계도 쉽게 접근이 돼요.
예수님이 그랬잖아요.
‘너 재단에 예물 드리러 올 때 너와 다툰 사람이 생각나거든 가서 먼저 화해하고 예물 드려. 그게 순서야. 그죠?’


그래서 신앙은 관계성이에요.
나와 나 자신과의 관계성나와 이웃과의 관계성나와 하느님과의 관계성.
이 세 개 중에서 어느 것 하나가 망가지면 세 개 모두를 제대로 못 해요.
많이 체험하셨죠?


예수님의 이 지혜로운 말씀은 어떻게 보면 관계성이 깨어졌을 때 이것을 어떻게 회복하느냐 하는 그 방법을 알려주시는 것 같아요.
성경은 그런 얘기 참 많죠.
그래서 신앙이 없는 심리학자들도 성경을 읽어요. 필독서예요.
그러면서 딱 무릎을 치는 게 ‘이 세상에 제일 위대한 심리학자가 예수님이었다.’
예를 들어서요.
사람은 귀로 들어야만 뭔가 확신이 들어요.
개신교 교인들은 죄를 지으면 어떻게 해요?
골방에 들어가서 울고불고 통성기도하고 그러잖아요.
그러면 속은 시원해, 그 당시에는.
그런데 세월이 지날수록 그때 내가 울고불고하면서 죄 뉘우친 게 진짜 사함을 받았나 하는 개런티, 보증이 없어요.
그때부터 헷갈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 천주교는 어때요?
고해소에 사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같이 계시잖아.
사제의 입을 빌려서 감각적으로 그 귀에다가 확신을 주는 거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베드로. 네 죄를 사하노라.’
그럼 우리는 믿어요.
심리학자들이 천주교의 고백 성사를 보면서 심리학적인 견지에서 볼 때 예수님은 위대한 심리학자라고 해요.
사람은 무언가 감각적으로 확신이 서야만 그것을 신뢰할 수 있는데, 예수님은 그것까지도 생각하셔서 오늘 그랬잖아요.
너희들이 이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여 있을 것이고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
오늘 복음 마지막에 나오죠.


또 내가 늘 피정 때 얘기하지만 ‘예수님은 어떻게 이렇게 섬세하실까?’
예수님은 도매금으로 치유하신 적 없어요.
그 바쁜 와중에 벌떼처럼 군중이 달려들어도 머리에 손을 얹어 그 사람한테 필요한 것을 위해 기도하셨죠.
정치인들 연예인처럼 그냥 사람한테 휩싸여 손잡아주는 그런 것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오늘 여러분들 여기 부를 때 예수님께서 이미 다 계획을 갖고 계셨어요.
그렇죠?
그리고 말은 안 하고 할 수도 없는 많은 어려움은 사람마다 다 있어요.
아까 얘기했지만 내가 나 자신을 사랑 못 하는 경우도 많고, 또 내가 이웃을 사랑하지 못해서 힘든 경우도 많고,
또 그러다 보니 세례받은 지는 수십 년이 됐는데도 하느님과의 관계성도 굳지를 않아요.
맨날 다람쥐가 자기 발톱 달며 쳇바퀴만 돌리듯이 나가지도 못하죠.
결국 그 안에만 있고 계속 완덕의 길로 나아가지는 못하게 돼요.
여기 부르신 이유는 완덕의 길로 여러분들을 내보내기 위해서 불러주셨다는 것 믿으시고요.
그리고 이따 여러분들이 식사하시고 난 다음에 음악 피정할 때까지 조금 시간이 있을 거예요.
그때 여기 올라오셔서 성인 유해 앞에서 기도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한마디로 이곳은 많은 성인들이 사시기 때문에 넓은 의미의 거룩한 장소예요.
교회가 공식적으로 선포 같은 것은 할 수가 없잖아.
하지만 여러분들이 얼마든지 이곳에서 머물면서 영과 육이 치유돼서 돌아가실 수 있는 장소입니다.
그리고 내가 유튜브 때도 얘기했지만 저 정원은 나 혼자 보려고 만든 게 아니라 했죠.
신자들 때문에 만든 거예요.
그렇기에 누구 눈치 볼 필요도 없고, 내 허락받을 필요도 없고, 와서 지나다 들려도 되고 얼마든지 오실 수 있는 장소입니다.
또 그러다 운이 좋으면 풀 뽑고 있는 나랑 만나면 내가 묻겠죠.
‘어디서 오셨수? 차 한잔 드시고 가셔’
지금도 꽤 많은 분들이 다녀가요.
식탁에서 내다보면 참 이쁘게 기도하는 분들도 많죠.
너무 이쁘게 기도하던 부부가 있었는데 불러서 차도 드리고 안수도 드리고 선물도 드렸죠.
기대도 못 했던 일이라 하며 두 분이 우시는 거예요.
저는 원로 사제가 이런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제 본당 공동체는 맡지 않지만, 더 자유로워졌죠.
은퇴하기 전에는 서운동 본당 신자 신부였지만, 지금은 느티 본당 신부가 됐잖아요.
유튜브 본당 신부가 됐잖아. 그죠?
그러니까는 이제 저는 여러분들 모두의 본당 신부가 된 거예요.
그래서 굉장히 좀 자유로워요.
그전 본당에 있을 때 순례자가 오면 우리 신자들이 서운해하지는 않을까,
신부님은 외부 사람하고만 만난다고 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죠.
또 실제로 감곡에서 이 부분을 서운해하는 사람들도 많았죠.
그렇다고 내가 사목을 안 한 것도 아니었거든요.
열심히 했어요.
지금은 그런 것이 없어 저는 좀 자유로워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은퇴도 한 2년 당겨 한 이유도 그래요.
‘이제는 내가 교구에 할 만큼 일은 다 했다.
이제 남은 생을 전국에 있는 신자들과 해외 신자들을 위한 장소를 최선을 다해 좀 준비해 보자.’


여러분들, 영원에 영원을 더하여 사랑합니다.


2023년 연중 제23주일 (9/10)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출처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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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바람의노래 | 작성시간 23.09.15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3.09.15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아스피린 | 작성시간 23.09.15 좋은말씀 감사합니다~아멘~
  • 작성자모니카3 | 작성시간 23.09.15 아멘 ~
    좋은말씀 감사합니다~~♡
  • 작성자창수선화 | 작성시간 23.09.16 아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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