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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웅열 신부 강론

너의 것이 정말 있느냐?/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작성자하늘호수♡마리아|작성시간23.12.30|조회수152 목록 댓글 2

■요한 1,1-5.9-14

+찬미 예수님

성탄 축하드립니다.

느티나무 카페 운영자들과 함께 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운영자들과는 대축일에는 항상 같이 모여 미사 드리고 식사하는 것이 관례입니다.

또 오늘 미사에는 강론 후 네 사람의 영세자가 나오게 될 겁니다.

유튜브 방송 들으시는 분들도 이 네 사람이 세례받았을 때의 초심을 잃지 않고 항구하게 신앙생활 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를 또한 부탁드리겠습니다.

 

제가 강론 때 질문을 좀 많이 하죠.

그래서 사람들이 좀 긴장을 많이 하는데 한번 자원에서 ‘저한테 이번엔 질문해 보세요.’ 하실 분 한번 손 들어보세요.

그분한테 질문할게요.

밑져야 본전인데 한번 손 들어보지, 용감한 사람 없어요?

그러면 오늘 두 자매의 대모가 되는 전라 방장에게 질문할게요.

가타리나가 살아가면서 정말 내 것으로 생각한 것이 뭐가 있어요?

‘저는 신앙이라고 생각합니다.’

레오나, 똑같은 질문. 레오나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있는 거 혹시 있으세요?

‘저는 없습니다’.

서울 방장은?

‘저는 제 몸은 제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정답이 아닌 것 같아요.’

아니 이렇게 거룩한 말만 하려고 애를 쓰지 말고, 왜 없어? 살펴보면 내 것이 있겠지. 왜 없겠어요?

다 성인 성녀들만 왔네.

여러분들의 말이 진심이라면 그동안 그래도 많이 컸다는 얘기고, 많이 성장했다는 얘기죠.

세례받을 우리 마리스텔라는?

‘없습니다.’

세례받기 전부터 이렇게 성녀가 됐으니 큰일 났네. 조만간에 승천하게 생겼어요.

 

여러분이 나한테 한번 질문해 봐요.

나도 똑같은 질문을 나한테 해봤어요.

과연 내 것이 있을까?’

난 많아. 꽤 많습디다.

일단 내가 살아온 흔적은 내 거예요. 그렇죠?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잖아.

그 흔적이 정말 실패를 수십 번 했고 늪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하여도,

적어도 내가 살아온 긴 세월 동안 내 삶은 남의 것이 아니라 내 것이죠.

적어도 여러분은 그렇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해요.

내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면 하느님이 슬퍼하실 겁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너 살아온 길에 내가 한 번도 눈을 떼지 않고 너를 지켜봤는데어떻게 네 삶이 네 것이 아니라니 무슨 얘기냐?

 

우리에게 자유 의지 주셨잖아요.

제가 요즘 아담과 하와에서 자유 의지에 대해 강론하고 있죠.

지난 마지막 강론 때 내 꼬마 때부터 들었던 의문이 세 가지 있었다고 그랬죠.

첫 번째 뭐예요? 왜 그 나무 두 그루를 거기다 심어 놓았느냐?

두 번째 도대체 그 나무 열매는 누가 먹으려고 심은 것인가?

세 번째 아예 애초부터 순명하는 마음만 줬으면 하느님도 복잡하지 않고, 인간들도 헷갈리지 않았을 텐데,

왜 거부할 수 있는 마음도 주었는가?

 

자유 의지.

내가 살아온 내 삶의 궤적은 분명히 내 것이죠.

그리고 그 삶의 궤적에 따라 주님 앞에 심판받을 거예요.

그래서 나중에 내 멋대로 살 다 ‘주님이 그렇게 살라고 시켰으니까 살았죠,

그리고 그놈만 없었으면 내가 훨씬 더 예쁘게 살았을 텐데, 그놈 때문에 내 삶이 이렇게 많이 망가졌어요.’ 하고 핑계 못 대요.

내가 살아온 것이기 때문에 그것만큼은 내 거예요.

 

또 뭐가 있을까?

십자가? 그렇지. 그것은 내 삶의 여정에 들어가 있는 것이죠.

내 오토바이가 내 건가?

아니야, 나 죽거나 저것도 더 늙어서 타기 어려우면 처분해야지. 제 것 아니죠.

내가 기르고 있는 고양이들이 내 건가?

쟤네들이랑도 언젠가 헤어져야 하잖아.

이제껏 수십 마리의 반려견이랑 살다가 눈물 흘리면서도 땅에다 묻었단 말이에요.

그래서 결론은 그거였어요.

내가 살아온 내 인생만 내 거다.

그리고 머리끝에서 발가락까지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강생의 신비가 뭐예요? 내려놓는 거죠.

하느님이 천상 하늘 그 좋은 데서 계시다가 냄새 풀풀 나는 마구간에 왜 내려오셨겠습니까?

성자께서 내려올 때부터, 성자는 하느님이셨지만 이제부터 내 지상의 삶 동안에 내 것은 아무것도 없다,

즉 모든 것을 내려놓으셨죠. 동의하시죠?

그것이 강생의 신비예요. 제가 그런 얘기 가끔 하죠.

하느님이 하늘에 앉아서 ‘너희들 나 있는 데까지 올라와, 여기 좋다. 여기 천국이란다.’ 하셨다면 누가 올라갈 수 있겠습니까?

처음에는 그렇게 했었어요. 그래서 십계명을 줬잖아.

‘얘들아, 십계명은 천국에 올라오는 지름길이야, 이렇게 열 가지 길만 잘 따라오면 천국에 올 수 있단다.’

그런데 그 십계명이 나중에는 수천 가지로 늘어나다 보니 지름길은 없어져 버린 거죠.

그리고 샛길로만 사람들이 빠져.

율법주의로 빠지고 형식주의로 빠지고 하느님의 사랑은 없어지고.

 

성탄절 때 난 늘 이 생각을 해요. ‘내 것이 무엇이 있을까?’

이 집? 힐링 가든? 내 것이 없어요. 그리고 이제 나이가 들면 세월에 가속이 붙죠.

얼마나 빨리 세월이 가는지 몰라.

내가 옛날에 70이 되리라고 생각했겠어요? 꿈에도 꿔보지 못했어.

마음은 아직도 30대고, 아직도 신학교에서 뛰노는 신학생이야.

마음은 젊은데 몸이 여기저기 문제 생기고, 손도 야무지더니 이제 설거지할 때 자꾸 놓쳐요.

점점 무뎌지는 손.

외적으로 보이는 것 중에는 내 것은 점점 없다는 것을 우리들은 깨닫게 돼요.

 

하느님이 당신 것을 다 포기했을 때 하느님의 마음이 어땠을까?

내려오셨을 때 외양간에서 아무 힘도 없는 아기의 모양으로 이 세상에 나오셨을 때, 그분의 심정이 어땠을까?

인간의 모습, 얼마나 약해 빠진 게 인간이에요?

 

내가 언젠가 얘기했죠.

사람 손가락이 10개인 이유는?

10달 동안 뱃속에서 엄마의 보호를 받고 엄마의 살을 찢고 나온 것을 생각하라.

그래서 열 달이 10달을 상징하는 손가락이 10개예요.

손가락, 발가락 합쳐서 20개예요. 왜 20개라고 그랬어요?

사람 구실 하려면 20년 걸리고, 그때까지의 부모의 은혜, 또 하느님의 은혜를 잊어선 안 된다.

얼굴에 구멍이 총 몇 개예요? 7개. 왜요?

뒤통수에도 눈을 달아주면 어떤 놈이 손가락질해도 바로 알아들을 수 있는데요.

성령 칠은이 들어가는 장소가 바로 눈, 코, 입, 귀인 것이죠.

우리의 눈으로 성령이 들어오셔야 하고, 우리의 귀로 성령이 들어오셔야 하고,

우리의 입으로, 우리의 코로 성령이 들어가시라고 주신 것이죠.

 

성모님은 어떤 태교를 하셨을까?

인간적으로 아기 예수님을 잉태 후 친척 엘리사벳을 먼 길을 걸어서 찾아갔었죠.

‘성령의 힘으로 잉태된 내 배 속의 아이가 정말 메시아일까?’

성모님의 당시 나이를 대략 14살에서 16살 정도로 보는데, 어린 소녀로서는 정말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을 거예요.

그래서 믿는 구석은 있었지만, 인간적으로는 성모님은 되게 불안하셨을 거예요.

성모님이 이 인간적으로 불안을 이겨내는 기도는 딱 하나밖에 없어, ‘순명의 기도’

즉 한마디로 기도의 태교를 하셨을 것이다.

가장 아름다운 태교는 내 태 안에 있는 생명을 주신 주인이신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이죠.

그럼, 그 기도의 내용은 뭐였습니까?

피앗 볼룬따스 뚜아(Fiat Voluntas Tua), 당신의 뜻대로 하소서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저는 주님의 종이니 당신의 뜻대로 하소서 하는 이 기도를 우리들은 언제 해야 합니까?

영성체 후에 해야죠.

성체가 들어오면 내 안에 지금 예수님이 들어오신 거예요.

내 안에 예수님이 들어오셨기 때문에 또 하나의 성모 마리아가 되어 예수님을 잉태한 거예요.

잉태하셨던 그 성모님의 입에서 나온 것이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당신의 뜻대로 하소서’라 기도했듯이,

영성체한 직후 우리 입에서 나와야 하는 기도는 바로 성모님이 잉태한 후 나왔던 그 기도를 해야 한다는 얘기죠.

 

우리 전라 방장은 필기시험은 합격했다고 들었어요.

실기는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지금 눈빛이 그전이랑 달라졌어요. 아주 자신이 흘러요.

그전에는 면허증 따라면 벌벌 떨고, 내 앞에서 각서 쓸 때 눈빛이 아닌데 내 말 듣기 잘했죠?

이렇게 하면 되는 건데, 세상 모든 사람이 다 하는 건데 왜 그렇게 겁먹고 못 했을까?

이제 면허 따고 운전하면 ‘초보 운전’이라고 붙이고 다닐 거죠.

내가 몇 가지 문구를 알려줄게요.

제일 흔한 게 ‘초보 운전’이죠.

또 이런 것도 있어요. ‘운전 시작 1일째입니다.’ ‘왕초보’

‘나는 이유 없이 브레이크를 밟습니다.’ ‘어 알아서 피하십시오.’

‘나는 옆을 못 봐요.’ ‘알아서 추월하세요.’

가장 성서적인 것도 있어요. 당신도 초보였던 시절이 있었답니다.’

뭔가 메시지가 강하죠?

누구나 다 초보 운전 시절이 있잖아.

올챙이 적 시절을 모르고 빵빵거리고.

 

태어난 아기 예수님은 인생의 초보자로 시작이 되셨죠.

우리 누구나 초보자 시절이 있어요.

앞에 앉은 이 네 사람도 잠시 후에 세례받고 나면 이제껏 살면서 지었던 죄와 원죄와 죄를 지으면 받아야 하는 벌까지도

깨끗이 사함을 받을 겁니다.

아기같이 오늘 새로 태어나는 날입니다.

아기 예수님이 아기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왔듯이, 네 사람 역시 이제껏 살았던 50살 60살 이런 것은 다 없어지고

이제 1살이 되는 거예요.

하느님 나이로 시작이 되는 거죠.

 

토마스는 몇 살이에요? 지금 두 살입니다.

그런데 왜 두 살이 이렇게 늙었냐?

저 형제는 세례받은 지 2년 됐거든요.

열심히 잘살고 있잖아.

우리는 누구나가 인생의 초보자 시절이 분명히 있습니다.

철없던 젊은 시절에 어른께 혼도 많이 났었고, 신입생 시절도 있었고 사회초년생으로도 실수도 많이 했죠.

그런데 올챙이 적 시절을 잃어버린 입 큰 개구리처럼 ‘내게는 그런 시절이 없었다.

나는 처음부터 전문가로 존재했었다’라는 착각하거나, 또 잘 모르거나 실수하는 사람들에게 다짜고짜 다그치고 화를 낸다면

얼마나 자기기만이고 자기모순입니까?

초보 운전하던 시절이 분명히 있었는데, 아무것도 몰라서 절절매던 시절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내 눈앞에 그런 사람을 보면 마치 자기는 옛날부터 프로였던 것처럼 그럴 때 많이 있죠.

까맣게 잃어버리고.

그래서 내가 아까 뭐라고 그랬어요? 내 것이 분명히 하나 있다고 그랬죠.

그게 뭐라고요? 내 살아온 삶의 길이에요.

신부로서 왜 실수한 적 없었겠습니다.

또 나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다 보니까 말은 주워 담을 수가 없어.

피정 끝나고 그다음 날 내가 녹음한 걸 들어보면 ‘이 말을 안 했어야 했는데, 말투가 사제답지 못했다.’

이런 것들로 가슴치고 후회하죠.

 

아기 예수님은 인성으로는 초보자로서 삶을 오늘 시작하십니다.

울며 보채는 핏덩어리 갓난아기의 모습을 보면서 누가 메시아의 모습을 찾아낼 수 있겠습니까?

내 앞에서 자주 나에게 상처 주는 저 사람의 모습에 내 옛날 초보자로서의 내 모습이 있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영원히 초보자일 수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강생의 신비입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인생을 우리도 살 수도 있다는 것을 늘 명심해야 합니다.

나에게 상처 주고 내가 용서할 수 없었던 그놈의 모습을 어떤 때 내가 그대로 살 때가 있어요.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그대로 보여줄 때가 있어요.

그리고 한편으로 나에게 상처 주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 저 사람이 지금은 저렇게 초보자처럼 앞뒤 모르고 살지만,

저 사람이 영원한 초보자로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그 사람을 대한다면

우리 용서의 폭이 더 커질 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교우 여러분,

아기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기쁨과 평화의 은혜를 주시기를 간절히 빕니다.

 

오늘 세례 받으시는 분들, 세례는 졸업식이 아니라 입학식입니다.

죽는 게 아니라 새로 태어나는 거죠, 맞죠?

가톨릭은 2천 년 묵은 나무예요.

그 2천 년이라고 하는 그 긴 세월 동안 수많은 역사가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은 예수님이 직접 세우시고 성령이 지켜주시는,

사도 신경에 나오는 하나이고 거룩하고 공변되고 사도로부터 이어 내려온 정통 교회의 신자가 된다는 것,

종갓집 자손이 된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세례받을 때 정말 깨끗한 눈처럼 죄의 사함을 받지만, 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살면서 죄를 지을 수밖에 없어요.

자비의 성사인 고해 성사를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죄를 지으면 미루지 말고 고해 성사를 보십시오.

그리고 고해 성사 때 죄를 고백 후 사제가 보속을 주더라도 고백소 안에서 사제가 주는 보속은 최소임을 생각하고

보속은 찾아서 하셔야 합니다.

그 보속의 내용은 희생이죠. 선행이죠. 착하게 열심히 사는 겁니다.

내 것을 나누면서 사는 겁니다.

 

여러분들 아까 물어볼 때마다 내 것은 아무것도 없다 분명히 그랬어요.

하지만 여러분들, 다 내 것인 것처럼 살아가잖아요.

지난 한 해 동안 벌어들인 수익 가운데서 얼마라도 정말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에게 자선을 베풀고 살았는가?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는 다 썼다면, 여러분 것 아니라면서요.

그러면 누구 것이라는 겁니까? 얘기해 보세요.

하느님 거잖아요. 맞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내가 이야기하죠.

‘내 것은 없다. 우리는 경영자다. 소유권은 하느님에게 있다.

슬기로운 청지기는 주인이 원하는 대로 주인이 원하는 방법으로 주인이 맡겨놓은 탈렌트를 써야 한다.

자기 것인 양 흥청망청 쓰다 주인이 돌아오면 호되게 질타를 받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이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을수록 정말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뭐냐?

젊었을 때는 마음대로 살았을 수 있습니다. 사는 것 자체가 힘이 들고 허덕이며 살 수 있죠.

그렇지만 나이가 들었을수록 이제는 우리의 시선을 주님이 나에게 주신 인생,

나 자신만을 위해서 살았다면 이제 남은 인생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살자.

나에게 허락하신 재물, 나와 내 가족을 위해서 살았다면,

이제부터는 그중 일부는 내가 조금 덜 먹더라도 정말 힘든 사람을 도와주면서 살자,

이런 마음이 들어가야 이게 아름다운 황혼의 모습이 아닐까.

지는 해는 아름답죠. 그죠? 아름다워야 해요.

 

오늘 세례받을 네 분, 예전에는 6개월 교리 후 시험도 보았죠.

그래서 2수, 3수는 보통이었어.

옛날에 할머니들은 글도 모르니 교리를 어떻게 외워?

손주가 얘기해 주는 걸 귀로 듣고 외우는 거야.

옛날 교리는 전부 다 문답식이었거든요.

사람이 무엇을 위하여 세상에 났느뇨?’

하느님을 알고 자기 영혼을 구령하기 위함이다.’

그것이 인간이 사는 목적이에요.

옛날 교리는 딱 부러졌어요.

지금은 풀이 해주는 설명식인데 오히려 더 몰라.

90대 할머니도 왜 인간이 사느냐 하면 바로 나왔죠.

하느님을 알아 공경하고 내 영혼을 구령하기 위함입니다.

더 할 것도 없고 뺄 것도 없이 아주 정확한 거죠.

요리 문답, 그것을 달달 외워야만 세례를 받았어요.

요즘 너무 쉽게 받기에 너무 쉽게 하느님을 배반할 수 있어요.

 

오늘 네 사람은 전 세계 신자들이 지켜보는 세례에요.

그리고 대부 대모는 형식상 대부 대모가 아니라, 내 대녀가 정말 하느님의 길로 잘 올라갈 수 있도록

내 목숨보다도 더 내 대자를 사랑해야 하고, 내 목숨보다도 내 대 대녀를 더 사랑해야 해요.

이제 갓 태어난 아기 예수님처럼 이제 새로 탄생하는 대녀 대자를 위해서 대부 대모들도 새로운 마음으로,

이름 석자만 대모라고 올려놓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대모 노릇을 해야죠.

그래서 언젠가 이 세상 떠나서 저세상에서도 아름다운 모습을 다시 만나야 할 것입니다.

아멘

 

2023년 주님 성탄 대축일 (12/25)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출처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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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바람의노래 | 작성시간 23.12.31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3.12.31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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