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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웅열 신부 강론

롯 이야기 1/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신부

작성자하늘호수♡마리아|작성시간24.02.19|조회수128 목록 댓글 4

+ 찬미 예수님

주님의 이름으로 평화를 빕니다.



명절 며칠간의 연휴 잘 보내셨죠?

오늘부터 우리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참 빨리 들어오죠.

해마다 사순절이 시작할 때마다 우리들은 많은 결심을 합니다.

그렇지만 많은 결심하지 마시고 그냥 한 가지만 결심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만큼은 내가 꼭 이번 사순절 동안에 꼭 지키겠다.’

실현할 수 있는 것을 결심하십시오.

물론 그중에서 공통으로 우리 모두가 해야 할 것은 회개일 겁니다.

사순절에 회개치 않고 우리들이 부활할 수가 없는 거지요.



오늘 롯과 또 롯에 관계된 이야기들을 좀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창세기 11장 끝부터 믿음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아브라함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 아브라함의 등장부터 그 이하 창세기 마지막 장까지 사실은 특별히 다른 해설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평이하고도 극적인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19장을 중심으로 제 나름대로 소설적인 상상을 섞으며 ‘롯’이라는 인물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창세기 19장에 ‘롯이 때마침 성문께에 앉아 있다가’ 즉, 성문에 앉아 있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해 질 무렵 소돔의 ‘성문에 앉아 있었다.’.

그 당시 성문 앞에서는 상거래나 재판했었기에 성문에 아무나 앉을 수는 없었습니다.

또 성문 앞에는 경비병도 있었겠죠.

그래서 ‘성문에 앉을 수 있었다’라는 것은 롯이 소돔 성의 유력자 중 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겠죠.

힘 있는 자라는 말이죠.

그렇지만 성문에 앉아 있는 롯은 묘하게 불안을 느낍니다.



어둑어둑한 하늘은 짙은 황색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불안한 마음.

‘이 성에 어떤 이변이 생길 징조인가, 왜 하늘이 짙은 황색으로 물들었지?’

사실 롯의 이 불안한 마음은 이날 비롯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롯은 언젠가는 이 음탕한 소돔 성에 하느님의 심판이 내리리라 예감하고 있었죠.

그의 생각을 조소하듯 아이섀도를 바른 젊은 여자가 롯 앞으로 온몸을 흔들며 지나가고,

그 뒤에는 남자들끼리 서로 껴안고 입을 맞추면서 지나갑니다.

이때 당시의 소돔 성은 몇천 년이 지난 지금에도 ‘소돔니즘’이라는 말을 남길 정도로 남색이 많은 아주 음란한 성이었던 겁니다.

특히 동성연애자들의 시작이 바로 이 소돔에서 시작이 된 거였죠.

롯은 그러한 광경을 보면서 ‘소돔에 오지를 말 것을.’ 괴로운 듯이 중얼거립니다.



이때 롯은 문득 백부였던 아브라함이 생각납니다.

롯은 아브라함의 조카고 아브라함은 하느님에게 순종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롯에게는 이렇다 할 믿음은 없었지만 언제나 아브라함을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하느님이 아브라함에게 ‘네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장차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 하고 말씀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정든 땅을 뒤로 아내와 부리는 사람들을 거느리고 알지도 못하는 타국으로 떠납니다.

그때 롯은 아브라함을 따라서 같이 정든 땅을 떠나왔던 겁니다.

이처럼 롯은 아브라함을 우러러보며 따랐습니다.



창세기 12장 14절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이는 절세 미녀로 나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집트 땅에 들어오자, 아내를 누이동생이라고 속입니다.

왜냐하면 너무도 아리따운 사라이를 정직하게 자기 아내라고 하면,

이집트 남자들의 질투를 사서 자칫하면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었죠.

과연 이집트 왕은 사라이에게 마음을 빼앗겼고 아브라함에게서 아내를 넘겨받습니다.

그 대신에 많은 양과 소와 낙타, 그리고 남녀 노예를 선물로 받죠.

이 광경을 지켜봤던 롯은 이때만큼은 아브라함에게서 환멸을 느꼈을 겁니다.

‘뭐야? 훌륭한 믿음을 갖고 있는 백부라고 존경하고 있었더니.

자기 살려고 아내를 왕에게 바치는 저 남자가 과연 믿음이 있는 사람이란 말인가?’

신앙이 돈독하다고 하지만 결국 인간은 이렇게 추하고 약한 존재라고, 롯은 아브라함을 보고 생각한 겁니다.

동시에 롯은 자기 마음 안에 아주 안 좋은 생각, 어둠이 있다는 걸 알게 되지요.

백부의 아내인 사라이에게 자기 마음이 끌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집트 왕에게 팔려 가는 사라이를 생각하면서 한밤을 뜬눈으로 지새웠기 때문이지요.

한편, 사라이가 이집트 왕궁으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왕궁의 사람들은 한 사람도 남김없이 모두 심한 복통과 고열에 신음합니다.

17절에 ‘왕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이를 불러들인 벌로 온 가족과 함께 야훼께 무서운 재앙을 받았다’라고 나옵니다.

왜 이런 재앙이 내렸을까? 왕궁에 있던 사람들은 바로 눈치를 챈 겁니다.

모두가 아파서 신음하고 있는 가운데 단 한 사람, 사라이만이 건전하였던 겁니다.

그래서 이집트 왕 파라오는 사라이 앞에 꿇어 엎드려 외칩니다.

‘당신이 대체 누구이십니까?’

‘나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이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내라고요? 당신은 아브라함의 누이동생이 아니었습니까?’

아브라함의 누이동생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아내라는 얘기를 들은 이집트 왕 파라오는 겁에 질려

사라를 손가락 하나 건드리지도 않은 채 즉시 아브라함의 곁으로 돌려보냅니다.

많은 금화도 얹혀서 보냅니다.



아무튼 성문 앞에 앉아서 곰곰이 지나간 날을 생각해 보니, 그렇게 믿었던 백부 아브라함에게 정이 떨어진 것은

자기 아내를 누이동생으로 속여서 이집트 왕에게 바쳤던 것, 나중에는 금은보화까지 되돌려받은 것,

이런 것들이 아브라함에게 정이 떨어지게 된 계기라고 롯은 과거를 되씹어 봅니다.

롯은 점점 노랗게 물들어 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또 생각에 졌습니다.

이집트를 나와서 가나안 땅에 왔을 때 아브라함은 롯에게 말합니다.

‘요즘 나와 너의 목자들이 어째서 사이가 나쁘냐? 의가 더 상하지 않았을 때 헤어지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이렇게 아브라함이 롯에게 분가할 것을 얘기합니다.

아브라함의 식솔들이 롯의 식솔들과 자꾸 문제가 있는 원인을 사실 롯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 원인은 바로 롯에게 있다는 것을 롯 자신도 알고 있었죠.

아브라함을 바라보는 롯의 시선이 별로 좋지 않았기에 어느새 노예들에게도 반영된 거죠.

‘주인이 아브라함에 대해서 그전처럼 바라보는 눈빛이 다르다.’

뭔가 환멸을 느낀 눈빛이니 롯의 노예들도 아브라함의 노예를 우습게 보기 시작하면서 충돌이 생기기 시작했던 겁니다.

사실 롯은 고향을 떠나올 때보다 노예도 가축도 몇 배로 불어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아브라함의 덕분으로 큰 부자가 됐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사라이 사건 이후로

롯은 아브라함을 비판의 눈초리로 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 비판의 눈초리가 롯의 목자들에게도 그대로 투영됐던 거였죠.

이렇게 분가할 것을 제의받은 후 롯은 ‘그렇다면 말씀대로 떠나겠습니다.’

롯에게는 아까도 말했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죠.

사라이였습니다.

롯에게도 처자가 있었지만, 사라이를 볼 수 없게 된 것은 고통스러웠습니다.

아브라함은 롯에게 땅을 먼저 선택하라 합니다.

‘너와 나는 한 골육이 아니냐? 네 목자들과 내 목자들이 서로 다투어서야 되겠느냐?

네 앞에 얼마든지 땅이 있으니, 따로 나가서 살림을 차려라. 네가 왼쪽을 차지하면 나는 오른쪽을 가지겠고,

네가 오른쪽을 원하면 나는 왼쪽을 택하겠다.’

롯이 멀리 요르단 분지를 다 둘러보니, 소알에 이르기까지 마치 야훼의 동산같이, 이집트의 땅같이 물이 넉넉하였다.

그것은 야훼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의 모습이었다.

롯은 요르단 분지를 다 차지하기로 하고 그리로 옮겨갔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서로 헤어졌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살고, 롯은 요르단 분지에 있는 여러 도시에서 살다가 마침내 소돔으로 천막을 옮겼다.

그런데 소돔 사람들은 야훼께 못할 짓만 하는 아주 못된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13장 6절에서 12절에 아브라함과 롯이 갈라서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무리 온화한 아브라함이라도 옥토를 달라고 하다면 분명히 노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롯은 요르단 땅을 달라고 합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미소 지으며 롯의 손을 잡고 어떻게 했습니까?

‘행복하게 살아라. 어려운 일이 생기면 곧 말하도록 해라. 언제나 너를 위하여 빌고 있을 터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보내줍니다.

그때 롯은 아브라함의 그 모습에 이제껏 보지 못했던 경건함을 느낍니다.

롯은 깊이 감동해서 자기의 수치심을 느낍니다.

아브라함을 경멸했던 것, 또 숙모를 생각했던 것, 이런 것에 대한 깊은 수치심을 느낍니다.



교우 여러분들 저는 여기서 생각을 해봤습니다.

만일 내가 아브라함의 입장이라면 이같이 관대한 이별은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아브라함은 백부이면서 일가의 권력자였습니다.

더군다나 롯에게 이미 많은 가축과 노예, 그 밖의 모든 것을 나누어 주었던 겁니다.

그리고 롯은 장래에 대해서 염려할 것이 없었습니다.

내가 아브라함이라면 좋은 땅은 깡그리 내가 갖고 나쁜 땅을 롯에게 주었을 것입니다.

100평의 땅을 나눈다면 양지바른 쪽을 우선 내 것으로 차지하고 싶은 것이 우리들의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입으로만 좋은 땅을 택하라고 말하였지만, 내심으로 설마 좋은 땅을 독점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고,

정작 좋은 땅을 선택한 롯에게 ‘너 참 심보 사나운 놈이다. 내가 좋은 땅 차지하랬다고 해서 진짜 그렇게 알짜배기를 네가 갖니?

내가 이제껏 너한테 베풀었던 은혜를 그렇게 망각하냐? 너 앞으로 잘 되는지 내가 두고 보자.’

이렇게 욕질하고 이별하게 되지 않았을까?

대부분 사람이 이런 모습의 이별로 끝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하게 됩니다.

아무튼 그렇지만 아브라함은 평화스럽게 이별합니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평화스럽게 이별을 한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역시 그것은 아브라함의 밑바탕에 깔린 깊은 회개였습니다.

이집트에서 나 살자고 자기 아내 사라이를 이집트 왕에게 팔아먹은

타락한 자신의 신앙에 대한 엄한 회개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아내를 이집트 왕에게 팔려고 하였음에도 하느님은 이집트 왕 가족들을 괴질에 걸리게 하고,

사라이에게 손가락 하나 대지 못하게 할뿐더러, 많은 가축을 주도록 하는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했던 겁니다.

이러한 하느님 사랑의 두려움과 경외심을 느낀 아브라함은 그 후 모든 것을 하느님에게 맡기고 살려고 굳게 다짐하였을 겁니다.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는 아브라함의 믿음은 처음부터가 아니라 믿음의 성장을 통하여,

그리고 자기 아내를 팔아먹었던 고통스러운 죄로부터의 회개를 통하여 점점 더 깊어졌던 겁니다.



아무튼 이렇게 좋은 조건에서 아브라함과 이별하고 좋은 땅에 살게 된 롯을 기다리던 것은 뭐였습니까?

퇴폐한 소돔 성과 전쟁이었던 겁니다.

주변의 왕들은 소돔과 고모라의 재산, 식량, 여자, 노예들을 노략질하여 빼앗아 갔습니다.

이때 롯도 사로잡혔었고 정말 혼이 많이 났었습니다.

그런데 이때도 롯을 살려내고 재산도 여자도 노예도 적에게 빼앗아 돌려준 사람은 바로 백부였던 아브라함이었습니다.

롯은 지나간 일을 생각하면서 어디에서 우리 백부에게 저런 용기와 힘이 나왔을까?

아마 구조받으면서도 롯은 이상스럽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한때 파라오를 겁내면서 자기의 처음 누이동생이라고 말하였던 유약한 아브라함

그러나 자기에게 요르단의 좋은 땅을 몽땅 택하게 하고 한마디의 불평도 없었던 온유한 아브라함,

그리고 잡혀가는 나를 구하기 위해서 사나이다운 용기를 보여줬던 아브라함.

롯은 도저히 아브라함의 믿음의 깊이를 알 수가 없었던 겁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느님이 항상 자기와 함께 하신다고 믿고 굳게 살았기 때문에,

조카인 롯에게도 약점도 보인 적이 있었지만 믿음의 100%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겁니다.



여러분들 지금 제 이야기를 이해하시겠죠?

롯이 소돔 성 앞에 앉아 지난 일을 회상하는 이야기 속에 창세기 11장부터 그 이후의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여러 장의 이야기를 저는 롯의 회상을 통해 여러분에게 좀 쉽게 전개하고 있는 겁니다.

오늘 강론 롯의 이야기 일부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이야기를 정리하면 크게 몇 가지로 나눠집니다.

첫 번째로는 아브라함이 이집트로 들어가면서 자기가 죽을까 절세 미녀였던 사라이를 이집트 왕에게 팝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은 사라이의 손가락 하나 건드리지 않게끔 괴질을 돌게 해 이집트 왕이 정신을 차리게 합니다.

이때 그 모습을 지켜본 조카였던 롯은 대단히 큰 실망을 했다고 그랬습니다.

어떻게 자기 혼자 살자고 자기 아내를 저렇게 내줄 수가 있을까?

이때 롯의 마음에는 사라이에 대한 어른으로서의 걱정도 있었지만, 한 여자로서의 걱정이 같이 오는 어둠이 찾아듭니다.

나중에 이집트 왕이 아브라함 부인인 것을 알고 여러 가축과 금은보화를 덧붙여 내보내죠.

아무튼 롯의 백부에 대한 실망은 굉장히 컸습니다.



그 후에 중요한 얘기는 아브라함이 롯을 분가시키는 얘기가 나온다고 그랬습니다.

롯을 분가시킬 때 ‘네가 선택해라. 네가 오른쪽 가지면 내가 왼쪽 가질 것이다. 또 왼쪽 가지면 오른쪽 가지 것이다.’

여기서 롯과 아브라함의 마음은 사실 좀 달랐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관대할 수 있었던 것은 죄의식이었죠.

아내를 팔고 하느님에게 부끄러움을 수치를 당했다고 하는 마음에서 회개하는 마음으로

자기의 모습을 지켜봤던 롯에게 우선권을 줬던 겁니다.

롯은 백부가 아무 쪽이나 가지라고 해서 사실은 가져서는 안 되는 것이 아랫사람의 도리였지만,

롯은 옥토인 이집트 땅과 같이 물이 풍부한 요르단 평야를 전부 달라고 합니다.

아마 그때까지도 백부에 대한 미움 그리고 모멸감 같은 것이 롯에게는 있었습니다.

이러면 분명히 백부가 성을 낼 것이다, 화를 낼 것이다, 그리고 절대 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아무 조건 붙이지 않고 가장 좋은 땅 요르단 평야를 전부 내어줍니다.

이때 롯의 백부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바뀝니다.



그다음 롯은 요르단 평야를 거쳐서 소돔까지 갔다고 그랬죠.

소돔에다 천막을 쳤는데 그 소돔은 죄악 덩어리에다가 또 소돔에 있는 모든 재산을 약탈하려 주변 왕들이 공격합니다.

그때 롯도 끌려갔는데 어떻게 됐다고요?

아브라함이 조카를 살리기 위해서 자기의 부하들로 결사대를 보냅니다.

이렇게 위험을 무릅쓰고 자기를 구하려는 백부의 모습을 보고 롯은 완전히 무릎을 꿇습니다.

저분의 저 힘이 어디서 나왔을까?



지금 소돔 성문 앞에 앉아 지난 삶을 뒤돌아보는 롯의 기억 속 이야기들을 주욱 한 것입니다.

이제 성문 앞에 앉아 있다가 누구를 만납니다.

다음에는 소돔이 어떻게 멸망하는가, 또 인류 최초의 성범죄는 무엇인지 이야기하겠습니다.



사순절에 여러분들 결심, 서두 얘기했던 것처럼 많이 하지 마시고 실천이 가능한 것 하나만 하시면서

거룩한 사순절 시작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 하늘에 별만큼 사랑합니다.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이들에게 강복하소서.

아멘.



♣청주교구 원로 사목자 김웅열(느티나무) 신부
출처: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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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바람의노래 | 작성시간 24.02.20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4.02.20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1만두 | 작성시간 24.02.20 신부님, 감사드립니다. 아멘.
  • 작성자록은 | 작성시간 24.02.24 하늘호수♡마리아님 올려 주신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신부님께도 정리하여 올려주시는 호수님께도 많이 감사합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 이야기.3이 빠졌는데 수고 스럽지만
    찾아서 올려주신다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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