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김웅열 신부 강론

롯 이야기 3/3/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신부

작성자하늘호수♡마리아|작성시간24.02.29|조회수86 목록 댓글 4

+찬미 예수님
주님의 이름으로 평화를 빕니다.
 
창세기 중에서 롯의 이야기 세 번째면서 마지막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제 성서 강의를 들으면서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은 미리 읽어보는 것,
또 듣고 난 다음 다시 한번 읽으면서 들은 이야기를 직접 눈으로 성경을 통해 확인해 보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이야기 세 번째만 들으면 문맥이 끊어집니다. 주제의 1번부터 들으셔야 합니다.
예를 들어 오늘 같은 경우는 롯의 이야기 1편 2편을 들으시어야 물 흐르듯 이야기의 내용이 이어진다는 것을 명심하시고,
또 그렇게 해 주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지난번 시간에 롯과 그의 아내, 그리고 딸들이 소돔에서 탈출합니다.
원래 천사들은 저 앞에 보이는 산까지 가라고 했지만,
롯은 너무 힘들어 거기까지는 못 가고 앞에 보이는 도시 소알이라 부르는 도시로 피신하겠다고 하죠.
아무튼 천사들은 그 성은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한 다음 그 성으로 피신하는 것을 허락합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롯의 부인은 소돔에 두고 온 여러 가지 재산이 생각나 순명하지 않고 뒤를 돌아다보다 소금 기둥이 됩니다.
악이 지배하고 있을 때 내가 누렸던 여러 가지와 소유한 것들에 자꾸 집착하다 보면
결국에는 롯의 아내처럼 탈출하지 못하고 소금 기둥이 된다,
그래서 악으로부터 도망칠 때는 제일 가벼운 몸으로 도망쳐야 한다는 것까지 지난 시간에 이야기했습니다.
 
아무튼 롯과 그의 딸들은 무사히 소알 성에 닿았습니다.
‘소알’이라고 하는 말은 ‘작다.’ 그 뜻이지요.
그들이 소알 성에 다다르자, 굉장한 땅울림과 굉음이 울리고 소돔과 고모라는 유황불에 의해 일순간에 멸망합니다.
실제로 이렇게 멸망 당했던 소돔과 고모라는 지금 소금 바다, 사해 바닥에 깔려 있다 합니다.
지난날 백부인 아브라함이 원하는 땅을 가지라 했을 때 롯은 요르단 평야를 선택했습니다.
보기에 좋다고 생각된 지난날 롯이 선택했던 그 들판은 이같이 소멸하고 만 겁니다.
인간의 눈은 어떻게 그리 참된 선을 볼 줄 모르는 불확실한 것일까?
롯은 가장 좋은 들판을 자기 눈으로 보고 그 들판을 선택했지만, 그 들판은 일순간 소금 바다가 돼버린 겁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불의 심판을 받을 때 아브라함은 아득히 먼 들판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았다고 성경에 나옵니다.
오늘 어떻게 보면 제일 중요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왜 롯은 구원받았는가?
소돔과 고모라에 롯보다 더 신앙이 깊은 사람은 없었던가, 왜 롯만 이렇게 특별히 선택받았는가에 대한 답이 성서에 나옵니다.
19장 29절에 이런 말이 나오죠.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을 기억하셨다. 그래서 롯이 살고 있던 그 도시를 뒤엎으시면서도 롯을 파멸에서 건져주셨던 것이다.’
이 성서 구절을 보면 결코 롯이 의로워서도 아니고 또 그의 믿음이 좋았기 때문도 아닌 것으로 나옵니다.
그가 구원받았던 것은 아브라함의 신앙과 아브라함의 기도를 하느님께서 기억해 주셨기 때문이었던 겁니다.
신앙이 돈독한 사람의 기도 힘은 다른 사람을 구원해 줄 수가 있습니다.
저도 긴 사제생활을 살면서 내가 이제껏 이렇게 사제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사람이 저를 기억하고
하느님께 또 성모님께 저를 지켜달라고 기도했던 그 힘 때문이라고 하는 것을 절절히 느끼고 삽니다.
많은 분의 기도로 내가 지탱되고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늘 실감하며 감사하고 있지요.
흔들리다가도 ‘지금, 이 순간에도 묵주를 들고 나를 위해 기도하는 할머니가 계시겠지?’,
중심을 못 잡고 헤매다가도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수많은 사람의 기도 응원을 들으면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겁니다.
하느님께서 롯을 구원해 주셨던 것은 결국에는 롯 자신 때문이 아니라 아브라함 때문이었다는 거였죠.
그러면 롯은 그렇게 알고 있었는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어찌 보면 이 아브라함과 롯의 관계가 그리스도와 우리들의 관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얼핏 하게 됩니다.
여러분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롯은 아무튼 일단 소알 성으로 피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두 딸을 데리고 산중으로 들어갑니다.
여기에서 롯의 불신앙을 여실히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천사가 산으로 도망가라고 명했음에도 롯은 핑계를 대면서 성으로 도망을 쳤습니다.
그때 천사는 분명히 그 성은 멸하지 않으리라는 약속했는데도, 롯은 다시 그 성을 나와서 산으로 들어가 버리고 만 겁니다.
어쩌면 이렇게 불순종한 불신앙의 롯일까?
롯은 왜 소알 성에 살지 못했을까?
아마 그것은 롯의 오만이 재난을 부른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좀 전에 얘기했듯 롯이 잘나서가 아니라 아브라함의 신앙에 의해 롯의 일가는 구원받았죠.
그렇지만 롯은 절대로 그렇게 생각을 안 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소돔 성에서 가장 정직한 인간이기 때문에 구원받았다고 생각했던 거지요.
이런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작은 소알 성에 와서 큰소리를 쳤던 겁니다.
오만한 롯을 보는 소알 성 사람들은 반감을 보였습니다.
‘저놈 뭐야? 저 혼자만 잘났다고, 딴 놈들은 버려두고 혼자 도망쳐 온 인정머리 없는 놈이다.’
이렇게 여기저기서 소알 사람들은 쑥덕거렸습니다.
재난을 피해서 소알 성으로 들어왔으면 겸손해야지요.
그리고 소알 사람들에게 좋은 평을 들어야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렇지만 롯은 소돔과 고모라에서 나 혼자만이 의인이었기 때문에 하느님은 나만 특별히 선택해서 살려줬다고 하면서
아주 교만에 가득 찬 모습을 보였던 겁니다.
그러니 소알 사람들의 눈에 롯이 이쁘게 보일 리가 없었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롯은 소아 사람들의 비위를 긁어댑니다.
‘이 사람들아, 원래 이 소알도 멸망될 뻔했어. 그렇지만 내가 천사에게 부탁해서 무사한 거여 나한테 고마워해야지.’
이렇게 교만을 떠는 롯에게서 사람들은 차츰차츰 멀어져 갑니다.
그리고 떨어져 나갑니다.
롯도 소알 성의 은인인 자신를 업신여기는 소알 성 사람들과 서먹서먹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롯은 소알 성이 싫어졌던 겁니다.
‘나 같은 의인을 박해하는 이런 인간들과 살고 있으면 이 소알도 언젠가는 소돔처럼 멸망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롯은 점점 소외되고, 또 그런 날들이 길어질수록 견딜 수 없게 된 거죠.
그리고 있을지도 모를 소알 성 멸망의 공포를 느끼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롯은 길을 가다 가끔 땅에다 귀를 들이대면서 기억 속에 남았던 소돔 멸망 그날의 그 땅울림을 찾아보곤 한 겁니다.
그리고 땅이 울린다고 소알 사람들에게 소리쳤죠.
소알 사람들은 모두 비웃었습니다.
실제로 땅에 울린 것이 아니라 사실은 롯의 귀울림이었던 것이었죠.
상상 속의 울림이었던 겁니다.
그렇지만 롯은 소알도 소돔처럼 언젠가는 망한다고 믿어버리고 맙니다.
천사는 분명히 얘기했죠. ‘소알 성은 내가 멸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약속한 천사의 말을 롯은 믿지 않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어느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두 딸을 성급히 깨웁니다.
이 성도 멸망한다고 외치자 두 딸은 당황해서 뛰어 일어납니다.
두 딸도 소돔의 멸망을 경험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말을 믿었습니다.
딸들에게도 이 성은 살기 좋은 곳이 아니었던 겁니다.
백안시당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딸들을 데리고 롯은 산중으로 도망을 옵니다.
비로소 롯은 안심합니다.
소알 성은 멸하지 않을 것이라 했던 천사의 말을 롯은 깨끗이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산에 들어와서 행복했는가?
산 중에 생활도 세 사람은 행복하질 않았습니다.
물론 롯은 아침, 저녁 신에게 빌고 사냥을 나갑니다.
그렇지만 늘 마음을 졸였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허전했습니다.
롯은 사냥한 짐승을 신에게 바칠 장소를 살폈죠.
드디어 그는 큰 바위 앞에 제물을 바치게 됩니다.
그러다가 그 바위가 그의 신의 몸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이래서 세 사람의 우상숭배가 시작됩니다.
이렇게 우상숭배에 빠지면서 두 딸은 완전히 신앙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그녀들은 나무 열매나 과실로 술을 빚어서 아버지 롯에게 먹게 합니다.
그리고 성서에 나오는 대로 ‘산속에서 살다가 우리 시집도 못 가고, 처녀 귀신 되겠다.’ 하면서 근친상간을 생각합니다.
 
아버지를 술에 잔뜩 취하게 하고 큰 딸이 들어가서 아버지의 씨를 받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날은 둘째 딸이 또 아버지에게 술을 먹여서 아버지의 씨를 받죠.
참으로 말하기도 남사스러운 얘기들이 롯과 딸 사이에 일어난 겁니다.
어쩌면 이 성에 대한 문란은 소돔에서 이미 딸들은 어릴 때부터 보았던 일일 겁니다.
뒷집에 있는 아는 언니가 자기 아버지랑 하룻밤을 자고 나오는 것을 봤을 수도 있고요.
아무튼 성의 타락에 마지막까지 간 도시가 소돔과 고모라였기 때문에,
그곳에서부터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란 딸들은 아버지의 씨를 받는 것이 죄가 아니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씨를 남겨야겠다고는 절박한 마음보다는 결국에는 음란 마귀에 빠진 거죠.
음탕하게 이를 데 없는 겁니다.
자손을 만들어야겠다는 사명감보다는 결국에는 음란이었습니다.
우상숭배에 빠져서 그 딸들은 아버지를 강간합니다.
근친상간의 수치스러운 관계에 빠지고 맙니다.
이렇게 해서 큰딸이 낳은 아들은 모압 족속의 조상이 되고요.
작은딸이 낳은 아들은 암몬 족속의 조상이 되었다고 성경에는 전해집니다.
 
성경을 거슬러 올라가서 안타까운 것이 있다면, 롯이 천사의 말을 믿고 겸손한 마음으로 소알 성에 살면서
더욱 하느님을 경외하였다면, 아마 아브라함의 신앙에 가까워졌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사실 롯이 소돔의 멸망에서 구원된 것은 롯이 회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던 겁니다.
그러나 그는 모처럼의 은혜와 구원의 기회를 화로 바꾸어 버리고 맙니다.
어쩌면 이 롯의 모습은 우리들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우리들은 매일 여러 사람을 만나고, 또는 여러 사건 생활을 통해서 하느님의 큰 은총과 때로는 경고를 받고 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나날을 허무하게 보내고 또는 이일 저일 고민하다가,
뉘우치고 새 출발 할 기회와 하느님 앞에 공손하게 엎드리는 기회를 무모하게 잃어버리고 말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인간은 하느님을 떠나 사람을 떠나 혼자 거룩하고 즐겁게 살게 되어 있지 않는 존재입니다.
그렇게끔 하느님이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하느님을 떠나거나 사람을 떠나서 나는 혼자서 거룩하게 기쁘게 살 수 있다?
이건 착각입니다.
인간(人間)이라고 하는 한자는 ‘사람의 사이’라고 써집니다.
우리들은 롯과 같이 자기만 안전해지려고 혼자 산에 들어가 있는 그러한 상태는 아닐까?
친교 생활은 전혀 하지 않고‘우리 성당에 나만큼 거룩한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우리 성당에 나만큼 기도 많이 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본당 활동 필요 없어. 해 봐야 수준들도 낮고, 또 괜히 잘못하면 내가 상처받을 수도 있어’
‘내 존재를 진정으로 알아주는 사람이 우리 성당에는 없어’
이런 식으로 담을 싸고 살아가지 않는가?
우리도 이웃을 멀리하고 사랑의 마음을 잃어버렸다면 롯의 생활과 같은 것이 될 겁니다.
 
롯의 이야기를 하면서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생각은 이겁니다.
아브라함같이 위대한 신앙의 위인도 자기의 조카 롯을 결국은 하느님께 인도하지 못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사실은 어찌 보면 우리에게도 다소 위안을 줍니다.
여러분들은 성당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직책을 맡고 다른 사람 많이 전교하는데도 불구하고,
내 집 식구들을 전교 못 할 때가 있지요.
자기 가족을 하느님 길로 이끄는 것이 제일 힘듭니다.
자기 피붙이 구원시키는 것이 가장 힘듭니다.
아브라함 같은 사람도 그토록 롯을 살리기 위해서 하느님에게도 매달리고 애썼지만,
결국 롯의 최후는 딸과 간음한 술주정뱅이로 끝나고 맙니다.
십자가의 길에서 예수님이 세 번 넘어지셨다는 것이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되듯이,
하느님이 넘어지셨는데 당연히 우리도 넘어질 수 있다고 하는 위로가 되듯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자기의 피붙이인 조카 롯을 그토록 잘 되는 방향으로 이끌려고 애썼건만,
롯과 그의 딸들은 하느님을 멀리하고 산속에 소돔과 고모라라는 도시를 다시 한번 만든 겁니다.
롯의 이 모습을 보면서 우리들은 많은 것을 느끼게 됩니다.
 
다음 시간에는 아브라함의 신앙에 대해서 같이 묵상하고자 합니다.
여러분들 롯의 이야기 1, 2, 3편을 다시 1편부터 한번 쭉 한번 들어보시면
롯의 이야기가 전하고 있는 영적 메시지가 무엇인지 여러분들이 정리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머릿속에만 정리하다 보면 잊어버리죠.
노트에 정리해 두시든지, 성서 책 여백에라도 깨알처럼 써놓으시면 여러분 것이 됩니다.
 
여러분들 영원에 영원을 더하여 사랑합니다.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이들에게 강복하소서.
아멘.
 
청주교구 원로 사목자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출처: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에서)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바람의노래 | 작성시간 24.03.01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1만두 | 작성시간 24.03.01 신부님, 감사드립니다.아멘.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4.03.01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도마 철 | 작성시간 24.03.05 아멘, 감사합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