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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준 신부 강론

1월 18일 연중 제2주간 목요일(일치 주간)“복음선포와 병자들을 고쳐주십니다.”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

작성자stellakang|작성시간24.01.18|조회수94 목록 댓글 3

연중 제2주간 목요일(일치 주간)

 

제1독서

<나의 아버지 사울께서 자네를 죽이려고 하시네.>
▥ 사무엘기 상권의 말씀입니다.18,6-9; 19,1-7
그 무렵 6 다윗이 필리스티아 사람을 쳐 죽이고 군대와 함께 돌아오자,
이스라엘 모든 성읍에서 여인들이 나와 손북을 치고 환성을 올리며,
악기에 맞추어 노래하고 춤추면서 사울 임금을 맞았다.
7 여인들은 흥겹게 노래를 주고받았다.
“사울은 수천을 치시고 다윗은 수만을 치셨다네!”
8 사울은 이 말에 몹시 화가 나고 속이 상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다윗에게는 수만 명을 돌리고 나에게는 수천 명을 돌리니,
이제 왕권 말고는 더 돌아갈 것이 없겠구나.”
9 그날부터 사울은 다윗을 시기하게 되었다.
19,1 사울이 아들 요나탄과 모든 신하에게 다윗을 죽이겠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나 사울의 아들 요나탄은 다윗을 무척 좋아하였기 때문에,
2 이를 다윗에게 알려 주었다.
“나의 아버지 사울께서 자네를 죽이려고 하시니, 내일 아침에 조심하게.
피신처에 머무르면서 몸을 숨겨야 하네.
3 그러면 나는 자네가 숨어 있는 들판으로 나가,
아버지 곁에 서서 자네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겠네.
그러다가 무슨 낌새라도 보이면 자네에게 알려 주지.”
4 요나탄은 아버지 사울에게 다윗을 좋게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임금님, 임금님의 신하 다윗에게 죄를 지어서는 안 됩니다.
다윗은 임금님께 죄를 지은 적이 없고,
그가 한 일은 임금님께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5 그는 목숨을 걸고 그 필리스티아 사람을 쳐 죽였고,
주님께서는 온 이스라엘에게 큰 승리를 안겨 주셨습니다.
임금님께서도 그것을 보시고 기뻐하셨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임금님께서는 공연히 다윗을 죽이시어,
죄 없는 피를 흘려 죄를 지으려고 하십니까?”
6 사울은 요나탄의 말을 듣고,
“주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 다윗을 결코 죽이지 않겠다.” 하고 맹세하였다.
7 요나탄은 다윗을 불러 이 모든 일을 일러 주었다.
그러고 나서 다윗을 사울에게 데리고 들어가, 전처럼 그 앞에서 지내게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더러운 영들은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이르셨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3,7-12
그때에 7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호숫가로 물러가셨다.
그러자 갈릴래아에서 큰 무리가 따라왔다.
또 유다와 8 예루살렘, 이두매아와 요르단 건너편,
그리고 티로와 시돈 근처에서도
그분께서 하시는 일을 전해 듣고 큰 무리가 그분께 몰려왔다.
9 예수님께서는 군중이 당신을 밀쳐 대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시려고,
당신께서 타실 거룻배 한 척을 마련하라고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10 그분께서 많은 사람의 병을 고쳐 주셨으므로,
병고에 시달리는 이들은 누구나 그분에게 손을 대려고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11 또 더러운 영들은 그분을 보기만 하면 그 앞에 엎드려,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12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하게 이르곤 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선포와 병자들을 고쳐주십니다.” 

 

사울은 하느님께 대한 신뢰와 예언자에 대한 존경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정치적 야망이 그이 대부분을 차지하였기 때문입니다.

 

그가 정치적 욕심 대신 예언자의 말을 받아들였다면 그는 좀더 그의 왕국은 커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의 욕심은 놉의 사제들을 죽였고 이슬엘 사람들에게 화제가 되었던 전쟁의 영웅 다윗을

경계하기에 이릅니다.

 

그는 결국 자기의 아들 요나탄과 그의 딸 미칼에게서도 멀어진 아버지였습니다.

 

그의 주변에는 그의 사람이 점점 없어지는 것입니다. 임금인 자신보다는 골리앗을 물리친

다윗에게 더 공로를 돌리는 주민들의 모습을 보고 질투의 마음이 그의 마음을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가 좀 더 마음을 비우고 왕다운 넉넉한 마음을 가졌더라면 그의 판단이 흐려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교만하고 욕심이 큰 사람에게는 질투가 자리할 틈새가 생기게 마련이고 그것은 결국

그 사람을 지배하기에 이릅니다.

 

질투는 악의 그늘이며 뿌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겸손하고 중요한 것을 내려 놓을

줄 아는 가난의 마음은 질투가 자리할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질투는 사람의 판단을 흐리게 할 뿐만 아니라 경쟁의 상대를 제대로 볼 줄 아는 여유가 없을

정도입니다.

 

부왕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윗에게 구뜸을 하지요.

 

요나탄은 다윗을 따랐기에 다윗을 도우려고 합니다. 그는 아버지 앞에서도 다윗을

두둔하는 말을 다음과 같이 합니다.

 

“그는 목숨을 걸고 그 필리스티아 사람을 쳐 죽였고, 주님께서는 온 이스라엘에게

큰 승리를 안겨 주셨습니다. 임금님께서도 그것을 보시고 기뻐하셨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임금님께서는 공연히 다윗을 죽이시어, 죄 없는 피를 흘려 죄를 지으려고 하십니까?”(1사무

19,4-5)

 

아들이 말을 듣고 사울은 다윗을 죽이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아 냅니다.

 

마르코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갈릴래아에서 머무시며 복음선포와 병자들을 고쳐주신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유다와 예루살렘, 이두매아와 요르단 건너편, 그리고 티로와 시돈

지방에서까지 사람들이 몰려오는 것입니다.

 

많은 군중 때문에 주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거룻배 한 척을 마련하시어

그 배에서 물가를 뒤로하시고 군중을 향하여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병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십니다. 더러운 영들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소리를 지르며 알려줍니다.

 

그럴 때마다 주님께서는 더러운 영들에게 조용히하며 사람들에게 당신 신원에 대해서 알리지

말라고 엄하게 이르십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시기하는 종교지도자들에게 드러나시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은 예

수님을 어떻게 하든 흠집을 내려하고 사실을 왜곡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거울을 볼 때 깨끗하게 그 거울을 딱지 않으면 나의 모습을 잘 볼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이 욕심으로, 또는 세상의 그릇된 판단들로 차 있다며 이물질이

낀 거울처럼 나 자신 뿐 아니라 내 소중한 이웃의 모습도 잘 볼 수가 없게 됩니다.

 

사울이 욕심으로 차 있지 않았더라면 그는 다윗의 큰 그릇을 알아 보았을 것입니다.

 

질투 또는 시기는 형체는 없지만 악의 그늘이기에 그 영향력이 또한 큰 것이지요.

 

질투의 영향력에 들어가게 되면 우리는 보통 대상에 대한 미움이 커지게 되어 있습니다.

 

때로는 그것이 복수로, 훼방이라는 방향으로 내 마음에 자리 잡게 되지요. 그렇게 되면

그 때부턴 나는 진정한 평화를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마음으로 내 마음이 차 있어야 하고 겸손과 

가난한 마음으로 세상의 소중한 것을 내려 놓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질투에서

자유로울 수 있고 기쁨을 이웃과 나눌 수 있게 해 줍니다. 

 

출처: 구름 흘러가는 원문보기 글쓴이: 말씀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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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조나단 | 작성시간 24.01.18 아멘 신부님 stellakang 님 고맙습니다.
  • 작성자아참 | 작성시간 24.01.18 겸손과

    가난한 마음으로 세상의 소중한 것을 내려 놓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질투에서

    자유로울 수 있고 기쁨을 이웃과 나눌 수 있게 해 줍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4.01.18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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