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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준 신부 강론

1월 24일 목요일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씨 뿌리는 사람이.” 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

작성자stellakang|작성시간24.01.24|조회수78 목록 댓글 2

1월 24일 목요일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제1독서

<네 뒤를 이을 후손을 일으켜 세우고,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 사무엘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7,4-17
그 무렵 4주님의 말씀이 나탄에게 내렸다. 5 "나의 종 다윗에게 가서 말하여라.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내가 살 집을 네가 짓겠다는 말이냐?
6 나는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데리고 올라온 날부터 오늘까지,
어떤 집에서도 산 적이 없다. 천막과 성막 안에만 있으면서 옮겨 다녔다.
7 내가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과 함께 옮겨 다니던 그 모든 곳에서,
내 백성 이스라엘을 돌보라고 명령한 이스라엘의 어느 지파에게,
어찌하여 나에게 향백나무 집을 지어 주지 않느냐고
한마디라도 말한 적이 있느냐?’
8 그러므로 이제 너는 나의 종 다윗에게 말하여라.
‘만군의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양 떼를 따라다니던 너를 목장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웠다.
9 또한 네가 어디를 가든지 너와 함께 있으면서,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물리쳤다.
나는 너의 이름을 세상 위인들의 이름처럼 위대하게 만들어 주었다.
10 나는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곳을 정하고,
그곳에 그들을 심어 그들이 제자리에서 살게 하겠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고,
다시는 전처럼, 불의한 자들이 그들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11 곧 내가 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판관을 임명하던 때부터 해 온 것처럼,
나는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평온하게 해 주겠다.
더 나아가 주님이 너에게 한 집안을 일으켜 주리라고 선언한다.
12 너의 날수가 다 차서 조상들과 함께 잠들게 될 때,
네 몸에서 나와 네 뒤를 이을 후손을 내가 일으켜 세우고,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13 그는 나의 이름을 위하여 집을 짓고,
나는 그 나라의 왕좌를 영원히 튼튼하게 할 것이다.
14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그가 죄를 지으면 사람의 매와 인간의 채찍으로 그를 징벌하겠다.
15 그러나 일찍이 사울에게서 내 자애를 거둔 것과는 달리,
그에게서는 내 자애를 거두지 않겠다.
16 너의 집안과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굳건해지고,
네 왕좌가 영원히 튼튼하게 될 것이다.’”
17 나탄은 이 모든 말씀과 환시를 다윗에게 그대로 전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1-20
그때에 1 예수님께서 호숫가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너무 많은 군중이 모여들어,
그분께서는 호수에 있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군중은 모두 호숫가 뭍에 그대로 있었다.
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비유로 가르치셨다.
그렇게 가르치시면서 말씀하셨다.
3 “자, 들어 보아라.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4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
5 어떤 것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아났지만,
6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다.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 것이다.
7 또 어떤 것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8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를 맺었다.
그리하여 어떤 것은 서른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백 배의 열매를 맺었다.”
9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셨다. “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10 예수님께서 혼자 계실 때,
그분 둘레에 있던 이들이 열두 제자와 함께 와서 비유들의 뜻을 물었다.
1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주어졌지만,
저 바깥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그저 비유로만 다가간다.
12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여
저들이 돌아와 용서받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13 예수님께서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 비유를 알아듣지 못하겠느냐?
그러면서 어떻게 모든 비유를 깨달을 수 있겠느냐?
14 씨 뿌리는 사람은 실상 말씀을 뿌리는 것이다.
15 말씀이 길에 뿌려지는 것은 이러한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들이 말씀을 들으면 곧바로 사탄이 와서
그들 안에 뿌려진 말씀을 앗아 가 버린다.
16 그리고 말씀이 돌밭에 뿌려지는 것은 이러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씀을 들으면 곧 기쁘게 받는다.
17 그러나 그들에게 뿌리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곧 걸려 넘어지고 만다.
18 말씀이 가시덤불 속에 뿌려지는 것은 또 다른 사람들이다.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19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과 그 밖의 여러 가지 욕심이 들어가,
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다.
20 그러나 말씀이 좋은 땅에 뿌려진 것은 이러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 어떤 이는 서른 배,
어떤 이는 예순 배, 어떤 이는 백 배의 열매를 맺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씨 뿌리는 사람이.” 

 

하느님의 성전을 짓고 싶어 하던 다윗은 그 뜻을 이루지 못하지만 하느님께 대한

그의 성실과 사랑은 후계자 솔로몬과 왕가의 축복으로 이어집니다.

 

나탄을 통하여 다윗에게 내려진 하느님의 말씀은 이러하십니다.

“너의 집안과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굳건해지고, 네 왕좌가 영원히 튼튼하게

될 것이다.“(2사무 7,16)

 

예수님의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의 말씀을 통하여 ‘말씀을 듣기는 쉬우나 실천하기는

참으로 힘들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의 비유말씀은 세월이 수없이 흘렀어도 전하시는 메시지는 변함없이 우리가

하느님 나라를 준비하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다짐을 갖게 해줍니다.

 

하느님 말씀을 듣고 깊이 깨달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은총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은 머리로 깨달은 것만으로 끝나지 않고 실제의 생활에서 그 복음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요.

 

신앙인이면 누구나 복음말씀을 실천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세상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는 것을 방해할 때가 많고 우리의 이기심과 욕심이 거기에 가세하면 세상의 뜻으로

기울어질 때가 많습니다.

 

세상도 그렇고 악 의 세력도 호락호락하지가 않습니다. 세상의 악의 세력도 어둠의 매력을

바탕으로 세력을 구축하려 하지요.

 

하느님께서 어둠에서 빛을 창조하셨듯이 이 세상의 악은 인간을 어둠에 가두고 그 매력을

발휘합니다.

 

세상의 달콤하고 재물욕과 명예욕이 솔솔 맞장구쳐주면 사람은 방향감각을 잃어버리고

달콤하고 또 가족이라는 이름, 자신의 연대와 역어서 사람을 진리와 신앙의 세계로 나가려는

의도를 약화시킵니다.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셔서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들어 세상에 사는 신앙인의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농부가 하느님의 말씀인 씨를 뿌립니다. 어떤 것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버립니다.

 

신앙이 뿌리를 내릴 새 없이 세상의 멋에 빠지고 맙니다.

 

어떤 씨는 돌밭에 떨어지지만 수분이 말라 말라버립니다. 신앙이 뿌리를 잠시 내리지만

그도 역시 세상으로 흘러가버립니다.

 

어떤 씨는 가시덤불에 떨어집니다. 씨가 싹이 나와서 잘 자라다가 가시덤불에 싸여 숨이

막혀 죽어버립니다.

 

신앙생활을 어느 정도 하지만 결국 그도 세상으로 휩쓸려 가버립니다. 어떤 것은 다행이도

좋은 땅에 떨어집니다.

 

성경의 표현대로 그이 삶에서 서른 배, 예순 배, 백 배의 결실을 맺습니다.

 

우리 신앙의 삶이 좋은 땅에서 좋은 결실을 맺어야 하겠지요. 예수님께서 “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마르 4,9)이라고 말씀하시며 이 비유를 마무리 하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따로 예수님께 이 비유의 뜻을 질문합니다. 그분께서는 다시 조목조목

설명해 주십니다.

 

일부 성경학자들은 이 대목은 마르코 복음사가가 속해 있는 공동체의 해석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를 이사 6,9-10절을 인용하시며 설명하시지요.

 

히브리어 원문의 뜻은 우찌야 임금 때에 성전에서 하느님으로부터 예언자로 불림을 받던

이사야에게 내렸던 말씀인 것입니다.

 

“너는 가서 저 백성에게 말하여라. ‘너희는 듣고 또 들어라. 그러나 깨닫지는 마라. 너희는 보고

또 보아라. 그러나 깨치지는 마라.’ 너는 저 백성의 마음을 무디게 하고 그 귀를 어둡게 하며

그 눈을 들어붙게 하여라.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서는 돌아와 치유되는

일이 없게 하여라.”

 

그 당신 굳을대로 굳어서 하느님의 어떤 말씀도 받아들이지 않았던 시대에 내려진

반어법 형태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뜻은 그들이 완고한 그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눈으로 잘보고 귀로 제대로 들어서

마음으로 올바로 깨달을 수 있도록 예언자가 하느니의 말씀을 잘 전하라는 뜻이지요.

 

그들이 제대로 깨달을 수 있으면 우상으로 기울어졌던 비뚤어진 그들의 하느님께로 와서

용서를 받고 치유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이사야 예언자를 파견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사야 예언서를

인용하신 예수님께서도 같은 맥락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자 군중은 서서히 그분을 받아들이는 사람들과 거부하는 자들로

나누어집니다.

 

그래서 시므온이 성모님께 예언했던 대로 예수님께서는 ‘반대받는 표적’(루카 2,34)이 서서히

드러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 특히 제자들은 이 비유에 숨겨진 뜻을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도록

예수님께서 다시 설명해주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을 반대하는 자들은 마치 이사야가 하느님으로 불림을 받을 때 군중의 완고한

마음과 연결될 수 있는 것이지요.

 

하느님께서 예언자에게 완고한 백성에게 향했던 마음을 예수님께서 당신을 반대하는 이들을

향하는 같은 마음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무리 구원의 말씀을 선포한다해도 그들의 마음이 교만과 완고함으로 차 있어서

전달되지 않지만 그래도 주님께서는 그들에게도 말씀을 전하고 싶어 하시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당신 말씀이 바로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돌밭에 뿌려진 이들은 말씀을

받아들이는 대로 바로 사탄이 와서 말씀을 앗아가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돌밭에 뿌려진 것을 다시 설명하자면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뿌리가 없어서 환난이나

박해를 견디지 못하고 걸려 넘어지고 마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가시덤불에 뿌려진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 걱정, 재물의 유혹, 그 밖의 여러

욕심들 때문에 빠져서 말씀이 결실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를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좋은 땅에 뿌려진 말씀은 받아들이기도 잘 받아들이지만 그 말씀을 잘 실천해서

은 결실로 이어지는 진정한 신앙인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신앙은 은총이지만 각자의 성실에 달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람은 자기 할 나름’이라는

말이 있지만 하느님 말씀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어떠한 대답을 하며 실천하는 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출처: 구름 흘러가는 원문보기 글쓴이: 말씀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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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조나단 | 작성시간 24.01.24 아멘 신부님 stellakang 님 고맙습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4.01.24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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