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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준 신부 강론

2월 16일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신랑을 빼앗길 날이" 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

작성자stellakang|작성시간24.02.16|조회수222 목록 댓글 1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제1독서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58,1-9ㄴ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목청껏 소리쳐라, 망설이지 마라. 나팔처럼 네 목소리를 높여라.
내 백성에게 그들의 악행을, 야곱 집안에 그들의 죄악을 알려라.
2 그들은 마치 정의를 실천하고
자기 하느님의 공정을 저버리지 않는 민족인 양
날마다 나를 찾으며 나의 길 알기를 갈망한다.
그들은 나에게 의로운 법규들을 물으며 하느님께 가까이 있기를 갈망한다.
3 ‘저희가 단식하는데 왜 보아 주지 않으십니까?
저희가 고행하는데 왜 알아주지 않으십니까?’
보라, 너희는 너희 단식일에 제 일만 찾고 너희 일꾼들을 다그친다.
4 보라, 너희는 단식한다면서 다투고 싸우며 못된 주먹질이나 하고 있다.
저 높은 곳에 너희 목소리를 들리게 하려거든
지금처럼 단식하여서는 안 된다.
5 이것이 내가 좋아하는 단식이냐? 사람이 고행한다는 날이 이러하냐?
제 머리를 골풀처럼 숙이고 자루옷과 먼지를 깔고 눕는 것이냐?
너는 이것을 단식이라고, 주님이 반기는 날이라고 말하느냐?
6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불의한 결박을 풀어 주고 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7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8 그리하면 너의 빛이 새벽빛처럼 터져 나오고
너의 상처가 곧바로 아물리라.
너의 의로움이 네 앞에 서서 가고 주님의 영광이 네 뒤를 지켜 주리라.
9 그때 네가 부르면 주님께서 대답해 주시고
네가 부르짖으면 ‘나 여기 있다.’ 하고 말씀해 주시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신랑을 빼앗길 때에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9,14-15
14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1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사야 예언자는 진정한 단식에 대해서 가르치시는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단식이라는 형식이 아니라 그 정신이 중요하다는 말씀이시지요.

"보라, 너희는 너희 단식일에 제 일만 찾고 너희 일꾼들을 다그친다. 보라,
너희는 단식한다면서 다투고 싸우며 못된 주먹질이나 하고 있다.
저 높은 곳에 너희 목소리를 들리게 하려거든, 지금처럼 단식하여서는
안 된다."(이사 58, 3-4)

행동은 정의를 거스르면서 단식을 하며 고행한다고 머리를 골풀처럼 숙이고 자루 옷과
먼지를 깔고 있는 행동을 한다고 해서 진정한 단식의 정신을 이해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단식은 외적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불의한 결박을 풀어주고 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 자유를 잃고 억압받는 이, 멍에를 부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자신의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떠돌이 사람들을 자신의 집에 맞아 들이고
헐벗은 사람들을 덮어주는 것, 다시 말해서 소외되고 불쌍한 사람들을 보살펴주고
맞아주는 것임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제자가 와서 예수님께 자기들과 바리사이들이 하는 단식을 왜 주님의
제자들은 하지 않는지에 대해서 질문을 합니다.

그런데 그들도 심지어는 제자들까지도 이해하지 못하는 말씀을 주님께서 하십니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마태 9,15)

바로 당신의 수난과 죽음에 대해서 예언의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순절을 시작하며 머리에 재를 얹고 단식과 금육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 예언서의 정신이라면 외적인 단식과 회개의 예식보다는 마음의 회개,
내적인 쇄신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머리에 재를 얹듯이 자루 옷과 먼지를 깔고 있는 행동이 모양은 달라도 그 뜻은
같은 것입니다. 외적이고 형식적이라 하더라도 거기에는 의미가 있는 것이지요.

우리가 지은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며 회개의 표시를 나타내는 것은 올바른
단식이며 재의 의미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바리사이나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하는 단식을 바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 닥칠 스승의 죽음을 겪게 되고 그 때에 단식과 비교가 되지 않는
슬픔과 고통을 겪게 되리라는 주님의 말씀은 의미심장한 것입니다.

신랑과 함께 있는 제자들은 이제 신랑을 읽고 슬퍼하리라는 것으 스승의 수난과
고통을 겪으며 슬픔 뿐 아니라 실망도 겪게 되겠지요.

그런 연후에 제자들은 단식이 회개와 함께 하듯이 주님의 부활과 성령을 받아들일
쇄신의 그릇을 마련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겪는 가장 큰 아픔 중에 하나가 ‘무관심’입니다. 자본주의가 가져오는
혜택 중에 하나가 ‘편리함’입니다.

신랑과 함께 있는 제자들이 닥칠 스승의 죽음의 고통을 모르듯 우리도 내 소외된 이웃의

배고픔과 외로움을 모를 수 있습니다. 그들의 고통을 모르고 지나가며
나의 행복에 도취 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의 무뎌진 마음을 바라 볼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단식과 재는 바로 그러한 우리를 회개하고 소외된 이웃들에게 내 눈길을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

형식을 통해서는 우리의 두껍게 쳐진 이기심이라는 벽을 허물 수가 없습니다.

사순절 동안 우리는 단식 뿐 아니라 기도와 하느님 말씀을 묵상하며 세상을 향했던 우리 자신을

하느님에게,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향해야 하겠습니다.

내가 가던 걸음을 멈추고 침묵 중에 들려오는 주님의 말씀,

주님의 수난과 죽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우립시다.

 

출처: 구름 흘러가는 원문보기 글쓴이: 말씀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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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4.02.16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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