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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준 신부 강론

2023년 11월 25일 연중 제33주간 토요일“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작성자stellakang|작성시간23.11.28|조회수18 목록 댓글 2

2023년 11월 25일 연중 제33주간 토요일

 

제1독서

<예루살렘에 끼친 불행 때문에 나는 큰 실망을 안고 죽어 가네.>
▥ 마카베오기 상권의 말씀입니다.6,1-13
그 무렵 1 안티오코스 임금은 내륙의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다가,
페르시아에 있는 엘리마이스라는 성읍이
은과 금이 많기로 유명하다는 말을 들었다.
2 그 성읍의 신전은 무척 부유하였다.
거기에는 마케도니아 임금 필리포스의 아들로서
그리스의 첫 임금이 된 알렉산드로스가 남겨 놓은
금 방패와 가슴받이 갑옷과 무기도 있었다.
3 안티오코스는 그 성읍으로 가서
그곳을 점령하고 약탈하려 하였으나,
그 계획이 성읍 주민들에게 알려지는 바람에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4 그들이 그와 맞서 싸우니 오히려 그가 달아나게 되었다.
그는 크게 실망하며 그곳을 떠나 바빌론으로 향하였다.
5 그런데 어떤 사람이 페르시아로 안티오코스를 찾아와서,
유다 땅으로 갔던 군대가 패배하였다고 보고하였다.
6 강력한 군대를 이끌고 앞장서 나아갔던 리시아스가
유다인들 앞에서 패배하여 도망치고,
유다인들이 아군을 무찌르고 빼앗은 무기와 병사와 많은 전리품으로
더욱 강력해졌다는 것이다.
7 또 유다인들이
안티오코스가 예루살렘 제단 위에 세웠던 역겨운 것을 부수어 버리고,
성소 둘레에 전처럼 높은 성벽을 쌓았으며,
그의 성읍인 벳 추르에도 그렇게 하였다는 것이다.
8 이 말을 들은 임금은 깜짝 놀라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자기가 원하던 대로 일이 되지 않아 실망한 나머지
병이 들어 자리에 누웠다.
9 그는 계속되는 큰 실망 때문에 오랫동안 누워 있다가
마침내 죽음이 닥친 것을 느꼈다.
10 그래서 그는 자기 벗들을 모두 불러 놓고 말하였다.
“내 눈에서는 잠이 멀어지고 마음은 근심으로 무너져 내렸다네.
11 나는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네.
‘도대체 내가 이 무슨 역경에 빠졌단 말인가?
내가 이 무슨 물살에 휘말렸단 말인가?
권력을 떨칠 때에는 나도 쓸모 있고 사랑받는 사람이었는데 …….’
12 내가 예루살렘에 끼친 불행이 이제 생각나네.
그곳에 있는 금은 기물들을 다 빼앗았을뿐더러,
까닭 없이 유다 주민들을 없애 버리려고 군대를 보냈던 거야.
13 그 때문에 나에게 불행이 닥쳤음을 깨달았네.
이제 나는 큰 실망을 안고 이국땅에서 죽어 가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0,27-40
그때에 27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물었다.
28 “스승님, 모세는 ‘어떤 사람의 형제가 자식 없이’아내를 남기고 ‘죽으면,
그 사람이 죽은 이의 아내를 맞아들여
형제의 후사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저희를 위하여 기록해 놓았습니다.
29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이가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자식 없이 죽었습니다.
30 그래서 둘째가, 31 그다음에는 셋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습니다.
그렇게 일곱이 모두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32 마침내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
33 그러면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간다.
35 그러나 저세상에 참여하고
또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받는 이들은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36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37 그리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은,
모세도 떨기나무 대목에서 ‘주님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는 말로 이미 밝혀 주었다.
38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39 그러자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스승님, 잘 말씀하셨습니다.” 하였다.
40 사람들은 감히 그분께 더 이상 묻지 못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

 

마카베오 저자는 유다인들의 종교를 박해하던 안티오쿠스 4세1)의 삶의 마감을 상세하게

기록합니다.

 

그의 치세 중에 그의 막강한 군대의 사령관 리시아스가 유다인들과의 싸움에서 패배한 것은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었습니다.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안티오쿠스 왕이 그 성읍 제단위에 세웠던 것들을 부수고

성전 주위에 높은 성벽을 다시 쌓았다는 소식이 그에게 전해집니다.

 

왕은 큰 실망과 함께 오랫동안 누워 있다가 마침내 죽음이 가까운 것을 느낍니다.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형제가 자식 없이 죽으면 형제의 후사를

위해 형제 중에 하나가 형수를 아내로 맞아야 한다.’라는 법을2) 내세워 질문합니다.

 

일곱 형제 중에 맏이가 자식 없이 죽으면 둘째가 후사를 얻기 위해 형의 아내를 맞아야 했고,

또 자식 없이 셋째에 이르고 차례로 자식이 없이 죽어 일곱째까지 형수를 아내로 맞았는데 모두

자식 없이 죽었다. 그들은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루카 20,33)라고

질문합니다.

 

그들은 작심하고 주님께 난처한 질문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이제까지 들어본 적이 없는 말씀을 하십니다.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 받는 이들은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20,36)

 

그러니까 그 법은 이 세상에서의 인간의 결혼과 연결되겠지만 부활의 세계에서는 그런 차원을 넘을

것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는 형제들 간의 죽음이 한계이겠지만 하느님 나라에서는 ‘천사들과

같아서 영원히 살 것’이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은, 모세도 떨기나무 대목에서 ‘주님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는 말로 이미 밝혀 주었다.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20,37-38)3)

 

예수님을 통하여 인간은 멸망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죽은 이들도 살아 있는 사람으로 기억하듯,

구약을 떠나서 당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게는 부활의 영광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간단하고 명료한 말씀으로 앞으로 펼쳐질 하느님 나라와 부활의 세계가 우리에게 열려 있는

것입니다.

 

---------

 1) 자신을 높여 ‘에피파네’는 이름을 가진 안티오코스는 이국땅에서 삶을 마감합니다. ‘신의 현현’이라는 의미의 ‘에피파네스(ὁ Ἐπιφανής)라는 이름을 가진 안티오코스 4세는(Ἀντίοχος IV, 기원전 175-164)는 기원전 215년부터 164년까지 셀레우코스 제국의 임금이었다. 그의 체세동안 이집트를 거의 정복하였지만 유다와 사마리아에서 마카베오 반란을 맞아야 했고 자신의 나라로 들어가지 못하고 중도에서 병으로 죽음을 맞아야 했다.

 

 2 당시관례에 따라 맏아들이 후사 없이 죽으면 그의 동생이 형수와 살아야 법(신명기 25,5-10)이 있었던 것이다. ‘계대결혼법(繼代結婚法 Lex Leviratus)’ 다르게는 ‘수혼‘(嫂婚)’ 또는 ‘형사취수제도(兄死取嫂制度)’라고도 부른다. 이 법은 이스라엘 고유의 법이라기보다는 고대 아시리아, 히티트, 가나안에 널리 퍼져있었던 결혼관습이 이스라엘 법에 들어온 것으로 보고 있다. 창세기 저자가 전해주는 유다와 며느리 타마르 이야기(창세38,1-11), 판관 시절에 룻과 보아스와의 결혼(룻4,1-17)이 이 법의 한 관례라고 할 수 있다. 이방문화의 전입을 막기 위해서 이스라엘 가계의 결혼. 예를 들어 아브라함의 외아들 이사악과 레베카의 결혼(창세 24,1-9)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방인 딸들과의 이스라엘 백성의 아들들과 혼인금지(탈출 34,16), 가나안 이민족의 자녀와 이스라엘 백성의 자녀들과의 혼인금지 (신명 7, 3-4)등에서 이스라엘 가문과 혈통을 보호하려는 법의 정신을 볼 수 있다.) 

 

 3) 예수님께서는 부활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두가이들을 위해서 그들이 잘 알고 있는 호렙산에서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을 들어 부활을 설명하신다. 여기서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들려주신 말씀, 곧 ‘나는 네 아버지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탈출 3,6)라는 구절에는 부활사상이 드러나지 않는다. 더 말하자면 시간적으로 엄청난 차이가 있는 인물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은 이미 까마득한 그 옛날에 이 죽은 사람들이다. 그러면 이 뜻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체는 하느님이시다. 그 옛날의 인물들은 죽었다고 하지만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느님은 살아계신 분이시다. 성조들은 비록 죽었지만 모세와 말씀하시는 그 시간에도 하느님께서는 살아 계신 것이다. 하느님께서 죽은 이들을 살아 있는 인물로 만드시는 것이다. 더 쉽게 말하자면 그들은 살아 계신 하느님이 아니시면 이미 죽은 사람들인데, 하느님 때문에 살아 있는 사람들로 설명되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부활이 없는 성조들을 이제는 죽은 이들로 갇혀 놓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을 통하여 부활의 의미를 새겨주시는 것이다.  

 

출처: 구름 흘러가는 원문보기   ▶ 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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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리스트
  • 작성자조나단 | 작성시간 23.11.28 아멘 신부님 stellakang 님 고맙습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3.11.28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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