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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 신부 강론

[스크랩] 7월 1일 연중 제12주간 토요일(창세18,1-15)(마태8,5-17)작은형제회 오 상선 바오로 신부

작성자stellakang|작성시간23.07.01|조회수131 목록 댓글 4

연중 제12주간 토요일(창세18,1-15)(마태8,5-17)

 

제1독서

<너무 어려워 주님이 못 할 일이라도 있다는 말이냐? 내가 너에게 돌아올 터인데, 그때에는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18,1-15
그 무렵 1 주님께서는 마므레의 참나무들 곁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다.
아브라함은 한창 더운 대낮에 천막 어귀에 앉아 있었다.
2 그가 눈을 들어 보니 자기 앞에 세 사람이 서 있었다.
그는 그들을 보자 천막 어귀에서 달려 나가 그들을 맞으면서
땅에 엎드려 3 말하였다.
“나리, 제가 나리 눈에 든다면, 부디 이 종을 그냥 지나치지 마십시오.
4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시어 발을 씻으시고, 이 나무 아래에서 쉬십시오.
5 제가 빵도 조금 가져오겠습니다.
이렇게 이 종의 곁을 지나게 되셨으니, 원기를 돋우신 다음에 길을 떠나십시오.”
그들이 “말씀하신 대로 그렇게 해 주십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6 아브라함은 급히 천막으로 들어가 사라에게 말하였다.
“빨리 고운 밀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 반죽하여 빵을 구우시오.”
7 그러고서 아브라함이 소 떼가 있는 데로 달려가
살이 부드럽고 좋은 송아지 한 마리를 끌어다가 하인에게 주니,
그가 그것을 서둘러 잡아 요리하였다.
8 아브라함은 엉긴 젖과 우유와 요리한 송아지 고기를 가져다
그들 앞에 차려 놓았다.
그들이 먹는 동안 그는 나무 아래에 서서 그들을 시중들었다.
9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댁의 부인 사라는 어디에 있습니까?” 하고 물으니,
그가 “천막에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0 그러자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내년 이때에 내가 반드시 너에게 돌아올 터인데,
그때에는 너의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
사라는 아브라함의 등 뒤 천막 어귀에서 이 말을 듣고 있었다.
11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미 나이 많은 노인들로서,
사라는 여인들에게 있는 일조차 그쳐 있었다.
12 그래서 사라는 속으로 웃으면서 말하였다.
‘이렇게 늙어 버린 나에게 무슨 육정이 일어나랴?
내 주인도 이미 늙은 몸인데.’
13 그러자 주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사라는 웃으면서,
‘내가 이미 늙었는데, 정말로 아이를 낳을 수 있으랴?’ 하느냐?
14 너무 어려워 주님이 못 할 일이라도 있다는 말이냐?
내가 내년 이맘때에 너에게 돌아올 터인데,
그때에는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
15 사라가 두려운 나머지 “저는 웃지 않았습니다.” 하면서 부인하자,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너는 웃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모여 와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5-17
5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에 들어가셨을 때에
한 백인대장이 다가와 도움을 청하였다.
6 그가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제 종이 중풍으로 집에 드러누워 있는데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7 예수님께서 “내가 가서 그를 고쳐 주마.” 하시자,
8 백인대장이 대답하였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9 사실 저는 상관 밑에 있는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또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10 이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감탄하시며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11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모여 와,
하늘 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12 그러나 하느님 나라의 상속자들은 바깥 어둠 속으로 쫓겨나,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13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백인대장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네가 믿은 대로 될 것이다.”바로 그 시간에 종이 나았다.
14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집으로 가셨을 때,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드러누워 있는 것을 보셨다.
15 예수님께서 당신 손을 그 부인의 손에 대시니 열이 가셨다.
그래서 부인은 일어나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16 저녁이 되자 사람들이 마귀 들린 이들을 예수님께 많이 데리고 왔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악령들을 쫓아내시고,
앓는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17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그는 우리의 병고를 떠맡고
우리의 질병을 짊어졌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여러 만남이 이어지는 오늘 미사의 말씀에서 두 개의 결정적 만남에 주목합니다.

"그는 그들을 보자 천막 어귀에서 달려 나가 그들을 맞으면서 땅에 엎으려 말하였다."(창세 18,2-3)
"한 백인 대장이 다가와 도움을 청하였다."(마태 8,5)

천사들을 환대하는 아브라함과, 고통받는 종의 치유를 청하기 위해 예수님께 다가온 백인대장의 모습이 겹칩니다. 둘 다 매우 겸손하고 진실된 태도의 영접으로 보입니다.

"나리, 제가 나리 눈에 든다면, 부디 이 종을 그냥 지나치지 마십시오."(창세 18,3)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마태 8,8)

고대 중동 사막 지역에서 나그네를 귀하게 대접하는 일은 축복을 부르는 관습입니다. 아브라함은 한창 더운 대낮에 길을 지나는 이들을 나무 아래로 모셔 물과 음식과 쉼을 제공하지요. 그는 나그네들이 하느님의 천사인 줄 꿈에도 몰랐을 겁니다. 믿음으로써의 행동이라기보다 선하고 관대한 인류애적 견지에서 그들을 섬긴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방인인 백인대장은 예수님의 능력에 대해 굳은 믿음을 가지고 다가와 청합니다. 심지어 직접 종에게 가 주시겠다는 예수님을 자기의 비천함을 들어 만류하지요. 정복국의 군사 장교가 식민지 백성의 예언자(로 보이는  청년)에게 이토록 예우를 갖추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이는 그저 좋은 소양이나 성정을 넘어서 "믿음"에 근거하는 겸손과 확신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그렇게 해 주십시오."(창세 18,5)
"가거라. 네가 믿은 대로 될 것이다."(마태 8,13)

천사들은 아브라함의 섬김을 받아들입니다. 영적 존재인 그들에게 딱히 필요하지 않은 서비스일지도 모르지만 아브라함의 지향과 의지, 말이 실현되도록 자신들을 그의 손에 맡기지요.

예수님은 백인대장의 말이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해 주십니다. 그의 겸손한 신앙고백이 그대로 이루어져 열매를 맺도록 해 주시는 겁니다. 그가 간절히 바라고 굳게 믿은 그대로 종은 치유될 것입니다.

제1독서의 뒷 부분에서는 아브라함에게 후손이 태어날 것이라는 주님의 약속과, 이에 대해 의혹을 품는 사라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생물학적으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기 때문이지요.

지금 아브라함과 사라는 믿음의 조상이 되기까지의 여정 중에 있는 것입니다. 온 이스라엘이 공경하고 자부심을 갖는 선조지만, 그 믿음이 형성되기까지의 생생한 민낯은 우리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고, 성경은 이를 감추지 않고 기록한 것이지요.

복음 대목의 후반부는 소문을 듣고 예수님 주변으로 모여든 이들과 예수님의 만남이 이어집니다. 병들고 약하고 고통을 겪는 이들이 예수님의 말씀과 손길로 구마와 치유를 받아 온전함을 회복하는 역동적인 장면이지요.

물론 오늘 간절히 주님을 찾는 그들의 믿음은 언젠가 십자가형의 외침으로 변하고 말 나약하고 기복적인 믿음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주님은 오늘 제1독서 속의 아브라함 부부처럼 그들 역시 아직 과정 중에 있음을 아시기에, 기꺼이 그들을 맞아 각자의 필요를 채워주신 것이지요. 아주 적극적으로 혼신을 다해 그들의 질병과 병고를 떠맡으십니다.(복음 환호송 참조)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마태 8,10)
예수님의 기쁨에 찬 감탄이 들리는 듯합니다. 이 감탄은 백인대장을 넘어 우리를 향하고 있지요. 존재 전체로 주님을 맞아들여, 말씀으로 고백하고, 실천으로 섬기는 믿음은 그저 인간적으로 잘 형성된 인성의 차원을 넘어섭니다. 아직 과정 중이라 여전히 흔들리고 동요하는 섬약한 믿음일지라도 주님은 우리의 말인 신앙고백이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해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오늘 주님께서 우리 곁을 그저 지나쳐 가시지 않도록 신앙의 눈을 크게 뜨고 주님을 맞이하는 날 되시길 기원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청한 바가 들어 허락되고, 우리의 겸손한 환대와 믿음에 그분이 감탄하시기를 빕니다. 반드시 우리가 믿는 대로 될 것입니다. 아멘.

 

 

작은형제회 오 상선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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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손빈Youn | 작성시간 23.07.01 감사합니다
  • 작성자조나단 | 작성시간 23.07.01 아멘 신부님 stellakang 님 고맙습니다.
  • 작성자바람의노래 | 작성시간 23.07.01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3.07.01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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