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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 신부 강론

[스크랩] 9월 9일 연중 제22주간 토요일/작은형제회 오 상선 바오로 신부

작성자stellakang|작성시간23.09.09|조회수106 목록 댓글 3

연중 제22주간 토요일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여러분과 화해하시어 여러분을 거룩하고 흠 없게 해 주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콜로새서 말씀입니다.1,21-23
형제 여러분, 21 여러분은 한때 악행에 마음이 사로잡혀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고 그분과 원수로 지냈습니다.
22 그러나 이제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그분의 육체로 여러분과 화해하시어,
여러분이 거룩하고 흠 없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람으로
당신 앞에 설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23 다만 여러분은 믿음에 기초를 두고 꿋꿋하게 견디어 내며
여러분이 들은 복음의 희망을 저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 복음은 하늘 아래 모든 피조물에게 선포되었고,
나 바오로는 그 복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1-5
1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가로질러 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뜯어 손으로 비벼 먹었다.
2 바리사이 몇 사람이 말하였다.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
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한 일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4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아무도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집어서 먹고
자기 일행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5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이제 예수님과 바리사이들 사이에 안식일 논쟁이 가시화됩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뜯어 손으로 비벼 먹었다"(루카 6,1).
선교 여행으로 지치고 허기진 제자들이 예수님 뒤를 따라 밀밭 사이에 난 길을 걷다가 손에 잡히는 대로 밀이삭을 흝어 입으로 가져갔나 봅니다. 어찌 보면 별 의도 없는 자연스런 행동인데, 바리사이들 눈에는 추수 정도의 노동으로까지 보인 듯하네요. 그렇다면 그들에겐 분명 안식일을 거룩히 지내기 위해 손에서 일을 놓아야 하는 규정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행위임에 틀림없겠지요.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루카 6,2).
두 존재 사이에 관계 맺음이 시작되면 처음엔 서로 '어떻게 대하는 게 좋을까?' 고민이 시작될 겁니다.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의 후손들이 본격적으로 야훼 하느님을 "신"으로 모시면서도 그랬겠지요. 이집트의 파라오나 가나안의 바알처럼 자기들만의 "신"을 가져본 적이 없는 그들에게, 그래서 하느님께서 친히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신 거고요. 아직 하느님과의 관계, 하느님 백성으로서 피조물과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할 도리에 익숙하지 않은 그들에 맞게 내리신 규정들이 탈출기 중반부터 신명기까지 모세오경에 잘 나타나 있지요.

안식일에 무얼 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도 실은 하느님을 더 잘 섬기고 모든 피조물과 더 조화로이 공존하라는 하느님의 의도가 담긴 조항입니다. 그 마음을 헤아린다면 그날 해서는 안 될 일보다, 그날 해야 하고 허용하며 품어야 하는 일들에 대해 더 고민했겠지요.

아무튼 두 존재 사이에 시간이 지나고 관계가 깊어지면 서로에게 처음 제시한 규정은 차츰 희미해지게 마련입니다. 단순한 망각이 아니라 이미 존재에 새겨졌다는 관점에서 말입니다.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무 당연하고 익숙하리만치 몸과 마음에 배어들게 된 거지요.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과의 관계를 좀 더 정신과 마음으로 접근했더라면 그 긴 시간 동안 더 깊고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어 수많은 율법 규정이 불필요할 경지에 이르지 않았을까 상상해 봅니다. 신뢰 만땅, 사랑 만땅의 관계가 되면 서로 눈빛만 봐도 상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으니까요. 그리 되었다면, 척 하면 척! 두꺼운 율법 규정집을 치워도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대해서만은 뼛속 깊이 남았을 겁니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루카 6,5).
율법 조문이 주인이 되어버린 바리사이들에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 제정하신 안식일 제도에 성자이신 예수님의 권위가 미치신다는 의미이고, 또 안식일이 회복과 해방의 날인 것처럼, 당신을 바쳐 온 인류에 참된 해방을 이루시기 위해 오신 사람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정 안식일의 주인이심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알아듣건 알아듣지 못하건 말이지요.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두 개의 시선을 관상합니다. 제자들이 하는 행동 너머로 그들 존재를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따사로운 사랑의 시선, 그리고 하느님의 모상인 사람에 대한 존중 없이 행동만으로 올가미를 씌워 단죄하려는 차가운 증오의 시선... 이 시선이 곧 그 사람의 마음이고 영혼입니다.

"여러분은 한때... 그러나 이제..."(콜로 1,21).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콜로새 신자들의 과거와 현재, 즉 비포(Before)와 에프터(After)를 이야기합니다.

율법의 지배 아래, 사랑으로 애끓는 하느님의 마음보다 심판자의 칼날을 염두에 두고 살 때는 엄벌에 처하는 "심장 없는 신" 하나를 우상으로 삼아 섬기며 사는 꼴이기에 실제로는 진짜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고 원수로 지내게" 됩니다. 하지만 당신 아들을 내주시어 세상과 화해하시는 하느님을 체험하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지지요. 이제 사람의 아들의 공로로 우리는 "거룩하고 흠 없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람으로" 하느님 앞에 서게 됩니다. 예수님을 통해 진짜 하느님, 심장을 지니신 사랑과 자비의 아버지를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 되면 더 이상 세세한 율법 조항에 얽매여, 해도 되는 것, 해서는 안 되는 것을 따지느라 심장을 빼놓고 살지 않아도 됩니다. 그때에는 어찌 해야 될지 사랑이 답을 알려 줄 것입니다. 사랑이 길을 알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사랑이 원하는 걸 하면 됩니다. 마음 저 깊은 곳에 머무르시는 주님께서 우리 존재 안에서 울려 주시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따뜻한 예수님의 시선에 우리 눈길을 포개어 사랑이 알려준 답을 찾아가면 됩니다.

율법의 자리에 사랑이 들어서면 비포(Before)와 에프터(After)는 사뭇 달라질 겁니다. 벗님도 그렇게 되실 겁니다. 아멘. 

 

 

◆ 출처:  원글보기; ▶ 작은형제회 오 상선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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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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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손빈Youn | 작성시간 23.09.09 감사합니다
  • 작성자바람의노래 | 작성시간 23.09.09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3.09.09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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