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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 신부 강론

[스크랩] 9월 11일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 작은형제회 오 상선 바오로 신부

작성자stellakang|작성시간23.09.12|조회수28 목록 댓글 1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제1독서

<과거의 모든 시대에 감추어져 있던 신비를 선포하는 일을 완수하려고 나는 교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콜로새서 말씀입니다. 1,24―2,3
형제 여러분,
24 이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며 기뻐합니다.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내가 이렇게
그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25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당신 말씀을 선포하는 일을 완수하라고 나에게 주신 직무에 따라,
나는 교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26 그 말씀은 과거의 모든 시대와 세대에 감추어져 있던 신비입니다.

그런데 그 신비가 이제는 하느님의 성도들에게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27 하느님께서는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 나타난 이 신비가
얼마나 풍성하고 영광스러운지
성도들에게 알려 주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 신비는 여러분 가운데에 계신 그리스도이시고,
그리스도는 영광의 희망이십니다.
28 우리는 이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사람으로 굳건히 서 있게 하려고,
우리는 지혜를 다하여 모든 사람을 타이르고 모든 사람을 가르칩니다.
29 이를 위하여 나는 내 안에서 힘차게 작용하는
그리스도의 기운을 받아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2,1 사실 여러분과 라오디케이아에 있는 이들,
그리고 내 얼굴을 직접 보지 못한 모든 이들을 위하여
내가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를 여러분이 알기 바랍니다.
2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여러분과 그들이 마음에 용기를 얻고 사랑으로 결속되어,
풍부하고 온전한 깨달음을 모두 얻고
하느님의 신비 곧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갖추게 하려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물이 숨겨져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6-11
6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그곳에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7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8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에 서라.” 하고 이르셨다.
그가 일어나 서자 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묻겠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10 그러고 나서 그들을 모두 둘러보시고는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그렇게 하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11 그들은 골이 잔뜩 나서 예수님을 어떻게 할까 서로 의논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안식일 논쟁이 이어집니다. 안식일에 회당에 있던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예수님 눈에 들어옵니다. 그런데 주변에는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있습니다.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은 사회경제적 활동을 할 수 없어 가난에 찌들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는 사람을 뜻합니다. 또 한편으론 손을 내밀어 다른 사람에게 베풀줄 모르고 자기 앞가름만 하는 왜곡된 마음의 소유자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일어나 가운데에 서라"(루카 6,8).
예수님께서 그를 가운데로 부르심으로써 율법 학자들, 바리사이들에게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십니다. '가운데'와 '서다'는 공개적으로 타인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의미의 단어들입니다. 이로써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 뿐만 아니라 예수님 역시 논란의 중심에 서시게 됩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는 데 있어 결코 타협하거나 물러서지 않으시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루카 6,9).
예수님께는 그를 위해 무언가 하는 것이 곧 좋은 일이고 목숨을 구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안식일이라는 명목으로 그냥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지나치는 것은 남을 해치는 일이고 죽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논리를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요?

불행히도 그들은 안식일을 '하느님을 섬기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로 여기니, 당연히 예수님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지요. 예수님께 안식일은 "하느님의 뜻대로 사람에게 자유와 해방을 주는 날"이어야 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니 안식일에도 하느님의 사랑은 이어져야 하지요. 사랑한다면 멈추고 미루고 외면하고 '음, 다음 기회에...' 하며 뒷걸음질 칠 수 없습니다.

"손을 뻗어라"(루카 6,10).
예수님은 세상 창조 때 아버지께서 하셨던 사랑을 이어받아 말씀으로 그를 재창조하십니다. 예수님의 치유는 말씀으로 하시지만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적극적으로 손을 뻗도록 하심으로 이루어집니다. 치유자의 말씀과 환자의 노력이 돋보이는 대목입니다. 사실 그 환자는 손이 오그라든 자신의 신세만 한탄하였지 적극적으로 나눔의 삶은 살 생각조차 못하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오른손이 오그라들었던 이에게만이 아니라 예수님의 목숨을 노리는 이들에게도 유효한 말씀이 될 것입니다. 손이 불편했던 이는 손을 뻗으라는 말씀에 순명해 치유되고,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언젠가 예수님께 손을 뻗어 그분을 십자가에 매달 것이니, 결국 이 말씀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제1독서에서는 사도 바오로의 자신감 넘치고 확신에 찬 목소리가 들립니다.
"나는 내 안에서 힘차게 작용하시는 그리스도의 기운을 받아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콜로 1,29).

사도가 목숨을 걸고 전하는 그리스도께서 바로 하느님의 신비이십니다. 말씀이신 그분은 "과거의 모든 시대와 세대에 감추어져 있던 신비"(콜로 1,26)이십니다. 그 신비가 한때 열혈 유다교 신봉자였던 바오로 안에서 작용하여 "교회를 위해 고난을 겪으며 기뻐하는"(콜로 1,24 참조) 존재로 탈바꿈시킵니다. 이제 그는 무엇을 하지 않음으로써 하느님을 섬기는 자가 아니라, 무엇을 함으로써, 곧 그리스도의 환난을 자기 육신으로 채우면서까지 하느님을 섬기는 "교회의 일꾼"(콜로 1,26)입니다.

하느님을 섬기고 사랑하는 삶은 규정과 관습이 정해 놓은 금지 명령을 준수하는 것만으로 완성될 수 없습니다. 사랑은 무언가를 더,더,더 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마다 않고 그 사랑을 완수하고자 고분분투한 바오로 사도의 사랑, 인류의 속량을 위해 죽음까지 불사한 예수님의 사랑, 그리고 세상 구원을 위해 사랑하는 외아들을 내놓으신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한계를 모르는 사랑의 속성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묻겠다.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예수님께서 매순간 우리에게도 물으십니다. 답은 이미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명하십니다. "손을 뻗어라!"

 

◆ 출처:  원글보기; ▶ 작은형제회 오 상선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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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3.09.12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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