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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 신부 강론

[스크랩] 9월 14일 목요일 성 십자가 현양 축일<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보도록 초대합니다.> 작은형제회 오 상선 바오로 신부

작성자stellakang|작성시간23.09.14|조회수99 목록 댓글 3

9월 14일 목요일  성 십자가 현양 축일

 

제1독서

<뱀이 사람을 물었을 때, 그 사람이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다.>
▥ 민수기의 말씀입니다.21,4ㄴ-9
4 길을 가는 동안에 백성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5 그래서 백성은 하느님과 모세에게 불평하였다.
“당신들은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올라오게 하여,
이 광야에서 죽게 하시오?
양식도 없고 물도 없소.
이 보잘것없는 양식은 이제 진저리가 나오.”
6 그러자 주님께서 백성에게 불 뱀들을 보내셨다.
그것들이 백성을 물어,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죽었다.
7 백성이 모세에게 와서 간청하였다.
“우리가 주님과 당신께 불평하여 죄를 지었습니다.
이 뱀을 우리에게서 치워 주시도록 주님께 기도해 주십시오.”
그래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8 그러자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불 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아라.
물린 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보면 살게 될 것이다.”
9 그리하여 모세는 구리 뱀을 만들어
그것을 기둥 위에 달아 놓았다.
뱀이 사람을 물었을 때,
그 사람이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3,13-17
그때에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말씀하셨다.
13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15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미사의 말씀은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보도록 초대합니다.

 

예수님께서 이집트 탈출 이후 광야에서 벌어진 한 사건과 연결하여 당신의 십자가 죽음을 설명하십니다. 높이 들어 올려진다는 것은 영광에 싸여 윗자리로 영전 받는 것과 다릅니다. 누군가의 폭압적인 손길에 의해 모두의 눈 앞에서 벌거벗긴 채 수치와 모욕의 구경거리가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하느님 섭리 안에서는, 처참히 매달린 누군가가 구원의 의지를 가지고 바라보는 이에게 생명을 선사합니다. 모세의 구리뱀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지요.

 

당신 아드님을 세상에 내주신 아버지의 목적은 세상의 구원입니다. 그만큼 아버지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시지요. 최악의 상황까지 가지 않았으면 더 좋았겠지만, 세상이 외아드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상, 예수님께는 스스로 희생제물이 되어 세상의 죄를 속량하는 길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유다인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인 십자가"(1코린 1,23 참조)를 기꺼이 선택하셨지요.

 

제1독서인 민수기 속 광야 일화에서 우리는 기도의 순수성을 배웁니다.

 

불편하고 힘들다고 하느님과 자신에게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세는 인간적 분노나 실망감을 내비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이 보내신 징벌 앞에서 그들이 간청하자 별 생색도 원망도 없이 기도의 소명을 수행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그 기도를 즉각 들어주셨지요.

문득 '욥의 기도'가 떠오릅니다. 삶의 찬란했던 모든 것을 다 잃고 나락에 떨어졌던 욥에게 와서, 짧고 현학적인 주장으로 도리어 욥을 괴롭혔던 세 친구를 기억하실 겁니다. 그때 주님은 그 무례하고 무도한 친구들에게 "나의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간청하면, 내가 그의 기도를 들어 주어 너희의 어리석음대로 너희를 대하지 않겠다."(욥 42,8)고 하셨지요. 그리고 욥이 세 친구를 위해 기도드리자 주님은 욥의 운명을 되돌려 주십니다.

당신을 모함하고 음모를 꾸며 사형에 이르게 한 이들을 위해 바친 예수님의 '용서의 기도' 역시 맥을 같이하지요(루카 23,34 참조). 예수님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처럼 모든 죄악과 패덕을 순순히 받아들고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써 가장 위대한 기도를 완성하셨지요. 예수님의 기도, 모세의 기도, 욥의 기도에서 자신을 적대하는 이들을 위해 하느님께 올린 순수한 기도라는 공통점이 보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십자가는 어찌보면 유다인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걸림돌입니다. 또, 다른 민족에게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어리석음입니다. 세상은 경쟁하고 따지고 소송하고 이겨야 직성이 풀리는 쪽으로 자꾸 치달아가는데, 배알도 자존심도 없는 사람처럼 들어 주고, 받아 주고, 토닥여 주다가, 나를 해하는 이를 위해 생명까지 다 내놓고 기도해 주니 말입니다.

그럴수록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나 여기 있으니, 나만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불평하지 말고 따지지 말고 당신이 걸어온 길을 따르라고, 입이 댓발 나올 만큼 억울하고 지치면 그냥 멈춰서 당신을 바라보라고요. 무죄하신 하느님이 죽어 매달려 계신 십자가에 "네 무게를 얹고 잠시 쉬렴." 하십니다.

그렇게 주님과 십자가 길동무를 하면서 주님과 우리의 관계는 더욱 깊어가고 두터워집니다. 네 고통인지 내 고통인지 모를만큼 서로의 고통에 민감해지고 또 그만큼 제 고통에 무뎌지면서, 둘은 더 깊은 일치로 나아가는 것이지요. 십자가는 그분과의 일치, 하나됨의 자리가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십자가로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자신의 십자가를 그분 십자가에 합하여 봉헌하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내 십자가가 힘든 줄 아는 우리는 그만큼 남도 힘든 줄 알지요. 그러니 우리, 기도 안에서 서로를 격려하며 거룩한 십자가의 길을 기꺼이 걸어갑시다. 서로 보이지는 않지만 말씀으로 연결된 우리기에, 서로의 순수한 기도가 분명 큰 힘이 되어 줄 것입니다.

오늘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함께 바라보고 있을 무수한 길벗들을 기억하고 힘을 냅시다. 동행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 출처:  원글보기; ▶ 작은형제회 오 상선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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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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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3.09.14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바람의노래 | 작성시간 23.09.15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혜원 | 작성시간 23.09.15 아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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