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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 신부 강론

[스크랩] 9월 20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 작은형제회 오 상선 바오로 신부

작성자stellakang|작성시간23.09.20|조회수149 목록 댓글 5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 

 

제1독서

<우리 신앙의 신비는 참으로 위대합니다.>
▥ 사도 바오로의 티모테오 1서 말씀입니다.3,14-16
사랑하는 그대여, 14 나는 그대에게 곧 갈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면서도 이 글을 씁니다.
15 내가 늦어지게 될 경우, 그대가 하느님의 집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교회로서, 진리의 기둥이며 기초입니다.
16 우리 신앙의 신비는 참으로 위대합니다.
그분께서는 사람으로 나타나시고, 그 옳으심이 성령으로 입증되셨으며
천사들에게 당신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시어 온 세상이 믿게 된 그분께서는
영광 속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7,31-35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31 “이 세대 사람들을 무엇에 비기랴? 그들은 무엇과 같은가?
32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33 사실 세례자 요한이 와서 빵을 먹지도 않고 포도주를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
34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
35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을 지혜의 모든 자녀가 드러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은 이 땅에 그리스도교가 뿌리내리고 열매맺을 수 있도록 생명을 바친 순교자들을 기리는 대축일입니다. 미사의 말씀은 피와 땀과 눈물로 비옥한 신앙의 터전을 일군 의인들의 신앙의 기본기를 우리에게 전수하고자 합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하다."(루카 9,24)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길의 필수 요소로 십자가를 제시하십니다. 십자가는 유다인들에게는 치욕스런 형틀입니다. 이 "십자가"는 모든 사람이 각자 피하고픈 최악의 고통을 비유하는 동시에 예수님께는 몸소 실제로 껴안게 될 죽음의 방식이 될 것입니다.

"십자가"
사실 우리는 크건 작건 저마다의 십자가를 지고 삽니다. 십자가는 자신의 가장 부족하고 약하고 못난 점일 수도 있고, 의도치 않게 닥친 사고나 시련일 수도 있지요. 벗어나고 싶지만 평생 벗어날 수 없는 환경적 요인일 수도 있습니다.

많은 경우 인간은 꼭 그리스도인이 아니어도 인생의 생로병사와 길흉화복의 부침(浮沈)을 겪으며 자기 십자가를 어느 정도 순응하고 받아안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어떤 지향이냐에 따라 적응이거나 포기, 아니면 성장이라 부를 수 있는 여정인 것이지요.

"날마다"
십자가의 특성은 "날마다" 져야한다는 점입니다. 주님께서 나의 성장을 위해 허락하신 십자가는 며칠 지다가 내팽개칠 수 있는 취미나 오락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매일 십자가의 고통과 어려움을 견딘다는 것은, 남이 보기에 아무리 하찮고 작은 십자가라도 나름 비장한 각오와 결심이 매일 동반되어야 하지요.

그렇다면 십자가를 향한 '결심'은 날마다 새로이 '갱신'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하루만 견뎌보리라"는 다짐이 필요하다는 건,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뜻이지요. 이 결심의 갱신을, 무겁고 성가시고 불편하고 고통스런 십자가가 은총으로 완전히 '습(습관, 익힘, 물듦)'의 경지에 이를 때까지 날마다 날마다, 은총으로 십자가와 완전히 한 몸이 되기까지 날마다 날마다...

제1독서에서 지혜서 저자는 십자가(고통, 고난, 단련, 시험)를 통해 영원한 행복을 쟁취한 의인들의 영혼을 칭송합니다.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다. 은총과 자비가 주님의 거룩한 이들에게 주어지고, 그분께서는 선택하신 이들을 돌보시기 때문이다."(지혜 3,9)
주님께 대한 신뢰와 신앙 때문에 목숨을 던지는 것은 어느 결에, 어쩌다가, 우연히, 단발적으로 표출될 수 있는 행위가 아닙니다. 고통 중에 그들이 쌓은 "신뢰"와 "믿음", "거룩함"이 그들 존재에 "습(習)"으로 스며들어 "덕(德)"의 실체로 정착되었기에 가능한 응답이지요.

그런 의인들이 세상의 얄팍하고 얕은 눈에는 "파멸"과 "징벌", 즉 불행이나 불운으로 비치지만, 실제로 그들은 엄청난 행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진리를 깨닫고,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며, 은총과 자비를 받고, 주님의 돌봄을 받는 축복이지요. 이것이야말로 그보다 더한 축복을 떠올릴 수 없을 만큼 내세를 믿는 모든 이의 바람이고 희망이니까요.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우리를 확신에 찬 어조로 격려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내고도 남습니다."(로마 8,37)
그렇습니다! 고통과 시련의 얼굴을 하고 다가오는 어떤 십자가도 우리는 이겨낼 수 있습니다. 물론 만만하지는 않겠지만요. 나 혼자만 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당신께 대한 사랑 때문에 최선을 다해 주어진 십자가를 지려는 우리를 결코 혼자 내버려 두시지 않으십니다.

십자가는 그 본성상 이미 주님과 한몸입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주어지는) 모든 십자가에는 나의 구원을 애달파 하시는 예수님께서 못박혀 계십니다. 십자가와 함께 주님께서 오시는 것이지요. 십자가를 받아안음으로써 우리는 예수님을 동시에 부둥켜 안습니다. 그러니 십자가 안에 계신 주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고 살 길을 열어 주시지요. 십자가와 주님과 나, 이 셋이 하나가 되면 넘어서지 못할 산은 없습니다.

순교는 믿지 않는 이들에게 한없이 미련해 보이고 바보스러운 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믿는 우리는 의인들이 "날마다" 십자가를 지기 위해 매일 결심하고 각오를 다지며, 응답하고 실천한 여정을 공경하고 경외합니다. 순교는 주님의 의인들이 "날마다" 쌓아올린 부단한 인내와 헌신의 열매니까요.

사랑하는 벗님! 벗님이 "날마다" 지는 십자가는, 당장은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반드시 벗님을 온통 주님으로 물들이게 해 줄 것입니다. 십자가는 우리가 진리 안에 거닐며 주님과 함께 사랑 속에 살게 해 주고, 은총과 자비를 누리며 주님의 돌봄 안에 머물게 합니다. 날마다 각자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우리 모두를 격려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맞이한 대축일을 축하드립니다. 우리는 이 멋진 순교자들의 자랑스런 후손이니까요.


◆ 출처:  원글보기; ▶ 작은형제회 오 상선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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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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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바람의노래 | 작성시간 23.09.20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조나단 | 작성시간 23.09.20 아멘 신부님 stellakang 님 고맙습니다.
  • 작성자손빈Youn | 작성시간 23.09.20 감사합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3.09.20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김광시 | 작성시간 23.09.20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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