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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 신부 강론

[스크랩] 12월 6일 대림 제1주간 수요일< 주님께서 우리에게 지니고 계신 연민의 사랑을 보여 주십니다.>

작성자stellakang|작성시간23.12.06|조회수112 목록 댓글 3

대림 제1주간 수요일

 

제1독서

<주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잔치를 베푸시고 그들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내신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25,6-10ㄱ
그날 6 만군의 주님께서는 이 산 위에서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살진 음식과 잘 익은 술로 잔치를,
살지고 기름진 음식과 잘 익고 잘 거른 술로 잔치를 베푸시리라.
7 그분께서는 이 산 위에서
모든 겨레들에게 씌워진 너울과 모든 민족들에게 덮인 덮개를 없애시리라.
8 그분께서는 죽음을 영원히 없애 버리시리라.
주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 내시고
당신 백성의 수치를 온 세상에서 치워 주시리라.
정녕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9 그날에 이렇게들 말하리라. “보라, 이분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다.
우리는 이분께 희망을 걸었고 이분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
이분이야말로 우리가 희망을 걸었던 주님이시다.
이분의 구원으로 우리 기뻐하고 즐거워하자.
10 주님의 손이 이 산 위에 머무르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예수님께서 많은 병자를 고쳐 주시고 빵을 많게 하셨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5,29-37
그때에 29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로 가셨다.
그리고 산에 오르시어 거기에 자리를 잡고 앉으셨다.
30 그러자 많은 군중이
다리저는 이들과 눈먼 이들과 다른 불구자들과 말못하는 이들,
그리고 또 다른 많은 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다가왔다.
그들을 그분 발치에 데려다 놓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셨다.
31 그리하여 말못하는 이들이 말을 하고 불구자들이 온전해지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눈먼 이들이 보게 되자,
군중이 이를 보고 놀라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32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길에서 쓰러질지도 모르니 그들을 굶겨서 돌려보내고 싶지 않다.”
33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 광야에서 이렇게 많은 군중을
배불리 먹일 만한 빵을 어디서 구하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34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하시자,
그들이 “일곱 개가 있고 물고기도 조금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35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땅에 앉으라고 분부하셨다.
36 그리고 빵 일곱 개와 물고기들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37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았더니 일곱 바구니에 가득 찼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미사의 말씀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지니고 계신 연민의 사랑을 보여 주십니다.

제1독서에서는 사람들을 배불리시고 위로하시는 주님의 잔치를 예언합니다.

"그날 만군의 주님께서는 이 산 위에서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살진 음식과 잘익은 술로 ... 잔치를 베푸시리라."(이사 25,6)
주님은 우리의 굶주림을 잘 아십니다. 육신의 굶주림뿐만 아니라 영적 굶주림, 심리적 굶주림, 관계적 굶주림까지 인간 실존이 떠안고 살아가는 모든 허기와 결핍을 아시지요. 그분은 마치 어머니처럼 손수 푸짐한 상을 차려 자녀들을 먹이고 싶어하십니다. 무릇 어머니란 제 자식 입에 들어가는 걸 보는 것만으로 배가 부른 존재니까요.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 내시고, 당신 백성의 수치를 온 세상에서 치워 주시리라."(이사 25,8) 주님은 배만 채워주시는 게 아니라 마음도 어루만져 주십니다. 저마다 겪는 한계로 고통스런 이들에게 더 캐묻지 않으시고 그저 위로하고 격려하며 일으켜 세우십니다.


"우리 기뻐하고 즐거워하자. 주님의 손이 이 산 위에 머무르신다."(이사 25,9-10)
우리가 주님에게서 받을 가장 큰 위안은 바로 그분의 현존입니다. 고쳐 주고 먹여 주는 일회성 행위로 그치지 않으시고, 우리 곁에 영원히 함께하시는 현존입니다. 무언가를 꼭 해주지 않으셔도 그저 주님이 함께하신다는 자체만으로 우리는 안 먹어도 배부르고 없어도 충만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사람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에 오신 것이지요.

복음은 이사야의 예언이 실현되는 순간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에 가셨다. 그리고 산에 오르시어 거기에 자리를 잡고 앉으셨다."(마태 15,29)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변방인 이방인의 고을로 가시어 가난하고 단순한 이들 틈으로 들어가십니다. 이에 사람들이 치유가 필요한 이들을 데리고 몰려 오지요. 그리고 그들은 "주님을 맞이하러 달려가는 이는 복되다."(복음환호송 참조)는 말씀처럼 놀라운 축복을 맛보게 됩니다. 주님께서 그들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마태 15,32)
예수님께서 연민의 사랑으로 그들을 바라보십니다. 모든 사람이 다 불쌍한 건 아니지만, 누구에게나 불쌍한 구석이 있게 마련입니다. 상대가 어떤 처지에 있든 그에게서 연민을 느끼는 이는 피조물에 대한 사랑이 바탕에 깔려 있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잘난 자식도 어머니에게는 안쓰럽고 염려되는 것처럼 예수님께 우리도 그렇습니다.

"그들을 굶겨서 돌려보내고 싶지 않다."(마태 15,32)
모든 어머니가 그렇듯이, 자녀의 배고픔은 어머니에게 형벌 이상의 고통입니다. 자식이 실컷 먹고 배가 불러 흡족해하는 걸 보는 것만큼 어머니에게 흐뭇한 일은 없을 겁니다. 예수님은 이미 치유도 해 주셨고 말씀도 나눠주셨지만, 거기에 더해서 그들의 텅 빈 속까지 채워주고 싶으십니다. 이 말씀 안에서는 그런 예수님의 강한 의지가 뿜어 나옵니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마태 15,37)
제자들이 지닌 적은 빵과 물고기가 예수님의 감사 기도와 나눔으로 사천 명을 훨씬 넘는 사람들을 먹이시고 일곱 바구니나 남게 되지요. 과연 구약에 예언되었듯, 주님께서 '이 산에서 잔치를 베푸시는' 현장입니다.

"배불리 먹었다."
그 흡족함을 관상합니다. 사람들도 만족스러웠지만 누구보다 예수님이 가장 흡족하셨겠지요. 자녀들의 만족스런 표정을 보는 어머니의 마음처럼, 예수님도 세상을 다 얻은 듯 충만하셨을 겁니다.

우리는 육신의 배부름을 넘어 영혼의 배부름으로 초대받은 이들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채워주고 싶어하십니다. 우리 중 누구도, 아무리 부자에, 학자에, 권력가에, 영성가여도 주님께서 채워주고 싶으신 빈 구석이 없는 이는 없습니다.

사랑하는 벗님! 우리, 어머니처럼 자애롭고 애틋한 예수님의 연민의 사랑 앞에서 공연히 힘쓰지 말고, 자존심과 교만과 아집을 내려놓읍시다. 그분께서 먹이고 치유하고 살리시도록 우리 자신을 맡겨드립시다. 세상 어머니처럼 우리가 뜨는 밥 한 술이 그분께는 세상을 다 얻은 듯한 행복일 터이니 그분의 연민의 사랑이 원하시는 대로 머무릅시다. 주님께서 퍼부어 주시는 은총을 배불리 받아 먹는 오늘 되시길 축원합니다.

 

▶작은형제회 오 상선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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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조나단 | 작성시간 23.12.06 아멘 신부님 stellakang 님 고맙습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3.12.06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김광시 | 작성시간 23.12.06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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