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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 신부 강론

[스크랩] 12월 15일 대림 제2주간 금요일 <하느님의 안타까움이 읽힙니다. >작은형제회 오 상선 바오로 신부

작성자stellakang|작성시간23.12.15|조회수82 목록 댓글 3

 대림 제2주간 금요일

 

제1독서

<아, 네가 내 계명들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48,17-19
17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너의 구원자이신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주 너의 하느님
너에게 유익하도록 너를 가르치고
네가 가야 할 길로 너를 인도하는 이다.
18 아, 네가 내 계명들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너의 평화가 강물처럼, 너의 의로움이 바다 물결처럼 넘실거렸을 것을.
19 네 후손들이 모래처럼, 네 몸의 소생들이 모래알처럼 많았을 것을.
그들의 이름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도 없어지지도 않았을 것을.”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그들은 요한의 말도 사람의 아들의 말도 듣지 않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6-19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16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기랴?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17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
18 사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말한다.
19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말한다.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났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미사의 말씀들에서는 하느님의 안타까움이 읽힙니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마태 11,17).

예수님께서 상대방에게 전혀 호응을 해주지 않는 당시 이스라엘 세대의 태도를 장터 아이들 놀이에 비유하십니다. 기쁨에 기쁨으로 슬픔에 슬픔으로 감응하지 않고, 어떤 판이 벌어져도 거부할 태세를 갖춘 모습이지요.

예수님 시대 사람들은 메시아를 간절히 기다리기는 했지만 가급적 자기들 구미에 맞는 존재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준을 벗어나는 듯하면 거짓 예언자나 선동가, 죄인으로 몰아 생명까지 앗아갔습니다. 게다가 이런 일들은 제도의 힘을 빌어 하느님의 이름으로 자행되었지요.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마태 11,18).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은 친구다"(마태 11,19).

세례자 요한이 행한 절제와 극기는 거룩한 덕입니다. 예수님의 겸손과 포용력과 친화력 역시 아름다운 덕이지요. 그런데 이러한 덕들도 자기 프레임에 갇힌 굳은 마음으로 보면 마귀짓일 뿐이고 방종에 불과합니다. 그들은 일찌감치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께 선고를 내린 셈입니다.

제1독서에서도 하느님의 탄식이 들립니다.

"아, 네가 내 계명들에 주의를 기울였다면"(이사 48,18).

이스라엘에 축복을 준비하고 계셨던 하느님께 이스라엘의 배반은 뼈 아픈 슬픔입니다. 그분께서는 이스라엘을 위해 "강물같은 평화, 바다 물결처럼 넘실거릴 의로움, 모래알처럼 많은 후손, 길이 기억될 이름"(이사 48,18-19 참조)을 마련하고 기다리셨지만, 이스라엘은 그 기대를 벗어났고 하느님의 축복은 유예 상태로 묶입니다.

사람 마음이 그렇지요. 마음만 먹으면 온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지만, 반대로 그 무엇도 발 붙이지 못하게 밀쳐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보다 엄밀히 말해 민중을 움직일 수 있는 정치 종교 기득권층은 어쩌면 자기들 이익에 도움이 될 메시아가 나타날 때까지 이 거부권을 행사하며 하느님을 밀쳐낸 것이지요. 무수한 예언자의 죽음에 이어 세례자 요한과 예수 그리스도까지 제거한 고질적 병폐였습니다.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났다"(마태 11,19).

예수님의 안타까움은, 그러나 탄식으로 끝나지 않고 명쾌한 자기 확신으로 마무리됩니다. 지혜는 말씀이신 성자 예수님이시고, 진리 자체시기에 그르침이 없으시지요. 그분이 세상에서 이루신 사랑의 기적들로 지혜의 옳음이 드러납니다. 이는 거부하기로 작정한 이들에게만 가리워져 있는 선입니다. 예수님은 세대의 약함과 악함에도 흔들리지 않고 당신의 길을 걸어가십니다.

"나는 주 너의 하느님, 너에게 유익하도록 너를 가르치고 네가 가야 할 길로 너를 인도하는 이다"(이사 48,17).

하느님께서 마음을 다해 피력하신 이 자기소개는 듣는 이의 마음에 따라 따사로운 위로와 격려가 되기도 하지만, 현세적 성공과 자기본위적 이득을 보장해 줄 메시아가 나타날 때까지 믿음을 보류하고 사랑마저 묶어둔 굳은 마음에게는 스며들지 않겠지요.

오늘의 말씀은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고 있는 우리의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묻습니다. 당신을 고대하는 우리를 위해 주님께서 준비하신 축복은 그분과 함께 춤추고 그분과 함께 가슴 치며 울 수 있는 촉촉하고 말랑말랑하게 열린 마음 안으로 쏟아질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이 공감능력입니다.


◆ 출처:  원글보기; ▶ 작은형제회 오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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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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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3.12.15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바람의노래 | 작성시간 23.12.15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김광시 | 작성시간 23.12.15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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