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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신부 강론

2024년 4월 18일 부활 제3주간 목요일 /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작성자stellakang|작성시간24.04.18|조회수220 목록 댓글 5

 

제1독서

<여기에 물이 있습니다. 내가 세례를 받는 데에 무슨 장애가 있겠습니까?>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8,26-40
그 무렵 26 주님의 천사가 필리포스에게 말하였다.
“일어나 예루살렘에서 가자로 내려가는 길을 따라 남쪽으로 가거라.
그것은 외딴길이다.”
27 필리포스는 일어나 길을 가다가 에티오피아 사람 하나를 만났다.
그는 에티오피아 여왕 칸다케의 내시로서,
그 여왕의 모든 재정을 관리하는 고관이었다.
그는 하느님께 경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28 돌아가면서,
자기 수레에 앉아 이사야 예언서를 읽고 있었다.
29 그때에 성령께서 필리포스에게,
“가서 저 수레에 바싹 다가서라.” 하고 이르셨다.
30 필리포스가 달려가 그 사람이 이사야 예언서를 읽는 것을 듣고서,
“지금 읽으시는 것을 알아듣습니까?” 하고 물었다.
31 그러자 그는 “누가 나를 이끌어 주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서,
필리포스에게 올라와 자기 곁에 앉으라고 청하였다.
32 그가 읽던 성경 구절은 이러하였다. “그는 양처럼 도살장으로 끌려갔다.
털 깎는 사람 앞에 잠자코 서 있는 어린양처럼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33 그는 굴욕 속에 권리를 박탈당하였다.
그의 생명이 이 세상에서 제거되어 버렸으니 누가 그의 후손을 이야기하랴?”
34 내시가 필리포스에게 물었다. “청컨대 대답해 주십시오.
이것은 예언자가 누구를 두고 하는 말입니까?
자기 자신입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입니까?”
35 필리포스는 입을 열어 이 성경 말씀에서 시작하여
예수님에 관한 복음을 그에게 전하였다.
36 이렇게 그들이 길을 가다가 물이 있는 곳에 이르자 내시가 말하였다.
“여기에 물이 있습니다.
내가 세례를 받는 데에 무슨 장애가 있겠습니까?”
(37)·38 그러고 나서 수레를 세우라고 명령하였다.
필리포스와 내시, 두 사람은 물로 내려갔다.
그리고 필리포스가 내시에게 세례를 주었다.
39 그들이 물에서 올라오자 주님의 성령께서 필리포스를 잡아채듯 데려가셨다.
그래서 내시는 그를 더 이상 보지 못하였지만 기뻐하며 제 갈 길을 갔다.
40 필리포스는 아스돗에 나타나,
카이사리아에 이르기까지 모든 고을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44-51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
그리고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릴 것이다.
45 ‘그들은 모두 하느님께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라고 예언서들에 기록되어 있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운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 온다.
46 그렇다고 하느님에게서 온 이 말고 누가 아버지를 보았다는 말은 아니다.
하느님에게서 온 이만 아버지를 보았다.
47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48 나는 생명의 빵이다.
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죽었다.
50 그러나 이 빵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아침 산책길에 신기한 현상을 봤습니다. 둥근 보름달이 서쪽 하늘에 환하게 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동쪽 하늘에 여명이 생기면서 점차 밝아졌습니다. 서쪽 하늘에 있던 둥근 달이 점차 희미해졌습니다. 마침내 태양이 붉게 떠오르자, 서쪽 하늘에 있던 둥근 달은 이내 사라졌습니다. 자연현상이지만 제 눈으로 직접 본 건 처음이었습니다. 신학적으로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을 그렇게 설명하기도 합니다. 세례자 요한의 탄생은 6월 24일입니다. 이는 절기상 하지입니다. 하지까지는 낮이 길어지지만, 하지가 지나면 낮은 점차 짧아집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12월 25일입니다. 절기상 동지입니다. 동지까지는 낮이 짧아지지만, 동지가 지나면서 낮은 점차 길어집니다. 

 

둥근 달이 태양이 떠오르자, 자리를 양보했던 것처럼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면서 예수님께서 오시자 ‘하느님의 어린양’이 오셨다고 하면서 자리를 양보하였습니다. 달과 태양을 보면서 예전에 읽었던 글이 생각났습니다. “태양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월광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 태양이 주는 강렬한 힘도 좋지만, 달빛이 주는 은은한 감성도 좋습니다.

 

한국에서 천만 명이 넘게 보았다는 ‘파묘(破墓)’를 댈러스에서 보았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월광에 물드는 신화가 생각났습니다. 어릴 때, 동네에 ‘무당집’이 있었습니다. 무당집 아들이 친구였습니다. 친구 집에 가면 굿을 하는 것을 보았고, 먹을 것도 많았습니다. 벌써 50년이 넘은 기억입니다. 친구 집에는 깊은 우물이 있었고, 여름에도 시원한 물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교회에 자리를 내어 주었지만, 예전에는 동네에 무당집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곳을 찾아가서 길흉화복(吉凶禍福)을 풀이하였습니다. 길과 복은 청하고, 흉 화는 멀리하도록 굿판을 벌였습니다. 그것은 불교와 유교가 채워주지 못했던 서민들의 애환을 담아내는 굿판이었습니다. 

 

태양과 달, 바위와 나무, 곰과 호랑이, 혼과 영은 선사시대부터 내려오던 월광에 물들던 신화였습니다. 영화 파묘는 무당과 지관이 함께 어우러져 신명 나는 굿판을 벌이는 내용입니다. 그 서사에 일제 강점기의 역사가 있고, 풍수지리와 음양오행의 사상이 있습니다. 그리고 배우들의 옹골찬 연기가 있습니다. 디지털과 검색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우리 사회는 태양에 바래진 역사와 월광에 물든 신화가 어깨동무하고 있었습니다.

 

양파의 껍질을 벗기고 또 벗기면 결국 남는 게 없습니다. 양파는 껍질을 벗기는 것보다 요리해서 음식의 재료로 쓰는 것입니다. 종교는 양파의 껍질을 벗기듯이 시작과 끝을 파악하는 것보다 지치고 힘든 우리의 삶에 위로와 용기를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과학적으로, 신학적으로 증명하고, 해석할 필요도 있겠지만, 예수님의 부활은 초대 교회의 사도와 공동체가 온몸으로 증언하고, 살아냈던 신앙의 신비입니다. 과학적으로 신학적으로 접근했던 토마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내가 직접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보고, 내가 직접 그분의 옆구리에 있는 상처를 만져봐야만 예수님의 부활을 믿겠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토마 사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토마야!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자는 참으로 복되다.” 

 

저는 어머니가 저를 낳은 모습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를 낳으신 어머니를 믿습니다. 어머니의 젓을 먹었고, 어머니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세례를 받은 신앙인들은 2000년 전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지 못합니다. 그것은 이미 햇빛에 바래진 역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한 교회의 가르침을 믿습니다. 주님의 부활을 믿으며 모든 걸 버렸던 신앙인들의 땀과 눈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부활을 믿으며 순교의 월계관을 받았던 신앙인들의 헌신과 희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지나간 날에 집착하는 사람들에게는, 오지도 않은 앞날을 걱정하는 사람에게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충실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지금의 충실한 삶이 과거가 되는 것이고, 지금의 행복한 삶이 미래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시간과 공간의 문제가 아닙니다. 영원한 삶은 신앙 안에서 지금을 충실하게 사는 것입니다. 물리학적인 시간, 생물학적인 시간은 유한합니다. 그러나 순간을 말씀 안에서 충실하게 사는 사람은 신앙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 끝은 우리의 몫이 아닙니다. 그 끝은 주님께서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은 바로 순간을 영원처럼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언제나 감사하십시오. 매일 기도하십시오. 항상 기뻐하십시오.’ 작은 물방울도 시간만 있으면 큰 바위에 구멍을 냅니다. 우리가 열정을 가지고 길을 찾으면 주님께서는 능히 지혜를 주시고, 용기를 주실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출처 : 우리들의 묵상/체험  ▶ 글쓴이 :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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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리스트
  • 작성자stellakang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4.18 아멘 주님 찬미 받으소서.
  • 작성자조나단 | 작성시간 24.04.18 아멘 신부님 stellakang 님 고맙습니다.
  • 작성자아참 | 작성시간 24.04.18 순간을 말씀 안에서 충실하게 사는 사람은 신앙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4.04.18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들꽃1 | 작성시간 24.04.18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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