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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신부 강론

[스크랩] 2024년 1월 30일 연중 제4주간 화요일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작성자stellakang|작성시간24.01.30|조회수234 목록 댓글 7

 

제1독서

<내 아들 압살롬아, 너 대신 차라리 내가 죽을 것을.>
▥ 사무엘기 하권의 말씀입니다.18,9-10.14ㄴㄷ.24-25ㄱㄴ.30―19,3
그 무렵 9 압살롬이 다윗의 부하들과 마주쳤다.
그때 압살롬은 노새를 타고 있었다.
그 노새가 큰 향엽나무의 얽힌 가지들 밑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그의 머리카락이 향엽나무에 휘감기면서
그는 하늘과 땅 사이에 매달리게 되고,
타고 가던 노새는 그대로 지나가 버렸다.
10 어떤 사람이 그것을 보고 요압에게 알려 주었다.
“압살롬이 향엽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14 요압은 표창 셋을 손에 집어 들고, 압살롬의 심장에 꽂았다.
24 그때 다윗은 두 성문 사이에 앉아 있었다.
파수꾼이 성벽을 거쳐 성문 위 망대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바라보니,
어떤 사람이 혼자서 달려오고 있었다.
25 파수꾼이 소리쳐 이를 임금에게 알리자,
임금은 “그가 혼자라면 기쁜 소식을 가져오는 자다.” 하고 말하였다.
달려온 그에게 30 임금이 “물러나 거기 서 있어라.” 하니, 그가 물러나 섰다.
31 그때 에티오피아 사람이 들어와 말하였다.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임금님께 맞서 일어난 자들의 손에서
오늘 임금님을 건져 주셨습니다.”
32 임금이 에티오피아 사람에게 “그 어린 압살롬은 무사하냐?” 하고 묻자,
에티오피아 사람이 대답하였다.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의 원수들과 임금님을 해치려고 일어난 자들은
모두 그 젊은이처럼 되기를 바랍니다.”
19,1 이 말에 임금은 부르르 떨며 성문 위 누각으로 올라가 울었다.
그는 올라가면서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 압살롬아,
너 대신 차라리 내가 죽을 것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다.
2 “임금님께서 우시며 압살롬의 죽음을 슬퍼하신다.”는 말이
요압에게 전해졌다.
3 그리하여 모든 군사에게 그날의 승리는 슬픔으로 변하였다.
그날 임금이 아들을 두고 마음 아파 한다는 소식을
군사들이 들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21-43
그때에 21 예수님께서 배를 타시고 건너편으로 가시자
많은 군중이 그분께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 호숫가에 계시는데,
22 야이로라는 한 회당장이 와서 예수님을 뵙고 그분 발 앞에 엎드려,
23 “제 어린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 아이가 병이 나아 다시 살게 해 주십시오.” 하고 간곡히 청하였다.
24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와 함께 나서시었다.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르며 밀쳐 댔다.
25 그 가운데에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하는 여자가 있었다.
26 그 여자는 숱한 고생을 하며 많은 의사의 손에 가진 것을 모두 쏟아부었지만,
아무 효험도 없이 상태만 더 나빠졌다.
27 그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군중에 섞여 예수님 뒤로 가서 그분의 옷에 손을 대었다.
28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29 과연 곧 출혈이 멈추고 병이 나은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30 예수님께서는 곧 당신에게서 힘이 나간 것을 아시고 군중에게 돌아서시어,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셨다.
31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반문하였다.
“보시다시피 군중이 스승님을 밀쳐 대는데,
‘누가 나에게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십니까?”
32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누가 그렇게 하였는지 보시려고 사방을 살피셨다.
33 그 부인은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알았기 때문에,
두려워 떨며 나와서 예수님 앞에 엎드려 사실대로 다 아뢰었다.
3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
35 예수님께서 아직 말씀하고 계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는,
“따님이 죽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스승님을 수고롭게 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36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말하는 것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37 그리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동생 요한 외에는
아무도 당신을 따라오지 못하게 하셨다.
38 그들이 회당장의 집에 이르렀다.
예수님께서는 소란한 광경과 사람들이 큰 소리로 울며 탄식하는 것을 보시고,
39 안으로 들어가셔서 그들에게, “어찌하여 소란을 피우며 울고 있느냐?
저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40 그들은 예수님을 비웃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다 내쫓으신 다음,
아이 아버지와 어머니와 당신의 일행만 데리고
아이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셨다.
41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말씀하셨다. “탈리타 쿰!”
이는 번역하면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는 뜻이다.
42 그러자 소녀가 곧바로 일어서서 걸어 다녔다.
소녀의 나이는 열두 살이었다. 사람들은 몹시 놀라 넋을 잃었다.
43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이 일을 알리지 말라고
그들에게 거듭 분부하시고 나서,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이르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며칠 전 뉴욕에서 노량을 보았습니다이로서 이순신 장군의 3대 해전에 대한 영화가 막을 내렸습니다. ‘명량한산노량입니다명량에서 인상적인 장면은 이순신 장군이 승선한 장군선이 물살에 떠밀려 큰 바위에 부딪쳐 부서질 위험에 처했을 때입니다많은 사람들이 작은 배를 타고 장군선에 고리를 달아 물살이 약한 안전한 곳으로 끌고 가는 모습이었습니다장군이 백성을 사랑하니백성도 장군을 사랑하는 모습에 뭉클했습니다한산에서 인상적인 장면은 학익진입니다육지에서만 사용하던 진법을 이순신 장군은 바다에서도 사용했습니다그물로 물고기를 가두어 잡듯이이순신 장군은 학익진으로 일본의 배를 포위하였고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노량에서 인상적인 장면은 북소리였습니다전세가 불리해지자 이순신 장군은 직접 북채를 잡고 북을 쳤습니다장군선에 울리는 북소리는 명나라의 군인과 조선의 군인들에게 커다란 용기와 힘을 주었습니다이순신 장군은 북을 치는 과정에서 적의 총탄을 맞고 전사하였습니다이순신 장군은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명을 내리고계속 북을 치게 하였고노량해전에서 조선과 명나라의 연합군은 승리하였습니다그렇게 7년 전쟁을 끝이 났습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아람어로 말하는 모습이 3번 있습니다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에파타라고 말씀하셨습니다이는 열려라라는 뜻입니다듣지 못하고말하지 못했던 사람은 귀가 열려서 들을 수 있었고말할 수 있었습니다사람들은 모두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고말 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 (마르 7, 37)” 영적으로 듣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세상에 마음을 빼앗기기 때문입니다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복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2024년 새해에는 우리 모두 에파타하면 좋겠습니다우리들의 마음이 열리고우리의 귀가 열려서 하느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겠습니다이미 시작되었지만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느님 나라의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습니다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너는 게파이다게파는 바위라는 뜻입니다예수님께서는 이 바위 위에 교회를 세운다고 하셨습니다세상의 어떤 힘도 이 교회를 무너트릴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2000년 시간이 흘렀어도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는 굳건하게 바위 위에서 건재하고 있습니다우리는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를 신앙으로 고백하고 있으며 베드로 사도를 초대교황으로 공경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죽었던 회당장의 야이로의 딸을 찾아갔습니다사람들은 죽었다고 말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아직 죽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소녀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탈리타쿰(일어나라)’ 죽었던 소녀는 일어났습니다. “소녀는 곧바로 일어나서 걸어 다녔습니다사람들은 모두 놀랐습니다. (마르 5, 42)” 근심 때문에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타성에 젖어서 새로운 희망을 찾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열등감 때문에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살아있지만 영적으로 죽은 사람이 많습니다거짓된 자아는 참된 자아를 보지 못하게 합니다십자가를 지고 죽었지만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잠시 지나가는 이 세상에서 방황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2024년 새해에는 우리 모두 예수님처럼 탈리타쿰하면 좋겠습니다신앙은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입니다절망에서 희망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거짓에서 진실로 일어나는 것입니다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꽃처럼 사랑의 꽃을 피우는 것입니다우리 모두 탈리타쿰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말씀하셨다. ‘탈리타쿰!’ 이는 번역하면 소녀야내가 너에게 말한다일어나라!’는 뜻이다그러자 소녀가 곧바로 일어서서 걸어 다녔다.” 

 



※ 출처 : 미주가톨릭평화신문→ ( 오늘의 복음 묵상)  ▶ 글쓴이 :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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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조나단 | 작성시간 24.01.30 아멘 신부님 stellakang 님 고맙습니다.
  • 작성자atti | 작성시간 24.01.30 아멘.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4.01.30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들꽃1 | 작성시간 24.01.30 감사합니다!
  • 작성자혜원 | 작성시간 24.01.30 아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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