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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만큼 보인다

작성자햇살아침|작성시간24.02.08|조회수230 목록 댓글 0

 

 

 

 

 

 

 

 

 

 

 

 

 

 

 

 

 

 

 

 

 

 

 

 

 

 

 

 

 

 

 

 

 

 

 

 

 

 

 

 

 

 

 

 

 

 

 

 

 

 

 

 

 


기독교 2천년 역사에서 가장 신성이 뛰어나고 기억력이 우수한 분이 마테오리치 신부님이었다. 중국사람들이 그를 신神이라고 했다. 중국에 와서 중국말을 배우고 유가의 경전을 라틴어로 번역하면서 아~ 천주님이 상제님이다.

 

자기들이 믿는 하나님을 천주(天主)라고 번역하고 그걸 지금도 카톨릭에서 쓰고 있다. 천주교라고. 천주교 어원을, 천주天主란 언어가 상제님을 알고 나온 언어다. 사실이. 이걸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본래 호칭이 상제님이다. 구한말 애국가에도 ‘상제는 우리 황상을 보호하사, 라고 기록되어 있다.

 

 

 

 

 

 

 

 

 

 

 

 

 

 

 

 

 

 

 

 

 

 

 

 

 

 

 

 

 

 

 

 

 

 

 

 

 

 

 




 

 

『서경書經』은 유가에서 말하는 가장 이상적인 통치자, 즉 4천여 년 전 이후의 요, 순, 우, 탕, 문, 무, 주공 등의 성인 제왕들이 어떻게 통치했는지, 그 통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그 책의 서두에는 “제왕으로 등극을 하면 먼저 태산泰山에 올라 천상에 계신 상제님께 제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그래서 ‘제왕은 천상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다.’ 라고 해서 ‘천자天子’라 불러 왔다.

 

 

동양에서 말한 ‘천자(天子, 하나님에 아들)’와 서양 기독교 문화에서 말하는 ‘신의 아들’이 통하는 것이다. 예수 성자가 한평생 “내가 하나님의 아들(天子)이다.”라고 주장하지 않았는가.

 

 

 

 

 

 

기독교 성서(聖書)에는 하나님이 엘로힘과 여호와(야훼)와 백보좌 하나님 세 분이 등장한다. 

 

「구약 성서」에는 야훼(여호와) 하나님만 등장하고, 「신약 성서」에는 백보좌의 아버지 하나님만 등장한다. 예수 성자 이전의 유대인이 믿은 하나님은 야훼(여호와) 하나님이다. 

 

창세기에 나오는 초월적인 천지 창조주로서의 엘로힘은 「구약 성서」의 야훼(여호와)와 「신약 성서」의 백보좌 아버지 하나님으로 혼용되어 쓰인다.
 


엘로힘은 '우리의 형상'으로 '하나님들'이란 말이지만, 기독교의 계파와 학자들 사이에서도 '복수형이다.' 또는 '단수형이다.'라고 끊임없이 논란이 되고 있다. 

 

엘로힘을 제외하고 기독교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는「구약」과 「신약」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두 하나님의 호칭은 야훼(여호와)와 백보좌 아버지 하나님이다. 
 
 
천지창조에서 타락, 그리고 구원으로 이어지는 기독교의 구원관의 근원은 삼위일체(三位一體), 성부와 성자와 성령론이다.  '본질적으로 한 분이지만, 작용은 셋으로 한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역할과 인격체인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삼위일체론 역시 하나님의 호칭과 함께 기독교 신학자 사이에서 갑론을박이다.
 

 

 

 

 

 

삼위일체론의 진실  
 

 

 

 

2세기 중엽, 당시 페르시아의 태양신 미트라 신앙이 쇠퇴하고 기독교가 로마의 상류층까지 전파되면서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313년에는 국교로 인정된다. 그러나 당시까지만 해도 삼위일체론은 확고하게 정립된 교리가 아니었다. 

 

그러다가 삼위일체의 인정 여부를 놓고, 예수는 하나님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아리우스(258-336)파와 예수가 곧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아타나시우스(297-373)파가 대립하게 된다.

이에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예수가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면 교회의 권위가 파괴되어 결국 로마제국까지 흔들릴 것이라 판단하여 아타나시우스의 주장을 지지하게 된다. 그리하여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예수성자가 하나님 아버지다’라고 공인되면서 이후로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곧 하나님 아버지라고 믿게 되었다. 말하자면 인간의 지배 논리에 의해 예수님이 순식간에 하나님 아버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예수 성자는 단 한 번도 자신이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말하지 않았으며, 야훼(여호와)가 하나님이란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을 내려보낸 백보좌 아버지 하나님의 인간 강세를 말하였다.

 

 

 

기독교 구원관이 가장 잘 기록되어 있는 요한계시록은 구역 성서에서 말한 초월적 창조주로서의 엘로힘이나 야훼(여호와) 하나님이 아닌 ' 백보좌에 앉아 계신 아버지 하나님이 등장한다.
 
기독교 구원관의 총결론인 요한계시록에는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로서 새 하늘 새 땅을 여실 백보좌 아버지 하나님은 「구약 성서」에 등장하는 엘로힘이나 야훼(여호와)가 아니다.

 
 
 

 

 


  
또 불교는 어떠한가? 

 

 

 

새 문명을 여시는 구원의 부처, 미륵불은 석가모니의 제자가 아니다. 많은 불교인들은 미륵은 석가모니의 제자로서 56억 7천만년 뒤에 인간세상에 오신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불교 최고(最古)의 경전인 『숫타니파타』 마지막 장인「피안도품(彼岸道品)」에도 바바리의 16제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수행승 미륵이 미래불이 된다는 내용을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그래서 팔리어 연구의 권위자인 리스 데이비스(Rys Davis)는 미래불인 미륵불은 수행승 미륵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또한 미륵사상연구의 대가인 일본의 와타나베 쇼코(渡邊照宏)도『미륵하생경,『미륵대성불경』등 미륵불과 관련된 주요 경전에, 수행승 미륵이 미래불이 된다는내용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음을 지적한 바 있다.
 
미륵은 도솔천의 천주님이시며 하나님으로서 석가를 내려보낸 분이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에 불교가 들어오고 미래불인 미륵불의 사상이 전래되자 미륵불에 귀의하여 용화낙원 세계에 나고자 하는 미래적인 신앙이 보편적인 신앙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에 미륵신앙을 대중화시킨 분은 통일신라시대의 진표율사이다. 진표율사는 미륵신앙의 중심도장으로 모악산 금산사, 금강산 발연사, 속리산 법주사를 확장 창건하였다. 그래서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곳곳에 미륵불 신앙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미륵(彌勒)의 어원은 범어로‘마이트레야’(Maitreya, 자비로운 어머니)이며,마이트레야는 미트라(Mitra)에서 유래되었다. 미트라는 인도, 페르시아 등지에서 섬기던 고대의 태양신이다. 또 기독교의 메시아(Messiah)도 미트라에서 유래되었다. 즉 ,불교에서 인류를 구원하실 분으로 수천년 동안 고대해왔던 "미륵부처님’과 기독교에서 수천년 동안 외쳐왔던 구원의‘메시아’는 모두 우주의 통치자 하느님을 가리키는 같은 의미의 단어인 것이다. 

 

 

 

 

선교사들은 각 나라에 들어갈 때마다, 그 지역의 신관으로 옷을 갈아입고 들어갔다.

 

야훼가 영어권으로 들어갔을 때는 God로, 중국에서는 천주, 상제, 神으로, 일본에서는 가미로, 조선에 와서는 하나님이라는 단어로 옷을 갈아입었다.


그런데 일본이나 중국은 하느님에 관한 신관이 인식되지 않아 야훼를 전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조선에 오니까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관이 아주 발달되어 선교사들은 조선에서 기독교가 쉽게 전파될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선교사들은 조선에서 야훼를 야훼라 소개하지 않고, 야훼를 <하나님>으로 번역하는 포교전략을 택한 것이다. 이 전략은 적중하여 손쉽게 한국에서 뿌리내릴 수 있었다. 서양종교가 도입된지 400년이 넘는 일본, 중국, 인도에서는 기독교가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했지만, 한국에서는 100년만에 전인구의 40%에 이를 정도로 폭발적인 성장을 하게 된 것이다. 
 

 

 

 

 

 

게일의 Korea in Transition 책(1909년 刊)에서

 

 

선교사 게일은 기독교 신도가 아닌 청소부 할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비가 올거예요.”라고 하자

할머니는 대뜸 “비요? 비가 오는지 어떻게 알죠?” 

 

게일은 “아침 신문 일기예보에 비가 많이 온다고 되어 있어요.” 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원 세상에! 하느님이 하시는 일을 아침신문이 어떻게 알아요?” 

나는 늙은 할머니가 전지전능한 신을 알고 있는 것에 깜짝 놀랐다... 소나 말의 먹이통 같은 데서 밥먹고, 고통받고, 죽고, 추방당하고, 이 가난한 조선땅에 어떻게 하나님 신앙같은 것이 있겠는가?

 

그것은 정말 비합리적이고 불가능한 이야기일 뿐이다.(게일은 더럽고, 고통받는 이들로 가득찬 가난한 조선땅에 전지전능한 신인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존재할리 없다고 부정하고 있다) 



 


로스의 The God of Korea(1888년 저술) 책에서

 

 

 

조선인들은 하늘의 주, 하나님을 상제라는 용어로 바꿔쓴다. 중국에서는 야훼 용어 번역과 관련해 슬프고 꼴 사납고, 큰 어려움이 있었는데, 조선에서 <하나님>에 대해 들은 것을 종합해볼 때 한국인이 이 단어를 가지고 있는 것에 고마움이 느껴졌다. 

19세기, 우리나라에 들어온 기독교 선교사들은 한결같이 놀랐다. 왜냐하면 동방의 이름 없는 나라에서 깜짝 놀랄만큼 발달된 하느님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체험과 연구에 의하면 미개한 나라일수록 원시적이고 조잡한 신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조선도 당연히 원시적이고 저급한 신관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조선은 전연 달랐다. 조선에는 야훼 못지않게 크나크신 하느님을 믿고 있었다. 그들은 이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게일같은 선교사는 미개한 조선이 전지전능한 하느님관을 가진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며, 부정하기까지 했다. 우리민족보다 뛰어난 하느님관을 가진 나라는 없었다.

 

 

 

 


여호와는 어떤 신인가?

구약을 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구절이 있다.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출애굽기 3:6) 이 내용은 상식으로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또 에스겔에는“이스라엘 족속이 내 백성인줄 알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라.”(에스겔 34:30)는 구절이 나온다.

이 두 구절만 봐도 여호와는 이스라엘 족속을 약속의 백성으로 삼아 통치를 하는 유대족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여호와는 본래 아라비아 반도에 뿌리를 둔 유대족의 부족신이자 조상신이다. 그리고 여호와는 원래 전쟁 전문가인 군신軍神이다.



중동 지방의 족속들이 전쟁에 나가기 전에 이기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는 전쟁 신이다. 시편을 보면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시편 24:8) 라고 찬양하는 구절이 나온다.

또 출애굽기 32장을 보면,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자기의 친구를, 각 사람이 자기의 이웃을 죽이라”하셨느니라. ’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매 이 날에 백성 중에 삼천 명 가량이 죽임을 당하니라.’라는 구절이 있고,

 


사무엘상에는 ‘여호와께서 백성을 쳐서 크게 살육하셨으므로 백성이 애곡하였더라.’ (사무엘상 6:19)는 내용이 나온다. 이 내용을 보면 여호와는 때에 따라 생명을 무수히 죽이는 전쟁신이다.

 

하나 더 예를 들면, 자기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는데 길을 막는 자는 뱃속에 있는 애까지 다 도륙하라, 멸망을 시키라는 명령을 내린다.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로 내가 그들을 벌하노니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사무엘상 15:3)고.


얼마 전 가톨릭의 차동엽 신부는 <맥으로 읽는 성경>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구약을 읽어보면‘아니, 이게 무슨 하나님이냐. 제 백성을 위해서 남의 백성을 씨도 안 남기고 뱃속의 애까지 다 쳐 죽이라 하는분이 무슨 하나님이냐.’라고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또 신화의 아버지 조셉 캠벨은 저널리스트 빌 모이어스와의 대담 프로에서 “십계명은‘살인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다음 장章에 가면 ‘가나안 으로 가서 거기에 있는 것은 모두 죽여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이것이 바로 범주가 구속된 사회의 도그마입니다.

 

참여와 사랑의 신화는 오로지 무리의 안을 맴돕니다. 밖을 향하면 태도는 표변합니다. <이방인>이라는 말이 드러내는 의미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방인과 한솥밥을 먹을 수 없는 것이지요.” 라고 했다.


그 내용을 정리한 책이 『신화의 힘 The power of myth』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우리나라에도 출간되었다. 오직 내 백성만 위하고 타민족은 적대시하는 살육적인 신관으로 인해 지금 이 순간에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싸우는 것이다. 중동 전역에서 서로를 죽이는 참상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외쳤는데 그분이 여호와인가? 여호와는 전쟁신이다. “씨도 남기지 말고 전멸시켜라”라고 하는. 전 인류 조상신 버리게 하고. 그 죄악을 한번 생각해 본다.

 

 

 

기독교의 결론이 “새 하늘 새 땅을 보았습니다.” 이 한 마디다. 예수의 제자 사도 요한은 ‘새 하늘 새 땅이 새로이 열리는 바로 그 때, 아버지 하나님이 오신다.

 

그래서 아버지가 직접 아버지의 나라, 천국을 건설하신다.’고 전했다. “예수가 직접 온다는 게 아니다. 내가 아닌 다른 분이, I am come in my father's name, and ye receive me not, if another shall come in his own name, him ye will receive.)」(요한복음 5:43)

 

사도 요한은 ‘백보좌 하나님’이 오신다고 했다. 장차 올자라고... I am the Alpha and the Omega, says the Lord God, who is, and who was, and who is to come, the Almighty(All-Sovereign).



 

 

 

 

 

 

 

 

 

 

 

 

케냐의 국부(國父) 조모 케냐타 曰, "선교사들이 처음 왔을 때 그들은 성경을 가지고 있었고 우리에게는 땅이 있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눈을 감고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우리가 눈을 떴을 때 땅은 그들의 것이 되어 있었고 성경은 우리 손에 들려 있었다.
 

 

19세기 북아메리카나 호주, 뉴질랜드에 파견된 선교사들은 백인 정부의 지원을 받아 학교를 세우고 원주민들을 교육했는데, 오히려 원주민의 문화를 탄압하고 백인들의 문화를 강제주입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동아시아에서 선교사들은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와 함께 아시아인들의 고유 문화와 종교, 신앙 체계를 미신이라 하여 갈아 엎으려 들었고, 이걸 막으려고 관과 법에 호소하면 오히려 열강 공사관의 권력을 앞세워 폭거를 일삼는 존재로 보였다.
 
 

 

 

 

 

 

 

 

 

 

 

 

중세를 무너뜨리고 근대의 문을 연 유럽의 흑사병은 이미 인류에게 질병의 무서움을 상기시키는 문화적 상징이 되었다. 페스트라고 부르는 흑사병이 발병하기 전, 여섯 차례에 걸친 십자군 전쟁이라는 피의 역사가 있다.


1346년, 흑사병은 현재의 흑해 연안 크림 반도의 항구 도시인 카파Kaffa를 휩쓸었다.

페스트에 걸린 사람들은 아침에는 멀쩡하다가도 밤이 되기 전에 피를 토하고 죽었다. 당시 사람들은 흑사병을 떼죽음Big death 이라고 불렀다. 흑사병은 창궐 이후 맹렬한 위세로 7천5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흑사병은 엄격했던 사회 계층 구조를 흔들어 , 중세 봉건 사회를 무너 뜨리고 근대 자본주의를 앞당기는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인간의 의식과 태도의 변화다.

수많은 사람들이 병으로 죽자 인류를 구원한다는 교회나 봉건 제후 대신, 흑사병에 비교적 신속히 대처한 도시 정부를 더 믿기 시작했다. 공용어였던 라틴어 대신 각국의 언어가 공식 문서에 쓰이기 시작하고, 화가들은 천상에 대한 그림보다는 고통과 고뇌에 찬 인간의 모습을 즐겨 그림으로써 르네상스의 밑거름이 되었다. 흑사병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본질에 눈뜨게 하였고, 민족국가의 탄생과 종교개혁 등 문명의 대전환을 불러왔다.

 

 

 

 

 

 

 


여호와 신이 유일신으로 바뀐 역사 과정


 

 

 

지금부터 약 4천 년 전(BCE 2000년경) 아브라함의 족속은 수메르제국 내에 있던 갈데아 우르(Ur:도시국가)지역에 살다가,

 

강대국들의 잦은 침입과 기근 등으로 우르가 쇠잔해지자 유프라테스 강을 강을 건너 가나안(현재, 팔레스타인 일대)땅으로 이동한다.

 

이때부터 아브라함 족속을 헤브루(Hebrew : ‘강을 건너온 사람’이라는 뜻)라고 부르게 된다.


약 3,500(BCE 1,500)년경 전후에 기근이 들자 헤브루족의 일부는 나일강 유역으로 이동을 하여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아간다. 

 

강제노역을 하며 고통과 절망의 삶을 살던 히브리족은 BCE 1,300년 경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를 탈출한다. 이 때 모세는 민족정신을 하나로 강력하게 묶기 위해, 그들 민족의 하나님인 만군萬軍의 신 여호와와의 계약을 통해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10계의 첫 번째 계율)는 유일신 신앙을 선포하게 된다.

그 후 헤브루족은 모세를 이은 여호수와의 인도로 팔레스티나 지역에 정착해 살았는데, BCE 1,000경에는 다윗왕이 흩어지고 분열된 족속을 통일하여 히브리왕국을 건설함으로써 약 400여 년 간 번영을 누린다. 그러나 다윗왕에서 솔로몬왕으로 이어지던 통일왕국은 다시 이스라엘왕국과 유대왕국으로 분열이 된다.

 

 



이스라엘은 209년간(BCE 931~BCE 722년) 존속하다가 아시리아 제국에 의해 망하고, 유대왕국은 345년간(BCE 931~BCE 586년) 존속하다가 신흥강국인 바빌로니아에게 멸망을 당한다. 유대왕국을 멸망시킨 바빌로니아왕은 솔로몬궁전과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고 재물을 약탈하고, 유대의 지도층을 비롯하여 모든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 바빌론으로 끌고 간다.

 

 

 

바빌론에서 노예생활을 하면서 유대족은 자괴감에 빠지고 민족정신이 분열되게 된다. 그러자 위기를 느낀 유대족의 선지자들은 여성을 희생양으로 삼아 여자가 원죄를 지어서 이러한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하는

 

원죄론과 유대족 선민의식과 그들 외의 타종교를 우상숭배로 매도하는 극도의 배타적인 사상을 만들어내게 된다.

 

 

당시는 유대백성들의 고통과 절망과 분노를 해소시킬 무언가가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 후 2,500여년(BCE 538년)에 이르러 메소포타미아의 새로운 강자 페르시아제국에 의해 바빌로니아는 멸망당한다.

 

유대족이 바빌로니아로부터 풀려날 때까지의 약 50년간(BCE 586~538)을 역사에서는 유대족의 바빌론 유수기라고 한다. 바빌로니아를 멸망시킨 페르시아는 유대인들을 해방시켜 고향인 예루살렘으로 귀환시킨다.

그리고 바빌로니아에 의해 파괴된 예루살렘 신전을 재건축하도록 재정지원까지 해주고 종교적 자유인으로 만들어준다. 바로 이 때문에 유대인들은 페르시아 왕을 메시아로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유대인이 메시아로 인식한 페르시아 왕이 신봉하던 종교가 바로 ‘조로아스터교’였고, 따라서 유대인들은 자연스럽게 조로아스터교의 메시아사상을 유대교 교리로 받아들이게 된다.




 

페르시아 왕의 도움으로 고향으로 돌아온 유대인들은 “이 모든 것은 거룩하신 주님의 은총이시다.

 

유대민족을 선택하신 여호와만이 전지전능하신 유일신이시다!”하고 하느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유대교를 정리하게 된다. 그리하여

첫째, 신은 여호와 한 분뿐이다.
둘째, 유대민족은 신의 선택을 받았다.

셋째, 인류의 종말이 오고 신이 메시아를 보내어 인간을 구원하신다 하는 유대교의 메시아사상, 유일신 신관이 정립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중동지역 유대족의 여호와가 인격신에서 초월신으로, 대우주의 창조주 하나님으로 신격이 변색되어 버린다.


 

신관 자체가 중동의 지역신에서 우주의 절대자 신격으로 완전히 바뀌어버린 것이다.

 

여호와신은 본래 중동의 지방신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이러한 신앙관을 그대로 계승하여 기독교인들은 여호와신을 우주의 조물주로 신앙하고 있다. 그들에 의하면 여호와신이 원 조물주이고, 창조주이고, 우주의 주관자로서 인간으로 올 수가 없는 초월신이다.

 

그 여호와 신이 인간을 사랑하여 독생자인 예수를 내보냈으며, 예수는 육화한 하나님으로서 심판의 때가 되면 믿는 사람을 건져 올리기 위해 다시 이 세상에 재림한다는 것이다.

 

 

 

 

 

 

 

 

 

 

 

 

 

 

 

 

 

 


황필호교수_종교철학개론  [존 H 힉著, 황필호 譯編<종교철학개론> p26] 

 

히브리인의 하느님은 원래 이스라엘 민족의 ‘야훼’라는 부족신(부족신)이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민족의 ‘다곤’이나 모하브 민족의 ‘체모스’와 같은 부족신과 싸우는 하느님이었다.

 

그러나 기원전 6~8세기에 나타난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1세, 예레미아, 이사야 2세와 같은 예언자들은 야훼는 히브리인의 하느님일 뿐만 아니라 천지의 창조주이며 모든 역사와 인류의 심판자라고 끈질기게 가르치기 시작했다.

하느님은 ‘신앙의 가족’에 속하는 동족뿐만 아니라 모든 인종이나 집단을 돌봐주는 하느님이 되었다. [존 H 힉著, 황필호 譯編<종교철학개론> p26] 

 





도올 김용옥의 <절차탁마 대기만성> p102~104

 

야훼는 어디까지나 유대민족의 신이다.

내가 한국기독교인들이 막연하게 구약에 대해 갖고 있는 경학관經學觀에 대해 살펴볼 때 그들은 그들 자신을 유대인으로 착각하고 있다고 느낀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들의 기독교 경학관은 전통적 유교 경학관의 오류의 답습이라는 연속성속에서 정확히 이해될 수 있다고 느껴진다.


한국의 기독교신학이 하여야 할 첫 사명은 기독교의 이해 자체에서 야훼 존재성의 문화적 성격을 탈색해 내버리는 것이다. 설교에서나 생활규범 속에서 구약의 명제들을 무비판적으로 절대적 진리로서  강요하거나 받아들인다면 그들은 암암리 자신을 유대인, 그것도 맹목적 유대인으로 동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과연 <조선왕조실록>의 종교적 명제들을 이스라엘 사람에게 강요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자기 역사책인 <조선왕조실록>은 한 장도 거들떠 보지 않은 사람들이 남의 민족의 역사책은 왜 무오류적으로 맹신해야 하는가? 그러면서 자신을 한국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구약성서는 기본적으로 유대민족의 역사기록이다. 단지 그 역사의 성격이 야훼의 구속사적 특성을 갖는다는 것뿐이다. 이것은 나 개인의 주장이 아니라 유대인 자신들의 구약 이해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참고문헌


・ 『마녀사냥』, 모리시마 쓰네오 지음, 조성숙 옮김, 현민시스템, 1997
・ 『마녀사냥의 역사』, 오성근 지음, 미크로, 2000

・ 『사탄과 약혼한 마녀』, 장 미셸 살망 지음, 은위영 옮김, 시공사, 1995
・ 『세일럼의 마녀들 : 1692년 마녀 사냥의 비밀』, 로절린 섄저 지음, 김영진 옮김, 서해문집, 2013


・ 『유럽의 마녀사냥』, 브라이언 P. 르박 지음, 김동순 옮김, 소나무, 2003
・ 「마녀사냥에 대한 민중문화사적 접근」, 김란숙 지음, 서강대학교, 1997
・ 「중세 말 근대 초기 유럽의 마녀사냥에 대한 연구」, 엄재호 지음, 협성대학교, 2012

 

 

 

 

 

 



정찬일: 충청남도 논산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고,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 기자, 광고 카피라이터, 홍보 등 줄곧 글 쓰는 업무에 종사했다. 정찬일 선생님 글 요약

 

 

 

 

 

중세 마녀사냥

 

 

초창기 기독교에서 악마는 착한 신에 대적할 힘을 가진 존재였으나, 마녀는 《성경》에 등장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기독교가 지배하는 세상이 도래하자 마녀가 등장했다.

유럽의 13~14세기는 혼돈의 시기였다. 십자군 전쟁의 실패로 교황의 권위가 추락했고 세속 왕들의 권력이 강해졌다. 1347년에 창궐한 흑사병은 전체 유럽 인구 3분의 1의 생명을 앗아갔다. 비슷한 시기에 발발한 백년전쟁과 종교전쟁, 독일 농민전쟁, 프랑스의 위그노 전쟁 등이 유럽을 휩쓸었다. 

 

 

 

 

 

 

흑사병 이전에는 작은 빙하기로 불릴 만큼 자연재해가 잇따라 일어나는 바람에 흉년도 계속됐다. 이렇게 불안과 공포가 거듭될수록 사람들은 신에게 의지했다. 그러나 기도는 소용없었고, 기댈 데 없는 이들은 점점 이 모든 일이 악마의 소행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단에 대한 종교재판이 열리면서 자연스럽게 이단과 악마를 결합시켰다.


교황 요한 22세는 이단 심문관들에게 마녀를 처벌할 수 있다고 명시한 교서를 내렸다. 뒤이어 즉위한 베네딕투스 12세는 악마가 자신의 목숨을 노릴 것이라고 굳게 믿고 ‘악마와의 전쟁’을 선언했다. ‘마녀사냥’이 정식으로 개장한 것이다.

이단 심문관들은 의욕이 넘쳤다. 그들은 고발당한 마녀를 재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세상 속에 나가 마녀들을 색출했다. 이단 문제로 골치를 썩이던 남프랑스에서 그 효과가 즉각 나타났다. 

 

교황의 발표 이후 1320년부터 1350년까지 이 지역에서 마녀로 기소된 자는 600명이었으며 그중 400명이 처벌을 받았고 200명이 불태워졌다. 각 지역마다 마녀재판이 수없이 열리자 1484년 교황 이노센트 8세는 마녀를 이단으로 규정하는 공식 칙령을 내렸다. 이제 ‘분명한 이단 행위’를 하지 않더라도 마녀들을 종교재판에서 처벌할 수 있게 되었다.




 

마녀사냥의 교과서 《마녀의 망치》

 

마녀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면서 성직자와 신학자 사이에서 ‘마녀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마녀의 정체와 그 구별법, 마녀재판 등 이 연구 결과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빠른 속도로 유럽에 퍼져나갔다.

 

인류 문명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연구의 가장 큰 성과물은 하인리히 크레이머가 써서 1486년에 발행한 《마녀의 망치》였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의 목적은 마녀재판의 형식과 방법을 정립하는 데 있다. 지역마다 마녀재판의 절차와 처벌이 달라 이를 통일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이 책은 ‘마녀사냥의 교과서’로 여겨질 만큼 큰 영향을 끼쳤다.

 

총 3부로 구성되었는데, 1부는 마녀가 이단임을 입증하는 데 주력했다.

 

2부는 하늘을 나는 방법, 악마와 짝짓는 방법, 인간을 짐승으로 바꾸는 방법 등 마녀의 행위를 자세히 설명했다.

 

3부는 체포부터 판결까지, 재판 절차와 심문에 필요한 조언과 심문관의 태도를 실었다.

《마녀의 망치》는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마녀는 인간의 모습을 한 악마이므로 반드시 죽이라고 권고했다.

마녀는 살려두어서는 안 된다. 마귀와 교접한 자는 반드시 죽여야 한다. 다른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자도 죽여야 한다. 제사는 반드시 야훼에게만 드려야 한다.마틴 루터(1483~1546, 독일의 신학자)

 

 

 

 

마녀들은 원래 사악하기 때문에 눈물이 없다. 《마녀의 망치》는 “지금 모든 눈물을 닦아주었던 하느님 앞에 결백하고 순결하다면 너는 네 눈에서 눈물을 쏟아야 한다. 만약에 죄가 있다면 결코 눈물을 흘리지 못할 것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아멘!”이라는 예문을 읽는 동안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면 마녀로 단정해도 좋다고 했다. 악마가 억지로 흘리게 하는 경우도 있으니 신중하라는 충고도 덧붙였다.

 


교황 이노센트 8세는 이 책을 크게 칭찬하며 추천사를 썼다. 《마녀의 망치》는 인쇄술의 발달에 힘입어 29판 이상 인쇄되었다. 해가 거듭될수록 책의 인기가 높아져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영어 등으로 번역되어 전 유럽으로 퍼졌다. 게다가 이 시대에는 드물었던 18절지의 포켓판이 만들어져 재판관이나 심문관의 주머니에 들어가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들은 재판을 진행하다 곤란을 겪을 때 책상 아래에서 이 책의 책장을 넘겼다.



 

교회법에 따르면, 이단과 마녀는 고발은 물론 소문으로도 체포할 수 있었는데, 밀고보다 소문에 의한 체포가 많았다. 물론 그 진위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입증이 곤란한 ‘특별한 범죄’여서 일단 체포부터 하고 재판하라고 《마녀의 망치》는 알려주었다. 용의자들은 체포와 동시에 감옥에 갇혔다. 《마녀의 망치》는 미결수라도 ‘되도록 좁고 어두운 옥방’에 수감할 것을 장려했다. 공포감을 극대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중세에 이르러 이단과 마녀 혐의자에게는 고문이 무차별적으로 실시되었다. ‘악마를 물리치기 위해 신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므로 아무리 잔인한 고문을 해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다. 고문실에는 예외 없이 십자가와 함께 “신에게 영광을”이라는 팻말이 걸려 있었다.

고문은 되도록 죽지 않는 범위에서 최대한 공포심을 심어주는 고통스런 방법을 썼다. 악마가 몰래 마녀의 힘을 북돋워주고, 마녀는 고통을 즐기는 변태이며, 살아서라도 죄의 대가를 받아야 한다는 명분으로 고문을 합리화했다. 마녀사냥 이후 일반 범죄 심문에서도 고문은 크게 확산되었다.



 

마녀들에게는 고문보다 더 무서운 것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화형이다. 마녀사냥의 출발점이 되었던 이단죄에 대한 벌은 참회의 고행, 채찍질, 십자군 종군, 큰 배에서 노 젓기, 벌금, 사형 등이었다. 

 

그러나 이단자 심판이 엄격해지면서 대부분을 사형에 처했고, 마녀들도 같은 길을 걸었다. 악마와 맺은 계약은 아무리 뉘우쳐도 용서받을 수 없었다. 

 

처형 방식은 교수형, 수장형, 참수형, 그리고 불에 태워 죽이는 화형이 있었다. 원칙은 화형이었는데, 14세 이하의 어린이는 고통이 가장 덜한 참형이나 교수형에 처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10세 이하의 어린이는 목욕탕에서 동맥을 끊어 과다 출혈로 죽게 함으로써 고통을 줄였다.

 


산 채로 불에 타는 것은 죽음보다 더 큰 공포였다. 그래서 재판관들은 자백하면 교수형으로 죽여주겠다고 약속했다. 초기에는 산 채로 화형하는 것이 너무 잔인해 집행을 주저했다. 그러나 《마녀의 망치》 이후로는 망설임이 없었다. 책에서는 마녀의 시신이 온전하면 악마의 힘으로 되살아나 재판관들에게 복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불로 태운 다음 재까지 완전히 없애야 했다.

 

 

 

화형식이 열리는 날은 축제였다. 곳곳에 화려한 깃발이 꽂히고 집집의 베란다는 꽃다발로 장식되었다. 

 

보통 화형을 집행하기 한 달 전에 예고하는데, 참관하면 40일 동안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며 참석을 독려했다. 성직자들은 전날 마을을 돌아다니며 화형식을 상기시킨다. 

 

화형장은 죄를 선고하는 식장과는 떨어진 곳에 설치하는 게 원칙이다. 처형당할 마녀의 수만큼 쇠기둥을 세우고 그 주위에 마른 장작을 쌓는다. 장작에는 불이 잘 타오르도록 미리 기름을 바른다. 화형식이 거행되는 날, 여명과 함께 교회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감옥에 있는 마녀의 머리를 빡빡 깎고, 깨끗한 흰옷으로 갈아입힌다. 풍성한 아침 식사에 포도주까지 준다. 밧줄로 꽁꽁 묶인 마녀가 광장에 등장하면 군중은 환호하면서 조롱과 비난, 욕설을 퍼붓는다. 

 

 

마녀에 대한 미사 후 재판관이 선고한다. 화형이 선고되면 재판관은 마녀를 위해 기도하고 화형 집행관에게 마녀들을 인계한다. 재판관들이 형장에 가지 않는 이유는 신성한 교회는 처벌에 손대지 않기 때문이었다. 군중은 화형장으로 끌려가는 마녀들에게 돌을 던졌다. 집행관들은 마녀들을 쇠사슬로 기둥에 묶은 후 즉각 불을 지핀다. 

 

 

종종 재판 기록도 같이 불태웠다. 마녀의 기운이 붙은 것들을 완전히 없애고, 조작된 기록물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였다. 쇠기둥에 묶였던 마녀는 얼마 후 뼈와 재만 남게 되는데, 집행관들이 이를 빻아 강물에 흘려버림으로써 마녀재판은 마침표를 찍는다. 돈이 많이 들어서 화형은 집단적으로 실시했으며, 고문 중에 죽은 마녀들의 시신도 같이 불태웠다.

화형이 끝나면 재판과 화형에 들어갔던 경비를 정산해야 한다. 이 비용은 누가 댈 것인가? 국왕인가 교황인가? 사실 마녀재판이 급증한 원인 중 하나가 재산이라는 주장도 있다. 정산의 원칙은 죽은 마녀의 돈으로 충당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마녀재판 시작과 동시에 마녀 혐의자의 재산을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절차였다. 

 

마녀 소유의 부동산과 동산 및 채무 관계까지 꼼꼼히 파악했다. 자기 돈으로 자신의 죽음까지 처리해야 하는 것이 마녀의 운명이었다.

마녀재판은 재판관이나 성직자가 부를 쌓는 수단이기도 했다. 부자였던 유대인이 자주 표적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재판관들은 마녀가 생전에 남들에게 준 돈이나 금도 같이 몰수하는 한편, 경매에 나온 마녀의 부동산을 입찰자들과 짜고 가장 낮은 가격으로 샀다. 혐의자에게 빚이 있는 자를 증언대로 불러 거짓 증언을 하는 대신 그 빚을 탕감해주는 짓도 했다. 그래서 마녀재판은 ‘사람들의 피에서 돈을 만드는 연금술’이라는 조롱을 받았다.





누가 얼마나 희생당했을까?


어떤 사람들이 주로 마녀로 처형당했을까? 우선 대다수가 여성이었다. 기독교에서 악마의 유혹에 넘어간 이브의 후예인 여성은 신앙적으로 약한 존재였으며, 금욕 생활을 하는 성직자들에게는 멀리해야 할 대상이었다. 《마녀의 망치》는 여성을 지독하게 경멸했다.

“여성은 돼지 코에 걸려 있는 금테다. 그것은 아름답다. 하지만 부도덕하고 방탕하다. 그래서 여성은 육체적으로 더 외설스럽고 음란한 것이 분명하다. 여성은 마녀이고 창녀다.” 직업으로 보면 요리사, 산파, 점쟁이, 민간요법 치료사가 많았다. 요리사와 민간요법 치료사는 특히 전염병이 돌 때 의심받기 제격이었다. 산파는 출산한 아기가 죽거나 기형의 아이가 나왔을 때 신고당하는 일이 많았다. 점쟁이나 무당은 그들이 가진 예언 능력을 악마에게서 받았다는 이유로 처형당했다.




참고문헌
・ 『마녀사냥』, 모리시마 쓰네오 지음, 조성숙 옮김, 현민시스템, 1997
・ 『마녀사냥의 역사』, 오성근 지음, 미크로, 2000
・ 『사탄과 약혼한 마녀』, 장 미셸 살망 지음, 은위영 옮김, 시공사, 1995
・ 『세일럼의 마녀들 : 1692년 마녀 사냥의 비밀』, 로절린 섄저 지음, 김영진 옮김, 서해문집, 2013
・ 『유럽의 마녀사냥』, 브라이언 P. 르박 지음, 김동순 옮김, 소나무, 2003
・ 「마녀사냥에 대한 민중문화사적 접근」, 김란숙 지음, 서강대학교, 1997
・ 「중세 말 근대 초기 유럽의 마녀사냥에 대한 연구」, 엄재호 지음, 협성대학교, 2012

 

 

 

 

 

 

 

 

 

 

 

 

 

 

 

 

 

 

 

 

 

 

 

 

 

 

 

 

 

 

 

 

크래머Kramer 박사는 현 서양문화의 뿌리요, 기독교 문명의 모체인 수메르 문명(BCE 3500~BCE 1950)을 건설한 사람들은 '동방에서 왔다' 고 주장하였다.

 

일본 학자 우에노上野景福는 수메르에서 사용한 설형楔形 문자가 태호 복희의 팔괘 부호와 흡사하다고 지적하였다. [대영大英 백과사전]에는 수메르어와 한국어는 같은 교착어로서 그 어근語根을 같이한다고 하였다. 고든 Gordon 박사는 수메르인이 중근동中近東에 들어서기 전에 고대의 문자 기호를 가지고 온 듯하다고 하였다.

 

 

 

 

 

 

 

 

 

 

 

 

 

 

 

 

 

 

 

 

 

 

 

 

 

 

 

 

 

 

 

 

 

 

 

 

 

 

 

 

 

그러면 수메르 문명과 기독교의 관계는 무엇일까?

 

 

 

 

수메르 문명은 서양 문명의 시원일 뿐만 아니라 기독교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 대다수 학자의 공통된 의견이다.

 

단적으로 [창세기]에 나오는 저 유명한 바벨탑(수메르의 지구랏) 이야기를 통해서 성서에 끼친 수메르 문명의 영향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에덴동산과 노아의 홍수 신화도 수메르 신화에서 기원한다. 뿐만 아니라, 신교神敎 경전인 [삼일신고(三一神誥)]에 나오는 삼신일체三神一體 신관과 기독교의 삼위일체 신관은 혼동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유사하다.

 

 

수메르 문명이 기독교 문화에 끼친 영향을 알 수 있는 또 다른 근거는, 기독교(유대교) 문화의 뿌리가 되는 유대족의 조상 아브라함이 본래 수메르의 갈데아 우르Ur 출신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구약]에는 수메르 문화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12환국桓國의 열두 나라 가운데 우르(虞婁, Ur)국과 수밀이(須密爾, Sumer)국이 있다. 이 두 나라가 환국 말기에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지금의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세운 문명이 수메르 문명이다. 수메르인은 스스로 ‘검은머리' 사람이라 했다.

 

특히 수메르의 종교 신앙 가운데 '하나님의 산' 혹은 '하늘 언덕' 이라 불린 지구랏Ziggurat은 제천단 유적으로서, 신교神敎의 삼신신앙과 제천 문화가 여전히 환국의 후예인 수메르인의 삶과 신앙 의식 속에서 제1의 중핵 자리를 점하고 있었음을 명백히 보여 주는 증거라 할 것이다.

 

 

 

 

 

 

 

 

 

 

 

 

 

 

 

 

 

 

 

 

 

 

 

 

 

 

 

 


기독교 2천년 역사에서 가장 신성이 뛰어나고 기억력이 우수한 분이 마테오리치 신부님이었다. 중국사람들이 그를 신神이라고 했다. 중국에 와서 중국말을 배우고 유가의 경전을 라틴어로 번역하면서 아~ 천주님이 상제님이다.

 

자기들이 믿는 하나님을 천주(天主)라고 번역하고 그걸 지금도 카톨릭에서 쓰고 있다. 천주교라고.

천주교 어원을, 천주天主란 언어가 상제님을 알고 나온 언어다. 사실이. 이걸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본래 호칭이 상제님이다. 구한말 애국가에도 ‘상제는 우리 황상을 보호하사, 라고 기록되어 있다.

 

 

 

 

 

 

 

 

 

 

 

 

 

 

 

 

 

 

 

 

 

 

 



 

 

 

 

 

 

 

 




 

 

『서경書經』은 유가에서 말하는 가장 이상적인 통치자, 즉 4천여 년 전 이후의 요, 순, 우, 탕, 문, 무, 주공 등의 성인 제왕들이 어떻게 통치했는지, 그 통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그 책의 서두에는 “제왕으로 등극을 하면 먼저 태산泰山에 올라 천상에 계신 상제님께 제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그래서 ‘제왕은 천상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다.’ 해서 ‘천자天子’라 불러 왔다. 동양에서 말한 ‘천자(天子, 하나님에 아들)’와 서양 기독교 문화에서 말하는 ‘신의 아들’이 통하는 것이다. 예수 성자가 한평생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주장하지 않았는가.

기독교라는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외쳤는데 그분이 여호와인가? 여호와는 전쟁신이다. “씨도 남기지 말고 전멸시켜라”라고 하는. 전 인류 조상신 버리게 하고. 그 죄악을 한번 생각해 본다.

 

 

 

기독교의 결론이 “새 하늘 새 땅을 보았습니다.” 이 한 마디다. 예수의 제자 사도 요한은 ‘새 하늘 새 땅이 새로이 열리는 바로 그 때, 아버지 하나님이 오신다.

 

그래서 아버지가 직접 아버지의 나라, 천국을 건설하신다.’고 전했다. “예수가 직접 온다는 게 아니다. 내가 아닌 다른 분이, I am come in my father's name, and ye receive me not, if another shall come in his own name, him ye will receive.)」(요한복음 5:43)

 

사도 요한은 ‘백보좌 하나님’이 오신다고 했다. 장차 올자라고... I am the Alpha and the Omega, says the Lord God, who is, and who was, and who is to come, the Almighty(All-Sovereign).



 

 

 



 

 

 

 

 

 

 

 

 

 

 

 

 

 

 

 

 

성서의 원본인 사해문서 the Dead Sea Scrolls 메시아는 두 분이 오신다.

 

 

 

 

 

※ 미국의 공영방송 PBS에서 초기 성서의 원본인 사해문서 the Dead Sea Scrolls의 진실에 대해 권위있는 석학들이 인터뷰한 내용을 방영한 적이 있다. 

 

사해 동굴에서 발굴해낸 초기 기독교의 성서 원본 두루마리 내용에서 가장 충격적인 내용은 자스트람 Nathan Jastram이 밝힌 바, 

 

메시아가 한분은 왕Kingly figure' 으로, 다른 한 분은 제사장 priestly figure'으로, 두 분이 오신다는 것이다.William Sanford LaSor, The Dead Sea Scrolls and the Christian Faith, Moody Press, 1962. 152~156쪽

 

 

 

 

 

 

 

 

 

 

 

석가부처께서 말한 두 명의 메시아

 

 

 

 

 

 

 

말법시대가 되면 샹가(襄伽,Sankha)라는 전륜성왕과 미륵(Metteya)부처가 한시대에 등장한다고 '전륜성왕 사자후경(轉輪聖王 獅子吼經,Cakkavattisihanada Sutta)'에서 이례적으로 말하고 있다.

 

“너희들은 입멸하지 말라. 내 불법이 다할 때까지 남은 후에 입멸하라. 마하가섭은 입멸하지 말고 미륵부처님의 출현을 기다려라.” <미륵하생경>

 

"고약한 병들이 잇달아 번지리라. 이 때에 그 통일의 하늘에 계시는 미륵부처님이 바다에 둘러싸인 동방의 나라에 강세하리라."

 

 

 

 

"이 곳은 병든 세계를 고치는 위대한 대왕(大醫王)이 머무는 곳이니라." "그 때에 미륵부처님이 집에 계신지 오래지 않아서 집을 떠나 도를 닦으시리라. 

 

 

계두성이 멀지 않은 곳에 보리수가 있나니 그 이름은 용화(龍華)라. 미륵부처님께서 그 나무 밑에 앉으시어 무상의 도과(道果)를 이루시느니라.

 

이 때에 양커라 하는 법왕(法王)이 출세하여 정법(正法)으로 다스려 칠보(七寶)를 성취하니 무기를 쓰지 않고도 자연히 전 영토에서 항복을 받게 되느니라. 미륵부처께서 우주의 새 생명 세계를 열어 모든 인간을 부처(진리에 눈뜬자)로 태어나게 하시니, 이것이 땅위의 조화낙원인 용화세계로다. 이곳은 병든 세계를 고치는 위대한 대왕(大醫王)이 머무시는 곳이니, 그 때는 기후가 고르고 사시(四時)가 조화되며 여러 가지 병환이 없어지고 인심이 골라서 다 한뜻이 되는 울단월(鬱單越)의 세계와 같다." 하니라. 『 미륵 하생경』

 

 

 

 

 

 

 

 

 

 

 

 


불교의 결론이 무엇인가?

 

 

 

 

 

석가모니 부처는 <미륵경>에서 장차 미륵부처님이 오신다.”고 했다. 자신의 아들 라훌라에게 ‘너는 지금 열반에 들지말고 앞으로 오실 미륵부처님을 따르라’고 했다.


불교에서 전하는 구원의 소식은 무엇일까?
석가모니 부처가 제시한 인류의 희망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미래불이요, 구원의 부처요, 희망의 부처인 미륵부처님의 출세 소식이다.

말법시대가 극에 달하면, 미륵부처님이 지상에 내려와 온 인류를 구원한다는 것이 불교 구원관의 결론이다. 이것이 바로 소승(小乘)이나 대승(大乘), 남전(南傳) 이나 북전(北傳) 할 것 없이 모든 종파의 구별을 초월해서 전하는 불교 구원관의 최종 결론이다.



미륵부처님의 출세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57억 6백만년설(『雜心經』), 56억 7천만년설(『菩薩處胎經賢愚經』), 인수(人壽) 8만 4천세(歲)설(『長阿含經』)’ 등이 있는데, 모두 현실적인 감각의 시간개념과는 전혀 거리가 먼 내용들이다. 확실한 것은 불가의 생명력이 거의 소진되어 가는 말법시대에 중생을 보편적으로 구원하는 미륵부처님이 출현한다는 것이다.

북방불교에서 쓰는 불기와 남방불교에서 쓰는 불기에 500년가량의 차이가 있다. 그런데 일본과 더불어 태국같은 남방불교국가들이 주도하던 세계불교회의에서 불기를 약 2500년 경으로 통일하기로 결정하였다. 그 이후 우리도 이 통일된 규정을 따르고 있다.


『법화경法華經』을 보면, ‘내 법이 천 년 정법正法, 또 천 년 상법像法,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천 년 말법末法을 거쳐서 새로운 변화가 온다. 그 때는 미륵부처님이 오신다.’고 했다. 정법 1,000년과 상법 1,000년, 그리고 말법 1,000년  합 3,000년 후


백성욱 박사(승려이자 초대내무부장관)께서는 석가부처님이 가신 후 3000여년이 흘렀다고 말씀하였다. 그 명백한 증거로 혜초선사가 남방씰론 섬으로 여행을 떠나던 기록을 통해 계산하고 가름함으로 3000년이 흘렀음을 알 수 있다.


숭산스님의 전법게를 쓰신 분은 BCE 1026년에 부처님이 탄생하신 것으로 적어 놓았다. 불기를 3000년경으로 추정했던 전통은 우리나라가 속한 북방불교의 전통이었다. 미륵부처님은 석가모니불 이후 3000년 후에 이 땅에 오신다고 하였기에 과거 북방불교의 전통을 따르자면 미륵부처님이 벌써 다녀가셨을 시기이다.

 

미륵경에는 미륵부처님이 오실 말법시대의 징조로는...
밤이 낮처럼 환하다 (전기불)
마을은 장닭이 날아서 건널만큼 가까운 거리로 연결이 된다(아파트)
길은 미끈한 유리가 깔린다(아스팔트)


대,소변을 보면 땅이 갈라져서 그것들이 사라진다(수세식변소)
나쁜 과일들은 좋고 맛있는 과일들로 대체가 된다(품종개량)
사람들은 좋은 옷을 입고 삶이 편해진다, 남녀간의 성생활이 문란해진다.


"그 때에 미륵님이 집에 계신 지 오래지 않아서 집을 떠나 도를 닦으리라. 계두성이 멀지 않은 곳에 보리수가 있어 이름을‘용화(龍華)’라 하나니, 미륵존불께서 그 나무 밑에 앉으시어 무상의 도과(道果)를 이루시니라." "고약한 병들이 잇달아 번지리라. 이 때에 그 통일의 하늘에 계시는 미륵불이 바다에 둘러싸인 동방의 나라에 강세 하리라."『 미륵 하생경』



유교의 결론도 ‘간방艮方에서 하나님이 오신다.’는 것이다. 간艮은 동북방의 변화 괘상을 말한다. 동북방으로 하나님이 오신다는 것이다.



 

 

 

 

 

 

 




모든 문화라는 것은 깨달음의 원전에서 나온다.


연극, 영화, 시, 예술, 음악 무슨 정치, 경제, 문화, 의식주, 모든게 문화 콘텐츠 원전에서 나오는 것이다. 원전을 모르는 그런 인생은 문화의 중심에서 벗어난 이탈자이고 변방인이다. 서양에 2천년 문명을 창조한 신약이 있고, 유대교의 구약이 있고, 인도에 베다가 있고, 중국에 유교 4서5경이 있고, 도교의 도장경이 있다.

팔만대장경이 우리 문화 역사를 바탕으로 한 그런 경전인가? 사서오경이? 무슨 신구약이 그런가?


 

 

 

 

 

 

환국 시대부터 전수되어 내려온 『천부경(天符經)』, 여기에는 우주론을 바탕에 깔고 하늘과 땅과 인간의 일체관계에 대한 인성론의 문제가 담겨있고, 환국 다음에 배달국의 개창자 배달환웅이 열어주신 우리 한민족의 신관, 신학의 원전 『삼일신고(三一神誥)』 가 있다. 그리고 고구려 재상 을파소를 통해 내려온 366가지 인간이 지켜야 될 윤리덕목을 기록한 『참전계경(參佺戒經)』 이것이 우리민족의 3대 소의경전이다.



그리고 근세에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신다는 것을 선포한 역철학 분야의 김일부 선생 『정역(正易)』과 하나님이 직접 이 조선 땅에서 가장 성경신을 가진 구도자를 세워서 도통을 내려주고 내가 올 것을 선포하라고 했던. 그 주인공인 수운 최제우가 문 연 동학(東學)의 경전, 『동경대전(東經大全)』까지 고대와 근대 이 5대의 소의경전이 있지만

그러나 이것이 선천 인류의 모든 문화의 종교 정치 경제 역사 문화의 전 영역을 수용해서 지금 부딪치고 있는 인류의 총체적인 위기, 혼란한 상황을 정확하게 진단해주고 동서 통일문명시대를 열 수 있는 그런 경전이 되기는 어렵다.





 

 

 

 

 

온 인류의 정치, 경제, 역사, 교육, 예술, 음악, 언어, 어린이 문화에 이르기까지 문화의 전 영역을 총체적으로 새롭게 바꿀 수 있는 즉, 선천 인류문화의 전 문화 영역을 수용하면서 인류 새 문화를 창조 할 수 있는 신문화의 원전, 새 역사 원전! 

인간 역사를 총체적으로 새롭게 밝혀주는, 인사(人事)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룬 진리 원전은 한민족 6천년사를 넘어서 인류 전 역사를 걸쳐 통털어서 오직 이 도道의 원전原典, 『도전(道典)』밖에 없다.

150년 전,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의 살아서 행하신 그 모든 행적이라는 게 어디에 있는 것인가? 바로 『도전(道典)』속에 있다.





도道의 원전原典, 『도전(道典)』처럼 재미있는 그런 원전이, 진리 고전이 없다.




 

이『도전(道典)』은 이 땅에 오신 조화주 하나님의 새 역사의 시간표가 정리돼 있다. 

 

이 새 역사의 비밀, 인류가 앞으로 새 세상을 맞이하는데 그 준비과정. 그리고 정말로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는, 개벽의 실제상황이『도전(道典)』 7편을 보면 그런 말씀이 꽉 들어차 있다.

이『도전(道典)』을 모르면은 이 세상 인간으로 태어나서 아무리 전생, 전전생에 무슨 제왕을 하고, 지구촌에 큰 부호로 명예를 누리는 사람으로 살았다 할지라도 헛사는 것이다.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의 이 진리의 원전. 이 우주의 도의 주권자, 통치자의 원전, 도의 원전,『도전(道典)』을 모르면은 이 세상 인생으로서 완전히 헛살다 가는 것이다.


 

 

 

 

 

 

 

 

 

 

 

 

 

 

 

 

 

 

 

 

 

 

 

 

 

 

 

 

 

 

 

 

 

 

 

 

 

 

 

 

 

 

 

 

 

 

 

 

 

 

 

 

 

 

 

 

 

 

 

 

 

 

 

 

 

 

 

 

 

 

 

 

 

 

 

 

 

 

 

 

 

 

 

 

 

 

 

 

 



인류 문화 속에서『도전(道典)』은 불경, 성경, 사서삼경처럼 경經이라는 언어를 붙일 수가 없다.

상제님은 이 도의 주재자, 절대자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상제님의 진리 말씀을 성편한 책은 경經이라고 부를 수가 없고, 도경이라고 할 수도 없다. 도道의 원전原典, 『도전(道典)』이다.



 

 

 

 

 

 





 

 

 

 

 

『도전(道典)』처럼 재미있는 경전이 없다. 한국말로 쓰여있고, 지금도 답사가 진행되고 있고, 후손들이 지금도 다 살아 있고, 

 

그 사람들이 평생 30년 50년 70년 신앙하면서 어린 시절 부터 상제님 성도들로 부터, 자기 부모로 부터 그렇게 골수로 듣고, 지난 백년 동안 1천만명의 구도자들의 피나는 신앙의 혼을 다 전해주고서 가버린 것이다.


이『도전(道典)』은 바로 도의 원전, 진리의 원전이다. 이 세상 정치, 경제, 이 세상 사는 모든 문제의 결론적 해답이 이『도전(道典)』에 있다. 이 한권만 읽으면 이 세상 모든 문제에 대해서 성공의 열쇠를 쥐는 것이다. 한 인생으로서는 궁극의 성공의 열쇠를 쥐는 것이다.


상생문화의 원전, 도道의 원전原典, 『도전(道典)』은 하나님의 조화권능의 이야기다. 하나님이 인간 세상에 오셔서 삼계대권이라는 우주의 조화권을 행사하셨다. 인간의 이성이나 상식으로 전혀 납득할 수 없는, 선천 성자들의 어떤 기적, 권능과도 경계가 비교될 수 없는, 비교 자체가 의미 없는, 아버지 하나님의 무궁한 신권을 [도전道典]을 통해 체험을 한다.


『도전(道典)』은 이 땅에 인간으로 강세하신 상제님께서 선천 성자들이 전혀 언급하지 못했던, 선천 종교의 진리 한계를 넘어서는 깨달음의 총결론, 궁극의 깨달음의 세계에 대해서 총체적으로 밝혀주신 진리의 원전이자, 신천지(新天地) 가을 문명의 꿈의 새세계를 펼쳐주는 새 문화의 통일 대경전이다.




선천 동서양의 종교 정치 경제 역사 문화의 전 영역을 아우르면서 인류 신문명의 놀라운 한 소식을 전해주는 진리 통일 대경전이 『도전(道典)』이다. 『도전(道典)』은 대우주의 도의 주인, 하나님의 우주 통치법전이다. 이 세계가, 지구촌 세계 정치가 어떻게 전개되느냐 하는 이 지구촌 역사 통치 법전이다.


『도전(道典)』은 하나님의 자서전이고, 하나님의 생활 기록부다. 이『도전(道典)』 하나 나오려고 백 년을 소모하고 다 희생해버렸다.

 

 

 

 

 

 

 

 

 

 

 

 

 

 

 

 

 

 

 

 

 

 

 

 

 

 

 

 

 

 

 

 

 

 

 

 

 

 

 

 

 

 

 

 

 

 

 

 

 

 

 

 

 

 

 

 

 

 

 

 

 

 

 

 

 

 

 

 

 

 

 

 

 

 

 

 

 

 

 

 

 


『서경』은 유가에서 말하는 가장 이상적인 통치자, 즉 4천여 년 전 이후의 요, 순, 우, 탕, 문, 무, 주공 등의 성인 제왕들이 어떻게 통치했는지, 그 통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그 책의 서두에는 “제왕으로 등극을 하면 먼저 태산泰山에 올라 천상에 계신 상제님께 제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중국 산동성山東省에 있는 태산泰山 꼭대기에는 지금도 ‘옥황전玉皇殿’이 있다. 

제왕이 되면 누구든 그 곳에 올라가 천상에 계신 하나님, 상제님께 천제를 지내고 나라 살림을 시작했던 것이다. 
“상제님! 제가 즉위를 했습니다. 신고를 올리겠습니다.” 하고 그래서 ‘제왕은 천상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다.’ 해서 ‘천자(天子)’라 불려 왔다.

150여년 전, 동학의 창시자 최수운선생의 말씀대로 이땅에 상제님께서 다녀가셨다. 요, 순, 우, 탕, 문, 무, 주공 등의 성인 제왕들이 중국 산동성(山東省) 태산泰山 에서 천제를 올렸던 그 상제님께서 150여년 전, 이땅에 다녀가셨다.


당시 서구의 천주교가 들어와서 천주와 하느님의 아들을 믿으라고 열을 올리고 있던 150여년 전, 동학의 교조 최수운 선생께서는 ‘너희는 겨우 하느님의 아들을 믿으라 하지만 나는 하느님이 친히 이 강토에 강림하시게 되므로 사람으로 오시는 그 하느님을 믿으라 한다’라고 하였다. 이 복음을 5년간 전하신 최수운 대신사께서는 갑자년(1864) 3월 10일 세상을 뜨시면서 전 40 년은 내려니와 후 40년 은 뉘련가 천하의 무극대도가 더디도다 더디도다. 8 년이 더디도다'하시어 자신이 떠난 지 8 년 후에 하느님께서 강림하실 것을 예고하였다.

 

 

 

 

 

 

 

 

 

 

 

 

 

 

 

 

 

 

 

 

 

 


기독교 2천년 역사에서 가장 신성이 뛰어나고 기억력이 우수한 분이 마테오리치 신부님이었다. 중국사람들이 그를 신神이라고 했다. 중국에 와서 중국말을 배우고 유가의 경전을 라틴어로 번역하면서 아~ 천주님이 상제님이다.

 

자기들이 믿는 하나님을 천주(天主)라고 번역하고 그걸 지금도 카톨릭에서 쓰고 있다. 천주교라고.

천주교 어원을, 천주天主란 언어가 상제님을 알고 나온 언어다. 사실이. 이걸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본래 호칭이 상제님이다. 구한말 애국가에도 ‘상제는 우리 황상을 보호하사, 라고 기록되어 있다.




道典 2:30) 이마두(利瑪竇, 마테오 리치신부)는 세계에 많은 공덕을 끼친 사람이라. 현 해원시대에 신명계의 주벽(主壁)이 되나니 이를 아는 자는 마땅히 경홀치 말지어다. 그러나 그 공덕을 은미(隱微) 중에 끼쳤으므로 세계는 이를 알지 못하느니라.

서양 사람 이마두가 동양에 와서 천국을 건설하려고 여러 가지 계획을 내었으나 쉽게 모든 적폐(積弊)를 고쳐 이상을 실현하기 어려우므로 마침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다만 동양과 서양의 경계를 틔워 예로부터 각기 지경(地境)을 지켜 서로 넘나들지 못하던 신명들로 하여금 거침없이 넘나들게 하고

그가 죽은 뒤에는 동양의 문명신(文明神)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돌아가서 다시 천국을 건설하려 하였나니 이로부터 지하신(地下神)이 천상에 올라가 모든 기묘한 법을 받아 내려 사람에게 ‘알음귀’를 열어 주어 세상의 모든 학술과 정교한 기계를 발명케 하여 천국의 모형을 본떴나니 이것이 바로 현대의 문명이라.

서양의 문명이기(文明利器)는 천상 문명을 본받은 것이니라. 그러나 이 문명은 다만 물질과 사리(事理)에만 정통하였을 뿐이요, 도리어 인류의 교만과 잔포(殘暴)를 길러 내어 천지를 흔들며 자연을 정복하려는 기세로 모든 죄악을 꺼림 없이 범행하니 신도(神道)의 권위가 떨어지고 삼계(三界)가 혼란하여 천도와 인사가 도수를 어기는지라



이마두가 원시의 모든 신성(神聖)과 불타와 보살들과 더불어 인류와 신명계의 큰 겁액(劫厄)을 구천(九天)에 있는 나에게 하소연하므로

내가 서양 대법국 천개탑에 내려와 이마두를 데리고 삼계를 둘러보며 천하를 대순(大巡)하다가 이 동토(東土)에 그쳐 중 진표(眞表)가 석가모니의 당래불(當來佛) 찬탄설게(讚歎說偈)에 의거하여 당래의 소식을 깨닫고 지심기원(至心祈願)하여 오던 모악산 금산사 미륵금상에 임하여 30년을 지내면서



중 진표(眞表)가 석가모니의 당래불(當來佛) 찬탄설게(讚歎說偈)에 의거하여 당래의 소식을 깨닫고 지심기원(至心祈願)하여 오던 모악산 금산사 미륵금상에 임하여 30년을 지내면서 최수운(崔水雲)에게 천명(天命)과 신교(神敎)를 내려 대도를 세우게 하였더니 수운이 능히 유교의 테 밖에 벗어나 진법을 들춰내어

신도(神道)와 인문(人文)의 푯대를 지으며 대도의 참빛을 열지 못하므로 드디어 갑자(甲子 : 道紀前 7, 1864)년에 천명과 신교를 거두고 신미(辛未 : 道紀 1, 1871)년에 스스로 이 세상에 내려왔나니 동경대전(東經大全)과 수운가사(水雲歌詞)에서 말하는 ‘상제’는 곧 나를 이름이니라.




道典 2:94) 나의 일은 비록 부모, 형제, 처자라도 알 수가 없나니 나는 서양 대법국 천개탑 천하대순이로다. 동학 주문에 ‘시천주 조화정(侍天主造化定)’이라 하였나니 천지간의 모든 신명들이 인류와 신명계의 겁액을 나에게 탄원하므로 내가 천조(天朝)의 대신(大臣)들에게 ‘하늘의 정사(政事)를 섭리하라.’고 맡기고


서양 천개탑에 내려와 천하를 둘러보며 만방의 억조창생의 편안함과 근심 걱정을 살피다가 너의 동토(東土)에 인연이 있는 고로 이 동방에 와서 30년 동안 금산사 미륵전에 머무르면서 최제우에게 천명(天命)과 신교(神敎)를 내려 주었더니 조선 조정이 제우를 죽였으므로 내가 팔괘 갑자(八卦甲子)에 응하여 신미(辛未 : 道紀 1, 1871)년에 이 세상에 내려왔노라.
 
궁을가(弓乙歌)에 ‘조선 강산 명산이라 도통군자 다시 난다.’는 말은 이를 두고 이른 말이니라. 최제우는 유가(儒家)의 낡은 틀을 벗어나지 못하였나니 나의 가르침이 참동학이니라. 동학교도가 모두 수운(水雲)의 갱생(更生)을 기다리나 죽은 자는 다시 살아나지 못하느니라. 내가 수운을 대신해 왔나니 내가 곧 대선생이니라.




道典 2:31) 황제(黃帝)가 난(亂)을 지으므로 치우(蚩尤)가 큰 안개를 지어 이를 평정하였나니 난을 지은 사람이 있어야 다스리는 사람이 있느니라. 최수운은 동세(動世)를 맡았고 나는 정세(靖世)를 맡았나니 전명숙의 동(動)은 곧 천하의 난을 동케 하였느니라.

최수운은 내 세상이 올 것을 알렸고, 김일부는 내 세상이 오는 이치를 밝혔으며, 전명숙은 내 세상의 앞길을 열었느니라. 수운가사는 수운이 노래한 것이나, 나의 일을 노래한 것이니라. 일부가 내 일 한 가지는 하였느니라.



道典 7:19) 만성 선령신(萬姓 先靈神)들이 모두 나에게 봉공(奉公)하여 덕을 쌓음으로써 자손을 타 내리고 살길을 얻게 되나니 너희에게는 선령(先靈)이 하느님이니라. 너희는 선령을 찾은 연후에 나를 찾으라. 선령을 찾기 전에 나를 찾으면 욕급선령(辱及先靈)이 되느니라.

사람들이 천지만 섬기면 살 줄 알지마는 먼저 저희 선령에게 잘 빌어야 하고, 또 그 선령이 나에게 빌어야 비로소 살게 되느니라.

이제 모든 선령신들이 발동(發動)하여 그 선자선손(善子善孫)을 척신(隻神)의 손에서 건져 내어 새 운수의 길로 인도하려고 분주히 서두르나니 너희는 선령신의 음덕(蔭德)을 중히 여기라. 선령신은 그 자손줄을 타고 다시 태어나느니라.


道典 2:78) 선령신이 짱짱해야 나를 따르게 되나니 선령신을 잘 모시고 잘 대접하라. 선령신이 약하면 척신(隻神)을 벗어나지 못하여 도를 닦지 못하느니라. 선령의 음덕(蔭德)으로 나를 믿게 되나니 음덕이 있는 자는 들어왔다가 나가려 하면 신명들이 등을 쳐 들이며 ‘이곳을 벗어나면 죽으리라.’ 이르고 음덕이 없는 자는 설혹 들어왔을지라도 이마를 쳐 내치며 ‘이곳은 네가 못 있을 곳이라.’ 이르느니라.




道典 2:17) 선천은 상극(相克)의 운(運)이라


상극의 이치가 인간과 만물을 맡아 하늘과 땅에 전란(戰亂)이 그칠 새 없었나니 그리하여 천하를 원한으로 가득 채우므로 이제 이 상극의 운을 끝맺으려 하매 큰 화액(禍厄)이 함께 일어나서 인간 세상이 멸망당하게 되었느니라. 상극의 원한이 폭발하면 우주가 무너져 내리느니라.
 
이에 천지신명이 이를 근심하고 불쌍히 여겨 구원해 주고자 하였으되 아무 방책이 없으므로 구천(九天)에 있는 나에게 호소하여 오매 내가 이를 차마 물리치지 못하고 이 세상에 내려오게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이제 내가 큰 화를 작은 화로써 막아 다스리고 조화선경(造化仙境)을 열려 하노라.



道典 7:38) 한 성도가 “세상에 백조일손(百祖一孫)이라는 말이 있고, 또 병란(兵亂)도 아니고 기근(饑饉)도 아닌데 시체가 길에 쌓인다는 말이 있사오니 이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하고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선천의 모든 악업(惡業)과 신명들의 원한과 보복이 천하의 병을 빚어내어 괴질이 되느니라. 봄과 여름에는 큰 병이 없다가 가을에 접어드는 환절기(換節期)가 되면 봄여름의 죄업에 대한 인과응보가 큰 병세(病勢)를 불러일으키느니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천지대운이 이제서야 큰 가을의 때를 맞이하였느니라. 천지의 만물 농사가 가을 운수를 맞이하여, 선천의 모든 악업이 추운(秋運) 아래에서 큰 병을 일으키고 천하의 큰 난리를 빚어내는 것이니 큰 난리가 있은 뒤에 큰 병이 일어나서 전 세계를 휩쓸게 되면 피할 방도가 없고 어떤 약으로도 고칠 수가 없느니라.” “병겁이 휩쓸면 자리를 말아 치우는 줄초상을 치른다.”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병겁으로 사람을 솎아야 사(私)가 없다.” 하시니라.




道典 2:44) 상제님께서 하루는 세간에 전해 오는 ‘백조일손(百祖一孫)’이라는 말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가을바람이 불면 낙엽이 지면서 열매를 맺는 법이니라. 그러므로 이 때는 생사판단(生死判斷)을 하는 때니라.”

道典 2:58) “마음은 성인의 바탕으로 닦고 일은 영웅의 도략을 취하라. 개벽의 운수는 크게 개혁하고 크게 건설하는 것이니 성과 웅이 하나가 되어야 하느니라.” 하시니라.

이 때는 천지성공 시대(天地成功時代)니라. 천지신명이 나의 명을 받들어 가을 운의 대의(大義)로써 불의를 숙청하고 의로운 사람을 은밀히 도와주나니 악한 자는 가을에 지는 낙엽같이 떨어져 멸망할 것이요, 참된 자는 온갖 과실이 가을에 결실함과 같으리라. 그러므로 이제 만물의 생명이 다 새로워지고 만복(萬福)이 다시 시작되느니라.



道典 3:14) “세계대운이 조선으로 몰아 들어오니 만에 하나라도 때를 놓치지 말라. 이 때는 사람이 가름하는 시대니라. 남아가 출세하려면 천하를 능히 흔들어야 조화가 생기는 법이라. 이 세상은 신명조화가 아니고는 고쳐 낼 도리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8:20) 지금은 하늘이 세상에서 천심(天心) 가진 자를 구하는 때니라. 수운가사에 ‘제 소위 추리(推理)한다고 생각나니 그뿐이라.’ 하였나니 너희들이 이곳을 떠나지 않음은 의혹이 더하는 연고라. 이곳이 곧 선방(仙房)이니라. 수운가사에 ‘운수는 길어지고 조같은 잠시로다.’ 하였나니 이는 도(道)에 뜻하는 자의 거울이니라.



道典 2:74) 상제님께서 천지공사를 행하실 때 항상 성도들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삼계대권을 맡아 선천의 도수를 뜯어고치고 후천을 개벽하여 선경을 건설하리니 너희들은 오직 마음을 잘 닦아 앞으로 오는 좋은 세상을 맞으라.” 하시므로 성도들이 하루바삐 그 세상이 이르기를 바라더니 하루는 신원일(辛元一)이 간절히 청하기를

“선생님께서 ‘천지를 개벽하여 새 세상을 건설한다.’ 하신 지가 이미 오래이며 공사를 행하시기도 여러 번이로되 시대의 현상은 조금도 변함이 없으니 제자의 의혹이 자심하나이다. 선생님이시여, 하루빨리 이 세상을 뒤집어서 선경을 건설하시어 남의 조소를 받지 않게 하시고, 애타게 기다리는 저희에게 영화를 주옵소서.” 하거늘

상제님께서 이르시기를 “인사(人事)는 기회(機會)가 있고 천리(天理)는 도수(度數)가 있나니, 그 기회를 지으며 도수를 짜 내는 것이 공사의 규범이라. 이제 그 규범을 버리고 억지로 일을 꾸미면 이는 천하에 재앙을 끼침이요, 억조의 생명을 빼앗는 것이므로 차마 할 일이 아니니라.” 하시니라.


이에 원일이 듣지 않고 굳이 청하여 말하기를 “지금 천하가 혼란무도하여 선악을 구별하기 어려우니 속히 진멸하고 새 운수를 여심이 옳으나이다.” 하니 상제님께서 심히 괴롭게 여기시니라.


道典 2:75) 을사년 7월에 상제님께서 원일과 두어 성도를 데리고 변산 개암사(開巖寺)에 가시어 원일에게 쇠머리 한 개와 술 한 병을 준비하라고 명하신 뒤 청수 한 그릇을 방 한편에 놓으시고 쇠머리를 삶아 청수 앞에 진설하신 뒤에 그 앞에 원일을 꿇어앉히시고 양황 세 개비를 청수에 넣으시니 갑자기 비바람이 크게 일어나니라.


상제님께서 원일에게 이르시기를 “이제 청수 한 동이에 양황 한 갑을 넣으면 천지가 물바다가 될지라. 개벽이란 이렇게 쉬운 것이니 그리 알지어다. 만일 이것을 때에 이르기 전에 쓰면 재앙만 끼칠 뿐이니라.” 하시고 손가락으로 물을 찍어 부안 석교(石橋)를 향해 뿌리시니 갑자기 그 쪽으로 구름이 모여들어 큰비가 쏟아지는데 개암사 부근은 청명하더라.

상제님께서 원일에게 명하시어 “속히 집에 갔다 오라.” 하시거늘 원일이 명을 받고 집에 가 보니 아우의 집이 방금 내린 비에 무너져서 그 권속이 원일의 집에 모여 있는지라 원일이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곧 돌아와 그대로 아뢰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개벽이란 이렇게 쉬운 것이라. 천하를 물로 덮어 모든 것을 멸망케 하고 우리만 살아 있으면 무슨 복이 되리오.”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대저 제생의세(濟生醫世)는 성인의 도(道)요, 재민혁세(災民革世)는 웅패(雄覇)의 술(術)이라.



이제 천하가 웅패에게 괴롭힘을 당한 지 오랜지라 내가 상생(相生)의 도로써 만민을 교화하여 세상을 평안케 하려 하나니 새 세상을 보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요, 마음 고치기가 어려운 것이라. 이제부터 마음을 잘 고치라. 대인(大人)을 공부하는 자는 항상 남 살리기를 생각하여야 하나니, 어찌 억조를 멸망케 하고 홀로 잘되기를 도모함이 옳으리오.” 하시거늘 원일이 두려워하여 무례한 말로 상제님을 괴롭게 한 일을 뉘우치니라.



道典 4:15) 관운장(關雲長)은 병마대권(兵馬大權)을 맡아 성제군(聖帝君)의 열(列)에 서게 되었나니 운장이 오늘과 같이 된 것은 재주와 지략 때문이 아니요 오직 의리 때문이니라. 천지간에 의로움보다 더 크고 중한 것은 없느니라.

하늘이 하지 못할 바가 없지마는 오직 의로운 사람에게만은 못 하는 바가 있느니라. 사람이 의로운 말을 하고 의로운 행동을 하면 천지도 감동하느니라. 그러므로 나는 천지의 모든 보배를 가지지 않은 것이 없으나 의로움을 가장 으뜸가는 보배로 삼느니라. 나는 추상 같은 절개와 태양같이 뜨거운 충의(忠義)를 사랑하노라.



道典 2:63) 상제님께서 하루는 형렬의 종 으렁이에게 말씀하시기를
“하늘 끝간데가 있더냐? 만리타국을 다녀도 하늘은 그 하늘이요 끝간데가 없느니라. 그렇듯이 천지에 내 새끼 네 새끼 없이 다같이 화목하게 살자고, 내가 천지를 뒤집으려고 지금 이러느니라. 너도 머슴 산다고 서러워 말고 꼭 진심으로만 마음먹으면 이제 괜찮아지느니라.” 하시니

으렁이가 “선생님 말씀을 듣고 저도 마음을 고치겠습니다.” 하거늘 “오냐! 그렇게 해라.” 하시며 용기를 북돋워 주시니라. 이에 으렁이가 물가에 앉아 ‘마음을 고치려면 어찌해야 할꼬.’ 하며 날이 저물도록 생각해 보아도 마땅히 답이 나오지 않거늘



상제님께 찾아가 “선생님! 저물도록 물을 들여다봐야 제 화상만 보이지 마음이 안 닦아집니다.” 하고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허허, 물을 들여다본들 네 마음이 닦이겠느냐? 네 그리도 멍청하니 머슴밖에 더 살겠느냐! 마음을 진정 한 가지로 먹어라. 마음이 이랬다저랬다 하루에도 천백번 뒤집어지는 것은 세상이 그렇게 뒤집었다 엎었다 하는 것이니, 한길로 나가야 쉽단 말이다. 네가 멍청하니 이렇게 말해 주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네 뺨이 벌써 서쪽으로 달아났다!” 하시니라.



道典 2:26) “부모를 경애하지 않으면 천지를 섬기기 어려우니라. 천지는 억조창생의 부모요, 부모는 자녀의 천지니라. 자손이 선령(先靈)을 박대하면 선령도 자손을 박대하느니라. 예수는 선령신들이 반대하므로 천지공정에 참여치 못하리라.

이제 인종 씨를 추리는 후천 가을운수를 맞아 선령신을 박대하는 자들은 모두 살아남기 어려우리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조상은 아니 위하고 나를 위한다 함은 부당하나니 조상의 제사를 극진히 받들라. 사람이 조상에게서 몸을 받은 은혜로 조상 제사를 지내는 것은 천지의 덕에 합하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8:32) 하루는 상제님께서 어느 마을을 지나시는데 한 집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거늘, 정작 제사 받는 신명은 마당을 겉돌고 다른 신명이 들어가 제삿상을 받고 있는지라. 상제님께서 그 신명을 부르시어 “저 사람의 날인데 어찌 네가 먹느냐?” 하시니,

그가 답하기를 “저 사람이 살아생전에 저의 재산을 모두 탕진시킨 채 갚지 못하였는데, 죽어서도 그 은혜를 갚지 아니하니 오늘은 비록 자기 날이라고 하나 저의 것이나 진배없습니다.” 하니라. 후에 상제님께서 이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말씀하시기를 “세상에 이치 없는 법은 없느니라.”


道典 2:44) 하루는 세간에 전해 오는 ‘백조일손(百祖一孫)’이라는 말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가을바람이 불면 낙엽이 지면서 열매를 맺는 법이니라. 그러므로 이 때는 생사판단(生死判斷)을 하는 때니라.” 하시니라.
 
한 성도가 여쭈기를 “‘다가오는 세상 난리는 신명의 조화임을 알지 못한다.’는 말이 있사온데 과연 그러합니까?” 하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천지개벽을 해도 신명 없이는 안 되나니, 신명이 들어야 무슨 일이든지 되느니라.

내 세상은 조화의 세계요, 신명과 인간이 하나 되는 세계니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내 일은 인신합덕(人神合德)으로 되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2:73) 때가 다하여 대세가 처넘어갈 때는 뇌성벽력이 대작하여 정신차리기 어려울 것이요 동서남북이 눈 깜짝할 사이에 바뀔 때는 며칠 동안 세상이 캄캄하리니 그 때는 불기운을 거둬 버려 성냥을 켜려 해도 켜지지 않을 것이요, 자동차나 기차도 움직이지 못하리라.

천지이치로 때가 되어 닥치는 개벽의 운수는 어찌할 도리가 없나니 천동지동(天動地動) 일어날 때 누구를 믿고 살 것이냐! 울부짖는 소리가 천지에 사무치리라. 천지대도에 머물지 않고서는 살 운수를 받기 어려우니라.


道典 2:45) 대저 사람이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편할지라. 오는 일을 아는 자는 창생의 일을 생각할 때에 비통을 이기지 못하리로다.

이제 천하창생이 진멸(盡滅)의 경계에 박도하였는데 조금도 깨닫지 못하고 이(利)끗에만 몰두하니 어찌 애석치 아니하리오. 장차 십 리 길에 사람 하나 볼 듯 말 듯한 때가 오느니라.

지기(至氣)가 돌 때에는 세상 사람들이 콩나물처럼 쓰러지리니 때가 되어 괴병(怪病)이 온 천하를 휩쓸면 가만히 앉아 있다가도 눈만 스르르 감고 넘어가느니라. 그 때가 되면 시렁 위에 있는 약 내려 먹을 틈도 없느니라.


道典 2:52) 선천은 억음존양(抑陰尊陽)의 세상이라. 여자의 원한이 천지에 가득 차서 천지운로를 가로막고 그 화액이 장차 터져 나와 마침내 인간 세상을 멸망하게 하느니라. 그러므로 이 원한을 풀어 주지 않으면 비록 성신(聖神)과 문무(文武)의 덕을 함께 갖춘 위인이 나온다 하더라도 세상을 구할 수가 없느니라.

예전에는 억음존양이 되면서도 항언에 ‘음양(陰陽)’이라 하여 양보다 음을 먼저 이르니 어찌 기이한 일이 아니리오. 이 뒤로는 ‘음양’그대로 사실을 바로 꾸미리라.


道典 2:51) 선천은 천지비(天地否)요, 후천은 지천태(地天泰)니라. 선천에는 하늘만 높이고 땅은 높이지 않았으니 이는 지덕(地德)이 큰 것을 모름이라. 이 뒤에는 하늘과 땅을 일체로 받드는 것이 옳으니라.


道典 2:53) 여자가 천하사를 하려고 염주를 딱딱거리는 소리가 구천에 사무쳤나니 이는 장차 여자의 천지를 만들려 함이로다. 그러나 그렇게까지는 되지 못할 것이요, 남녀동권 시대가 되게 하리라. 사람을 쓸 때에는 남녀 구별 없이 쓰리라. 앞세상에는 남녀가 모두 대장부(大丈夫)요, 대장부(大丈婦)이니라.
 
자고로 여자를 높이 받들고 추앙하는 일이 적었으나 이 뒤로는 여자도 각기 닦은 바를 따라 공덕이 서고 금패(金牌)와 금상(金像)으로 존신(尊信)의 표를 세우게 되리라. 내 세상에는 여자의 치마폭 아래에서 도통이 나올 것이니라.


道典 하루는 상제님께서 원평(院坪)을 지나시는데 길가에 한 병자가 있거늘, 온몸이 대풍창(大風瘡)으로 뒤덮여 그 흉한 형상이 차마 보기 어려운 지경이라. 그 병자가 상제님의 행차를 보고 달려와서 크게 울며 하소연하기를 “제가 이생에 죄를 지은 바가 없는데 이 같은 형벌을 받음은 전생의 죄 때문이옵니까? 바라옵건대 전생에 지은 중죄(重罪)를 용서하옵소서.

만일에 죄가 너무 무거워서 용서하실 수 없다면 차라리 죽음을 내려 주옵소서.” 하고 통곡하며 뒤를 따르니 보는 사람들 가운데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더라.
 
상제님께서 잠시 애처롭게 바라보시더니 병자를 부르시어 “내가 너를 고쳐 주리니 여기 앉으라.” 하시고 성도들로 하여금 “길 위에 둥글게 병자를 둘러싸고 앉으라.” 하신 후에 일러 말씀하시기를 “‘대학지도(大學之道)는 재신민(在新民)이라.’ 이 구절을 계속하여 외우라.” 하시니라.



이에 성도들이 명을 받들어 외우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제 되었으니 그만 읽고 눈을 뜨라.” 하시거늘 모두 눈을 떠 보니 병자가 완전히 새사람이 되어 앉아 있는지라 모두가 크게 놀라니라. 
 
새사람이 된 병자가 기뻐 뛰고 춤추면서 “하느님, 하느님이시여! 저의 큰 죄를 용서하시어 저에게 새로운 인생을 열어 주셨습니다.” 하고 울부짖거늘 이 광경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모두 “만일 하느님의 권능이 아니라면 어찌 이렇게 할 수 있으리오.” 하고 탄복하니라.


상제님께서 병자에게 “너는 북쪽으로 십 리를 가라. 거기에 가면 네가 살길이 있으리라.” 하시고 그를 보내시니 한 성도가 상제님께 여쭈기를 “문둥병은 천형(天刑)이라 하여 세상에서는 치료할 방도가 없는 것인데 글을 읽게 하여 그 자리에서 고치게 하시니 어떤 연고입니까?” 하매
말씀하시기를 “나의 도(道)는 천하의 대학(大學)이니 장차 천하창생을 새사람으로 만들 것이니라.” 하시니라.



道典 2:88) 하루는 성도들에게 이르시기를 “이 세상에 학교를 널리 세워 사람을 가르침은 장차 천하를 크게 문명케 하여 천지의 역사(役事)를 시키려 함인데 현하의 학교 교육이 학인(學人)으로 하여금 비열한 공리(功利)에 빠지게 하므로 판밖에서 성도(成道)하게 되었노라.” 하시니라.



道典 2:90) 하루는 상제님께서 글을 쓰시니 이러하니라.
 
天者는 理也라
천자 리야
 
昭昭之天이 合人心之天하니
소소지천 합인심지천
 
理는 原於天하여 具於人心하니라
리 원어천 구어인심
하늘은 이치(理)이니라. 밝고 밝은 하늘이 사람 마음속 하늘과 부합하니 이치(理)는 하늘에 근원을 두고 사람의 마음에 갖춰져 있느니라.
 
若逆理면 則自欺此心之天이니
약역리 즉자기차심지천
 
此는 欺在天之天이니라
차 기재천지천
 
禍非自外而來요 罪及其身也니라
화비자외이래 죄급기신야
이치(理)를 거스름은 곧 스스로 마음속 하늘을 속이는 것이니 이는 하늘에 있는 하늘을 속이는 것이니라. 화(禍)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요 죄가 제 몸에 미친 것이니라. 천지는 나와 한마음이니 사람이 천지의 마음을 얻어 제 마음 삼느니라.



道典 2:91) 하루는 상제님께서 공사를 보시며 글을 쓰시니 이러하니라.
 
天地萬物이 始於一心하고 終於一心하니라
천지만물 시어일심 종어일심
천지만물이 일심에서 비롯하고 일심에서 마치느니라. 일심이 없으면 우주도 없느니라. 일심으로 믿는 자라야 새 생명을 얻으리라. 너희들은 오직 일심을 가지라.


道典 2:93) 정미(丁未 : 道紀 37, 1907)년 정월에 상제님께서 김형렬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나의 말은 약이라. 말로써 사람의 마음을 위안도 하며 말로써 병든 자를 일으키기도 하며 말로써 죄에 걸린 자를 끄르기도 하나니 이는 나의 말이 곧 약인 까닭이니라.
 
‘良藥은 苦口나 利於病이요
양약 고구 이어병 ‘

忠言은 逆耳나 利於行이라
충언 역이 이어행
좋은 약은 입에는 쓰나 병에는 이롭고 충언은 귀에는 거슬리나 행함에는 이롭다.’ 하나니 나의 말을 잘 믿을지어다. 나의 말은 구천(九天)에 사무쳐 잠시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나니 부절(符節)과 같이 합하느니라.” 하시니라.
 
하루는 성도들에게 말씀하시니 이러하니라.
 
天地化權도 一由舌門이라
천지화권 일유설문
천지화권도 한결같이 혀로 말미암느니라.
 


道典 2:95) 세상 사람이 다 하고 싶어도 법(法)을 몰라서 못 하느니라. 이제 각 교 두목들이 저의 가족 살릴 방법도 없으면서 ‘살고 잘된다.’는 말을 하며 남을 속이니 어찌 잘되기를 바라리오. 공자가 알고 하였으나 원망자가 있고, 석가가 알고 하였으나 원억(寃抑)의 고를 풀지 못하였거늘 하물며 저도 모르는 놈이 세간에 사람을 모으는 것은 ‘저 죽을 땅을 제가 파는 일’이니라.
 
수운가사에 ‘기둥 없이 지은 집이 어이하여 장구하리. 성군취당(成群聚黨) 극성(極盛) 중에 허송세월 다 보낸다.’ 하였느니라. 속언에 ‘죄는 지은 데로 가고 공은 닦은 데로 간다.’는 말이 참으로 성담(聖談)이니 잘 기억하라.


道典 2:96) 항우가 25세에 출세하였으면 성공하였을 것인데, 24세에 출세하였으므로 성공을 보지 못하였느니라. 대장부 출세하는 법이 대세를 모르면 봉사가 지팡이 잃은 것과 같으니 일찍 작파하여야지, 대세도 모르는 놈이 출세한다고 나서면 낮에 난 도깨비 같고 제가 알고 남을 가르쳐야지 저도 모르는 놈이 남을 속이고 사람을 모으다가는 제가 먼저 죽으리라. 천하에 무서운 죄는 저도 모르는 놈이 남을 모아 수하(手下) 중에 넣는 것이니 그 죄가 제일 크니라.
 




道典 2:97) 하루는 상제님께서 이도삼(李道三)에게 “글 석 자를 부르라.” 하시니
도삼이 천(天), 지(地), 인(人) 석 자를 부르거늘 상제님께서 글을 지어 말씀하시니 이러하니라.
 
天上無知天하고 地下無知地하고
천상무지천 지하무지지
 
人中無知人하니 知人何處歸리오
인중무지인 지인하처귀
천상에서는 하늘 일을 알지 못하고 지하에서는 땅 일을 알지 못하고 사람들은 사람 일을 알지 못하나니 삼계의 일을 아는 자는 어디로 돌아가리.
     

스리랑 18-01-19 19:36 
도통문을 여는 심법 닦는 대도를 내려 주심


道典4편100장 天用雨露之薄則 必有萬方之怨하고
천용우로지박즉 필유만방지원
地用水土之薄則 必有萬物之怨하고
지용수토지박즉 필유만물지원
人用德化之薄則 必有萬事之怨하니라
인용덕화지박즉 필유만사지원


하늘이 비와 이슬을 적게 내리면 반드시 만방에서 원망이 일고 땅이 만물을 기르는데 물과 흙을 박하게 쓰면 반드시 만물이 원성을 발하며 사람이 덕화(德化)가 부족하면 반드시 만사에 원망이 붙느니라.

天用地用人用이 統在於心하니
천용지용인용 통재어심
心也者는 鬼神之樞機也요 門戶也요 道路也라
심야자 귀신지추기야 문호야 도로야


하늘이 비와 이슬을 내리고 땅이 물과 흙을 쓰고 사람이 덕화에 힘씀은 모두 마음자리에 달려 있으니 마음이란 귀신(鬼神)의 문지도리요 드나드는 문호요 오고가는 도로이라.

開閉樞機하고 出入門戶하고 往來道路에
개폐추기 출입문호 왕래도로
神이 或有善하고 或有惡하니
신 혹유선 혹유악
善者師之하고 惡者改之하면
선자사지 악자개지
吾心之樞機門戶道路는 大於天地니라
오심지추기문호도로 대어천지


그 문지도리를 여닫고 문호에 드나들고 도로를 왕래하는 신이 혹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니 선한 것을 본받고 악한 것을 잘 고치면 내 마음의 문지도리와 문호와 도로는 천지보다 더 큰 조화의 근원이니라.

 


道典2편40장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고 불교도는 미륵의 출세를 기다리고 동학 신도는 최수운의 갱생을 기다리나니 ‘누구든지 한 사람만 오면 각기 저의 스승이라.’ 하여 따르리라. ‘예수가 재림한다.’ 하나 곧 나를 두고 한 말이니라. 공자, 석가, 예수는 내가 쓰기 위해 내려 보냈느니라.

 

 


마음자리에 응기하여 신명이 드나든다


道典4편89장 공우가 여쭈기를 “신명이 응기(應氣)하면 사람이 신력(神力)을 얻게 되는 것입니까?” 하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현의 신이 응기하면 어진 마음이 일어나고
영웅의 신이 응기하면 패기(覇氣)가 일어나고
장사(壯士)의 신이 응기하면 큰 힘이 생겨나고
도적의 신이 응기하면 적심(賊心)이 생기나니
그러므로 나는 목석이라도 기운을 붙여 쓸 수 있느니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마음이란 귀신이 왕래하는 길이니
마음속에 성현을 생각하면 성현의 신이 와서 응하고
마음속에 영웅을 생각하고 있으면 영웅의 신이 와서 응하며
마음속에 장사를 생각하고 있으면 장사의 신이 와서 응하고
마음속에 도적을 생각하고 있으면 도적의 신이 찾아와 응하느니라.

그러므로 천하의 모든 일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이 스스로의 정성과 구하는 바에 따라서 얻어지는 것이니라.” 하시니라.

 

 


道典2:87:5~8 모든 일에 마음을 바로 하여 정리(正理)대로 행하여야 큰일을 이루나니 만일 사곡(邪曲)한 마음을 가지면 사신(邪神)이 들어 일을 망치고 믿음이 없이 일에 처하면 농신(弄神)이 들어 일을 번롱(飜弄)케 하며 탐심을 두는 자는 적신(賊神)이 들어 일을 더럽히느니라.

 


道典2편103장 상말에 ‘무척 잘산다.’ 이르나니 ‘척(隻)이 없어야 잘산다.’는 말이니라. 남에게 원억(寃抑)을 짓지 말라. 척이 되어 갚느니라.
또 남을 미워하지 말라. 그의 신명(神明)이 먼저 알고 척이 되어 갚느니라.
앞세상에는 서로의 마음속을 드나들어 그 속내를 알게 되나니, 남을 속이지 말고 척이 있으면 풀어 버리라. 부하고 귀하고 강권을 가진 자는 모두 척에 걸려 콩나물 뽑히듯 하리라.

 

 


道典3편188장 “세상의 모든 참사가 척신(隻神)이 행하는 바이니라.
삼가 척을 짓지 말라. 만일 척을 지은 것이 있으면 낱낱이 풀고 화해를 구하라.” 하시니라.

 

 

 


사람이 죽음의 질서에 들어가면


道典2편118장 김송환(金松煥)이 사후(死後)의 일을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사람에게는 혼(魂)과 넋(魄)이 있어
혼은 하늘에 올라가 신(神)이 되어 제사를 받다가 4대가 지나면 영(靈)도 되고 혹 선(仙)도 되며 넋은 땅으로 돌아가 4대가 지나면 귀(鬼)가 되느니라.” 하시니라.

 


삼신과 서신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자손을 둔 신은 황천신(黃泉神)이니 삼신(三神)이 되어 하늘로부터 자손을 타 내리고 자손을 두지 못한 신은 중천신(中天神)이니 곧 서신(西神)이 되느니라.” 하시니라.

 

 

 


인간이 태어날 때


道典9편216장 하루는 상제님께서 복남에게 말씀하시기를 “천상에서 사람을 내보낼 때는 유리로 얼굴을 씌우느니라. 그래야 자기가 무슨 혼으로 있다가 태어난 줄을 모른다. 그것을 알고 나오면 뭔 일을 저지르느니라.” 하시니라.

道典4편62장 “천지간에 가득 찬 것이 신(神)이니 풀잎 하나라도 신이 떠나면 마르고 흙 바른 벽이라도 신이 떠나면 무너지고, 손톱 밑에 가시 하나 드는 것도 신이 들어서 되느니라. 신이 없는 곳이 없고, 신이 하지 않는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라.

 

 


사람은 죽어서도 공부를 계속한다


道典9편213장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죽는 것도 때가 있나니 그 도수를 넘겨도 못쓰는 것이요, 너무 일러도 못쓰는 것이니라. 나의 명으로 명부에서 데려오라고 해야 명부사자가 데려오는 것이니 각기 닦은 공덕에 따라 방망이로 뒷덜미를 쳐서 끌고 오는 사람도 있고, 가마에 태워서 모셔 오는 사람도 있느니라.

또 하늘에 가면 그 사람의 조상 가운데에서도 웃어른이 있어서 철부지 아이들에게 천자문을 가르치듯 새로 가르치나니 사람은 죽어 신명(神明)이 되어서도 공부를 계속하느니라. 죽었다고 당장 무엇이 되는 것은 아니니라.” 하시니라.

 

 


소원하는 바를 이루려면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무엇이든지 소원하는 바를 이루려면 천지에만 빌어도 안 되나니 먼저 조상에게 빌고 그 조상이 나에게 와서 빌어야 뜻을 이루느니라.” 하시니라.

 

 


60년 공덕을 들이는 천상 선령신


道典2편119장 하늘이 사람을 낼 때에 무한한 공부를 들이나니
그러므로 모든 선령신(先靈神)들이 쓸 자손 하나씩 타내려고 60년 동안 공을 들여도 못 타내는 자도 많으니라. 이렇듯 어렵게 받아 난 몸으로 꿈결같이 쉬운 일생을 어찌 헛되이 보낼 수 있으랴.


너희는 선령신의 음덕을 중히 여기라.
선령신이 정성 들여 쓸 자손 하나 잘 타내면 좋아서 춤을 추느니라.
너희들이 나를 잘 믿으면 너희 선령을 찾아 주리라.

 

 

 


자손에게 선령은 곧 하느님


道典7편19장 만성 선령신(萬姓 先靈神)들이 모두 나에게 봉공(奉公)하여 덕을 쌓음으로써 자손을 타 내리고 살길을 얻게 되나니 너희에게는 선령(先靈)이 하느님이니라.
너희는 선령을 찾은 연후에 나를 찾으라. 선령을 찾기 전에 나를 찾으면 욕급선령(辱及先靈)이 되느니라.

사람들이 천지만 섬기면 살 줄 알지마는 먼저 저희 선령에게 잘 빌어야 하고, 또 그 선령이 나에게 빌어야 비로소 살게 되느니라.

이제 모든 선령신들이 발동(發動)하여 그 선자선손(善子善孫)을 척신(隻神)의 손에서 건져 내어 새 운수의 길로 인도하려고 분주히 서두르나니 너희는 선령신의 음덕(蔭德)을 중히 여기라. 선령신은 그 자손줄을 타고 다시 태어나느니라.

 

 

 


부모를 하늘땅같이 섬기라


道典2편26장 하루는 말씀하시기를 “부모를 경애하지 않으면 천지를 섬기기 어려우니라.
천지는 억조창생의 부모요, 부모는 자녀의 천지니라. 자손이 선령(先靈)을 박대하면 선령도 자손을 박대하느니라. 예수는 선령신들이 반대하므로 천지공정에 참여치 못하리라.

이제 인종 씨를 추리는 후천 가을운수를 맞아 선령신을 박대하는 자들은 모두 살아남기 어려우리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조상은 아니 위하고 나를 위한다 함은 부당하나니 조상의 제사를 극진히 받들라.
사람이 조상에게서 몸을 받은 은혜로 조상 제사를 지내는 것은 천지의 덕에 합하느니라.” 하시니라.

 

 

 


황천신과 중천신


道典4편104장 하루는 성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중천신(中天神)은 후사(後嗣)를 두지 못한 신명이요, 황천신(黃泉神)은 후사를 둔 신명이라.
중천신은 의탁할 곳이 없어 황천신에게 붙어서 물밥을 얻어먹어 왔으므로 원한을 품었다가 이제 나에게 하소연을 하니 이후로는 중천신에게 복을 맡기어 사(私)가 없이 고루 나누게 하노라.” 하시니라.

 

 

 

 


4편115장 무신년 여름에 대흥리에서 공사를 보실 때 종이에 글을 써서 불사르시니 이러하니라.

姜太公이 用七十二候하여 使鬼神如奴之하고
강태공    용칠십이후      사귀신여노지

張子房이 用三十六計하여 使鬼神如友之하고
장자방    용삼십육계      사귀신여우지

諸葛亮은 用八陣圖하여 使鬼神如師之하니라
제갈량    용팔진도      사귀신여사지

강태공은 칠십이후를 써서 귀신을 종처럼 부렸고 장자방은 삼십육계를 써서 귀신을 친구처럼 부렸으며 제갈량은 팔진도를 써서 귀신을 군사처럼 부렸느니라.

 하루는 성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지금은 귀신이 사람의 법을 쥐고 있으나 앞세상에는 사람이 귀신의 법을 쥐게 되느니라. 그러니 어서 부지런히 닦으라.” 하시니라.

 



8편62장 상제님께서 옛사람을 평론하실 때는 매양 강태공, 석가모니, 관운장, 이마두를 칭찬하시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일꾼된 자 강유(剛柔)를 겸비하여 한편이라도 기울지 아니하여야 할지니 천지의 대덕(大德)이라도 춘생추살(春生秋殺)의 은위(恩威)로써 이루어지느니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의로움(義)이 있는 곳에 도(道)가 머물고, 도가 머무는 곳에 덕(德)이 생기느니라.” 하시니라. 하루는 말씀하시기를 “사람이란 벌처럼 톡 쏘는 맛이 있어야 하느니라.” 하시니라.

 

4편15장 관운장(關雲長)은 병마대권(兵馬大權)을 맡아 성제군(聖帝君)의 열(列)에 서게 되었나니
운장이 오늘과 같이 된 것은 재주와 지략 때문이 아니요 오직 의리 때문이니라. 천지간에 의로움보다 더 크고 중한 것은 없느니라.

하늘이 하지 못할 바가 없지마는 오직 의로운 사람에게만은 못 하는 바가 있느니라. 사람이 의로운 말을 하고 의로운 행동을 하면 천지도 감동하느니라. 그러므로 나는 천지의 모든 보배를 가지지 않은 것이 없으나 의로움을 가장 으뜸가는 보배로 삼느니라. 나는 추상 같은 절개와 태양같이 뜨거운 충의(忠義)를 사랑하노라.


4편11장 전명숙(全明淑)이 도탄에 빠진 백성을 건지고 상민(常民)들의 천한 신분을 풀어 주고자 하여 모든 신명들이 이를 가상히 여겼느니라. 전명숙은 만고(萬古)의 명장(名將)이니라.
벼슬 없는 가난한 선비로 일어나 천하의 난을 동(動)케 한 자는 만고에 오직 전명숙 한 사람뿐이니라.

세상 사람이 전명숙의 힘을 많이 입었나니 1결(結) 80냥 하는 세금을 30냥으로 감하게 한 자가 전명숙이로다. 언론이라도 그의 이름을 해하지 말라.

 

8편1장 하루는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시속에 전명숙(全明淑)의 결(訣)이라 하여 ‘전주 고부 녹두새’라 이르나 이는 ‘전주 고부 녹지사(祿持士)’라는 말이니 장차 천지 녹지사가 모여들어 선경(仙境)을 건설하게 되리라.” 하시니라.

 
6편83장 상제님께서 정읍 대흥리 경석의 집에 포정소를 정하시고 공사를 행하시는데 양지에 24방위 글자를 돌려 쓰시고 중앙에 血食千秋 道德君子 혈식천추 도덕군자 라 쓰신 후에 말씀하시기를 “‘천지가 간방(艮方)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하나 그것은 그릇된 말이요, 24방위에서 한꺼번에 이루어진 것이니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이 일은 남조선 배질이라. 혈식천추 도덕군자의 신명이 배질을 하고 전명숙(全明淑)이 도사공이 되었느니라. 이제 그 신명들에게 ‘어떻게 하여 만인으로부터 추앙을 받으며 천추에 혈식을 끊임없이 받아 오게 되었는가.’를 물은즉 모두 ‘일심에 있다.’고 대답하니 그러므로 일심을 가진 자가 아니면 이 배를 타지 못하리라.” 하시고 모든 법을 행하신 후에 불사르시니라.

 
혈식천추 도덕군자血食千秋 道德君子: 예로부터 시조나 창업자, 인류를 위한 공렬(功烈)이 지극한 사람의 신위는 불천위(不遷位)라 하여 영원히 사당에서 모시도록 하였다. 불천위에는 날것을 제수로 올리는데 여기에서 ‘혈식군자’라는 말이 유래했다. 곧 모든 상제님 일꾼들은 혈심으로 일하여 천지와 더불어 영원히 공경받는 인류의 위대한 스승이 되라는 말씀이다.

 
24방위에서 한꺼번에: 하늘과 땅은 만들어진 것도, 창조된 것도 아니다. 우주 조화정신의 본성(自性)으로부터 ‘문득 열린 것’이다. 즉 개벽된 것이다. 이 말씀을 통해 우주에는 자연 질서의 창조주 하느님이 아니라 우주 질서의 통치자 하느님, 개벽장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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