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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동호회 휴게실

갑진년 ....청계산행 구경 함 해보세요.

작성자나무랑|작성시간24.01.24|조회수373 목록 댓글 11

난생처음 청계산행.

밤새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초대하지 않는 손님이 지나가는 장마철이니 

비가 오는 건 당연했지만, 대지를 호령하는 

천둥과 함께 찾아온 번개가 예사롭지 않고

심란하기만 했다.

동호회 모임에서 청계산행이나 하고 점심식사를 가볍게 하자는

내일 약속을 가로막는 눈치 없는 장맛비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이른 아침 비는 그쳤지만 거실 창문 너머로 비를 가득 머금은 먹구름이

금방이라도 일을 저지를 듯 위태롭다.

설마 하니 산행을 할까 싶어 원피스에 샌들을 신고 청계산 입구

원터골을 물어물어 찾아갔다.

저 멀리 동호회 회원님들이 하나같이 배낭을 메고 등산복 차림으로

웅성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아.... 이를 어째' 비가 와도 산행을 하는 거구나

순간 창피해서 도망가려고 하는데 동호회 회원님께서 웃으시면서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하신다. 

앗! 딱 걸려서 도망갈 수도 없는 진퇴양난이라

쭈뼛쭈뼛 회원님들 있는 데로 갔다.

그리고 천만다행 회원님 중에 여분으로 가져온

반바지를 빌려 입고 반바지 속에다 원피스를 집어넣어 블라우스를 만들고

문제에 샌들을 벗어 가방에 집어넣고, 난생처음 하는 산행을 맨발로 시작했다.

발가락 사이로 진흙이 삐죽삐죽 삐져 올라오는 게 재미있어

다리에 힘을 있는 데로 주면서 걷다가 장딴지에 쥐가 나기 시작하여

또다시 민폐를 끼치는 대형사고를 저질렀다.

꼼짝 못 하게 아펐지만, 아픈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산행을 못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두려움으로 장딴지를

주무르고 비비면서 쥐를 내쫓아 버리려 얼마나 노심초사했던지.

가까스로 장딴지에 났던 쥐를 내쫓고 산행을 하면서

평생 잊을 수없는 추억을 안겨 주었던 청계산 옥녀봉.

갑진년 청계산행.

1월 셋째 주 일요일은 청계산 옥녀봉으로 산행이 있는 날이다.

여위고 메마른 가지마다 눈꽃인양 새하얀 상고대가 피어 덕유산

덕유평전을 새하얀 눈꽃밭으로 단장하고 겨우내 추위로 고문을 당하는

마음을 위로를 하던 겨울산행.

이제는 산행할 기회조차 없어 포기하고 체념하니 20년 넘게 하던 산행도

열정이 식어 가까이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이 되어버렸다.

그렇지만 산행에 흥미를 잃고 방황하는 주인을 아직도 묵묵히 기다리는 배낭을

잡는 순간 살짝 가슴이 떨린다.

 

일 년 중 가장 춥다고 하는 대한을 무색하게 하며

간밤에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더니 이른 아침에도 연장전을 벌이려고

하늘은 짙은 회색빛 구름이 낮게 깔려 우중산행을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상청의 일기예보는

오래전에 신뢰를 잃어버렸지만 아직도 미련이 남아서 기상청 일기 예보를

믿어보며 우산조차 준비하지 않고 배낭을 챙겼다.

현관문을 나서자 비록 희미한 햇살조차 간 곳이 없어도

온도계 수은주를 영상으로 밀어 올린 기온 덕분에 한겨울 강취위를

잠시 피해 막간을 이용한 산행은 새해 첫 행운을 누린 것처럼 

기쁨을 주체할 수없어 마냥 웃음꽃을 피우며

산우님들이 기다리는 청계산입구역으로 갔다.

 

산행이라는 이름으로 성별과 나이를 초월하여

오늘 모이신 33명의 산우님들과 화기애애하게 

인사를 주고받으며 원터골 마당 계단에서 기념촬영도 했다.

갑자기 감사하다는 생각이 가슴 가득 차오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정비가 잘 되어있는 시멘트 길을 잠시 올라가자

옥녀봉 1750m라는 나무표시판이 친절하게 오른쪽을 가리키고 있다.

4km가 십리이니까 오리 조금 안 되는 거리라고

짐작만 하고 가볍게 산길을 올라갔다.

숲 속 찬공기를 깊이 들이마시자 닫혔던 마음이 툭 터지며 갑자기 울컥했다.

"그래 산행하기를 얼마나 잘했어"

울먹이는 마음을 가만가만 달랬다.

계곡물이 졸졸거리며 따라온다.

한겨울에도 얼지 않고 용케도 버티고 있는 수정같이 맑은 계곡물이

기특하여 먼발치에서 눈맞춤하며 산행은 쉼 없이 이어졌다.

저만치에서 크고 작은 돌로 만든 계단이 우리를 기다린다.

스틱을 꺼내려고 배낭을 내려놓고 스틱을 찾으니 스틱이 안 보인다.

"아.... 이를 어째"

난감했지만 어쩌겠어 높지 않은 산이니까

불안한 마음을 달래면서 계단을 올라가지만

생각만큼 속도가 붙지 않고 발걸음은 무거워지기만 한다.

스틱 산행도 습관이라 스틱이 없으니 도저히

속도가 붙지 않아 산행은 갈수록 힘이 들어갔다.

우연히 계곡 옅을 보다가 나무지팡이를 발견했다.

"어째 이런 일이"

구세주가 따로 없다.

나무 지팡이 길이도 자로 잰 듯 어쩜 그리 안성맞춤이던가.

자 이제 지팡이가 생겼으니 다리가 셋. 속도는

저 절도 났고 산행의 즐거움이 샘솟듯 솟아오른다.

어떻게 그 자리에 지팡이가 있었을까

생각할수록 신통방통하여 웃음꽃을 날리는데

어느새 진달래 능선까지 올라왔다.

일방통행 좁은 산길 진달래 능선길에는 앙상하게 뼈만 남은

진달래 가지가 청계산을 찾아온 우리를 반겨주고 있다.

엄동설한을 무사히 견뎌내고 있는 그들에게 대한도 지났으니

조금만 기다리면 봄이 올 거라는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네주며

갈 길 바쁜 나그네처럼 진달래 능선을 빠져나왔다.

산기슭에 드문드문 잔설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옥녀봉 정상도 머지않았다고 한다.

 

옥녀봉 700m라는 나무 표시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가볍게 눈인사를 했다.

정상을 향한 산기슭에는 누우런 낙엽과 새하얀 눈이 버무려져

아무리 보아도 낙엽 시루떡을 해 놓은 것 같아 겨울 숲 속 정취가 물씬물씬 풍긴다.

한겨울 찬바람이 새하얀 눈으로 소나무 가지에

그린 그림을 우연히 보았다.

나무의 자태를 여과 없이 드러낸 신비로움에 마음이 먼저 놀랐다.

갈길을 잃고 멍하니 쳐다보며 천천히 나무 곁으로 갔다.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찰나의 진풍경

속으로....

 

산길에서 주운 보석보다 더 귀한 구세주 지팡이

덕분에 가볍게 옥녀봉(375m) 정상에 올라왔다.

이름 그대로 맑은 물이 흐른다는 청계산에는

주봉인 만경대(618m)를 비롯하여 이수봉, 매봉등이 있고

오늘 산행한 옥녀봉은 봉우리가 구슬같이 예쁜 여인처럼 

보인다 하여 옥녀봉이라고 한다.

옥녀가 예쁜 여인의 대명사처럼 인터넷 사이트에

옥녀봉을 검색하면 각 지역마다 있어 열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로 많다.

물걸레 청소기가 나오고 드론으로 물건을 나는 첨단 기계문명이

꽃 피운 현대 옥녀가 아름다운 여인에 대명사라고 한다면

왠지 어색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옥녀가 예뻐 보이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옥녀봉 정상에 서면 관악산 정상도 보이고 과천

시가지가 발아래 있고 날이 좋으면 한강 또한 볼 수 있지만,

오늘처럼 진눈깨비가 있다 금씩 휘날리는 날에는

관악산 정상조차 조망 할 수는 없다.

청룡의 해 갑진년 새해 온 지가 엊그제 같은데

무심한 세월은 벌써 중순을 넘어가고 있다.

새해가 왔다 해도 오늘이 내일과 같은 지루한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청룡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어 靑龍山이란 이름도 있는 청계산에서

새해 첫 산행을 하고 나니 갑자기 푸른 용의 기운이 온몸에

스며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무슨 조화일까.

2024.1.21

Na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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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나무랑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1.24 반겨주셔서 넘넘 감사드려요
    정기산행방 제인1 총무님^^
    그러게요 나무 스틱 없었음
    어쩔뻔 했겠어요.
    감사는 제가 해야하는데요 모.
    수고 정말정말 많이 하셨어요.
    아직은 많이 서투른데요.
    잘 봐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총무님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 작성자우영 | 작성시간 24.01.26 글로 그린 옥녀봉이 사진보다 아름답네요!
    즐겁게 감상 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나무랑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1.26 아직은 많이 서투른데요.
    잘 봐 주셔서 넘넘 감사드려요.^^
  • 작성자정 빛나리 | 작성시간 24.01.30 어쩌면 산행 후기를
    맛갈나고 재미있게 쓰셨군요.
    문학소녀라고 부르고 싶네요
    건강문제로 함께하지 못해
    다음 기회를 기다려 봅니다.
  • 답댓글 작성자나무랑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1.30 벌써 재작년이예요.
    빛나리 고문님께서
    수요 산행학교 교장선생님으로
    산행 주관 하실때 두 번 산행하고
    졸업했거든요. ㅠㅠ
    옙^^ 저도요 고문님께서 다시 시작하는 정기산행방에서 예전에 건강한 모습으로 뵙기를 소망합니다.
    늘 응원해 주셔서 넘넘 감사드려요. 빛나리
    고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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