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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수상

내가 읽은 詩 - 김희추의 <달맞이꽃>

작성자부천이선생|작성시간24.04.26|조회수56 목록 댓글 0

내가 읽은 詩

 

 

달맞이꽃

 

— 김희추

 

수만 리 먼 곳에

두고 온 고향

못 잊어 그리던 밤

 

지새워 망울에 담은 사연

하얀 그믐달

서쪽 하늘에 걸치면

 

이슬 머금은

노란 기다림의 속내

동살 받아 아침을 밝힌다

 

 

‘달맞이꽃’은 쌍떡잎식물로 바늘꽃과의 두해살이풀이다. 남아메리카 칠레가 원산지인 귀화식물이라지만 이제는 우리꽃이 되어 전국의 물가나 길가 그리고 빈터에서 잘 자란다. 꽃은 7월에 노란색으로 피는데 저녁에 피었다가 아침에 시든다. ‘달맞이’는 낮에는 꽃을 오므리고 밤에 꽃을 피운다고 하여 유래된 이름이다.

 

김희추의 시 <달맞이꽃>은 ‘달맞이꽃’의 이러한 특성을 잘 드러낸 시이다. 시 형식이래야 전체가 3 연 9 행으로 단순하다. 외형적으로는 3 행씩 세 연을 이루고 있지만 내용상으로는 1, 2 / 3, 4 / 5, 6 / 그리고 7, 8, 9 행 네 묶음으로 해석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시 속으로 들어가 보자.

화자가 있는 곳은 ‘수만 리 먼 곳에 / 두고 온 고향’이라는 타향이고, 시간적으로는 1연 마지막 행, 바로 3행에 나오듯이 ‘못 잊어 그리던 밤’이다. 즉 고향을 그리워하는 밤이다. 이 3행은 형식적으로는 1연에 붙어 있지만 내용상으로는 4행에 연결된다. 그래야 3행의 마지막 단어에 이어져 ‘밤 / 지새워 망울에 담은 사연’으로 완성된다. 즉 수만 리 떨어진 타향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밤을 지새는 사연이 있는데 그 사연을 ‘망울’에 담아뒀다는 이야기이다.

 

그 사연을 망울에 담어두기만 했을까. 아니다. 지새운 밤이 지나면 아침이 찾아온다. 바로 ‘하얀 그믐달 / 서쪽 하늘에 걸’칠 때이다. 그때 밤을 지새우며 ‘망울’에 담아두었던 ‘이슬 머금은 / 노란 기다림의 속내’를 ‘동살 받아 아침을 밝힌다’는 이야기이다. ‘그리던 밤’과 ‘기다린 속내’가 언뜻 연결되지 않겠지만, 고향을 그리는 것이요 그 고향을 다시 찾을 날을 기다리는 것이니 꽃 ‘망울’ 속에는 그리움과 기다림이 다 들어 있다.

 

3연에 자주 접하지 못한 어휘가 보인다. 흔히 해돋이 바로 전, 여명이 드는 때를 ‘동트는 새벽’이라고 말하는데, 이때 동쪽에서 푸르스름하게 비치는 빛줄기를 ‘동살’이라고 한다. 따라서 동살은 직사광선이 아니고 해가 떠오르기 전에 아직 드러나지 않은 햇살이 구름 혹은 다른 사물을 통해 비치는 반사된 빛이다. 밤에 피는 달맞이꽃의 생태를 잘 알고 있는 시인은 그 꽃망울 속에 고향 그리움 혹은 기다림이 담겨 있는 것으로 파악했고, 이를 아침이 되는 시각에 잔잔하게 퍼져 오는 동살에 기대어 꽃의 노란 색깔이 드러나며 그리움과 기다림을 설파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노란 기다림’이라니, ‘동살 받아 아침을 밝힌다’니. 시인의 시적 감각이 돋보이는 표현들이다.

 

흔히 ‘달맞이꽃’이 소재로 작용하면 달을 님에 견주어 해바라기가 해를 따라가듯이 달이 뜨면 피어나 달이 지면 시들어버리는, 달을 향한 – 님을 향한 그리움으로 많이들 노래하는데, 이제 고희를 맞는 시인이라서 그럴까. 김 시인의 시적 감각은 고향을 그리는 마음, 그리고 아침을 기다리는 마음 나아가 아침을 여는 것으로 읽어낸다. 참 참신한, 새로운 해석이 아닌가. 물론 시인의 시적 상상력일 것이요 그러니 시인에게 나이는 그냥 숫자일 뿐이다. ♣

 

△  남산에서 있었던 시화전 행사에서 좌로부터 김희추 시인, 필자, 황종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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