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스크랩] 아직 끝나지않은 잉카의 투쟁...첫번째

작성자내일을향하여|작성시간13.01.22|조회수23 목록 댓글 0

아직 끝나지않은 잉카의 저항...첫번째

잉카의 마지막 황제 "아타왈파"
1527년 잉카의 가장 위대한 황제인 와이나 까빡의 급작스런 죽음으로
잉카제국은 큰 혼란에 휩싸이게 된다.
젊은 시절부터 일생을 정복전쟁에 매진했던 와이나 까빡황제는
당시 오늘날 에쿠아도르의 수도인 끼또에 머물고 있었는데
자신의 후계를 정하지않고 급작스럽게 죽음으로 황제를 따라
끼또에 머물고있던 끼또파와 잉카의 수도인 꾸스꼬파간에
세력 다툼이 예상됐는데 끼또파에선 와이나 까빡 황제와 끼또족의
공주 사이에 낳은 "아타왈파"를 내심 그 후계로 옹립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이를 눈치챈 꾸스꼬에 있던 와이나 까빡의 적자인
와스까르는 휘하의 장수들을 끼또로 보내 아타왈파와 그 측근들을
정벌토록 명한다.
아타왈파와 끼또에 머물던 신하들은 꾸스꼬로 돌아가거나
꾸스꼬군에게 투항한다는건 곧 자신들의 권력의 상실을 의미하며
이는 또한 죽음을 의미한다는걸 정확하게 알고있었다.
와스까르가 군대를 보냈다는 소식을 들은 아타왈파와 그 측근들은
내심 이런 사태를 기다렸음에 틀림없다.
이들은 선대 황제인 와이나 까빡을 따라 수십년간 정복 전쟁에 나섰던
경험많고 관록있는 최정예 잉카병사들이었다.
그러는 사이 꾸스꼬의 와스까르는 와이나 까빡의 뒤를 이어 자신이
12대 황제로 등극을 하고..
끼또군과 꾸스꼬군간의 첫번째 전투는 또메밤바 벌판에서 벌어졌는데
역시 예상대로 꾸스꼬군은 잘 훈련되고 경험많은 끼또군의 상대가
되질못했다. 첫 전투에서 자신이 보낸 군대가 전멸했다는 소식을 들은
와스까르는 곧 지원군을 보냈지만 이 지원군 역시 끼또군과의
전투에서 맥없이 패해버리는데,이에 격분한 와스까르는
중요한 전략상의 실수를 되풀이 하는데 군 작전상 절대 금기사항인
축차투입을 계속하는 실책을 저지른다.
대소 여러 전투에서 승기를 잡은 아타왈파는 와스까르가 있는
꾸스꼬를 향해 남하하기 시작했고 와스까르는 꾸스꼬 인근 전역에
총 동원령을 내리고 자신이 직접 군대를 지휘하는데 끼또군과의
마지막 전투에서 결국 유인 작전에 말려들어 사로잡히고마는데
이때 아타왈파는 온천 휴양도시인 까하 마르까에 머물면서
후속 조치로 꾸스꼬에 있는 모든 왕족을 죽일것을 명한다.
내쳐 잉카의 수도를 꾸스꼬에서 끼또로 옮길 구상을 한다.
이제 잉카의 유일한 왕이 된 13대 황제 아타왈파...

170 대 50,000
잉카의 내전에서 아타왈파가 승리를 거둔 그 즈음 스페인의 정복자
프란시스코 삐싸로가 180명의 군사를 이끌고 지금의 페루 북부
해안도시인 뚬베스에 상륙을 한다.
뚬베스에서 남쪽 해안도시인 삐우라를 거쳐서 잉카왕이 있다는
까하마르까를 향해 진군을 하는데 그 군사의 수는 177명에 불과했다.
반면 까하마르까에 진치고 있던 아타왈파의 군사는 5만명 정도로
추정이 되는데 잘 발달된 잉카의 도로망을 이용한 전령의 보고로
낯선 자들이 해안에 상륙하고 까하마르까를 향해 오고 있다는
보고를 받는다. 아타왈파는 측근을 보내 그 들의 동정을 살펴서
보고하게 했는데 애초에 이 낯선 177명을 상대로 걱정을 할 일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와스까르를 물리치고 잉카의 유일한 왕이된
아타왈파에겐 잘 훈련된 5만의 군사가 있었는데 불과 177명을
상대로 무슨 걱정을 했을까.그저 의례적인 보고를 받으면서
그 들의 진군을 막지말고 그냥두라는 명령을 내리는 중대한 실수를
저지르는데 이게 바로 잉카제국 몰락의 단초가 된다.
험준한 안데스의 고산을 오르느라 기진맥진한 스페인 군사들과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손바닥의 손금 보듯이 알고 있는
고산지대의 잉카군사들....게다가 177명과 5만명.
처음부터 상대가 안되는 싸움이었다.
그러나 중요한건 이제 막 제국의 유일한 황제가 된 아타왈파가
이 낯선 자들과 싸울(?) 생각조차 없었다는 점이다.
마침내 까하마르까에 도착한 스페인의 정복자 삐사로와 그 군사들은
잉카군의 주둔지를 보자 기가 질려버렸다.
셀수도 없이 많은 군막들과 잘 정돈된 주둔지는 자신들이 상상하던
야만족의 군대가 아니었다.
삐사로는 최후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했을것이다.
177명을 데리고 5만 잉카 군사와 싸운다는건 죽기를 자초하는 일이고
그렇다고 후퇴를 한다고해서 잉카인들이 자신들을 그냥 보내줄리도
만무할뿐더러 자신을 따라온 병사들에게 죽을수도 있다고
판단했을수 있다. 이 병사들은 스페인 왕실의 군대가 아니고
배당을 받기로하고 따라온 사병들인데 몇년에 걸친 원정이
소득없이 수포로 돌아간다면 이 사병들의 불만을 잠재울 방법이
없었을테고 또 이 원정에 자금을 대준 로께 신부에게도 원정 성공여부에
관계없이 투자금을 갚기로 이미 약조했던터라 그냥 돌아가도
결국 죽기는 매 일반이라는 판단하에 까하마르까 시내로
들어가기로 결정을 내린다.
삐사로는 아즈텍을 정복한 꼬르테즈가 했던것 처럼 왕을 사로 잡을
계획을 세운다. 아타왈파에게 선물과 함께 특사를 보내 자신들이
까하마르까에 머물것과 또 왕이 자신들의 군막에 방문해 줄것을
청했는데 아타왈파는 너무나 선선히 그 둘을 다 들어준다.
한 장소를 지정해 주고 그 곳에 머물것이며 그 다음날 그 군막을
방문할것을 허락한다. 즉시 방문해줄것을 요청한 삐사로로서는
적잖이 실망했지만 치밀한 계획을 세울 시간을 벌게 되서
오히려 득이 됐을수도 있다.공교롭게도 잉카왕이 지정해준 장소는
3면이 높은 담으로 막혀있고 한 방향만 외부와 통할수 있어서
삐사로에게는 절대적으로 유리한 입지가 조성된다.
3면의 건물 곳곳에 군사를 매복시켜놓고 다음날 신호에 따라
군막안에 들어온 왕의 일행을 총 공격하기로 작전을 세운
삐사로와 그 일행은 긴장과 초조,불안속에서 그 밤을 보냈다.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면 모두는 그 즉시 죽을 운명이므로 밤새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져서 새 날을 맞았다.
마침내 아타왈파는 5천명의 비무장 잉카군을 이끌고 군막을
방문했고 또 다른 잉카군은 이 군막밖에 머물고 있었는데
이 원정의 재정 후원자인 로께 신부의 신호를 기화로 매복해있던
스페인 군사들의 총 공세가 시작됐다.
대포와 총을 쏘고 기병들은 말을 타고 나가 미친듯이 닥치는대로
잉카인들을 베고 살륙했다. 저들의 목표는 오직 하나....
잉카왕을 사로잡는거였다. 잉카왕을 죽이지 않고 사로잡아야만
자신들이 안전하다는걸 아즈텍을 정복한 꼬르테즈의 예를 통해
충분히 알고 있었다. 미친듯이 날뛴지 두시간여,마침내 잉카왕
아타왈파를 사로잡는데 성공한다.
이 두시간 남짖 동안 스페인인들이 죽인 잉카인은 무려 7천명에
달한다. 이짧은 두시간만에 잉카와 스페인의 역사가 뒤바뀐다.
밤새 긴장속에 떨던 스페인 정복자들은 너무나 쉽게 잉카를 정복하고
이를 계기로 브라질을 제외한 전 남미를 식민통치하게 된다.

 

 


정복자들간의 갈등
프란시스코 삐사로에게는 그의 동업자 알 마그로가 있었는데
아타왈파 체포때 이 알마그로와 그 휘하 군졸은 현장에 없었다.
포로로 잡힌 아타왈파는 삐사로와 협상을 통해 자기의 몸값으로
막대한 양의 금,은을 제시했다.
꾸아르또 델 레스까떼(cuarto del rescate),몸값의 방이라는 의미인데
구금된 아타왈파가 삐사로에게 그 방 가득 금,은을 채워줄것을 제안하고
그 조건으로 자신을 풀어줄것을 요구한다.
삐사로 역시 그 조건을 수락하는데 아타왈파를 살려두고 그를
어용황제로 전락시켜 대리 통치하는것이 더 효과적일거라는
판단때문이었다. 지금도 까하마르까에 남아 있는 그 몸값의 방에
금과 은이 속속 도착하고 약속한 양이 거의 다 채워져갈 즈음
삐사로의 동업자 알 마그로가 150명의 부하와 까하마르까에
도착을 한다. 그 막대한 양의 황금을 보고 욕심이 생긴 알 마그로도
그 중에 일부 배당받기를 희망하지만 아타왈파 체포시 현장에 없었던
알 마그로에게는 그 황금을 주장할 권리가 없었다.
최소한의 공을 세워야만 배당을 주장할수 있을거라는 판단을 한
알 마그로와 그 부하는 아타왈파를 제거할 계획을 세우고
아타왈파가 내란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을 은밀히 퍼뜨린다.
알 마그로는 이 소문을 내사 사전에 내란음모를 발각하고
아타왈파를 재판에 회부하고 결국 아타왈파는 사형에 처해진다.
사전에 내란을 발각하고 그 계획을 무산시킨 공로로 알마그로와
그 일행에게도 일정량의 배당이 돌아갔음은 물론이다.
1532년 그렇게 잉카의 마지막 황제 아타왈파는 두 정복자간의
이권 다툼에 희생양으로 짧은 영화끝에 생을 마감한다.
더불어 잉카제국도 역사속에서 사라지게 되는데....

다음검색
스크랩 원문 : 페루 사진 널린곳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