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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문화 탐방 16일

[스크랩] 고흐와 고갱, 만남 그리고 이별 이야기 - 1

작성자디아니|작성시간20.05.13|조회수55 목록 댓글 0


19세기말의 퇴폐주의의 시대에 살면서 ‘그림’을 정신세계를 치유하는 중요한 요소로 보았던

고흐와 고갱은 자신들은 가난과 병마 속에 고생하면서도 인류에게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남기기 위해 투쟁하다간 선구자들이기도 합니다.

물론 자신들을 외면한 세상에 대한 원망이나 성공을 위한 몸부림을 하였지만

고흐와 고갱은 후세에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첫 그림은 두 사람이 같이 산 ‘노란 집’ 그림으로


Vincent's House in Arles (The Yellow House)

1888. Oil on canvas Vincent van Gogh Foundation,

Rijksmuseum Vincent van Gogh, Amsterdam, the Netherlands

 

빈센트 반 고흐와 폴 고갱의 만남에는 빈센트의 동생인 테오의 역할이 컸습니다.

인상주의 화가들에 대한 평가가 낮은 상황에서도 화상인 테오는 고갱의 진가를 높이 평가했고,

화가의 길에 나선 형 빈센트와 고갱의 만남을 주선하였고, ‘아를’에서

두 사람이 공동생활을 할 때도 모든 비용을 대주었습니다.

당시 고흐와 고갱은 둘 다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고흐는 파리 생활에 지친 무명화가였고

고갱은 인상파 전시회를 통해 알려지고 독자적 화풍을 정립해 나가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리고 성장 배경이나 성격도 모두 달랐습니다.

고갱은 다섯 아이의 아버지였으며 주식중개인으로 안정적으로 살아본 적이 있는 일요화가 출신이었고,

고갱은 목회자가 되려다 실패한 후 화가의 길을 택한 지 몇 년 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어쩌면 테오는 고갱을 성장가능성이 있는 화가로서 투자도 하고 동시에 형 빈센트가 구상하는

화가공동체의 주요인물로, 가르침을 줄 수 있는 그런 화가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 둘은 공동생활을 하기 전에 5월부터 편지를 주고받았으며 서로 자화상을 그려서 교환 했습니다.


폴 고갱이 고흐에게 헌정한 자화상


Paul Gauguin, Self-Portrait with Portrait of Bernard,

1888 Oil on Canvas, 45 x 55 cm

Van Gogh Museum, Amsterdam (Vincent van Gogh Stichting)


이 그림을 보면 고갱은 자신을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의 주인공 장 발장처럼 나타내려고

했다는 편지를 그림과 함께 보냈다고 합니다.

그림의 하단 오른쪽을 보면 “레미제라블” “나의 친구 빈센트에게”라고 쓰여 있고

그 밑에는 ‘장 발장’이라고 서명처럼 적었다고 합니다.

 

“내가 추구한 바를 설명해야겠네. 자네가 이 그림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할 것 같아서가 아니라,

내가 의도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것 같기 때문 일세 나는 장발장처럼 사회에서 추방당했지만

사실은 고귀하고 다정한 사람을 그리고 싶었었네, 사회에 의해 억압당하고 법 바깥에 있으면서도

사랑과 힘을 가진 장발장은 오늘날의 비참한 인상파 화가를 상징 하고 있지 않은가?”

- 고갱이 고흐에게 쓴 편지 중에서


고흐가 고갱에게 헌정한 자화상


Vincent van Gogh Self-Portrait (Dedicated to Paul Gauguin) Arles:

September, 1888 Oil on canvas 62.0 x 52.0 cm.

Fogg Art Museum, Harvard University, Cambridge, Mass.


빈센트가 고갱이 보내준 그림에 대한 대답으로 이 자화상을 그려 보냈다고 합니다.

고흐는 이 자화상에서 영원한 부처를 따르는 스님의 모습으로

자신을 그렸다고 편지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고흐의 생각으로 수행과 구도 생활을 하는 동양의 스님은 해쓱해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당신이 내 모습을 볼 텐데 이 작품은 동시에 우리 모두의 모습이며,

사회로 부터 희생당한 가련한 자들이고,

모든 것을 사회에 친절로 반환하는 자들의 모습입니다.”

 - 고흐가 고갱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그런데 테오는 두 사람의 성격차이는 고려하지 못했나 봅니다.

둘 다 개성이 강하고 지기 싫어하는데다 한 사람은 전형적인 ‘도시인’데 비해

다른 한 사람은 ‘촌놈’이었습니다.

주변의 평들을 보면 다섯 살이 많은 고갱은 냉소적이며 성격이 강했고,

고흐는 격정적이었지만 내성적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두 사람의 종교도 가톨릭과 개신교로 달랐습니다.

이런 두 사람이 가로 6m, 세로 4.5m의 작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하며

한 지붕에 살았으니 다툼은 필연적이었습니다.

 

1888 년 10 월 23 일부터 시작된 고흐와 고갱의 공동생활은 두 달 정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탁월한 능력을 가진 두 사람이 같은 공간에서 작업을 하고, 작품을 놓고 다투기도 했다면

두 사람은 여러 면에서 상호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둘이 남긴 작품에도 이 고흐와 고갱의 공동생활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오늘은 이 그림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아를의 여인 '마담 지누’


고흐와 고갱의 작품에 동시에 나오는 여성이 있습니다.

바로 고흐가 ‘노란 집’을 마련하기 전까지 머물렀던 ‘레스토랑 카렐’의 '마담 지누’입니다.

‘지누’는 한가한 오전 중에는 모델로 봉사해주었고 이런 인연으로 후에도

고흐는 초상화 연작으로 이 여인을 그렸습니다.

머리 모양이나 옷차림, 콧날까지 비슷한 것으로 보아 같은 날 그린 것이 확실합니다.

그런데 두 사람이 한 사람을 놓고 같은 장소에서 그림을 그렸는데 많은 면에서 다르게 보입니다.

고흐의 그림에 나오는 마담 지누는 모든 선이 날카롭게 그려져 있고

고갱의 지누는 둥그렇고 배경도 다르게 그렸습니다.

 

Vincent van Gogh Portrait of Madame Ginoux (L'Arlesienne)

1888 oil on canvas 93 x 74 cm Musée d'Orsay, Paris, France


Paul Gauguin At the Cafe (Cafe in Arles),

1888 92 x 72 cm Pushkin State Museum of Fine Arts, Moscow


이 그림에서부터 두 사람의 갈등이 시작되었다고도 합니다.

고갱의 그림에 나오는 사람들을 보면 고갱의 우편배달원 그림에 나오는 “조셉 룰랭”인데

고흐의 그림에 나오는 인자한 모습은 간데없고 창녀와 노닥거리고 있고,

탁자에 엎드려 자는 사람도 고갱과 친한 ‘밀리에’라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초기에 고갱이 고흐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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