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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문화 탐방 16일

[스크랩] 고흐와 고갱, 만남 그리고 이별 이야기 - 2

작성자디아니|작성시간20.05.13|조회수50 목록 댓글 0

다른 그림들을 보면 두 사람의 화풍의 차이도 확실합니다.

“아를의 여인들”이라고 하는 그림들입니다.


Paul Gauguin Women from Arles in the Public Garden,

the Mistral 1888 Oil on canvas 73 x 92 cm

Art Institute of Chicago, Chicago, IL, USA.



Vincent van Gogh Ladies of Arles

(Reminiscence of the Garden at Etten).

November 1888 Oil on canvas 73.5x92.5cm

The Hermitage, St. Petersburg, Russia


그리고 포도밭을 그림도 차이가 확연합니다.


Paul Gauguin. Harvesting of Grapes at Arles

(Miseres humaines) 1888.

Oil on canvas

Art Museum Ordrupgard, Copenhagen, Denmark.


Vincent van Gogh Red Vineyards of Arles 1888.

Oil on canvas

The Pushkin Museum of Fine Art, Moscow, Russia


또한 아를의 공동묘지를 그린 그림들도 많은 화풍의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Paul Gauguin Les Alyscamps, Arles 1888

Oil on canvas, 91 x 72 cm 91.6 × 72.5 cm

Musée d'Orsay , Paris 


Vincent van Gogh Les Alyscamps, 1888

Oil on canvas 93.0 x 72.0 cm 

 Collection Bail P. and Elise Goulandris


이 그림 두 점을 놓고도 여러 논문이 있을 정도입니다.

고갱은 물감을 엷게 사용하여 규칙적으로 붓질을 하는 반면

고흐는 색을 두텁게 칠했다고 합니다.

고갱은 고흐가 밀도가 높게 두텁게 칠하는 방법이

우연의 효과를 노리는 기법이라며 좋아하질 않았습니다.

이런 고갱의 반응은 고흐에게는 자기를 인정해주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둘 사이는 갈수록 나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빨간 베레모를 쓴 폴 고갱


Vincent van Gogh Paul Gauguin

(Man in a red beret), c. 1 December 1888

Oil on canvas, 37 x 33 cm

Van Gogh Museum Amsterdam (Vincent van Gogh Foundation)


해바라기를 그리는 반 고흐


Paul Gauguin, Van Gogh Painting Sunflowers, 1888,

Oil on canvas 73 x 92cm, 

  Rijksmuseum Van Gogh, Amsterdam, Holland


또 고갱과 고흐는 서로의 모습을 그려주기도 했답니다.

서로 우정을 위해서 그림을 그려주었는데 고흐는 이 그림을 보고 감정이 무척 상했다고 합니다.

그림에 나오는 고흐의 표정을 보면 멍하게 그려져 있고 해바라기도 활짝

고흐의 그림에 나오는 활짝 핀 것이 아니라 시들어 금방이라도 꽃잎이 떨어질 지경입니다.

고흐가 이 그림을 보고 고흐는 고흐인데 미쳐가는 모습이라고 투덜거렸다고 합니다.


빈센트가 그린 고갱의 의자, 고흐의 의자 두 점입니다.


Gauguin’s chair, 1888

Oil on canvas, 90,5 x 72 cm

Van Gogh Museum, Amsterdam (Vincent van Gogh Foundation)


Van Gogh’s chair, 1888

Oil on jute, 93 x 73,5 cm

The National Gallery, London


고흐가 두 사람이 헤어지기 며칠 전에 그렸다는 그린 의자 그림 두 점이 크게 과장이 없다면

두 사람의 성격과 상황을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고갱의 의자는 팔걸이가 있는 의자로 곡선이 많이 사용되었으며 전반적으로 화려하고

고갱이 좋아하는 양초와 책이 놓여 있으며 배경도 화려합니다.

그런데 고흐의 의자는 온톤 직선이고 장식도 없고 자신이 애용하던 파이프만 있고

배경도 단조롭기 그지없습니다.

두 사람의 성격이나 취향이 너무 다른 것을 잘 표현한 고흐의 걸작들입니다만,

역설적으로 두 사람의 이별이 비극일 것이란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결국 12월 23일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고흐는 흥분한 상태에서 자기 귀를 잘라버렸습니다.

고갱은 다시 파리로 돌아갔고 고흐는 아를 병원에 입원하여

이 둘의 두 달간의 공동생활은 막을 내립니다.

 

두 사람을 평가하면서 고갱보다는 고흐에 동정적입니다.

고갱은 귀를 자른 고흐을 보살피지 않은 점뿐만 아니라

빈센트와 테오 형제의 장례식에도 참여하지도 않았습니다.

피사로의 평가대로 고갱은 주변 사람을 잘 이용하고 자기 앞날을 막는 사람과는

격하게 싸웠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고흐의 삶이 알려지고 유명해질수록 고갱에 대한 평가는 불리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두 사람의 그림에 대한 일반적인 이야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고갱에게 그림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뿐 만아니라 상상을 통한 재결합을 통하여

자연적의 재조합을 하는 행위였고, 이를 위해 대상을 단순화하고 원색을 이용하여

장식적 효과를 높였습니다.

장식성과 상업적인 요소는 다섯 아이의 아버지라는 부담과

빠른 성공을 위한 고갱의 노력이었을 것입니다.

그에 비해 고흐는 고갱의 재구성을 과장으로 보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색과 터치로 내면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고흐의 그림을 보면 터치가 강하고 색의 선들이 살아있어

긴장감을 주고 강렬한 화면을 만들어 냈습니다.

 

The Yellow House, 1888,

Van Gogh Museum


우리는 고갱과 고흐 이 두 사람을 별개로 보기가 힘듭니다.

당시 유럽의 유명한 미술학교를 졸업한 수많은 화가들이 있었지만

후기인상주의의 대표적인 화가는 고흐와 고갱이며

근대회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사람들로 같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누가 더 잘 그리나 또는 누가 더 유명한가 보다 있는 그대로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감상한다면

그들의 우정은 오늘날에도 이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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